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그 남자의 이중 생활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삶보다 일과 취미(?)를 병행하는 삶을 택한 남자들. 이들의 순결한 취미는 또 다른 업으로 발전, ‘한 우물만 파라’는 오래된 금언을 무색하게 한다. 열정적인 본업과 쿨한 서브잡을 지닌 다섯 남자의 이중 생활.

2018.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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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  웨  이  에   선   요  리  사
오  스  틴   강

“<마셰코> 나온 모델?”, “고든 램지랑 CF 찍은 모델?” 오스틴 강을 아느냐 물으면 열에 아홉은 이렇게 되묻는다. 요리에 취미가 있어 레스토랑까지 오픈한 모델이 아니냐고. 우스갯소리로 ‘외모에 재능이 있어’ 성년이 된 후 일고의 고민 없이 연예계에 입성했을 것 같아 보이는 그이기에, 이런 반응도 무리는 아니다. 한데 그는 모델이나 방송 일을 하기 전부터 셰프였고, 대중이 자신을 모델로 여기는 지금도 정체성은 주방에 있다고 말한다. “대학 때 호스피탤리티 매니지먼트(Hospitality Management)를 전공하면서 요리와 서비스, 경영 공부를 포괄적으로 했어요. 졸업 후에는 전공과 관계없는 IT 일을 하다가, 제게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그만뒀죠.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즈음 한국에 온 그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요리를 시작했다. 첫발은 잠원고수부지 수영장에서였다. 개장 시즌 수영장 한쪽에 마련된 버거 스탠드에서 햄버거를 만들어 팔았다. 곧이어 멕시칸 레스토랑 ‘코리아노스’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주방일을 했다. 요리를 하면 할수록 파인 다이닝에 대한 열망이 커졌다. 고민 끝에 한남동 프렌치 레스토랑 ‘수마린’에 주방 막내로 들어가 이형준 셰프를 사사했다. “이형준 셰프님께 말했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상관없다. 빨리 배우고 싶다. 못하면 소리를 지르고 때려서라도 가르쳐달라고요. 제일 먼저 출근해 하루 열여섯 시간씩 주방일을 하며 혼나기도 많이 혼났어요. 하지만 기본부터 배울 수 있었죠.”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쳐 배운 주방의 생리.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많았지만, 비스트로 ‘엘레브(Eleve)’의 오너 셰프가 된 지금에야 그때의 꾸지람이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알게 됐다고 그는 소회한다. 지나와 말하기야 쉽지만, 하루 16시간 동안 강행되는 주방일이 녹록지 않았을 터. 가까이서 지켜보던 친구 헨리가 <마스터셰프 코리아 4> 지원서를 대신 써주며 방송에 나가보라 권유했다. 헨리의 눈은 정확했다. 오스틴 강의 요리를 향한 열정과 선한 성정은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이를 계기로 모델 에이전시와 계약한 그는 런웨이와 광고 촬영장, 방송국을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제 모델은 그의 틀에 박힌 일상에 새로운 자극을 주는 제2의 직업이다. “운이 좋았어요. 좋게 봐주는 분들 덕이죠. 매일 두어 군데 시장에 갔다가 레스토랑 문을 열고 새벽까지 주방에서 일하는 일상과 다르게 모델 일은 늘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저 스스로도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게 해줘요. 정말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에요.” 현재 방영되고 있는 언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두니아~처음 만난 세계>에 출연하고 있는 오스틴 강. 그는 이번 프로그램을 녹화하며 다른 출연진을 만나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고. “며칠 뒤에도 멤버들과 제 레스토랑에서 모임을 갖기로 했어요. 가족 같은 동료들이 생겨 기뻐요. 방송에 도전하길 잘했다 싶어요.” 팔방미인 오스틴 강, 그가 앞으로 주방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보여줄 새로운 모습을 기대해본다.


