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미각의 제국 속 숨은 고수들

미식 탐색이 일상에 촘촘히 자리한 것도 이미 오래전 일. 이제 ‘맛’을 찾는 일은 평범한 이들에게도 생활이 되었다. 그렇다면 숨은 미식가들은 어떤 맛을 애정할까.

2018.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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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공간을 기획하는 자,
필라멘트앤코 대표 최원석

지난여름, 성수동에는 핑크빛 틴케이스에 절로 눈길이 가는 팝업 스토어가 등장했다. 그런데 이름이 ‘평양슈퍼마케트’다. 사회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소재임에도, 독특한 디자인과 콘셉트로 많은 이들에게 주목받았다. 이를 기획하고 디자인한 이가 필라멘트앤코 대표 최원석이다. 기업의 브랜드 컨설팅부터 레스토랑, 카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프로젝트를 이끄는 그는 F&B 브랜딩 작업을 할 때 가장 즐겁다고 한다. 

 

쿠로키와 사루타히코 커피가 협업한 팝업스토어의 커피빙수.

 

 ‘한식공간’의 가을 시즌 런치 메인 메뉴. 가을철 식자재인 한우 투뿔 등심과 얇게  채 썬 우엉으로 떡갈비를 만들어다. 

 

푸드스타일리스트 박수지가 운영하는 신사동 소호(Soho)의 에그 크레이프. 

 

도쿄 타마키 레스토랑 마르게리타 피자.

 

성수동 팩피의 고수 파스타.

 

왜 F&B 공간을 기획할 때 가장 즐겁나? 개인적으로 경험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 경험을 복합적으로 녹여내면서도 즉각적으로 연결되는 공간이 F&B다. 소비자와 직접 만나고, 반응도 직관적이니까. 제품과 달리 오픈한 뒤 일주일이면 느낌이 오고, 한 달이면 이 공간이 앞으로 오래갈 수 있을지 결론이 나온다. 그렇게 하나둘 시작한 것이 ‘하머스키친’, ‘모던눌랑’, ‘돝고기506’ 등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중식당 ‘모던눌랑’이다. 오리엔탈 스타일 인테리어에 고급 중식당을 오픈하겠다는 내용만으로 브랜딩 작업을 제안받았는데 허술하고 불안한 요소가 많은 기획이었다. 당시에는 호텔 중식당이나 오너셰프 중심의 중식당이 대부분이었으니까. 고민을 거듭한 끝에 결정한 것이 ‘여성을 위한’ 중식 공간이었다. 모두가 이런 대전제 아래 움직였다. 메뉴판도 매거진처럼 디자인하고, 요리는 여자 2명이 3가지 메뉴는 즐길 수 있도록 스몰 플레이트로 구성했다. 주류도 고량주가 아닌 칵테일을 마련했고. 
최근에는 ‘평양슈퍼마케트’ 외에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했나? 여행지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이 커피 마시는 거다. 커피 마시러 1년에 도쿄를 10번 이상 다녀왔을 정도다. 그러다 ‘좋은 커피가 무엇인가?’란 질문이 생겼다. 커피는 한 모금 마시고 난 뒤 30초 만에 맛이 사라진다. 내가 어떤 커피를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것이 어려운 일이더라. 그래서 여행지의 원두를 공수해 다른 사람과 나눠 마시고, 비교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커피위켄드’다. 초기에 지인들과 작게 하던 것이 최근엔 300명 정도는 모였을 만큼 입소문이 퍼졌다. ‘평양슈퍼마케트’는 아쉬워하는 이들이 많아 11월 즈음 팝업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망원동을 생각하고 있는데, 아직 협의 중이다. 
공간 기획과는 별개로 외식을 즐기나? 요리는 하는 것보다 먹는 것을 즐긴다. 게다가 좋은 곳이 너무 많다. 그래서 해외 식당은 구글맵에 리스트업하고, 국내는 사진 폴더를 나누어 이미지로 저장해둔다. 
현재 국내 미식 트렌드를 꼽는다면? 가장 큰 트렌드는 한식인 것 같다. 프렌치나 이탤리언 요리는 모던하고 세련되었다는 인식은 사람들의 경험이 늘어나면서 사라졌다. 지금은 힙하고, 스타일리시하다는 표현이 한식으로 넘어가고 있다. 한국적인 것에 호기심을 느끼고, 이를 알아가려는 것부터가 트렌드의 시작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어디가 좋았나? ‘온지음’에 갔을 때 굉장히 놀랐다. 온지음은 키친랩 콘셉트로 우리의 문화를 연구하고, 음식을 재현하지 않나. 나도 몰랐던 우리 문중 음식도 맛봤다. 한국 문화는 일부 소실돼 우리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은데, 이에 대한 연구 작업이 이뤄지면 또 한 번 새로운 변화가 있을 듯하다. 
오늘 찾은 ‘한식공간'은 그래서 좋아하는 공간인가? 맞다. 조희숙 선생님의 한식공간은 한식을 제대로 조리하면서도 약간의 변주로 색다른 한식 세계를 제안한다. 특히 디저트가 그렇다. 어릴 적 먹던 달고나가 가평 잣을 가득 품고 등장할 줄 몰랐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나 차에 곁들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우리만의 디저트 아닌가. 우리 음식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미식에 대한 철학이 있다면 말해달라. 최대한 통합적으로 내가 받는 서비스 전체를 고민하고 즐긴다. 모든 음식에는 좋은 점이 있다. 주관적인 잣대로 재단하는 순간, 놓치는 것이 생긴다. 주인이 만든 공간과 음식 모든 것을 온전히 즐긴다. 이와는 별개로 섞이지 않은 순수한 맛에 대해 고민한다. 기본을 알아야 응용할 수 있으니까.

