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영원불멸의 트렌치코트

변주의 끝은 어디일까? 아니, 끝이 있을까? 디자이너들은 이번 시즌에도 트렌치코트를 도화지 삼아 저마다 색다른 방식으로 아름다운 작품을 완성했다. 가을을 위한 아우터, 트렌치코트에 대하여.

2018.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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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말한다. 봄과 가을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는 요즘, 간절기 아이템이 굳이 필요하냐고. 하지만 풍요로울 때보다 빈곤할 때 그 아쉬움과 짧은 순간 느끼는 기쁨은 더욱 거세진다. 트렌치코트도 그렇다. 손가락 사이를 스르륵 빠져나가는 모래 알갱이처럼 짧은 여운만을 남기는 요즘의 봄, 가을은 특히 그 계절의 대표 아이템 트렌치코트를 즐기는 전 세계 모든 이들의 마음을 더 애달프게 만든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아우터만큼 시대와 장소, 인종, 트렌드에 구애받지 않고 지난 100여 년간 꾸준히 사랑받아온 아이템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후끈한 여름 바람이 사라지면 트렌치코트를 입고픈 마음이 간절해진다. 흔히 이 아우터에 ‘클래식’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데, 나에게 트렌치코트는 ‘습관’과 같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면 의지와 상관없이 반사적으로 손이 가기 때문이다. 


트렌치코트는 1914년 영국 군인을 위해 만들어진 옷이다. 토머스 버버리(Thomas Burberry)가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중 영국 육군성의 의뢰를 받고 혹독한 겨울 날씨로부터 자국의 군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다. 참호라는 뜻의 ‘트렌치(Trench)’를 쓰는 이유도 여기서 비롯했다. 초창기 이 코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실용성이었다. 군인이 입어야 해 통기성과 내구성 그리고 방수성을 겸비해야 했다. 이 모든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토머스 버버리는 방풍, 방수 기능이 뛰어난 코튼 개버딘 소재를 사용했다. 가슴 쪽으로 불어오는 비바람에 대비하기 위해 스톰 플랩이 달린 나폴레옹 칼라를 사용했고, 바람이 통하지 않도록 소매 끝에는 조임 장치를 달았으며, 허리의 스트랩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더했다. 어깨 견장은 물통이나 쌍안경을 매달아두었다가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장치다. 군인을 위한 옷인 만큼 초창기 트렌치코트는 다소 투박했다. 하지만 뛰어난 실용성과 멋 때문인지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 인기가 좀체 식지 않았다. <카사블랑카> <티파니에서 아침을> <쉘브르의 우산> <애수> 등 영화 속 주인공의 캐릭터를 완성해주는 의상으로 수시로 등장하며 트렌치코트는 대중에 스타일리시한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디자이너들 역시 이 매력적인 아우터에 집중했다. 매 시즌 놀랍도록 신선한 방식으로 변주된 트렌치코트가 런웨이 위로 쏟아져 나온다. 끊임없는 변주를 통해 트렌치코트의 영역은 넓어졌지만 동시에 모호해지기도 했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자면 그만큼 즐길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는 긍정적인 의미기도 하다. 트렌치코트를 즐기는 방법은 2가지다. 교과서를 참고한 듯 정석 스타일대로 입거나 트렌치코트의 일부만을 차용해 나만의 개성을 강하게 덧입히거나. 물론 전자와 후자 모두 정답이다. 클래식한 방식이 아닌 색다른 무드에 도전하고 싶다면 올가을은 다음 둘 중 하나를 선택하자. 개버딘 소재에서 벗어나 레더, 포플린, 비닐, 아노락 등 다양한 소재의 활용과 맥시 오버사이즈 중 하나 말이다. 소재는 전체적인 분위기를 가장 쉽게 변화시킬 수 있는 요인이다. 반질거리는 질감의 비닐, 움직일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경쾌한 아노락, 자꾸만 쓰다듬고 싶게 만드는 부드러운 스웨이드 그리고 이국적이면서도 섹슈얼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레더 중에서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니나리치는 베이비 핑크 컬러와 비닐 소재를 접목해 더없이 사랑스러운 코트를 완성했고, 에르메스는 다소 투박해 보일 정도로 매트한 가죽 소재로 롱 코트를 완성했다. 한편 지방시는 가죽의 패턴을 생생하게 살린 소재를 이용해 강인한 여전사 이미지를 담아냈고, 펜디는 시그너처 로고를 패턴으로 글래머러스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소재에 힘을 실을 때 주의할 점은 스타일링을 간결히 마무리해야 한다는 점이다. 트렌치코트와 단짝처럼 다니는 스카프나 화려한 주얼리, 여성성을 드러내는 뾰족한 스틸레토 등은 생략해도 좋다.

지난 몇 시즌간 이어진 오버사이즈 열풍은 이번에도 유효하다. 트렌치코트 역시 마찬가지. 타이트하게 허리를 옥죄는 스타일보다는 한 사이즈 크게 입은 듯한 루스한 실루엣이 멋스럽게 느껴진다. 남성 복식에서 자주 하는 말 중, ‘재킷은 어깨로 입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번 시즌만큼은 여성에게도 적용된다. 코트의 밑단이 무릎 정도에서 끝나거나 소매 길이가 꼭 맞을 필요가 없다. 품 역시 사람 한 명쯤은 더 들어갈 정도로 넉넉해도 무방하다. 어깨에서 시작해 발끝에 이르도록 자유분방하게 흐르는 실루엣도 무척 멋스럽다. 드리스 반 노튼, 알베르타 페레티, 르메르, 티비 등의 런웨이에 선 모델들의 룩을 참고하면 된다.  사이즈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한 쿨한 애티튜드 또한 장착해야 한다. 오버사이즈를 선택했다면 다음은 각자의 취향대로 더하거나 빼면 된다. 정중한 슈트를 입어도 좋고, 치렁치렁 길게 내려오는 드레스도 무방하다. 드리스 반 노튼의 룩처럼 아예 트렌치코트를 드레스처럼 연출하는 것도 방법이다. 


예년보다 추위가 일찍 찾아올 거라는 예측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빠르면 10월 말부터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된다고 한다. 옷장 속에 모셔둔 트렌치코트를 보고 있으면 반가움과 아쉬움이 동시에 밀려온다. 이 매력적인 아우터를 한 달밖에 입을 수 없다는 건 재앙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올해 나는 앞서 말한 드리스 반 노튼처럼 트렌치코트를 드레스처럼 연출해볼 생각이다. 두툼한 모헤어 코트 안에 체크 코트를 덧입은 로샤스의 컬렉션 컷에서 힌트를 얻었다. 이너로는 새하얀 반소매 티셔츠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데님 팬츠면 충분할 듯하다. 작년에 사둔 빈티지한 체크 패턴 트렌치코트면 이질감 없이 레이어링하기 좋을 것 같다. 이것이 바로 트렌치코트가 즐거운 이유다. 정답이 없지만 모든 방법이 정답일 수 있는 아이템. 지난 100여 년간 시대를 초월하며 열렬한 사랑을 받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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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신경미PHOTO : imax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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