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그 이름 속의 예술

버니지아 울프, 이사도라 덩컨, 프랑수아즈 사강, 수전 손택, 레이디 가가…. 예술이라는 큰 선물을 남긴 여성 예술가들을 여성 작가 네 명이 소환했다. <여성이라는 예술>을 통해.

2019.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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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에게 ‘선배’란 언어도단의 단어다. 예술가는 모든 종류의 답습에 반기를 드는 존재니까. 학습된 것, 전해 내려오는 것, 물려받는 것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들이니까. 그들은 절박하게,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니까.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 그들은 선배 예술가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서로 보이지 않는 핏줄로 이어져 있어 상대를 보며 남보다 더 많은 감정을 느낀다. 동경, 질투, 경원, 공포, 애착, 연민, 비애, 황홀, 사랑….


네 명의 젊은 여성 시인이 그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풀어 썼다. 강성은, 박연준, 이영주, 백은선. 그들은 여성의 위치에서 여성성을 깊이 자각하고 자기만의 언어로 표현해낸 여성 예술가를 한 명씩 불러낸다. 유년기에 밀착된 이름. 습작기에 경도된 이름. 글을 한 편 한 편 쓸 때마다 불러낼 수밖에 없는 이름. 그들의 선배 예술가는 당연하게도 글로 자신을 표현한 사람이 많지만, 시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물론 그들은 언어를 다루는 선배 작가들에게 깊은 친밀감을 느끼는 듯하다. 아고타 크리스토프, 엘리너 파전, 김혜순, 프랑수아즈 사강, 버지니아 울프, 김민정, 실비아 플라스, 이원, 수전 손택. 그 친밀감은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는 자들의 친밀감이다. 그들은 자신의 언어가 어디서 왔는지 그 원류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 그들을 맞닥뜨린다. 그러나 닮았기에 차이는 더 두드러지게 보인다. 각 예술가들이 만든 세계는 완전하게 둥글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흘러나온 모유의 흔적을 저자는 감추지 않는다. “나는 나의 시를 쓸 거예요. 여성시도 아니고 초현실주의도 아닌 강성은의 시를 쓸 거예요. 그런데 이건 선생님이 주신 거예요. 선생님이 혼자서 싸우고 투쟁해서 얻은 걸 저는 거저 얻었어요.” 그러나 그것이 과연 거저 얻은 것일까. 자신의 세계 속으로 삼투압해 들어오는 언어를 받아들이기 위해 싸운 흔적이 무수하다. 애정과 감탄의 흔적들이다. 


글을 다루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해온 예술가들을 만날 때 그들은 좀 더 솔직해진다. 다이앤 아버스의 사진, 마릴린 먼로의 여성성, 이사도라 덩컨의 몸짓, 레이디 가가의 음악, 마리 로랑생의 그림, 나탈리 포트먼의 말, 제인 캠피언의 영화, 마돈나가 만들어낸 논쟁을 살펴보며 저자들은 말 그대로 ‘여성이라는 예술’을 쓰다듬는다. 선배 예술가가 고군분투하며 만들어낸, 혹은 부순 무수한 이미지. 저자들은 마치 볼록렌즈나 오목렌즈처럼, 이전의 여성 예술가가 만들어놓은 세계 위를 굴러다니며 자세히 살펴보고 관조하고 짐작하고 감탄한다. 


그러나 그들은 말하지 못함을 통해서도 말한다. “나는 가장 먼저 쓰고자 했던 김혜순 시인에 대해 쓰지 못했다. 최승자 시인, 허수경 시인에 대해서도, 카미유 클로델, 최옥경, 사라 폴리, 패티 스미스, 메릴 스트립, 케이트 모스, 비욘세, 케이트 블란쳇, 크리스틴 스튜어트, 비비안 웨스트우드에 대해서도 쓰지 못했다. 그 외 더 많은 사람들을 나는 생각했고, 쓰지 못했다. 그 이유는 지나치게 많은 정보 혹은 지나치게 적은 정보가 나를 겁나게 하기도 했고 잘 쓰지 못할 것 같아서, 예술 세계를 훼손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라고 백은선이 한 고백은, 자신에 대해서 쓰는 것에 익숙한 시인들이 다른 이에 대해 쓰는 것을 얼마나 어렵게 여겼는지 짐작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들과 그들이 만난 선배 예술가는 많은 부분에서 겹친다. 삶이 겹치기 때문이다. 시대나 환경의 차이는 크지만, ‘여성의 삶’이라는 공통점은 그 차이보다 더 크다. 전쟁과 혁명을 겪고 세기말을 관통해온 선배 예술가의 삶은 짐작만으로 다루기는 힘들지만, 그들이 여성의 몸으로 그 삶을 살아내며 겪었을 고충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의 부제는 ‘우리는 각자의 슬픔에서 자란다’이지만, 그 슬픔의 바다는 서로 경계 없이 닿아 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는 경험은 파도타기와 닮았다. 저 너머 ‘나’라는 몸에 상륙할 때까지, 나는 그들의 언어를 타고 흘러간다.

※ 이 글을 쓴 박사는 북 칼럼니스트이다.  
Cooperation 아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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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설미현PHOTO :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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