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실존과 실체 사이에서, 알베르토 자코메티

최소한의 질량만 남은 가느다란 인체로 죽음과 실존, 가시적인 실체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한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핵심 작품이 서울에 왔다. 현대 건축의 거장 프랭크 게리가 서울에서 처음 선보인 건축물에.

2019.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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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에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인 ‘키가 큰 여인 II’. 이 작품은 영원에 대한 고찰로 이끈다.
 

 

이번 전시에는 총 8점의 작품이 소개된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작품마다 함의가 깊어 작품당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감상하길 추천한다.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의 작품 세계는 특정 미술 사조에 가둘 수 없다. 죽음과 실존, 눈에 포착되는 실체에 대해 전 생애에 걸쳐 탐구하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독자적인 양식을 구축한 그의 작품은 ‘알베르토 자코메티’라는 이름 안에서만 오롯이 살아 숨 쉰다. 그가 자신만의 양식을 구축한 1940년대 후반부터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완성기라 평가받는 시기의 주요 작품을 조망할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새롭게 오픈한 루이 비통 메종 서울의 최상층에 위치한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에서 진행되는 <알베르토 자코메티 컬렉션 소장품 전시>가 바로 그것이다.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이 주최한 이 전시는 그가 1947년에 제작한 ‘장대 위의 두상’부터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로타르’ 연작까지,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의 소장품 8점이 전시된다. 무료로 운영되는 이번 전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품을 누구나 제한 없이 감상할 수 있어 더욱 특별하다. 전시 공간에 들어선 순간 마주하게 되는 하늘을 향해 끝없이 뻗어 나가는 듯한 두 점의 여인 조각, 크기는 작지만 공간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아우라를 지닌 여섯 작품은 관객을 강렬한 자코메티의 예술 세계로 인도한다. 

 

 

새롭게 오픈한 루이 비통 메종 서울의 전경.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했다. 

 

공간과 실체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알베르토 자코메티. 그의 작품 세계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문구가 있다. 바로 ‘죽음과 인간의 실존’이다. 1909년 태어나 1966년 생을 마감한 그는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경험했다. 그뿐 아니라 여동생을 비롯한 가까운 이들의 예기치 않은 죽음은 그를 늘 인간의 실존과 죽음에 대해 사유하게끔 만들었다. 이는 이번 전시 작품 중 하나인 ‘장대 위의 두상’을 통해서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완성기의 초기작인 이 작품은 1921년 갑작스럽게 목도한 여행 친구 페테르 판 뫼르스(Peter Van Meurs)의 죽음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움푹 꺼진 뺨, 입을 벌린 채 미동도 없는 두상은 알베르토 자코메티가 그날 본 한 인간의 생명의 불꽃이 서서히 꺼져가는 모습이다.

 

 

전시는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독자적인 스타일이 막 완성되던 시기의 작품부터 그가 죽음에 이르기 전 마지막으로 세상에 선보인 작품까지 다채롭게 구성됐다.

 

페테르 판 뫼르스의 죽음을 목도하기 이전까지 그에게 죽음은 장엄한 모험이었지만 그날의 일은 죽음이란 단지 무(無)이며 보잘것없고 부조리한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고 자코메티는 훗날 회상했다. 20세에 불과한 나이에 두 눈으로 경험한 죽음의 실체는 이 작품뿐만 아니라 자코메티의 작품 세계 전반에 거대한 영향을 미친다. 더불어 실존주의 철학가 장 폴 사르트르와의 교류는 그를 인간과 죽음, 고독, 소외, 그리고 실존에 대한 깊은 사유로 이끌었다. 그의 사색과 통찰은 쓰러지는 듯한 형상의 연약하고 가느다란 인체를 표현한 ‘쓰러지는 남자’, 죽음에 대한 강박에 시달리며 사망 직전 제작한 ‘로타르’ 연작 등을 통해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 테라스 벽에 있는 프랭크 게리의 디자인 스케치와 필적. 

 

그러나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품 세계를 ‘죽음’, ‘고독’, ‘소외’ 등의 단어로만 표현하는 것은 부분적인 해석이다. 죽음과 인간의 실존은 그의 작품 세계를 아우르는 중요한 키워드지만 알베르토 자코메티가 예술가로서 평생에 걸쳐 표현하거나, 이루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었다. 그가 예술에 눈뜬 순간부터 죽는 날까지 이루고자 한 바는 보이는 것을 보이는 대로 재현하는 ‘사생(寫生)적 조각’이었다. 보이는 실체를 재현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후기 인상파 화가 조반니 자코메티(Giovanni Giacometti)를 아버지로 둔 그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화실에 드나들며 예술을 접했다. “화가란 제대로 볼 줄 아는 자여야 한다. 미술을 공부한다는 건, 결국 보는 법을 배우는 것임을 잊지 말아라”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은 그는 자연스레 눈에 보이는 대로 재현하는 법에 몰두했다. 부자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회화의 근간을 지배해온 원근법을 버리고 자신이 바라본 고유한 시각을 화폭에 옮긴 세잔의 작품을 찬미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처음 자신의 작품을 선보인 순간부터 자신이 지각한 모습을 조각으로 재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나 회화와 달리 3차원의 공간, 즉 변수가 있는 조각 작품을 만드는 데 있어 작가가 바라본 시각을 재현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알베르토 자코메티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페테르 판 뫼르스(Peter Van Meurs)의 죽음에서 비롯된 작품 ‘장대 위의 두상’. 

