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거장과 루키의 시간 박서보 & 김충재

한국 단색화의 거장 박서보와 이제 막 이름을 알린 신예 제품 디자이너 김충재가 만났다. ‘아티스트’라는 길 위에 서 있다는 작은 공통점 외에는 그 어떤 연결 고리도 없는 그들. 김충재의 뜻밖의 청에 거장 박서보가 화답한 까닭.

2019.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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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라는 같은 길을 걷고, 같은 땅 아래 있지만 모두 각자의 작업에 바쁘다. 이미 경지에 오른 거장은 감히 말 한마디 붙이기 어렵고, 지금 세대의 작가와 소통할 기회란 먼 이야기일 뿐이다. <나 혼자 산다>의 기안84 친구로 더 익숙한 디자이너 김충재. 얼마 전 첫 개인전을 열고 작가로서 또 하나의 문턱을 넘은 김충재에게 가장 존경하는, 그리고 작업에 영감을 주는 작가가 있다면 누구인지 물었고, 뜻밖에 돌아온 대답은 디자이너가 아닌 한국 단색화 거장 박서보였다. 사실 이번 인터뷰는 거장과 루키의 만남이라는 거창한 출발은 아니었다. 그저 팬심 가득한 신예 디자이너가 당차게도 박서보 화백에게 만남을 청했고, 그 마음을 헤아린 거장은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허락했다.

 

 

박서보 화백의 집 앞에는 이름 석 자 대신, 간판 하나가 붙어 있다. “‘기지’라 이름 붙였어. 1층은 미술관으로 쓰고, 2층 작업실도 내가 죽으면 전시실로 쓰고. 사회에 다 주고 가는 거야.” 연희동에 세워진 박서보 화백의 새 둥지, 그 이름은 ‘기지(GIZI)’다. 1층은 미술관, 2~3층은 집과 작업실로 이루어진 이곳은 박서보 화백의 문화 기지이자, 그가 떠나면 또 다른 문화 재단으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할 거란다. “평생 애쓴 거로 지었어. 살아서 마지막 집이지. 나중에 집 잘 있나 고민할 필요가 없어. 이 세상에 내 것이라 할 게 없어.” 세계가 주목하는 단색화 거장 박서보. 기지 밖에 굳게 선 금강송처럼 어떤 유혹에도 타협 없이 꼿꼿이 그림만 그렸던 박서보에게, 이제 그 길에 오른 김충재는 묻고 싶은 게 많았다.

 

 

박서보, Ecriture(描法)No.960112, 1996년 작, Mixed Media with Korean hanji Paper on Canvas, 24.6×18.2cm

 

박서보는 말한다 “스피릿이 살아 있어야 해!”

“그건 엄살이야. 나는 젊을 때 돈이 없어 연구실에서 사흘을 굶어가며 일했어. 자존심 때문에 어디 가서 외상도 못하고. 누가 인사동 대폿집으로 부르는 날이면, 그날이 내 생일날 같은 거야.” 세상이 좋아졌다지만 예술의 길은 요즘 젊은 세대에게도 아직은 힘든 것 같다는 응석 아닌 응석에, 박서보 화백은 엄살일 뿐이라며 그 시절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40달러 들고 파리 유학을 떠나 포스터를 붙이며 아르바이트했던 그 시절. 불어 한마디 못 한 박서보가 허락을 청하는 질문을 외워 답을 듣고 거리마다 꼼꼼히 포스터를 붙이는 모습을 보고, 일거리를 준 사장도 손가락을 세웠단다. “박서보는 크게 될 작가다. 이런 거 하나도 그냥 하지 않는 친구다.” 아이들 우윳값 때문에 가명으로 원고를 기고하고, 지금의 추상 작업이 아닌 풍경화를 어쩔 수 없이 그려주기도 했던 시절이, 그에게도 있었으니 요즘 세대의 그것이 엄살로 보일 수밖에.


