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멈추고 싶은 기차역

기차는 제 시각에 출발했고, 떠나가는 사람과 찾아오는 사람 모두 제 갈 길을 갔지만, 텅 빈 기차역이라 할지라도 머물고 싶은 이유가 생겼다.

2019.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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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비우스의 띠처럼 휘어진 강철 오브제는 기둥, 벽, 문, 바닥 역할을 한다. 보트 제작에 사용하는 특별한 기술이다. 

 

2020년, 하루 11만 명의 환승객이 이용할 것이라 예상되는 아른헴 센트럴 환승 터미널. 

 

우주정거장처럼 미래적인 모습을 갖춘 기차역. 

 

기차 또한 클라인 병을 닮은 강철 구조 속에서 손님을 맞이한다. 

 

뫼비우스의 띠
Arnhem Central Transfer Terminal, Netherlands

건축 그룹 유엔스튜디오(UNStudio)의 야심 찬 20년 프로젝트였다. 네덜란드를 축으로 전 유럽 도시를 기차로 연결하는 환승 플랫폼을 만드는 일. 21만750m²의 거대한 부지 내 환승객이 쉬어 갈 수 있도록 상점, 영화관 등 공항보다 다양한 편의 시설을 배치했다. 아무리 상점이 많고, 사람이 북적대고, 기차가 오가도 숨 막히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강철 소재를 이용한 ‘클라인 병(Klein Bottle)’ 구조 덕분이다. 클라인 병이란 독일 수학자 펠릭스 클라인이 발견한 것으로, 뫼비우스의 띠를 닫아 만든 2차원 곡면이다. 안과 밖의 구분이 모호한 것이 특징. 유엔스튜디오는 보트 건축 기술에서 사용하는 강철 소재에 클라인 병 디자인을 적용했다. 휘어 있는 구조물은 자신이 있는 곳이 내부인지 외부인지 헷갈리게 한다. 높이 60m에 달하는 유리 천장까지 더해 ‘완벽한 밀실’이자 ‘열린 공간’으로 완성한 것. 기차 플랫폼도 클라인 병 구조를 닮았다. 드론 카메라로 보면 원통형 플랫폼 속에서 기차가 빠져나가고 들어오는 모습이 무척 신기하다. 유엔스튜디오가 1996년 당시 디자인을 제안했을 때, 실제 구현할 수 있는 설계, 시공업체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2001년 네덜란드 정부가 국가 사업으로 인정한 후에야 정부의 든든한 조력 아래 파트너를 찾을 수 있었다. 과연 미로 같은 공간에서 제 시간에 기차를 탈 수 있을까? 환승을 경험하면 알게 된다. 모든 통로는 건축가와 설계자가 수년간 사용자의 동선을 파악해 설계한 다음 기차에 도달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임을. www.unstudio.com, www.arnhemcentraal.info

 

 

건물 내부는 나무로 마감했다. 건축 소재는 모두 주변에서 친환경 소재로 구했다. 

 

비상을 준비하는 새의 날개를 형상화한 나무 지붕. 오나가와 지역의 눈과 비를 탁월하게 막아주는 최적의 디자인이면서 쓰나미 피해자를 위로하는 디자인이다.

 

재난의 건축
Onagawa Station, Japan 

2011년 3월 11일, 일본 미야기현 오나가와 기차역이 쓰나미로 무너졌다. 사람들은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었다. 재해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에게 건축가 시게루 반이 팔을 걷어붙였다. 원래 자리에서 150m 정도 떨어진 곳에 그는 새롭게 기차역을 만들었다. 3층 건물에는 만남과 이별의 감정이 교차하는 기차역에 어울릴 법한 여러 시설을 두었지만 의외인 곳도 있다. 2층 대중목욕탕이다. 높은 벽 창문으로 들어오는 환한 빛이 후지산과 산에서 뛰어노는 동물들을 그린 하얀색 타일을 비추고, 따뜻한 물은 여행자의 몸과 피로를 씻는다. 태풍, 쓰나미, 지진 등 자연의 공포에 두려워하기보다 자연이 주는 행복을 느끼고, 자연과 공존하며 사는 방법을 제안한달까. 시게루 반은 고베 대지진 때 설계한 종이튜브 건축물로 프리츠커 건축상을 받은 이후 본격적으로 재난 프로젝트를 벌여왔다. 그는 자신의 건축 철학을 “디자인을 통한 문제 해결”이라고 말한 바 있다. 현지 상황, 기후, 경제, 종교 등 모든 맥락을 파악한 뒤 디자인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건물 전체를 휘감은 나무 소재는 그런 고민의 결과물로,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다. 친환경 소재이기도 하고. 새가 날기 위해 두 날개를 활짝 펼친 것 같은 지붕 디자인은 쓰나미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보내는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다. www.shigerubanarchitects.com