 

끝없이 고뇌를 거듭해도 찾을 수 없는 답, 아버지와 함께 여행하며 매료된 이집트 조각의 영향과 원근법의 한계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가 충만했던 젊은 시절의 자코메티는 입체주의 조각 작품을 선보이는 데 이른다. 사생에 의한 조각을 단념하고 사물의 모습을 기하학적 형태로 환원시켜 강렬하게 표현하던 그의 조각 세계는 1930년대에 접어들며 다시 한번 변화를 맞는다.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 루이 아라공(Louis Aragon) 등과 교류하며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여하게 된 것. 기억과 상상에 의존한 작품을 선보이던 시기다. 그러나 자신의 눈에 보이는 실체를 그대로 재현하려는 욕구는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1935년에 이르러 초현실주의자들과 갈등을 겪으며 그들과 완전히 결별하고 다시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법에 몰두한다. 이후 몇 년간 매일같이 작품에 몰두했지만 그 어떤 결론도 도출하지 못했다고 회고할 만큼 깊은 수렁에 빠진다. 과도기였던 1938년부터 1945년까지 그는 성냥갑에 들어갈 만큼 굉장히 작은 인체 조각품을 다수 만든다. 눈에 보이는 것을 재현하려니 조각품이 한없이 작아진 것이다. 이는 우리가 한 인물의 전신을 바라볼 수 있는 거리에서 볼 때, 손가락으로 그 크기를 측정하면 불과 손가락 한두 마디만 하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대상에 가까이 다가가면 신체 일부분밖에 포착할 수 없다. 자코메티는 자꾸만 작아지는 조각품의 크기에 두려움마저 느끼게 되었다. 그러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에 이르러 새로운 돌파구를 찾게 된다. 우연히 본 몽파르나스 뉴스 영화를 통해 자신이 만든 조그마한 인체 조각품이 학습에 의한 지각임을 깨달았다. 우리의 눈은 입체적으로 지각하지 못한다. 평면 상태에서 거리감을 표현하는 건 깊이감이 아닌 너비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는 조각이 이전 작품처럼 너무 작아지지 않도록 일정 높이를 유지한 채 모델과 자신 사이의 거리를 표현하기 위해 인체의 폭을 줄여 얇고 가늘게 만들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만의 독자적인 스타일이 구축되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의 연약한 순간을 구체적으로 포착한 ‘쓰러지는 남자’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보여준다. 

 

“자코메티는 고전주의와 정반대 입장을 취하여, 조각상에 가상의 공간을 복원시켰다. 그는 상대성을 단번에 받아들임으로써 절대를 찾았다. 그는 눈에 보이는 대로의 인간, 즉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본 사람을 빚어야 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은 자이다. (…) 그는 자신으로부터 ‘열 발자국’, ‘스무 발자국’ 떨어져 있는 인물상을 만든다. 그래서 당신이 가까이 다가가든, 멀찌감치 뒤로 가든 그의 조각은 언제나 그만큼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장 폴 사르트르의 평처럼 자코메티는 인물을 가늘게 만듦으로써 작품을 어떤 거리에서 보든 자신이 모델을 바라볼 때 느낀 거리감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의 노력은 전체적인 형태뿐만 아니라 작품 디테일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의 작품은 머리카락 한 올 한 올까지 섬세하게 재현하는 고전적인 조각과 달리 사람의 눈과 입 등 신체의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묘사가 생략돼 있다. 심지어 그마저도 친절하지 않은데 이 또한 거리에 따라 인지되는 형태에 따른 것이다. 더불어 누구인지 인식할 수 없는 이목구비는 보편적인 인간상의 상징이다. 이번 전시에서 인물 전신 조각은 ‘베네치아의 여인 III’, ‘키가 큰 여인 II’, ‘걸어가는 세 남자’, ‘쓰러지는 남자’ 총 네 작품이 있다. 형태도 크기도 다 다른데 어떤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도, 가까이에 있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자코메티의 작품은 인물만 조각한 것이 아니라 공간도 함께 담아냈기 때문이다. 살을 덜어내 최소한의 질량만 남은 이 형체들이 갖는 공간과 거리는 타자와의 감정적 거리, 한 인간의 실존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거리를 의미한다. 육체성을 상실한 뼈대는 인간의 영혼에 대해 깊게 성찰하게끔 한다.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의 테라스. 프랭크 게리가 한국의 미에서 영감 받아 만든 아름다운 형태를 내부에서 감상할 수 있다. 

 

루이 비통 메종 서울의 최상층인 4층에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이 자리한다. 