“2009년 뇌출혈로 쓰러지기 전까지 평균 14시간을 작업했어. 요즘 젊은 사람들은 ‘똥차 비켜!’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걸 바란다면 오산이야. 내가 비켜나기만을 바라지 말고 나를 추월해야 해.” 하루 20시간, 미친 듯이 작업에 매진하지 않고는 자신을 추월할 수 없을 거라고 화백은 목소리를 높인다. 박서보 화백의 당당함에는 사실 이유가 있다. “밤에 자려고 잠자리에 누워서도 작업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그 그림의 바탕에 빨간 칠을 하고 위에 검은색만 칠할 게 아니라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한지 토막을 이어서 회색에 나만의 공기 색을 바르고….” 침대에 누워서조차 화백의 머릿속은 온통 그림 생각뿐이다.


“테크닉보다 스피릿이 앞서서 모든 걸 지배해야 해. 그런데 나 역시 스피릿이 죽어가고 있었던 거야. 그런데 몰랐어.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조수를 훈련시켜 내 일을 대신 하게 했지. 내 작업 중 일부인, 미는 72작업을 한 놈에게 쭉 훈련시킨 거야. 지금은 그만뒀는데, 그때 조수가 그러더라고. 일할 때는 몰랐는데 그만둘 때가 되니 마음이 비워지더라는 거야.” 이쯤에서 박서보의 대표작인 ‘묘법’ 시리즈의 작업 방식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연필로 비슷한 선을 무한히 그은 초기 묘법과 달리, 1980년대 이후 본격화한 후기 묘법에는 한지가 사용된다. 두꺼운 한지를 두 달간 물에 담갔다가 그것을 캔버스 위에 발라 팽팽하게 고정한 후 연필 혹은 철필로 반복적인 선 긋기 작업을 펼친다. 그것은 마치 끝나지 않을 수행의 과정을 연상시킨다. “요즘엔 조수 없이 내가 작업을 해. 88세에 변하겠다고 선언하는 놈은 나 하나뿐일 거야.” 죽어가는 스피릿을 되살리듯, 화백은 다시 손수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거대한 캔버스에 흰색 물감을 덧칠하는 밑작업은 더 이상 혼자 할 수가 없다. “옛날에는 1000호도 나 혼자 다 했어. 그런데 지금은 10호도 못 메울 거야.” 병원 검진을 다니는 일이 더 많아졌지만, 그 와중에도 틈틈이 작업실에 들어가 작업을 한다. 오늘도 화백의 청바지와 손에는 흰 물감이 군데군데 묻어 있다.


“가지고 온 작품을 보니, 디자이너 출신임을 금방 알겠어. ‘기’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기술, 테크닉의 기가 있고, 또 다른 기는 기운 기(氣). 정신이야. 위대한 디자이너는 정신성이 발현되어야 해. 자네는 아직 그것이 안 보여. 그것이 보이면 팔방미인이 될 거야.” 김충재는 자신의 작품 몇 점을 가져왔고, 이를 본 박서보는 따뜻한 눈과 어조로 작은 조언 하나를 던졌다. “코로는 아침을 발견했고, 르누아르는 소녀를 발견했지. 렘브란트의 작품을 보고 놀란 게, 다른 그림에는 빛의 출발점이 보이는데, 이 사람한테는 빛의 출발점이 없어. 이거야말로 영적인 빛인 거지. 그들의 작품에는 습도가 있어. 그것이 예술이야.” 화백이 언급한 습도란,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 정체성과 스피릿, 그것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나는 재주나 부리는 화가가 아니야. 그림은 수신(修身)하는 도구에 불과해. 수신하는 과정의 찌꺼기가 바로 그림이야.”

 

 

김충재, Coexistence, Mixed Media, 350×350mm, 2018

 

김충재는 궁금하다 “잘해야 된다는 게 뭐죠?”

“선생님이 제가 묻고 싶었던 말을 다 해주신 것 같아요.” 인터뷰에 앞서 김충재 작가에게 박서보 화백에게 묻고 싶은 질문을 요청해둔 터였다. 한데 젊은 신예 작가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걸까. 박서보 화백은 예상 질문지를 읽기라도 한 듯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았다. 하여, 질의응답으로 귀결하려 했던 이번 인터뷰는 김충재 작가와의 추가 인터뷰를 진행한 후에야 비로소 마무리될 수 있었다.


