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말 모아, 뜻 모아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 극에 달했던 1940년대. 일제의 감시망을 피해 말을 지켜내고자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까막눈부터 지식인까지 조선인이기에 뭉친 그들, 영화 <말모이>다.

2019.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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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모이>라는 제목을 들으면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누군가는 경주마와 인간의 교감에 대한 이야기 <각설탕>(2006)의 후속편인지 묻기도 한다. 제작기가 “말의 모이? 말의 먹이?”라고 말하며 웃는 배우의 모습으로 시작할 정도다. <말모이>는 달리는 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언어, 우리말에 대한 이야기다. 한글학자인 주시경 선생이 조선어학회를 통해 편찬하고자 했던 최초의 국어사전 원고의 이름이자, 영화 속에서 전국 각지의 우리말을 모으는 작전명이기도 하다. 배경은 1940년대 일제 강점기. 총과 칼을 앞세운 만세 운동의 뒤에서, 칼보다 말의 힘을 믿고 날이 갈수록 심해진 일제의 억압 아래 사라져가는 우리 말을 지킨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말모이>는 그런 질문을 안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택시운전사>의 각본을 쓴 엄유나 감독은, 이번에도 역사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 나섰다. 평범한 소시민 택시운전사가 광주민중항쟁의 한복판을 지나며 변화하고 역사를 바꾸는 현장의 일부가 되는 과정을 웃음과 눈물이 함께 있는 이야기로 만들어내며 천만 관객을 동원한 엄유나 감독에게, 평범한 민초의 말을 모아 민족 혼을 지켜내려고 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매력적이었을 터다. 소수의 독립군과 영웅을 중심으로 한 독립 운동 영화는 꾸준히 존재했지만 일상에서 지켜내야만 하는 것, 영화 속 언어와 같은 것을 다룬 영화는 이전에 없었기 때문이다.

 

 

<말모이>는 이 언어를 모르는 사람, ‘까막눈’ 판수를 등장시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말하고 들을 수 있지만 읽고 쓸 수는 없는 판수가 우연히 말을 지켜내려는 조선어학회와 얽히게 된 뒤, ‘말모이’ 작전이 시작된다. 아이 둘을 홀로 키우고 있는, 무능력하지만 따뜻한 판수는 배우 유해진을 만나 친숙한 이웃의 얼굴을 갖게 된다. <택시운전사>에서 이미 광주의 택시운전사로, 이름 없이 조용히 스러져갔지만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고 역사를 바꾸는 데 제 몫을 다한 인물을 연기한 유해진은 엄유나 감독의 작품 세계에 딱 걸맞은 얼굴을 가지고 있다. 고지식하게 느껴질 정도로 말을 모아 사전 만드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조선어학회의 대표 정환 역은 윤계상이 맡았다. 정환은 판수를 만나 평범한 사람, 그 순간에도 자신의 방식으로 우리말을 쓰고 있는 보통의 민중이 가진 힘을 깨닫게 된다. 윤계상을 <범죄도시>의 악역으로만 기억하는 관객들에게는 새로울 수 있지만, 고뇌하는 지식인은 윤계상의 필모그래피에서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는 아니다. <소수의견>에서 이미 살인 혐의가 있는 철거민을 변호해야 하는 국선변호사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윤계상이기에, 이 착하고 정직한 영화의 중심을 잡고 나아가는 모습을 더욱 기대하게 된다. 역시 <소수의견>으로 만났던 유해진과의 호흡은 보장된 부분이다.

 

 

연말과 연초에는 겨울방학 특수를 노리는 한국 영화가 몰린다. 송강호 주연의 <마약왕>, 한국전쟁의 고통을 춤으로 승화시킨 <스윙키즈>가 12월에 개봉해서 웃고 울며 한 해를 마감하고 새로운 한 해를 만나고 싶은 관객을 기다린다. <말모이> 역시 웃고 울 수 있는 영화다. 다른 점이 있다면, 시작과 어울리는 영화라는 것이다. 엄유나 감독은 프로덕션 노트를 통해 “현실이라는 장벽에 부딪혀 꿈꾸는 것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함께 꿈을 이루어가는 사람의 온기가 전해지기”를 바란다고 썼다. <말모이>는 말과 뜻, 그리고 사람이 모여, 혼자서는 불가능했을 일을 함께 해내는 영화다. 추운 겨울, 많은 것이 움츠러드는 때에 함께라 가능한 온기, 희망을 말할 수 있다면 관객들 역시 모이지 않을까.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큰 걸음’이라는 이들의 구호는, 비단 일제 시대, 영화 속 이야기에만 해당하는 건 아닐 테니 말이다. 개봉은 1월 9일이다.

※ 이 글을 쓴 윤이나는 영화 칼럼니스트이다.

Cooperation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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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윤이나PHOTO :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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