 

 

 

요리를 디자인하는 자,
패션 디자이너 육수현 

20여 년간 패션업계에서 일하며 뉴욕, 런던, 파리 등 트렌드 최전방에 있는 도시를 자주 접해온 아에르(Aeer) 브랜드의 대표이자 디자이너인 육수현. 낯선 도시의 이방인인 그녀는 그들의 요리를 맛보며 그들의 일상을 엿보았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자신이 경험한 맛을 본인만의 레시피로 변주해 요리하는 것을 즐긴다. 

 

육수현 디자이너가 즐겨 만드는 샐러드 중 하나다. 먹기 좋게 자른 브로콜리만 살짝 데치고, 다른 제철 식자재는 생으로 낸다. 허브로 향을 더한 올리브유 드레싱으로 버무렸다. 내추럴 와인에 곁들이기에도 좋다.

 

방콕 카보숑 호텔의 이싼 음식을 선보이는 타이라오예의 내부 공간. 

 

푸팟퐁 커리.

 

요리가 본래 취미였나? 맛있는 요리 먹는 것을 좋아했다. 20여 년 전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출장을 자주 다니게 됐다. 새로운 음식에 거부감이 별로 없어 로컬 음식은 꼭 경험했고, 그렇게 맛본 음식의 맛을 유추하는 것을 즐겼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현지 식자재 마트에서 국내에서는 보지 못한 향신료나 와인 등을 구입해 오는 것이 루틴이 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요리는 무엇이었나? 2000년대 초반, 파리 마레에서 맛본 코코넛 커리다. 지금은 국내에도 태국, 베트남 요리 전문점이 많지만 당시에는 흔치 않았다. 익숙하게 먹던 커리가 아닌 코코넛 밀크를 배합한 커리가 너무 신기했다. 그때부터 새로운 요리 탐색을 즐긴 게 아니었을까. 또 다른 재미는 익숙한 재료를 새로운 방식으로 요리해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뉴욕 홀푸드 마켓에서 맛본 시래기 샐러드가 그렇다. 국내에서는 나물처럼 먹던 것을 올리브유와 산초 비슷한 향신료를 넣어 샐러드로 만들었더라. 국내에 돌아와 똑같이 시도해보고 많이 소개했다. 
가장 흥미로웠던 지역은 어디였나? 뉴욕 미트패킹 지역이다. 미국 특유의 풍부한 식자재를 이용한 다양한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첼시 마켓은 특히 애정한 장소다. 아시안 레스토랑 ‘스파이스 마켓’, 스테이크 하우스 ‘마첼레리아’ 등 식자재 상태부터 조리하는 방법까지 모두 인상적인 곳이다. 지난여름에는 방콕으로 여행을 다녀왔는데, 카보숑 호텔의 레스토랑 ‘타이라오예’에서 태국 북부 지방의 이싼 요리를 처음 맛보았다. 한국에 돌아와 시도해보려고 찹쌀부터 피시소스, 찻잎 등을 구입했다. 