 

 

 자연광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천장에 둥근 창을 달았다. 2018년 5월 기차 중앙홀 모습. 

 

건물 층을 받치는 기둥을 나무 형태로 디자인했다. 중앙홀은 여러 열대 식물이 자라나는 야외 정원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2030년 완공을 목표로 건설 중인 가오슝역.

 

놀이터 같은 기차역
Kaohsiung Station, Taiwan

2030년 완성을 목표로 아직 기나긴 여정이 남았지만, 네덜란드 건축팀 메카누(Mecanoo)는 매년 변해가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9.75km 철도 터널을 따라 역을 7개 품은, 타이완의 대형 지하 철도 프로젝트로, 기차, 지하철, 버스, 택시, 자가용, 자전거 등이 교차하는 ‘미래의 정거장’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 아이디어는 교통 시설을 한데 모으고, 대신 공공 녹지 공간을 늘이자는 도시 변혁을 위한 핵심 사업이다. 현재 기차역의 첫 장면이 될 중앙홀이 완성되었다. 마치 열대 기후에서 자라는 거대한 팜나무처럼 화이트 기둥이 서 있고 둥근 자갈돌처럼 보이는 오브제가 천장을 가득 메웠다. 높은 천장에는 태양처럼 둥근 창문이 뚫려 있는데, 쏟아지는 빛은 공간 전체를 밝히기에 충분하다. 메카누는 ‘떠나는 역’이 아니라 ‘모이는 역’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기차를 타지 않아도 놀러 갈 수 있는 기차역을 조형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루프톱 공원, 파머스 마켓, 중고 시장, 오페라 극장 등을 함께 건설한다. 뜨거운 만남과 이별이 머무는 낭만적인 기차역 대신 우연한 만남이 일어나고 자신도 알지 못하는 인생 여정을 펼칠 수 있는 모험 가득한 기차역. 흥미롭게도 건설 현장에는 일제 식민지 때 기차역이었던 옛 건축물이 있다. 역이 완성되면 다른 곳으로 옮길 예정이다. 건축가는 식민지 역사가 남긴 아픈 기억을 지우는 마음까지 담아 완성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www.mecanoo.nl

 

 

강철 갈빗대를 이용한 유리 천장으로 최대한 자연광을 끌어들였다. 

 

지붕을 사선형으로 완성한 외부 플랫폼.

 

삼각꼴 머리 형상의 뱀이 연상되는 건물. 모든 노선을 운행할 경우 하루 3만2000여 명의 사람이 오간다. 

 

날카로운 삼각꼴로 건물 모양을 마감해 빠르고 신속한 기차역 이미지를 강조했다.

 