“선생님 앞에서는 제가 하루 10시간 작업한다고 했는데, 일부러 그런 거예요. 사실 그보다 밤새우는 일도 많고 잠도 안 자는 편이죠.” 어린아이처럼 맑은 눈으로 화백의 말에 귀 기울이며 그가, 선생 앞에서 감히 자신의 노고를 드러내지 않고자 겸손의 카드를 꺼냈을 줄이야. “선생님 말씀에 너무 공감되는 게 저 역시도 너무 예민해서 작업할 때 잘 안 넘어가요. 먹지도 않고 못 자는 편이죠.” 1월 19일까지 이알디 갤러리에서 펼쳐질 김충재의 첫 개인전 <Vice Versa> 역시 그 고통의 시간 속에 나온 결과물이다. “전시 제목은 거꾸로, 반대로도 맞다는 뜻인데, 직선과 곡선, 평면과 입체, 아날로그와 디지털 등 상반된 것들을 시각 조형 언어로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회화와 디자인의 경계에 선 김충재의 작업. 이번 작업은 자연에서는 찾을 수 없는 직선에 대한 연구로 시작됐다. “케미컬 우드를 CNC 머시닝을 통해 깎아서 작업했어요. 케미컬 우드만 고집하는 건 아니고, 경도가 약한 나무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거든요.” 도시의 차가움과 복잡하게 뒤엉킨 선. 김충재는 그 속에서 낯선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억지스럽게 자신의 정체성을 담은 것도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자연스럽게 성장해가는 게 좋은 것 같아요. 88세의 박서보 화백도, 아직 성장하고 계시듯이.” 3년여의 작업. 50년을 훌쩍 넘긴 거장에 비춰보자면 그는 까마득히 어리다. 아직은 자신의 작품을 규정할 만한 정체성을 말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미흡하다. 하지만 김충재는 서두르지 않을 참이다. “잘해야 된다는 관념 자체가 제게는 없는 것 같아요. 미술에서 ‘잘한다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그저 자기 것을 하는 게 중요해요. 다만 선생님께서 이야기하셨듯, 스피릿 부분은 제가 아직 더 닦아야 할 부분인 것 같아요.” 평생 스피릿을 추구한 분을 만나고 오니, 다시금 확신이 선다고 김충재는 화답한다. “지금 칸딘스키의 책을 읽고 있는데 ‘형태와 색은 그 사람의 영혼과 맞닿아 있다’는 구절이 가장 마음에 와닿아요.” 형태와 색. 아직 그 산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넘어야 한다는 커다란 숙제가 있지만 그것이 두렵지는 않다. “자신 있다면 거짓말이고,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 편이에요.” 그런 그에게 2019년 작은 새해 소원이 있다. “일단 2년간 머문 신당창작아케이드 작업실 계약이 만료되는 터라, 작업실 이사가 우선이고요(웃음). 더 정교한 작업을 위해 더 괜찮은 CNC 기계를 사고 싶어요.” 특유의 소년 같은 표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일에 대해서는 주저 없이 이야기하는 당당함을 가졌고, ‘스피릿이 부족하다’는 거장의 조언 앞에서 열린 마음으로 다음을 준비하는 유연한 정신을 가진 그. TV 속 잘생기기만 한 미대 오빠 김충재는 그곳에 없었다.

 

►“88세에 변하겠다고 선언하는 놈은 나 하나뿐일 거야.” 누군가는 마무리를 이야기하겠지만, 다시 시작을 이야기하는 88세의 거장. 그는 아직도 매일 일기를 쓰고 특별한 일이 없는 날에는 아침에 일어나는 시각이라도 기록한다. 무엇이든 기록하고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는 삶의 태도가 지금의 박서보를 만든 게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지팡이를 짚고 손수 주차장까지 내려와 모두의 손을 잡아주고 돌아서던 그. 남하고 섞이는 걸 싫어해서 독립군처럼 살아왔다는 거장에게서 어찌 된 일인지 더없이 따뜻한 마음 하나를 안고 돌아왔다. ‘시작’을 앞둔 모든 이에게, 거장의 깊은 마음이 한 줄이라도 읽힐 수 있기를. 거장 박서보가 김충재에게 기꺼이 손을 건넨 이유일 것이다.

 

 

 

더네이버, 인터뷰, 박서보, 김충재

CREDIT

EDITOR : 설미현PHOTO : 김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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