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시인, 그리고 정원사 사이의 에밀리 디킨슨

<에밀리 디킨슨, 시인의 정원>은 미국을 대표하는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평전이다. 그런데 저자의 이력이 특이하다. 조경 연구자인 저자는 ‘식물러’였던 에밀리 디킨슨의 삶을 자신의 전문 분야를 살려 조망한다.

202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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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언뜻 보기에는 조용하게 살고 있다. 외출도 자주 하지 않고, 출근도 하지 않는다. 가끔 나 같은 친구들이 방문하면 바깥소식은 오랜만이라는 듯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의 일상이 꽤 역동적임을 눈치챌 수 있다. 그들이 베란다나 마당에 마련한 작은 정원은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성장하고 꽃을 피운다. 그들은 새싹 한 장이 톡, 하고 움트는 것이 얼마나 혁명적인 일인지 안다. 잠도 자지 않고 자라는 식물들은 그들의 꿈자리에도 말간 얼굴을 들이밀고, 가끔 잎사귀를 흔드는 척하면서 세계를 쥐고 흔든다. 계절의 변화도 시간의 흐름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은 오히려 짐짓 바쁜 척하는 우리 인간들이다. ‘식물러’라는 이름에는 수동적인 느낌이 묻어 있지만, 정작 그들은 지구가 굴러가는 소리를 들으며 양손에 모종삽과 물조리개를 들고 그 움직임에 한발 보태는 능동적인 사람들이다. 


디킨슨의 1년을 천천히 따라 읽으며, 나는 조용한 식물러인 내 친구들을 생각한다. 에밀리 디킨슨은 살아 있을 때도 일종의 전설이었다. 흰옷만 입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으며 집으로 찾아온 손님조차 문을 사이에 두고 얼굴을 보여주려 하지 않은 여자. 독신을 선언하고 약 40년 동안 홀로 책을 읽고 1800편의 시와 1100통의 편지만 남기고 간 시인. 그는 살아 있는 동안 단 7편의 시만을 지역 신문에 발표하는 등 당대에는 거의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사후에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발간된 시집이 눈길을 끌면서 현재는 미국이 배출한 천재적인 시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에밀리 디킨슨 평전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을 쓴 저자 마타 맥다월은 특이하게도 뉴욕식물원에서 조경 디자인을 공부하고 원예를 가르치는 조경 연구가다. 그는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디킨슨 외에도 비어트릭스 포터, 로라 잉걸스 와일더,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루시 모드 몽고메리 등의 작가와 정원 이야기를 엮은 책을 펴냈다. 

 

 

 

그는 디킨슨에 덧씌워진 ‘수도원에 칩거하던 중세 신비주의자’, ‘다락방의 미친 여성’ 이미지를 한 겹 걷어내고, 그 아래 생생하게 숨 쉬는 정원사로서의 그를 이끌어낸다. 디킨슨은 아마추어 정원사였지만 식물학자이기도 했다. 자연을 사랑하고 정원을 가꾸는 부모 밑에서 자란 그는 학교에서 식물학과 지질학을 배우며 전문성을 갖추었다. 그는 섬세하고 완성도 높은 식물 표본집 하버리움을 만들기도 하고, 친척과 친구, 지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꽃다발과 압화를 동봉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식물들을 시로 찬미했다. 


그는 죽기 전에 평생을 함께 산 여동생 비니에게 자신의 종이들을 없애달라고 부탁한다. 그의 유품을 정리하던 비니는 수많은 시를 발견하는데, 그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가 자신의 시를 바느질로 묶어 제본한 시집 40권이었다. 학자들은 이 작은 책을 ‘파시클’이라고 불렀다. 파시클은 ‘하나의 토대에서 함께 자란 잎이나 꽃, 뿌리의 다발’을 가리키는 식물학 용어다. 


그의 장례식은 5월, 눈부신 사과꽃이 핀 계절에 거행되었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누운 그의 주변을 장식한 것은 제비꽃과 분홍 복주머니난이었다. 손에는 비니가 쥐여준 헬리오트로프. 그리고 흰 관을 장식한 것은 제비꽃과 석송. 친구와 가족들은 이노센트 블러쉬와 버터컵을 품에 한 아름 안고 그를 배웅했다. 지금도 그가 살았던 디킨슨 홈스테드에는 꽃들이 피어난다.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이곳의 정원은 꼼꼼한 복원을 거쳐 디킨슨의 흔적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진과 아름다운 식물화로 가득한 이 책 또한 그 생생한 흔적의 하나다.  

※ 이 글을 쓴 박사는 북 칼럼니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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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양혜연PHOTO : 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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