수상한 생물체
Napoli Afragola Station, Italy 

어디선가 수상한 건축물이 나타났다 싶으면 자하 하디드 건축 그룹의 작품이라 생각해도 좋다.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남기고 간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드로잉을 실현하고 있는 그들은 남들과 다른 시간의 축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같다. 이탈리아 나플레스(Naples)에 위치한 나폴리 아프라골라 기차역은 외계 생명체 같기도 하고, 빠른 몸짓으로 땅을 기어 다니는 뱀 같기도 하다. 매트한 화이트 컬러로 마감된 기차역은 이탈리아 사방으로 퍼지는 고속도로 4개와 지역 도로 3개에 걸쳐 길게 뻗어 있다. 나플레스는 장화처럼 생긴 이탈리아 지도의 중심에서 바다 쪽으로 근접한 교통 요충지다. 시칠리아 주민이 이탈리아 북부로 향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한다. 초고속열차 11대를 포함해 모든 노선을 운행할 경우 하루 3만2000여 명(아침 시간에는 4800명)이 이곳을 경유한다. 자하 하디드 건축팀은 이런 점을 고려해 도시와 도시를 잇는, 교량 역할을 하는 역을 떠올렸다. 가장 빠르게 방향을 전환할 수 있도록 전체 지도를 펴놓고 꼭짓점과 꼭짓점을 연결한 형상. 외계 생물체 또는 뱀 형태는 그렇게 탄생했다. 기나긴 몸통을 힘들게 걸어가야 하는 이들을 위한 배려는 이렇다. 최대한 많은 유리창을 만들어 빛을 끌어들였고, 자연 환기를 혼합한 냉각 냉방 시스템을 갖췄다. 특히 중앙 플랫폼의 천장은 20개의 갈빗대 모양 강철 기둥을 섞은 대형 유리로 마감했다. 이탈리아의 따사로운 볕이 분 단위로 움직이는 기차역의 긴장감을 풀어준다. 외부에 태양열 집열판을 부착해 일부 에너지를 자체 해결할 수 있다.
 www.zaha-hadid.com

 

 

콘크리트와 강철로 만들어졌지만 로마 시대 분위기가 느껴지는 신고전주의 스타일의 건축물이다. 

 

화강암, 화이트 대리석, 금빛 문양 등 비싼 재료 일색인 중앙홀. 아치형 디자인을 건물 내외부에서 볼 수 있다. 기차역에서는 관광객을 위한 건축 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신고전주의 건축
Washington Union Station, USA 

미국에는 낭만을 불러일으키는 기차역이 꽤 많다. 관광객에게 널리 알려진 뉴욕 그랜드 센트럴역, 시애틀 킹스트리트 기차역 등 유럽 기차역과는 달리 매우 웅장하고 호화로운 분위기가 특징이다. 기차가 산업화의 아이콘이었듯, 미국의 기차역은 정유, 제철 등 산업 물자를 나르는 사설 철도 회사들의 흥망성쇠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철도 회사들은 1830년대 철도가 깔리면서 승승장구했으나 경제 대공황을 겪으면서 하나둘 문을 닫았다. 여행 열차도 비행기에 밀렸다. 지금 미국에 남은 기차역은 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그중 국보급에 속하는 곳은 워싱턴 유니언역. 원래 미국 수도로 계획된 도시 워싱턴 DC 전체를 담당한 프랑스인 피에르 샤를 랑팡 소령의 지휘 아래 만들어졌는데, 이후 유명 건축가 대니얼 번햄이 계획을 수정해 1908년 완성했다. 현대식 콘크리트와 강철이 주재료지만, 로마 시대 분위기가 한껏 느껴지는 신고전주의 건축물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182m 높이의 아치형 천장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화강암, 화이트 대리석, 금빛 문양 등 한때 기름 냄새 진동한 주요 기차역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기둥 사이 반원형 창문도 예술적. 창문을 투과하는 빛은 로마 시대의 조각품을 비춘다. 2016년 역사적인 건축물로 지정해 정부 기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www.unionstationdc.com

 

 

벨기에는 여느 유럽의 도시보다 앞서 기차 산업을 국유화했고, 철도 운영과 기차역 건립을 모두 왕의 지휘 아래 두었다. 벨기에 전역의 훌륭한 아티스트, 제작자, 건축가가 모여 예술 작품 이상의 기차역을 만들었다. 

 

1998년부터 2007년까지 장기 복원 프로젝트를 거치면서 내부를 수리하고 상업 시설 구역을 확장했다. 