 

I  T   하  는   아  티  스  트
강  상  훈

별다른 마케팅도 없었는데 오로지 입소문을 통해 감성 충만한 젊은이들 사이에서 열풍을 이끈 앱이 있다. 아날로그 카메라 앱 ‘구닥(Gudak)’이다. 옛 필름 카메라 감성을 담아 촬영 사흘 후에야 사진을 볼 수 있게 만든 불편한 이 앱은 삽시간에 한국을 넘어 해외 8개국에서 유료 앱 분야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구닥이 인기를 끎과 동시에 이 참신한 앱을 만든 장본인, ‘스크루바’ 강상훈 대표를 향한 호기심도 높아져갔다. 몇 미디어는 그를 미술학원을 운영하며 스타트업을 차린 프로 ‘N잡러(2가지 이상의 직업을 가진 사람)’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그를 본질적으로 설명할 단 하나의 단어는 ‘N잡러’가 아닌 ‘아티스트’다. 그는 뉴욕의 ‘쿠퍼유니언(BFA)’ 미술대학에서 순수 미술을 전공하고 한국에 들어와 ‘더토그래프(Dirtogragh: Dirty와 Photograph의 합성어로 먼지로 더러워진 종이를 지워 그림을 그리는 방식)’ 등 자신만의 작업 방식을 구축해 작품 활동을 해왔다. 지난해 10월에는 최윤정 작가와 함께 갤러리 자인제노에서 <판타스틱 쇼 쇼 쇼>라는 2인전을 열기도 했다. “어렸을 때는 창작하지 않는 사람들이 안타깝다고 생각했어요. 예술이 이처럼 즐겁고 재미있는데, 왜 저들은 예술을 하지 않는 걸까, 생각했죠. 정말 보수적이고 수구적인 생각이었어요. 나이가 들고 작업을 해가며 깨닫게 됐어요.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예술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요. 단순히 물감을 사용하지 않는 것뿐이지, 무언가를 기획하고 진행해가는 과정 자체도 예술의 일환일 수 있어요.” 구닥 역시 이런 아티스트 기질이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작품이다. “처음 구닥을 만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모두 미쳤다, 안 팔린다고 만류했어요. 저는 안 팔려도 좋으니 실험해보고 싶었어요. 구닥에 담긴 메시지와 철학이 공감대를 끌어내는지. 그 공감이 변화와 확장을 견인해내는지.”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미술학원 역시 일종의 인큐베이터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만난 학생이자 후배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예술을 전달하고 그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곳. 그 과정 역시 작품이 아닐까? 강상훈 대표를 만난 날은 흑백 필터를 장착한 ‘구닥 2.0’과 구닥의 웹 매거진 ‘구다커’가 출시되는 날이었다. 새로운 작품, 새로운 실험을 시작한 강상훈. 그와의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이 돼서야, 인터뷰 중간 언젠가부터 그를 작가라는 호칭으로 부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집  필  하  는   의  사
남  궁  인

