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글로벌 성공시대>와 On Style <마이퀸>을 통해 국내에 소개된 프랑스 명품 브랜드의 디자이너 박윤정. 인턴으로 시작하여 동양인이라는 편견을 깨고 보수적인 프랑스 패션계에서 최연소 수석 디자이너의 자리에 올랐으며 디자이너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전세계를 누비며 활동하고 있어 만나보기 힘든 디자이너이지만 출장을 위해 서울에 와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급하게 그녀와 만나게 되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박윤정과의 인터뷰이다.

Q. 의상 디자이너의 꿈을 꾸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나고 그곳에서 자랐다. 어떻게 보면 이방인이었을 수도 있지만 내가 왕따를 당하거나 동양인이라서 배척을 당한 기억은 없다. 어릴 때부터 주변 사람들과 친화력이 좋은 편이었고 활발한 성격이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확실히 알고 있었던 편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무엇을 입고 싶은지, 어떤 스타일을 연출하고 싶은지에 대해 늘 거침 없이 말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스타일에 도전해보는 일에도 두려움이 없었다. 한가지 스타일을 추구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스타일을 다양하게 연출하는 것을 좋아했다. 패션에 대한 확고한 나의 의견을 알고 계시던 부모님 역시 내가 의상 디자이너가 되는 것을 지지해주셨고 지금도 굉장히 자랑스러워하신다.

Q. 보수적인 프랑스 패션계에서 이례적으로 최연소 수석 디자이너가 되었다. 많은 편견을 이겨내고 이룬 결과일 텐데 그 원동력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나?

A. 나는 인턴이었을 때부터 인턴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내 일처럼 일을 진행했다. 시키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일들을 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당시 수석 디자이너였던 프랑크 보클레가 나를 존중해주었다. 일반적으로 연차가 많지 않은 사람들은 시키는 일을 소화해내는 것만해도 벅차다. 하지만 나는 늘 “어떤 일을 하든 100%가 아닌 200%로 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이 생각은 인턴일 때도 심지어 놀 때도 변함 없었다. 이러한 마음 가짐이 수석 디자이너의 자리에 이를 수 있게 만들어준 것이 아닐까 한다.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열정이다.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영감을 얻고 그것들을 영리하게 취합하여 최상의 결과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열정.

Q. 명품 남성복 전문 브랜드 ‘Smalto’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A. 이탈리아 인인 프란체스코 스말토가 프랑스 파리로 건너와 만든 브랜드이다. 1962년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생긴 스말토는 ‘우아한 실루엣과 슬림’이라는 아이디어와 함께 시작되었다. 5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상류층 남성들을 위한 맞춤복을 제작하고 있다. 타 브랜드의 맞춤복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편안함’에도 포커스를 두고 남성들의 편안한 움직임을 고려하며 디자인한다는 것이다. 스말토는 프랑스 축구 대표팀의 단복을 만들기도 하며 미테랑 전 대통령을 비롯하여 왕족이나 정치인의 옷을 맞춤 제작한다.

Q. 한 잡지사의 기자가 당신이 디자인한 옷을 보고 “굉장히 세련되고 품위 있어서, 실제로 그 옷을 입고 다니는 남자를 봤다면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느낄 거예요.”라고 말한 인터뷰를 본적이 있다. 스말토의 고객들 중 브랜드의 이미지와 잘 맞아 떨어진다고 느껴지는 고객은 누구인가?

A. 2011년에 개봉한 영화 <더 아티스트>의 주인공 장 뒤자르댕. 프랑스의 국민 배우라고 할 수 있다. 세련되고 품위 있는 분위기의 배우이고 우리 옷이 멋스럽게 잘 어울리는 남성이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고객이기도 하다.

Q. 체구가 작은 동양 여자인데, 유럽에서 일하며 힘든 점은 없었나? 여러 가지 편견과 싸워야 했을 것 같다.

A. 프랑스에 있는 에스모드를 졸업했기 때문에 파리에서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 있는 스말토 생산 공장에 계신 장인 분들은 처음에 나를 무시하기도 했다. 키도 작고 체구도 작고 나이도 어린 동양 여자 애가 와서 자신들에게 일을 지시하니 내가 생각해도 황당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이탈리아 언어를 능통하게 사용할 줄 알며 일에 대한 열정과 확신이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자 이러한 편견은 모두 사라졌다. 부모님께서 언어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셔서 나는 5개 국어를 공부했고 결과적으로 이 것은 나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이탈리아에서도 일년에 반 정도는 지내고 있기 때문에 이들과의 관계가 나빴다면 일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들은 내 편이 되어주었고 나이와 상관 없이 친구 같은 관계를 유지하며 즐겁게 일하고 있다.