어떻게 요리에 관심이 생겼나? 개인적으로 향신료를 포함한 식재료, 술, 그릇 등에 관심이 많았다. 디자이너들이 출장을 가면 옷만 보고 오는데, 나는 옷 외에 볼 것이 많았다. 식문화, 옷, 라이프스타일 등은 사실 다 맞닿아 있다. 사람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코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해외에 갔을 때에는 그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조그만 식기류부터 식재료까지 챙겨 온다. 일종의 습관이면서 의식처럼 꾸준히 하는 일이다. 
평상시에는 어떤 요리를 즐겨 하나? 요리할 때는 꼭 사람들을 초대해서 함께 즐긴다. 개인 브랜드를 론칭한 뒤에는 샐러드를 자주 하는데, 어떤 음식에든 어울리기 때문이다. 제철 식자재를 사용해 조합하는 샐러드는 늘 새로운 재미가 있다. 
본인만의 레시피도 있을 듯하다. 지인들이 내가 만든 요리 중에 등갈비를 제일 좋아하더라. 등갈비는 기본 밑간으로 올리브유, 마늘, 허브 가루를 넣어 오븐에 스팀으로 살짝 찐다. 그 후 다시 올리브유와 버터, 레드페퍼 가루, 카레 가루를 섞은 양념장을 마리네이드해 굽는 거다. 그렇게 하면 약간 한식 같은 개운한 맛도 있고, 버터 때문에 고소한 풍미도 느껴지는 등갈비가 된다. 초벌한 뒤에 두 번 정도 구우면 겉은 바삭하면서도 속은 부드러운 맛을 낼 수 있다. 
늘 상비해두는 식자재가 있다면? 직접 만든 레몬청이나 로즈메리, 타임과 같은 허브를 담은 올리브유는 준비해두는 편이다. 자주 하는 요리가 퓨전 한식, 샐러드류인데, 거의 빼놓지 않고 넣는다. 한식을 요리하면서 단맛을 내고 싶을 때 레몬청을 사용하는데, 많이 달지도 않으면서 상큼함을 더해준다. 
이렇게 쌀쌀한 날씨에는 어떤 요리를 하나? 역시 뜨끈뜨끈한 요리가 답이지 않을까? 프랑스식의 포토푀 같은 요리를 굉장히 좋아한다. 이와 비슷하게 관자찜 요리도 너무 좋다. 주물냄비에 버터를 녹여낸 뒤 새송이버섯을 얇게 썰어 켜켜이 올리고, 그 위에 으깬 양파와 백합, 관자 등을 넣어 끓이기만 하면 된다.  
요리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출장지에서도 그랬고, 요리를 먹을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요리하는 즐거움은 주변 지인들이 그 요리를 맛보고, 의견을 공유하는 데 있는 것 같다. 본업이 아닌 일에서 사람들이 격려해주고, 인정해주는 데에서 큰 힘을 얻는다. 

 

 

 

가장 최전방에서 요리를 맛보는 는 자, 
홍보대행사 트루컴 대표 박종달 

<백년 동안의 고독>을 쓴 마르케스는 ‘고독’의 반대말이 ‘유대’라 했다. 누군가는 ‘고독한 미식가’처럼 나 홀로 맛집을 찾아다니기도 하지만, 여전히 사람과 함께하는 식사 시간에서 일상의 쉼표를 얻는 이도 있다. 홍보대행사 트루컴 대표 박종달은 후자다. 늘 지인들과 함께 미식 투어를 떠난다. 그의 소셜 계정은 보는 것만으로도 침이 고이는 이미지로 가득하다. 

