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소리 없이 깊게, 송은문화재단 유상덕

세계적인 건축 사무소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이 설계한 미술관이 청담동에 들어설 예정이라는 소식은 이미 미술계의 핫 이슈다. 대체 누가 이 탐나는 프로젝트를 실현시켰단 말인가? 송은문화재단 이사장 유상덕, 그는 공식 석상에 좀체 얼굴을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하다.

2018.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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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그가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을 수상하게 됐다는 소식에 마땅하다 싶었다. 한국의 젊은 미술가들을 오랫동안 후원해온 그이지만, 그는 늘 베일에 싸여 있었다. 대외적인 공식 석상에 얼굴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그림자 같은 그의 행보 때문이었다. ㈜삼탄 회장이자 송은문화재단 이사장 유상덕. 어렵사리 그를 카메라 앞에 끌어들인 것은 10월 24일 첫 삽을 뜨게 될 송은문화재단 신사옥 프로젝트의 공이 컸다. 특히나 설계를 맡은 이가 세계적인 건축가 자크 헤르조그와 피에르 드 뫼롱이 운영하는 헤르조그 앤 드 뫼롱 건축 사무소였으니. 테이트모던, 서펜타인 갤러리 등 세계 유수의 건축물을 맡아온 그들이기에 기대감은 더 컸다. 착공식 전에는 건축물에 관한 어떤 렌더링 이미지도 공개할 수 없다는 건축가의 요청에 의해, 아쉽지만 유상덕 이사장의 입을 빌려 신사옥의 실체를 먼저 들여다봤다(건물 완공은 2020년이다). 대체 왜 예술가, 그것도 젊은 미술가를 이토록 오랫동안 후원하게 됐는지도 궁금하던 차였다. 그를 만난 곳은 대치동 삼탄 사옥. 지금의 송은문화재단을 있게 한 삼탄은 국내 석탄 사업으로 시작, 일찌감치 해외 자원으로 눈을 돌려 큰 성공을 거둔 회사로, 1989년 송은문화재단을 설립해 젊은 미술가들을 꾸준히 후원해오고 있다. 유상덕 이사장의 집무실과 집무실 밖 라운지는 여느 미술관이 부럽지 않은 풍경이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앤디 워홀, 신디 셔먼, 애니시 커푸어, 로버트 인디애나, 무라카미 다카시 등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니(물론 이 공간은 직원들에게도 열려 있다). 우리가 더욱 궁금한 것은 베일에 싸인 신사옥. 몇 개 층이 미술관으로 쓰일 거라는 게 정보의 전부다. 

 

 

유상덕 이사장의 집무실 밖에 마련된 컬렉션 전시 공간으로, 작지만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으로 채워졌다. 

 

이번 신사옥은 남다른 의미일 듯합니다. 송은문화재단을 통해 국내 신진 작가들에게 전시 기회를 제공해온 터였고, 자연스레 삼탄&송은문화재단 신사옥 건립도 결정된 것입니다. 다양하고 실험적인 현대미술을 담아내기에 전시 공간의 ‘사이즈’에 대한 아쉬움도 느꼈었고요.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 전시 공간, 미디어 작품을 전문적으로 상영하는 공간, 정교한 조명 설계와 소장품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렀죠. 이런 아쉬움을 해소하는 동시에 건축물 자체만으로도 예술 작품의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습니다.  


모두들 신사옥의 규모와 콘셉트에 주목하는데요. 지하 5층, 지상 11층 규모로, 신사옥의 주요 키워드는 ‘랜드마크’입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수준 높은 건축물을 구현하는 것이 목표죠.  신사옥은 ‘외부로 개방하여 도시와 하나가 되는 빌딩’을 지향합니다. 부지 면적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미학적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구축될 것입니다.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이하 HdM)이 설계한 국내 최초의 건물이니만큼 자부심도 남다르지만, 단순히 ‘최초’ ‘최고’ ‘최대’만을 지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신진 작가를 발굴하고 대중과 함께 작품을 공유한다는 송은문화재단의 철학은 오롯이 이어질 것입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Imperfect Sculpture, 1995

 

채프먼 형제, The Same Thing But Silver, 2007, 41.5×20.5×43.5(h)cm, 9.5kg of Hallmarked English Silver

 

건축가 선정부터 신중하셨을 듯한데, 최종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을 선정한 이유는요? 신사옥 건립을 결정한 이후 건축가를 결정하기까지 고민의 연속이었죠.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특별한 ‘랜드마크’ 빌딩을 어떻게 건축할 것인가? 혁신적인 건물 설계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는 건축가는 누구이며, 어떤 건축 설계사무소가 획기적인 디자인을 실현하는 동시에 주변 환경까지 배려하는 역량을 갖추었는가? 무엇보다 어느 건축 시공사가 신사옥을 미학적 가치를 지닌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가? 그야말로 다각적인 검토와 고민이 이어졌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해외 유수의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공간은 런던 테이트모던이었고, 이에 자연스럽게 HdM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애니시 커푸어, Untitled, 2013, 150×150×51cm, Stainless steel, Resin 

 

그들이 프로젝트를 수락할지 여부조차 미지수였을 것 같군요. HdM은 매년 200건 이상의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세계적인 건축 사무소인 만큼, 규모가 작고 클라이언트의 국제적 인지도가 비교적 낮은 이번 프로젝트 제의를 과연 수락할지도 걱정이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놓고 서로를 평가한 셈이겠지요. 그간 HdM은 지역 사회, 대중과 함께하는 건축물에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는 점에서 기대감을 가졌고, 결국 함께 일하게 됐죠. 송은이 국내 작가, 동시대 미술계 및 대중에게 지속 가능하고 의미 있는 교감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공익 사업을 진행하고, 모든 전시와 관련 자료를 대중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는 점도 주효했다고 생각합니다.