Q. 세계 곳곳으로 여행이나 출장을 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별히 좋아하는 장소가 있는가?

A. 서울. 사실 나는 한국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의 부모님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늘 교육시키셨다. 한국말을 잘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1년에 한차례 이상은 꼭 서울에 오는데 올 때마다 너무 많은 변화가 있어서 놀라울 지경이다. 올 때마다 많은 영감을 얻고 돌아간다. 업무 때문에 강남 쪽은 다닐 일이 많이 있고, 그 밖에도 한남동을 좋아한다. 지금은 하얏트 호텔에 묶고 있는데 호텔 내부는 물론이고 주변에도 즐길만한 장소가 많이 있다. 한옥이 남아 있는 북촌이나 도자기 등 전통적인 냄새가 나는 장소나 물건을 통해서도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다. 한복에도 관심이 생겼다. 서울은 나중에 꼭 한번쯤은 지내보고 싶은 도시이다. 너무나도 매력적이다.

Q. 서울이 좋다면 서울에 와서 디자이너로 활동해보는 것은 어떤가?

A. 사실 스말토를 한국에 런칭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하지만 빨리 진행시킬 일은 아닌 것 같고 천천히 신중하게 진행하려 한다. 스말토를 한국에 소개하고 싶은 것은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프랑스는 물론이고 유럽의 패션 업계에서도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한국의 패션 마켓은 점점 성장하고 있으며 한류 열풍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뜨겁기 때문이다.
또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는 여성복 디자인에도 참여하고 싶은 욕심이 있고 내 브랜드를 만들고 싶기도 하다. 옷뿐만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을 전반적으로 모두 다루는 브랜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다 보니 점점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지금은 남성복을 디자인하지만 여성들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줄 수 있는 옷을 만들고 싶고 그 일을 한국에서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Q. 개인적인 질문이다. 뉴스를 검색하다 보니 잘생긴 프랑스 모델과의 스캔들 기사가 있더라. 지금도 연애 중인가?

A. 사실 내가 하는 모든 인터뷰에 그 질문이 가장 먼저 나온다. 그건 굉장히 오래 전의 일이다.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인터넷에는 여전히 내가 그의 여자친구인 것처럼 나오더라. 내용을 수정해주었으면 좋겠다(웃음). 지금은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이때까지는 일에 미쳐서 결혼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는데 이제 점점 나의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욕심도 생긴다. 파리에서의 싱글 라이프는 조금 지겨워졌다. 부모님도 간절히 원하고 계시고. 외국인보다는 한국 남성과 결혼하고 싶고 한국에서 계속 사는 사람보다는 전세계를 누비며 살아가는 남성이 나와 맞을 것 같다. 결혼하기 위해서는 일단 연애부터 해야겠지?

Q. 마지막으로 박윤정 디자이너처럼 되길 원하는 한국의 수많은 디자이너 지망생들에게 인사 부탁한다.

A. 지금 자신의 위치와는 상관 없이 열정을 갖고 최선을 다해서 살았으면 좋겠다. 나는 20대 초반부터 열심히 놀고,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나의 20대에 대해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젊은이들 모두가 20대를 최선을 다해 보냈으면 좋겠다. 이 순간을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가는 꿈꾸는 자리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다. 목표를 이루어야겠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전전긍긍하며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며 청춘의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Behind Story

8월 30일이면 다시 파리로 돌아가는 박윤정 디자이너이기에 서울에서의 한 순간, 한 순간은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다. 낯선 사람들과의 촬영이었지만 그녀는 상황을 충분히 즐겼고 촬영과 인터뷰가 마무리되고 난 후에는 “진심으로 재미있었다.”라고 이야기해주었다. TV에서 보았을 때는 무뚝뚝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성격일 거라 예상했지만 실제로 본 디자이너 박윤정은 쾌활하고 털털한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여자였다. 처음 본 메이크업 담당 실장님에게도, 어시스턴트에게도 나이와 직급에 상관 없이 친절하게 대해줄 줄 아는 그녀이기에 파리의 패션계에서 인정 받고 있는 그 놀라운 위치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파리에 가게 되면 스말토 본사에서 다시 만나기로 기약하고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Au plaisir de vous revoir!

Editor 김경은
Photo 신철민
Hair & Make-up 장병국, 이지윤 (제이엘뷰티아카데미)
Assistant 김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