 

김지운 셰프가 새롭게 선보이는 한식 주점 ‘2018년 5월’의 메뉴 굴보쌈. 강원도 흑돼지 수육과 함께 직접 건조하고 양념한 무말랭이와 통영의 신선한 굴 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생태탕과 고추튀김, 배추전. 

 

 영등포 대한옥 소꼬리찜. 

 

노량진 스시야.

 

맛있는 공간을 많이 아는 것 같다. 내 소셜 계정을 보고서 많은 사람들이 ‘맛있는 곳 많이 다닌다, 나도 데려가달라’고 말하곤 한다. 새로운 공간을 좋아하는 편이라 늘 다른 요리 사진이 올라와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도적으로 새로운 미식 공간을 찾아내는 사람은 아니다. 워낙 다양한 사람을 많이 만나는 업계에 있다 보니, 운 좋게도 지인들이 새로운 공간을 알려준다.
최근에는 어떤 곳이 흥미로웠나? 워낙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셰프이기도 한데, 김지운 셰프가 오픈한 한식 주점 ‘2018년 5월’이다. 그간 쿠촐로, 마렘마, 볼피노 등에서도 훌륭했는데, 한식도 만만치 않은 솜씨를 보여준다. 한식 주점이라고는 하지만 파인 다이닝에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가오픈 기간에 방문했었는데, ‘볼피노’에서 투플러스 한우 스테이크로 사용하는 동일한 고기로 만든 육전을 맛볼 수 있다. 게다가 굴보쌈도 굉장하다. 일반적으로 굴보쌈 하면, 수육과 함께 보쌈김치 안에 들어 있는 작은 굴을 떠올리지 않나. 그런데 여기에서는 통영에서 공수한 신선한 굴이 껍질째 등장한다. 이것만으로도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치 않다.  
가오픈 기간에 방문했다면, 역시 최전방에서 미식을 경험하는 것 아닌가? 늘 새로 오픈한 화려한 공간만 다니는 것은 아니다. 내가 모르는 오래된 집도 새로운 공간이지 않나. 최근에 무척 허름하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굉장히 훌륭한 음식을 맛보았다. 영등포 공업소 거리에 위치한 노포 ‘대한옥’이 그렇다. 소꼬리찜을 전문으로 하는 곳인데, 소꼬리를 푹 삶아내서 수육의 잡내도 없고 부드럽다. 그 위에 잘게 썬 부추 양념을 잔뜩 올려서 먹는다. 다 먹어갈 즈음 소면을 추가해 비벼 먹을 수도 있다. 또 노량진 수산시장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노량진에 대한 인상은 북적대는 시장에 가까웠는데, 생참치를 맛볼 수 있는 굉장한 스시야가 있다고 지인이 소개해줬다. 그래서 찾아가게 되었는데, 굉장히 깨끗하고 스시 상태도 너무 좋더라. 지인이 알려지길 원치 않아서 이름을 말할 수는 없다.  
한식을 좋아하는 듯하다. 맞다. 술과 곁들이는 한식, 그리고 일식을 선호한다. 외국에 자주 나가는 편인데, 한국에 돌아오면 꼭 한식을 찾아 먹는 버릇이 있다. 거창하지는 않아도 아내가 만들어준 김치찌개와 계란프라이만 먹어도 여독을 푸는 듯한 기분이다. 새로운 곳은 아니지만 늘 찾는 레스토랑이 있는데, 요리 연구가 홍신애 대표가 운영하는 ‘솔트’다. 파스타나 튀김 등 즐겨 먹는 요리에서 한국적인 요소를 엿볼 수 있다. 청양고추나 된장을 가미한 소스를 사용하곤 하니까. 
미식에 대한 정의를 내려본다면? 미식은 일종의 매개체다. 좋아하는 사람과 만날 약속을 하고, 무엇을 먹을지 생각하는 일. 그건 일종의 콘텐츠를 공유하는 것과 같다. 맛이 있을 때는 기분 좋게 그 맛에 대해 이야기하고, 맛이 없을 때는 같이 욕할 사람이 앞에 있으니 얼마나 즐거운가. 그래서 나는 혼밥은 절대 안 한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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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홍유리PHOTO : 양성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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