벌써 30여 년째 젊은 무명작가들을 후원하고 있는데, 특별히 그들에게 관심을 두는 이유가 있나요?  ‘젊은 예술가들이 밥을 굶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선친께서는 사재를 털어 송은문화재단을 설립하셨죠. 선친의 말씀은 저를 항상 초심으로 돌아가게 하는 ’나침반‘ 같습니다. 젊은 예술인을 후원하는 일은 당위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술 문화 융성은 우리 사회의 다각적인 발전의 토대가 되는 필수 요건이기 때문에, 사업만큼이나 막중한 책임을 갖고 추진하고 있습니다.  

 

 

젊은 작가들의 참신한 전시가 열리는 청담동 송은 아트스페이스.  

 

비록 상황 때문에 꿈을 접었지만 선친께서 화가를 꿈꾸셨다죠? 재단 설립 이전에도 골동품이나 민화, 서예 작품을 수집하면서 즐거워하셨어요. 미술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셔서 가족 여행을 가서도 풍경을 화폭에 담기도 하셨고, 심지어 외아들인 제게도 미술을 전공해도 된다고 권하실 정도였죠. 재단 이름인 ‘송은’의 의미인 ‘숨어 있는 소나무’와 같이 드러나진 않지만 조용하고 한결같이 젊은 미술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이 아버지의 철학이셨어요. 재단의 지원 사업을 꾸준히 이어나가고 더욱 발전시키는 것이 현대미술에 대한 아버지의 헌신이 바래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송은(松隱)’에 담긴 선친의 철학 때문일까요? 이사장님 역시 대외적인 공식 석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으십니다. 이번 인터뷰도 어렵게 성사됐고요. 이사장 개인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것 역시 ‘송은’의 숨은 철학과 같은 맥락입니다. 주목받는 것은 훌륭한 작가의 작품이어야 하고, 많은 분들이 이런 훌륭한 예술 작품을 부담 없이 즐길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요. 

 

 

애니시 커푸어의 작품 앞에 선 유상덕 이사장. 

 

그간의 송은 전시 중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 영감을 준 작가가 있다면요? 선친의 첫 현대미술 컬렉션은 이북에 남으신 할머님의 외모와 무척 닮았다는 강관욱 작가의 석조 흉상이었죠. 2011년 송은 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 <프랑수아 피노 컬렉션> 전시차 피노 회장이 직접 방문을 했는데, 기념관에 전시된 강관욱 작가의 조각상을 보고 크게 감동한 적이 있어요. 피노 회장 역시 농부였던 부모님의 모습을 닮은 소박한 전원 풍경 페인팅이 첫 소장품이었다는 얘기를 듣고 예술에 대한 사랑은 그 주체와 대상과 상관없이 서로 닮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했죠.   

 

30여 년 동안 재단을 통해 미술가들에 대한 후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이 있다면요? 비교적 재단 설립의 취지에 맞게 잘 운영되어왔다고 생각하지만,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현대미술의 다양한 실험을 담는 과정에서 전시 공간의 규모가 작품에 제약이 될 때 가장 안타까웠죠. 삼탄빌딩의 송은 아트큐브에서 송은 아트스페이스로 공간을 확대했고, 추가로 새로운 공간을 마련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늘 부족함을 느끼지만, 다소 더디더라도 매일, 매달, 매년 조금씩이라도 지원을 확대해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12월 1일까지 열리고 있는 <Delfina in SongEun: Power play>. 영국 델피나 재단과의 협업으로 이루어졌다.

 

>> 그의 컬렉션 규모나 취향, 좋아하는 작품은 무엇인지 등 재단 이사장으로서가 아닌 사적인 그의 미술 취향이 궁금했지만, 그는 또다시 ‘숨어 있는 소나무’를 지향하듯 말을 아꼈다. 공식적인 컬렉션 규모는 밝히지 않았지만 신사옥이 완공될 때쯤이면 그 궁금증이 해결되리라 기대한다. 선친의 뜻을 받들고 있다는 겸손의 말로 자신은 뒤로 물러섰지만 송은 아트큐브에서 송은 아트스페이스로, 나아가 신사옥으로, 더욱 확장해가는 그의 미술에 대한 깊은 애정과 철학은 더없이 찬란하게 개화 중이다. 

Cooperation 송은문화재단

 

 

 

 

더네이버, 인터뷰, 송은문화재단. 유상덕

 

CREDIT

EDITOR : 설미현PHOTO : 박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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