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소리 위를 흐르다, 이은미

이은미라는 가수에게 ‘정상ʼ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쉬지 않고 무대에 올랐고, 노래했을 뿐이다. 꽉 채운 30년. 욕망과 질투를 자양분 삼아 20년은 족히 치열했고 이제 비로소 편안함을 얻었다. Age, 이은미에게 그것은 버팀과 내공 사이의 시간이었다. 혹여 나이 드는 것이 두렵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2019.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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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드레스는 이은미 소장품, 볼드한 링은 다비데초이.

 

화이트 컬러 셔츠 드레스와 함께 입은 와이드 팬츠는 뮤제, 안에 입은 시스루 톱은 데무, 볼드한 이어링은 피바이파나쉬.

 

오랫동안 무대에 서는 것. 모든 가수의 바람이지만, 누구에게나 그 기회가 오는 건 아니다. 멀티플레이어가 대세이고 트렌드인 시대에, 오직 무대에서 노래하는 것밖에 잘할 줄 아는 게 없는 가수. 이은미, 그가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1998년 데뷔. ‘기억 속으로’, ‘어떤 그리움’, ‘애인 있어요’, ‘녹턴’, ‘헤어지는 중입니다’로 이어지는 값진 히트곡. 무대 위에서 더 자유로워지는 맨발의 디바. 이은미의 지난 시간을 하나하나 되짚는 것은 어쩌면 긴 사설이 될지 모른다. 이은미는, 그 이름 하나로 이해되는 독보적인 영역의 가수이며, 이는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니. 오직 노래로만 먹고사는 외골수 이은미. 그에게도 30년은 호락호락한 시간이 아니었다. “30년이라는 시간이 주는 무게감보다는, 30년을 관객과 만난 그 시간이 오히려 현실감 있게 다가오죠. 기쁘기도 하지만, 책임감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하나, 우리가 이은미와의 인터뷰를 준비한 것은 단지 3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오히려 30년의 세월을, 나이 들어가는 가수의 세월을 묻는 조금은 잔인한 자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은미는 오히려 흔쾌하게 수락했다. 1966년생 이은미. 노래하는 가수에게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롱 코트는 진태옥, 스웨이드 소재 부츠는 마이클 코어스.

 

900회, 무대에 오르고 또 오르고 
약 900회. 가수 이은미가 무대에 오른 횟수다. 한국 여성 가수 최다 라이브 공연 기록이라는 위대한 타이틀도 따라붙었다. 정작 이은미는 이러한 숫자엔 무딘 부류다. “몇 회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1년에 20개 도시를 갈 때도 있고, 45개 도시를 돌 때도 있고. 한 해 평균 20개 도시는 도는 것 같아요. 방송에 최적화된 친구들과 달리 저는 공연이 주 무대니까요. 힘들다기보다, 그게 일상이어서.” 삶의 터전과도 같았던 무대. 하지만 무대에 서는 것이 마냥 즐거웠냐고 묻는다면?    


“매번 즐겁지는 않죠. 저도 사람이니까. 아주 가끔 연말 공연이 없는 해가 있는데, 오래간만에 집에서 쉬니까 좋죠(웃음). 연말에 집에서 쉰 게 몇 번 되지 않아요. 작년에도 서울 공연을 했고요.” 관객과 만나는 일이 가슴 설레지만, 30년을 무대에 오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40대만 돼도 일을 그만두고 싶어 하는데, 30년을 어떻게 버텼는지 존경스러울 따름이라는 말에, 이은미는 더욱 따뜻한 눈빛으로 말을 잇는다. "저 역시 숱하게 도망갔고, 지금도 가능하면 어떻게든 놀고 싶어요(웃음). 20대의 에너지로 30대를 달리고, 20대의 정신과 30대의 몸으로 40대를 달리고. 모두 그렇게 열심히 달렸으니, 지칠 수밖에요.” 도망치고 싶다는 것은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증거이기도 할 터. 이은미 역시 치열하게 살았고 도망도 갔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렇게 30년의 시간이 쌓이고 쌓인 것뿐. 한데 문득 궁금증 하나가 생긴다. 그 많은 세월에 비해 의외로 이은미의 작사, 작곡이 적다는 것. “공동 작업을 해도 제 이름을 안 쓰고 같이 작업한 친구 이름으로 발표하고…. 어차피 이건 이은미 음반이니까,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요즘 친구들은 작업량을 정확히 나눈다는데 그걸 인지한 지가 얼마 안 됐어요. 후반 앨범에는 제 작사 작곡 노래도 있어서 소주 한 잔 값 정도는 나오니(웃음).” 비록 ‘셈’에는 어리숙한 이은미지만 그 덕분에 20년이 훌쩍 넘게 함께하는 밴드, 음향 스태프 등 가족 같은 동료가 더 많아지지 않았겠는가. 

