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그늘 속 ‘젤다’

스콧 피츠제럴드는 누구나 알지만 그의 아내 젤다를 기억하는 이는 드물 터. 사교계를 휘어잡던 파티광, 스콧의 뮤즈이자 그의 인생을 망친 악녀(?). <젤다>는 그 오명을 벗겨줄 책이다.

2019.04.16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는 우리가 흠모해 마지않던 예술가들이 대거 등장한다. 말 그대로 황금 시대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20년대 유럽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후유증을 앓았지만, 미국은 전쟁 특수를 누리며 더없이 풍요한 시절을 구가했다. 사치스러웠고, 낭만적이었다. 흥청망청 인생을 즐기던 사람들은 파리와 미국을 오가며 호텔과 카페를 무대로 삼았다.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는 이 시대에 ‘재즈 시대’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당시 풍경은 스콧의 소설 속에 아주 리얼하게 펼쳐진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우리는 재즈 시대의 중요한 작가를 한 명 더 발굴했다. 사람들은 그의 작품의 더께를 벗기고 검토하는 중이다. 새롭게 발견되었지만 익숙한 이름이다. 젤다 피츠제럴드. 그렇다. 남편인 스콧 피츠제럴드와 함께 당시의 사교계를 주름잡으며 파티광으로 악명을 높인 바로 그 사람이다. 스콧의 뮤즈이자 그의 인생을 망친 악녀이자 절제를 모르고 날뛰다 결국 정신병원에서 비참하게 삶을 마감한 여자. 그는 방랑벽과 낭비벽으로 문학적 재능이 풍부한 남편의 등골을 빼먹고, 남편을 알코올 의존증으로 몰아갔다는 세간의 평을 감수해야 했다. 그들의 행적이 화려한 만큼 그들의 몰락은 극적이었다. 그리고 그 몰락의 책임은 온전히 젤다에게 씌워졌다. 


그저 소문에 지나지 않았던 젤다를 한 명의 작가로 발견하고 평전을 쓴 낸시 밀퍼드는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그와 더불어 젤다에 대한 평도 극적으로 바뀌었다. 자신의 글을 남편에게 끊임없이 도둑질당한 여자, 자신이 쓴 소설조차 남편과 공저로 이름을 올리거나 혹은 남편의 이름으로 발표해야 했던 여자. 젤다가 페미니즘 운동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건 사실의 바로잡음이자 당연한 과정이다. 


시대가 그랬다고 치자. 남자의 작품이 훨씬 더 많은 고료를 받던 시대였다. 더구나 스콧 피츠제럴드는 촉망받는 젊은 작가였다. 젤다 또한 그런 상황이었기에 자기가 지워지고 스콧의 이름이 제 작품에 올라가는 것을 묵인했다. 그러나 이야기는 단순히 돈 몇 푼의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첫 소설 <낙원의 이편>에서부터 젤다를 여주인공의 모델로 삼은 스콧은 이후 발표하는 소설에서도 젤다를 끊임없이 변주했다. 젤다와 함께한 경험들, 젤다의 말, 일기와 편지 속 구절을 자신의 작품에 써먹었다. 한 에디터가 젤다의 일기를 책으로 출판하자고 제안하자 스콧은 거부했다. 젤다의 일기는 자신만이 독점하고 베낄 수 있는 텃밭이었으니까. 젤다는 <뉴욕 트리뷴>에 쓴, 스콧의 소설 <아름답고 저주받은 사람들>의 서평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떤 페이지에선 결혼 직후 불가사의하게 사라진 제 옛날 일기의 일부가 보여요. 꽤 편집되어 있지만 편지글에서도 어쩐지 낯익은 내용이 있고요. 아무래도 피츠제럴드 씨는-스펠링 제대로 쓴 것 맞죠?-표절은 집안에서 시작된다고 믿나 봐요.” 


이 책에는 젤다의 소설 다섯 편과 산문 아홉 편이 실려 있다. 아름답고 신선한 비유로 가득 찬 젤다의 소설을 읽다 보면, 눈앞에 선명하게 이미지가 떠오른다. 젤다가 소설가이자 화가였기 때문 아닐까. 젤다의 소설에는 그림을 닮은 화사한 이미지가 담겨 있다. “여름에는 등나무 덩굴이 뜨뜻한 아스팔트 위에서 만나 터널을 이루고, 젊은이들이 미지근한 개울에서 헤엄치고, 잡화점의 거대한 천장 선풍기 아래에는 아가씨들의 부푼 드레스가 만드는 오건디 풍선들로 밤마다 환하게 빛난다” 혹은 “전화가 울리면, 나무 아래 까만 레이스처럼 흔들리는 어둠 속에서 흰색과 분홍색의 소녀들이 튀어나와 모든 사건이 즐거운 이벤트인 곳에나 있는 기대감을 안고 그 찌르릉찌르릉 소리를 향해 따뜻한 사각형 불빛들을 껑충껑충 타넘는다” 같은 구절을 읽다 보면 풍경뿐 아니라 바람과 활력도 느껴지는 듯하다. 


젤다가 쓴 산문 <F씨 부부를 방으로 모시겠습니다>에서 원고의 ‘I’를 몽땅 ‘We’로 바꾸고 자신과 공저했다 주장한 쪼잔한 남자, 바로 스콧의 그림자에서 작품들을 꺼내어 먼지를 털어내고 반짝거림을 되살려낸 이 책의 부제는 ‘젤다의 편에서 젤다를 읽다’이다. 젤다의 편에 서서 보면 보인다. 스콧과의 관계를 지워도, 아니 지워야 빛나는 명민한 생기가 이 안에 있다.
※ 이 글을 쓴 박사는 북 칼럼니스트이다.  

 

 

 

더네이버, 북, 젤다

 

CREDIT

EDITOR : 설미현PHOTO : 김도윤

아이매거진코리아닷컴, 더네이버, 동방유행 ©imagazinekorea.com, ©theneighbor.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