<만약은 없다>, <지독한 하루>, <차라리 재미라도 없든가>. 단독 저서로 수필집 세 권을 낸 의사 남궁인. 그의 수필은 묘하다. 산문인데 운문 같고, 분명 실제 일어난 일일 터인데 어쩐지 허구 같다. 올리버 색스나 아툴 가완디 같은 여느 의사 저술가들의 수필을 예상하고 봤다가는 남궁인 특유의 강렬한 필치와 글 전반을 아우르는 농밀한 고뇌에 당황하기 쉽다. 이런 그만의 독특한 문체는 그가 두 가지 자아를 동시에 지니고 있기에 가능하다. “대부분의 의사 작가들은 의사로서의 자아가 형성된 다음에 글을 쓰기 시작한 사람들이에요. 그런 탓에 의사의 글쓰기를 하죠. 저는 의사가 되기 전, 그러니까 학창 시절부터 글을 썼고, 글 쓰는 일을 하겠다는 일종의 문학적 자아가 이미 형성돼 있었어요. 의사가 돼 의사라는 소재를 빌려 글을 쓸 뿐, 문학적 자아로 글을 쓰기 때문에 기존 의사 작가들과는 필치가 다른 것이 아닐까요.” 운이 좋아 책도 내고 작가로 불리고 있지만, 운이 좋지 않아 글을 발표하지 못했대도 계속해서 썼을 거라는 남궁인. 어디서든 머리만 대면 잠든다는 고된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 중에도 누구도 시키지 않는 글쓰기를 이어갔다. 그때 쓴 시 형식의 수필만 1000여 편. 칼럼과 서평 등 기고 의뢰가 끊이지 않는 최근에도 여전히 그는 발표하지 않을 글을 쓴다. 자신 속에 있는 ‘써야만 하는 글’을 쓰는 것이다. 그 집요하고 끈질긴 글쓰기 과정을 듣다 보니, 당신의 정체성은 의사보다 작가 쪽에 좀 더 가까운 것 아니냐는 우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저는 성인이 된 후 쭉 의사로 살아왔어요. 응급의학과 의사로 병원에 들어서면 그때부터 근무하는 24시간 동안 응급실을 찾는 많은 환자가 온전히 제 책임하에 있지요. 당연히 작가와 별개로 의사로서의 자아도 있죠. 그 두 가지를 오가는 것은 전혀 어렵거나 힘들지 않아요.” 그렇게 말하는 그의 손에는 리처드 플래너건의 저서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이 들려 있었다. 올해 들어 본 책 중 가장 인상 깊고, 문학의 위대함을 다시금 실감하게 만들었다는 소설.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는 그의 얼굴에는 어린아이처럼 순박한 기쁨이 서려 있었다.

 

 

게  임   해  설  하  는   만  화   작  가
엄  재  경

대학 시절 <마이러브>로 데뷔해 현재는 네이버 웹툰에서 <마법스크롤상인 지오>를 연재하고 있는 만화 작가 엄재경. 그는 지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한국만화가협회’에서 부회장직을 수행한 원로 작가다. 스스로도 본업은 만화 스토리 작가라 규정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E스포츠 업계에서 더 유명한 인물이다. 90년대 후반, E스포츠라는 용어조차 생소하던 시기 게임 해설을 시작해 그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위치에 섰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록으로 기록될 만큼 온라인 공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대표적인 한국어 위키인 ‘나무위키’에서 엄재경을 설명하는 페이지 분량이 배우 원빈의 페이지보다 많은 수준이라면 이해가 빠를까. 엄재경 작가는 ‘평생 직장 찾기’를 과업으로 여긴 시대에 일찍이 두 차례 투잡을 가졌고, 두 번의 ‘덕업일치(덕질과 직업이 일치한다는 뜻의 인터넷 용어로, 좋아하는 대상에 관련된 직업을 갖는 경우를 말한다)’를 이뤄냈다. 첫 번째 투잡의 시작은 대학 졸업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려서부터 만화를 좋아했어요. 대학 졸업 전에 만화 스토리 작가로 데뷔하며 첫 번째 덕업일치를 이뤘죠. 졸업 후엔 집에서 <까꿍>을 연재하고 있었는데, 밤새 글을 쓰고 느지막하게 일어나 집 근처를 배회하는 걸 보고 동네 주민분들이 ‘좋은 대학 멀쩡하게 졸업하고 회사도 안 다닌다’며 딱하게 여기신 모양이에요. 어머니께 그 얘길 전해 듣고 회사에 들어갔어요.” LG전자의 전신인 당시 금성에 입사한 엄재경은 수개월간 교육을 받고 부서 배치를 받은 지 한 달 만에 회사를 관뒀다. “우리 아들은 회사에 들어갈 능력은 있지만 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라는 어머니께 명분을 만들어드린 셈이다. “1999년경, 만화 <까꿍>의 게임화 제의가 들어왔어요. 투니버스 황영준 PD와 함께 기획회의를 했는데, 당시 제가 스타크래프트 게임에 푹 빠져 있었거든요. 스타 얘기를 한참 했더니 황 PD가 마침 기획 중인 스타리그 게임 해설자를 찾고 있는데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더라고요. 그래서 첫 방송을 했어요. 시청률은 그저 그랬어요. 그런데 재방송 시청률이 본방보다 훨씬 높은 거예요. 본방을 본 네티즌들이 올린 후기가 홍보가 되었던 거죠. 단발성으로 생각했던 방송이 인기를 끌고 자체 제작 프로그램으로 편성되면서 방송일을 계속 하게 됐어요. 그렇게 두 번째 덕업일치를 이루고 다시 투잡 생활이 시작됐죠.” 그는 현재 게임 해설 활동을 줄이고 웹툰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근래 들어 유독 자신의 창작물에 대한 애정과 보람이 각별하게 느껴진다는 그, 유일하게 완결하지 못한 만화 <까꿍>의 2부 연재도 조만간 시작하겠노라 다짐한다.