 

 

케이프 스타일의 벨벳 코트는 진태옥, 컷아웃 디테일의 모자는 큐 밀리네리.

 

그땐 진짜 딴따라가 된 기분이었죠! 
인터뷰 전, 이은미의 노래 중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곡인 ‘기억 속으로’를 실로 오랜만에 다시 들었다. 이은미의 목소리가 이렇게 맑았던가? 새삼 놀라기도 했다. “창법도 지금이랑 다르고, 더구나 20대였고요. 그때는 창법도 완전하지 않았어요. 목을 잘 다루질 못해서 공연 후에 목이 쉴 때가 많았죠. 무대 경험이 쌓이면서 신체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죠. 윗가슴, 아랫배, 몸통 전체로, 어떤 때는 성대만을 사용할 때도 있고요.” 몸 전체를 사용해 자유자재로 노래하게 된 후, 목이 쉬는 일은 없어졌다. “어떤 성악가는 목 관리를 위해 부단히 애쓴다는데, 노화를 늦추는 방법이긴 하겠지만 막을 수는 없잖아요.”  지금 이은미는 분명 가수로서 전성기는 아니다.

“10년 전인, 20주년 때가 전성기였어요. 그땐 진짜 딴따라가 된 기분이었어요. 아, 이런 음악 하니 좋구나. 목소리도 그렇고.” 소위 ‘노래의 맛’이 무엇인지도 맛봤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이은미도, 그리고 목소리도 나이가 들 수밖에 없는 것. 하물며 목소리는 성형조차 할 수 없지 않은가. “누구나 전성기가 있어요. 그걸 끌어안고 곱씹으며 살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한편에 두고 본인이 원하는 다른 걸 선택할 것인가. 나이 들어가는 게 멋지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아마도 후자 쪽에 속할 거예요.” 이은미 역시 내려가는 것을 받아들이며 사는 후자 쪽에 속한다. 그것도 모자라 나이 드는 걸 즐기고 좋아한다니. “만약 20~30대로 돌아가라면 당연히 노(No)! 저 역시 40대 초반, 중반까지는 그야말로 맹렬하게 살았죠. 반면에 지금은 훨씬 자연스럽고 편해졌어요. 지독하게 매달리고 이것저것 다 해보고 그런 경험이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늘 새로운 작업을 선보여야 하는 아티스트의 길. 

“늘 새로운 걸 창조해내기란 불가능해요. 비현실적이죠. 적당히 타협하고, 자기 합리화도 하고. 그러지 않았으면 벌써 일 저질렀죠(웃음).” 새로운 것에 대한 목마름은 모든 아티스트의 욕심일 테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타협도 필요하고, 방어막처럼 자기 합리화도 필요하다는 것이 이은미의 생각. 타협과는 담쌓고 살아왔을 법한 이은미의 입을 통해 듣는 타협과 자기 합리화의 필요성은 낯섦을 넘어 반가움으로 다가온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유행이나 시류에 휩쓸리는 타입은 아니에요. 나한테 잘 맞는지, 내 기준으로 옳은 것이냐가 판단 기준이 될 뿐이죠.” 

 

 

오버사이즈 디자인의 화이트 셔츠는 쿠만유혜진, 이어링과 링은 다비데초이.

