Q. 안녕하세요, 에디터 T. 저는 스물다섯 살 사회 초년생입니다. 사회에 나오니 대학생 때랑은 정말 다른 점이 많더군요. 그중에서도 가장 어색했던 건 밥 먹을 때예요. 어차피 점심이야 대부분 회사 구내식당에서 해결하기 때문에 대부분 자기가 사두었던 식권으로 밥을 먹어요. 하지만 구내식당이 아닌 곳에서 밥을 먹거나 야근을 해서 저녁 식사까지 같이 하게 되면 계산을 할 때마다 좀 어색한 상황이 연출되더군요(저희 회사는 야근 식대가 따로 나오지 않거든요). 이는 비단 회사에서뿐만이 아니에요. 대학생 때는 당연히 자기가 먹은 건 자기가 계산했었는데, 졸업을 하고 나니 친구들과 만나도 한 명이 계산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아직 취직을 못한 친구들도 있다 보니 제가 식대를 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뭐 처음 몇 번이야 괜찮았죠. 저도 늘 알뜰한 생활을 하다가 월급을 받게 되니 신이 났고, 친구들 만나서 기분도 낼 겸 밥 사는 것도 왠지 으쓱하고 좋았어요. 하지만 두어 달 지나고 나니 정신이 들더군요. 친구들 밥 사주려고 일하는 것도 아닌데, 저도 다시 알뜰한 생활로 돌아가 열심히 저축하며 살아야겠다고요.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막내라서 제가 돈을 내는 경우가 많지는 않지만 밥 먹고 나올 때마다 선배들끼리의 은근한 신경전도 보이고요. 그냥 나눠서 내면 좋을 것 같은데 회사 밖에서 먹는 일이 많지 않다보니 주로 한 명이 내게 되더군요. 서로 눈치 보는 모습이 제 미래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어쨌든 돈을 내는 것보다는 안 내는 쪽이 좋은 거잖아요? 혹시 여러 명이 식사하고 나서 밥 값 안 낼 수 있는 노하우 같은 거 없을까요? 평생의 제 재정 상태에 큰 영향을 줄 것 같습니다. 알려주세요, 에디터 T! (J씨, 25세, 서울 영등포구, 회사원)

A. 여러 명이 식사하고 밥값을 낼 때처럼 애매모호해지는 경우도 없지요. 모인 사람 중 가장 연장자이거나 공공연하게 연봉이 가장 높은 게 알려져 있는 경우라면 더 그렇지요. 사실 모든 사람이 자발적으로 서로 자기가 돈을 내겠다고 하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죠. 뭐 가끔씩은 이런 훈훈한 광경이 연출되기도 하지만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찮은 일 같이 느껴지긴 해도 밥값 때문에 인간관계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작은 일이지만 마음 상하기 십상인 거죠. 마음속으로 나름의 규칙을 세워두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세 번 밥을 먹었고 내가 두 번 밥을 샀는데 세 번째도 계산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는 함께 밥을 먹지 않는다거나, 밥을 샀는데 후식까지 나에게 계산하게 하는 사람과는 식사 약속은 잡지 않는 식으로 말이죠. 오고 가는 계산 속에 인간관계가 쌓인다는 것 정도는 알고 계시죠?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밥값을 내지 않을 수 있는 꼼수에 대해 알아볼게요. 가장 많이 알려진 방법으로는 ‘하염없이 운동화 끈을 묶는’ 방법이 있죠.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음식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에요. 계산대 앞에 서기 전까지 누가 더 꼼지락거리냐에 따라 그날의 물주가 결정되지요. 상대방이 계산을 끝내고 나면 잽싸게 끈 묶는 것을 마무리하고 달려가서 “내가 내려고 했는데 아쉽다”며 미안한 표정을 지어야죠. 이때 관건은 얼마나 리얼하게 미안한 표정을 짓느냐에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통하는 방법은 아니죠. 계산하기 전에 일부러 느리게 반응하면 상대방도 알아채고 옆에 서서 기다리는 경우도 많아요.

상대방이 운동화 끈 정도로 물러설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면 식사를 하면서 고민이나 힘든 점에 대해 어필하며 상대방의 동정심을 유발합니다. 상대방이 나보다 약자라고 생각하게 되면 양심상 밥까지 얻어먹을 수는 없겠죠. 상대에게 우월감을 느끼게 하며 기분 좋게 밥 한 끼 사게 만드는 거죠. 심지어 저는 청첩장을 주러 온 지인에게서 결혼 준비의 힘든 상황들에 대해 계속 듣다보니 결국 밥값은 물론이고 후식까지 사게 된 경험이 있어요(일반적으로 청첩장을 줄 때는 결혼의 당사자가 밥을 사는 게 상식이지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좀 씁쓸하더군요.

그런데 사실, 저는 이번 에디터스 팁에 대한 답변을 쓰며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운동화 끈을 묶으며 능청을 떨거나 불쌍한 척하며 상대에게 어필하거나, 이 모든 행동은 지금 당장은 내가 손해보지 않는 것 같아도 자신의 인생을 피곤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돈 안 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면 뭐하겠어요. 결국 자기자신만 스트레스 받을 뿐인 걸요. 또 매번 구두쇠처럼 상대방이 사는 밥을 먹기만 하다 보면 결국 많은 인간관계가 안 좋게 끝날 거예요. 인생 길게 보고 베풀며 사세요. 언젠가 다 돌아올 날이 있을 것입니다. 사회생활의 경험이 길어질수록 당신 주변에 사람이 많아질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요. 행운을 빌어요!

+ 어떤 질문도 좋습니다. 생활 속에서 궁금한 점이 생겼다면 bykim@kayamedia.com으로 질문을 보내주세요. 에디터 T가 정성껏 답변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