 

두 거장의 만남
전시는 작품 그 자체로 완성되지 않는다. 작품이 놓이는 공간과 배치의 관계성에서 비로소 온점을 찍는다. 그런 면에서 이번 전시 <알베르토 자코메티 컬렉션 소장품 전시>는 특별하다. 20세기 예술계를 대표하는 두 거장이 만났으니. 전시가 열리는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은 최근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한 루이 비통 메종 서울에 둥지를 틀었다. 새로운 루이 비통 메종 서울은 오픈 전부터 숱한 화제를 모았다. 건축물의 설계를 현대 건축의 거장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맡았기 때문. 한국에 처음 선보이는 그의 작품이라 의미가 더욱 크다. 프랭크 게리는 한국의 얼이 깃든 수원화성과 흰 도포 자락을 너울거리는 동래학춤의 우아한 몸짓에서 받은 영감을 건축물에 담아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것이 아닌, 루이 비통 메종 서울의 옛 건물 형태를 유지하면서 건축법상 높이 제한을 침해하지 않는 건물을 지어야 했기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프랭크 게리는 자신을 상징하는 특유의 곡선이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한국의 미감을 오롯이 담은 건물을 완성해냈다. 건물의 꼭대기, 4층에 위치한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은 도쿄, 뮌헨, 베네치아, 베이징에 이어 다섯 번째로 오픈하는 에스파스 루이 비통이다. 에스파스 루이 비통은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이 현대미술과 예술가, 그리고 동시대 미술 작가에게 영감을 준 20세기 예술 작품을 대중에게 소개하기 위해 전 세계 곳곳에 마련한 공간. 규모는 크지 않지만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곡선형의 유리 벽면 형태가 공간에 녹아드는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은 공간 자체로 예술이 된다. 이곳에 안착한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품 여덟 점은 프랭크 게리의 터치가 살아 있는 공간에 스며들며 또 다른 생명을 부여받는다. 

 

 

 

INTERVIEW
장-폴 클라브리와의 대화 

베르나르 아르노 LVMH 그룹 회장의 고문이자 LVMH 그룹 기업  후원 디렉터 장-폴 클라브리가 루이 비통 메종 서울, 그리고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 오픈을 기념해 한국을 방문했다. 그에게 듣는 루이 비통 메종 서울의 오픈과 이번 전시의 비하인드 스토리.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의 첫 전시다. 처음인 만큼 의미가 남다를 것 같은데, 알베르토 자코메티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은 현시대의 예술가들과 자주 협업한다. 그러나 동시대나 미래를 위해서는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된다. 즉 미래와 과거, 특히 20세기와의 균형은 매우 중요하다. 자코메티는 20세기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작가다. 또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굉장히 좋아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아르노 회장은 서울 프랭크 게리 건축물의 첫 전시로 최상의 전시를 원했고,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품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자코메티 고유의 스타일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의 소장품들이다.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이 소장한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품 8점을 만날 수 있다고 들었다. 맞다. 전시 규모는 크지 않다. 그러나 나는 관객들이 작품을 감상할 때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작품마다 관객과 작품 사이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그들만의 소통을 하길 원한다. 이 전시는 쉽게, 그리고 빨리 감상할 수 있는 전시가 아니다. 

이번 전시는 ‘미술관 벽 넘어(Hors-les-murs)’ 프로젝트의 일환이라고 들었다. 어떤 프로젝트인가. 서울을 포함한 세계 5곳의 에스파스 루이 비통 공간에서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의 소장품을 전시하는 프로젝트다.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의 소장품은 셀 수 없이 많다. 파리의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에도 모두 전시할 수 없는 규모다. 이 훌륭한 작품들이 수장고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고 세계 각지에 보여주고 싶어 기획됐다. 

루이 비통은 파리의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부터 세계 각지의 에스파스 루이 비통까지, 예술과 대중을 소통시키는 일과 예술가 후원에 앞장서고 있다. 아르노 회장은 그의 성공의 일정 부분은 사회로, 특히 예술가에게 환원되어야 한다고 늘 말한다. 이는 루이 비통이 대중을 만나는 또 다른 방법이기도 하다. 한 브랜드가 대중을 변화시키기도 하지만 일반 대중이 브랜드를 변화시키기도 하는 법이니까.

 

INFORMATION
알베르토 자코메티<알베르토 자코메티 컬렉션 소장품 전시>
20세기 가장 위대한 예술가 중 한 명인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예술 세계를 감상할 수 있는 전시다.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 개관을 기념해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의 소장품 중 그의 주요 작품 8점을 선별해 선보인다. 죽음과 실존, 사생적 조각에 대한 작가의 고뇌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
2020년 1월 19일까지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 

Reference <자코메티: 영혼을 빚어낸 손길>, 제임스 로드, <자코메티: 도전적인 조각상>, 베로니크 와이싱어 ‘자코메티의 인물 구성 조각에 표현된 공간개념’, 이재은, 현대미술사연구(Vol.3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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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알베르토 자코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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