 

벨기에 예술가의 컬래버레이션 
Antwerp Central station, Belgium

신성한 기운이 넘치는 성당에 들어온 느낌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여러 번 선정된 이 기차역에서 자리를 뜨기란 쉽지 않다. 건물 외관부터 벽, 바닥, 건물과 건물 사이를 잇는 통로까지. 왕의 명령 아래 모인 최고의 건축가, 아티스트, 제작자 등이 혼을 기울여 만든 예술 작품 그 자체. 1895년과 1905년 사이에 완성한 건물은 가장 먼저 400m 높이의 돔이 눈에 띈다. 중앙홀은 벨기에 출신 건축가 루이 데라센세리에가 아르누보 스타일로 디자인했다. 사용한 대리석 종류만 20가지가 넘는다. 층을 이어주는 유연한 모양의 계단은 직접 걸어봐야 한다. 계단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독특한 문양의 대리석 바닥이 그림 같다. 건물과 건물을 잇는 천장 돔과 외부 타워는 제작자 장 방 아스페렌이 맡았고, 기차 플랫폼은 엔지니어이자 제작자 클레방 방 보가르가 힘을 보탰다. 높이 43m, 길이 185m로 공작새가 날개를 펼치듯 활짝 펼친 철제 천장 디자인은 목이 아플 만큼 하늘을 오래 쳐다보게 만든다. 여러 아티스트의 컬래버레이션 작품으로 완성했고, 지휘자였던 루이 데라센세리에가 여러 가지 절충적인 디자인을 접목해 딱히 특정 사조의 디자인으로 규정하기는 힘들다. 철, 유리, 돌 소재가 혼재된 건물은 독보적이다. 기차역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폭탄을 맞고 중앙홀 여러 부분이 손상되었다. 1998년부터 2007년까지, 장기 복원 프로젝트를 거치면서 대부분 복구되었지만 일부 흔적을 볼 수 있다. 시간을 내어 건축물 투어를 꼭 신청할 것. 

 

 

기차역은 국제적 수준에 걸맞게 리노베이션했다. 과거의 건물은 옛 모습대로 다시 복원되었고, 상점 시설이 들어선 곳은 더 현대적으로 다듬고 공간을 넓혔다. 상업 지구에는 30개가 넘는 레스토랑과 고급 패션 상점이 있다.

 

아티스트 트레이시 에민의 네온 작품으로 화제를 모은 기차역.

 

아티스트가 도착하는 곳 
St. Pancras International, UK 

빅토리아 고딕 양식으로 지은 육중한 건물은 원래 미들랜드 그랜드 호텔이었다. 산업이 발달하고 요충지에 철도역이 필요해져 건물을 리노베이션해 1868년에 기차역 명칭을 달았다. 건물은 그 당시 핵심 운수 물자였던 철강, 석탄 등에 초점을 맞춰 설계되었고, 맥주 저장소도 갖췄다. 높이 30m, 너비 73m, 길이 213m 철제 갈빗대 천장은 기차가 멈출 줄 몰랐던 역동적인 산업화의 시대로 이끈다. 지금도 온 도시의 기차가 천장으로 쏟아지는 빛을 받으며 도열한 모습은 볼만하다. 쇼핑몰이 있는 2층에서 플랫폼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곳곳에서 현대적이고 모던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은 2004년부터 3년간 리노베이션했기 때문. 기차로 바다를 건너 프랑스로, 이탈리아로 가는 시대. 국제적인 기준에 맞는 기차역으로 거듭나기 위해 공간을 넓히고, 다이닝, 쇼핑몰 등 상업적인 시설을 배치해 과거의 모습을 새롭게 복원했다. 그러나 재단장한 이 기차역이 널리 알려진 데는 아티스트의 공이 크다. 아티스트 트레이시 에민의 네온 작품 ‘I Want My Time With You’가 기차 위에 반짝이는 사진은 소셜 미디어에서 한때 화제였다. 기차역은 6년 전부터 ‘테라스 와이어스(Terrace Wires)’ 프로그램을 마련, 매년 다른 아티스트의 공공 미술 작품을 소개하는 기발한 프로젝트를 펼친다. 2015년에는 비주얼 아티스트 코넬리아 파커가 기차역의 상징이기도 한 아날로그 벽시계 ‘덴트 런던 클락(Dent London Clock)’을 복제한 작품을 시계 옆에 나란히 설치했다. www.stpancras.com. 

 

 

 

 

더네이버, 건축, 기차역

CREDIT

EDITOR : 계안나PHOTO : stpancras,wikipedia,zahahadidarchite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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