 

 

레  슬  링   중  계  하  는   마  케  터
양  성  욱

한 공공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마케터 양성욱의 별명은 ‘사교계의 황태자’다. 무려 20여 년 전, 그가 중학생 시절 붙은 별명이다. 고작 중학교 3학년 학생이 대체 무슨 사교 활동을 했길래 황태자 칭호까지 받나, 의아한 것이 당연지사. 발단은 프로레슬링 동호회에서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프로레슬링 보는 재미에 빠져 시쳇말로 ‘덕질’을 일삼던 그는 ‘레슬뱅크닷컴’이라는 온라인 프로레슬링 홈페이지의 운영진을 맡기에 이르렀다. 초고속 인터넷이 막 보급되며 다양한 온라인 커뮤니티가 급속도로 형성되고, 각지에 흩어져 있던 강호의 고수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각축전을 벌인 시기다. “프로레슬링 홈페이지를 운영하며 알게 된 한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레슬링 관련 사업을 해보고 싶은데, 도움 줄 수 있는 사람들을 소개해달라고 하더라고요. 당시 레슬뱅크닷컴에서 활동하던 10여 명의 프로레슬링 전문가와 마니아들을 소집해 모임을 주최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온라인에서만 소통하던 사람들이었어요. 오프라인 모임에서 처음 만난 동호회 회원들이 어린 친구가 발도 넓고 넉살도 좋다며 붙여준 별명이 ‘사교계의 황태자’예요(웃음).” 대학을 졸업하고, 모 백화점 마케팅 부서를 거쳐 지금의 공공기관 마케터로 이직하는 내내 프로레슬링은 양성욱의 일상 같은 취미 생활이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프로레슬링이 국내에선 비인기 종목이다 보니 소위 ‘덕질’할 만한 정보가 많지 않은 것이었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외신에서 다루는 프로레슬링 기사를 번역해 자신이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게재하고, 먼 곳까지 경기를 보러 가 중계하는 수고를 들여가며 취미를 이어갔다. 그렇게 공들여 취미 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관련 프로젝트나 방송 출연 제의도 들어왔다. 이미 대학생 때 UFC와 프로레슬링 해설자로 브라운관에 데뷔한 그는 현재 팟캐스트를 포함한 여러 SNS 채널을 통해 프로레슬링의 참맛을 알리는 중이다. “프로레슬링 팟캐스트를 운영하며 받은 후원금이나 팟빵 유료 결제 수익금, 방송 출연료 등, 프로레슬링으로 번 돈은 프로레슬링에 재투자하고 있어요. 레슬링 선수를 후원하거나 한국 프로레슬링 홍보에 사용하는 식으로요. 워낙 비인기 종목이다 보니 국내 레슬링 선수들도 어렵거든요. 프로레슬링 자체가 부흥해야 제 취미 생활도 지속 가능하잖아요.” 레슬링으로 시작해 레슬링으로 회귀하는 선순환이라니, 과연 황태자다운 품행이다.   
촬영협조 북파크, 카페 니트 Hair & Make up 모아위(오스틴 강)

 

 

 

 

 더네이버, 피플, 그 남자의 이중 생활

CREDIT

EDITOR : 박수현PHOTO : 양성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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