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커리 + 샴페인

테이블 매트 위에 놓인 그릇과 네이비 조명은 태오홈.

양태오 | 디자이너

집에서 사찰 음식을 배우고, 민트나 바질을 직접 키워 먹을 정도로 요리에 열정이 높은 디자이너 양태오. 지인들을 불러 파티를 할 때도 많지만 집에서 혼자 차려 먹는 밥상도 그에게는 매우 의미 있다. “제게 혼밥이란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과도 같아요. 혼자 먹더라도 늘 격식을 갖추고 담음새에 신경 쓰는 편이죠. 접시 수를 많이 하지 않고 단 한두 개의 그릇만 놓더라도 근사하게 놓으려고 해요. 그렇게 잘 차려 먹으면 스스로 영화 속 멋진 주인공이 된 것 같거든요.” 간단하면서도 밀도 높은 식사를 위해 자주 요리해 먹는 건 그린 커리다. 태국에 갈 때마다 사 오는 페이스트에 닭고기, 쉽게 구할 수 있는 제철 채소를 썰어 넣으면 근사한 한 끼가 완성된다. 다양한 식감의 조합을 좋아하는 그는 부드러운 커리에 씹는 맛이 좋은 장아찌나 김치를 곁들여 시너지를 낸다. 여기에 입안을 말끔하게 정리하는 청량감 있는 샴페인을 더하면 더 바랄 게 없다.

규스지 도테니, 알루 코피 바지 + 그라파

블랙 컬러의 조명은 제르바소니.

탁재형 | PD

EBS <세계테마기행> 연출가로 세계 구석구석을 누빈 탁재형 PD에게 요리는 여행의 기억을 붙잡아두는 탁월한 수단이다. 그가 집에서 주로 하는 요리는 여행지에서 한번쯤 먹어본 것이다. 소 힘줄에 미소와 간장을 넣고 조린 ‘규스지 도테니’도 그중 하나다. 어느 날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를 보던 그는 나고야에서 이 요리를 먹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무릎을 탁 쳤다. 그러고는 인터넷을 뒤져 여러 레시피를 섭렵한 뒤, 마침내 자신만의 레시피를 만들었다. 방글라데시의 채소볶음 ‘알루 코피 바지’도 마찬가지. “요리할 때는 누구라도 혼자일 수밖에 없다”라고 말하는 그에게 혼술 밥상은 그다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요리 중 간을 보고 맛을 보는 순간 이미 그의 혼밥은 시작되기 때문이다. 함께 먹는 이가 없어도 여행의 추억을 담은 요리 속에서 그는 또 한 번의 여행을 경험한다. 깊고 진한 맛의 조림 요리에 무슨 술인들 안 어울리겠느냐마는, 풍부한 향을 내는 그라파는 더욱 좋은 친구가 된다.

곤드레 파스타, 대합과 버섯 오븐구이 + 정종
미끈한 곡선이 매력적인 조명은 구비 by 이노메싸.

강진주 | 사진가

사진가 강진주의 혼밥상에는 언제나 기발한 식재료의 조합이 살아 숨 쉰다. 평소 나물, 특히 묵은 나물에 열광하는 그녀는 파스타가 당기던 어느 날 곤드레 나물과 파스타의 조합을 생각해냈다. 안초비 파스타를 응용해 새우젓으로 맛을 내고, 마지막에 어란을 올려 요리의 품격을 높였다. 결과는 대성공. “혼자 먹을 때는 거하게 차려 먹지는 않되, 고급스러움을 유지하려고 해요. 절대 냄비나 반찬통째 먹지 않고, 멋진 식기에 담아 먹으려고 하죠. 그리고 늘 냉장고에는 고급 식재료를 쟁여놓아요. 일본에서 공수한 연어알, 양재중의 어란 같은 귀한 식재료는 혼밥상을 단번에 근사하게 만들어주거든요.” 값진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프리미엄 마켓부터 수산시장, 인터넷까지 두루 손을 뻗치고 장을 보면서 새로운 조합을 떠올리기도 한다. 간 마와 와사비 후리카케를 올린 버섯구이나 트러플오일을 곁들인 대합구이는 그가 즐겨 마시는 ‘정종’을 떠올리다가 머릿속에 퍼뜩 떠오른 요리다.

봉골레 떡볶이, 감바스 알 아히요, 연어 샐러드 + 맥주

박혜원 빈트 갤러리 대표

혼자 먹을 때일수록 ‘잘’ 먹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는 박혜원 대표. 그래서인지 그녀의 혼밥 테이블에는 근사한 요리와 함께 작가들의 식기, 아름다운 꽃과 음악이 곁들여진다. 요리 자체는 화려하고 거추장스러운 것보다는 올리브 오일과 마늘, 해산물로만 맛을 내는 기본기 충실한 메뉴를 즐긴다. 연어 샐러드에는 가장 베이식하게 발사믹과 오일을 뿌리고, 각종 해산물과 제철 채소에 펄펄 끓인 올리브 오일을 끼얹은 타파스는 월계수잎 외에 다른 향이나 간을 첨가하지 않았다. 봉골레와 떡볶이를 좋아하는 평소 식성에 맞춰 봉골레에 면 대신 떡을 넣는 기발한 시도도 하는데, 이 메뉴는 그녀가 좋아하는 필스너 맥주와 환상적인 궁합을 이룬다. “혼자 먹을 때는 가급적 천천히 먹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단지 끼니를 때우기 위함이 아니라 혼자 무언가를 먹는 값진 시간과 맛을 음미하는 거죠. 인테리어의 완성인 음악과 조명도 빠트려서는 안 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