 

여전히 이은미는 충돌 중이다 
“아이유가 묻더라고요. 선배님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지, 사무실에서 원하는 음악을 하는지. 이렇게 답해줬죠. ‘기준은 없다. 자기 자신이 마음 편한지가 중요하다. 사무실 얘기를 듣는 게 편한지,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편한지.’ 당연히 저는 제 쪽이죠(웃음).” 물론 이은미에게도 늘 명쾌한 답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가수의 삶을 위해서 인간 이은미의 삶까지 올인하며 살길 원하지 않는다는 이은미의 뜻밖의 이야기. “아직도 가수 이은미와 인간 이은미가 계속 충돌 중이에요. 가수가 아닌 이은미로서도 사랑하고, 그걸 좋아하는 사람이죠.” 노래하는 것 외에 사생활을 노출하지 않는 것 역시 그 때문이다. 가수 이은미와 인간 이은미, 그 중간의 밸런스를 찾는 것은 힘든 문제이며 여전히 가슴속에서 충돌 중이라 말하는 이은미의 말이 오히려 인간적으로 다가왔다면 이해될까? 그런데 가수 이은미에 가려진 인간 이은미는 어떤 사람일까.

“외로운 사람이었죠. 갖고 태어난 외로움이 컸기 때문에 음악이라는 친구가 좋았고. 하지만 음악을 친구처럼 영원히 함께한다는 건 어려워요. 하면 할수록 어렵고. 일이니까, 객관적으로 볼 줄 알아야 해요. 내가 좋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니까요.” 가수의 수명을 결정하는 것은 가수가 아니다. 그의 말마따나 이은미의 목소리 수명을 결정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 될 터다.   

“삶이 팍팍하니, 행복해지는 음악을 전해드리고 싶어요. 이은미 노래 한 소절 덕에 그 힘든 시간을 견뎠지, 얘기할 수 있는.” 정작 이은미는 자신의 힘든 시간을 무엇으로 견뎠을까. “음악, 영화, 그림일 때도 있고요. 사실 컬렉터가 제 꿈이에요. 좋은 그림을 보면 사고 싶은 욕망이 들끓죠. 사고 싶은 그림은 비싸고. 그래서 가능하면 갤러리에 가지 않으려고 해요(웃음).” 원하는 그림을 못 사는 대신 최근에 TV를 77인치 4K 울트라 HD로 바꿨고 그걸로 명화를 보니 뿌듯하다며 이은미는 웃었다. “스쿠버다이빙을 한 지도 10년이 됐어요. 원정까지 다닌 건 4년 정도. 올해는 강사 자격증을 따볼까 싶어요. 맞다, 제 즐거움 하나가 더 있죠. (휴대폰 카메라의 반려견을 보여주며) 여덟 살이고, 이름은 ‘꿈’이에요. 얘랑 공원 산책도 하고 음악도 듣고….” 공연 후 지친 몸이어도 산책을 시켜달라는 ‘꿈’이의 눈빛을 보면 한밤중에라도 집을 나서는 즐거움이 이은미에게는 ‘소확행’인 것 같다고.

“여름 무렵 30주년 기념 앨범이 나올 텐데, 가능하면 편안하고 쉬운 노래를 만들고 싶어요.” 앨범 발매와 함께 이어지는 가을 투어의 시작은 이은미에게 분명 또 다른 의미가 될 것이다. 30년의 시간. 비록 음악 차트 위의 이은미는 사라졌지만, 지친 사람들의 마음 위로 이은미의 노래는(소리는) 여전히 묵직하게 흐른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은미가 나이 들더라도 그 노래를 멈추지 않길 바란다. 삶과 함께 익어가는 ‘시간’과 ‘내공’의 가치를 그 목소리로 증명해주길 바란다. 이은미니까, 이은미라서, 이은미이기에. 

Hair&Makeup 김윤영, 이승윤(정샘물 청담점) Stylist 김수정

 

 

 

더네이버, 화보, 이은미

CREDIT

EDITOR : 설미현PHOTO : MJ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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