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하루키’라는 우물

“글자만 보고도 굴튀김 생각이 간절해지는 문장”을 쓰고 싶다던 그는, ‘하루키 월드’를 탄생시켰다. 가와카미 미에코가 3년간 네 차례 그를 인터뷰했고, 그간 밝혀지지 않은 내밀한 이야기가 열린다.

2018.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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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내게도 ‘하루키 시절’이 있었다. 덤덤한 문장이 만들어내는 매력에 빠져 한 세월을 보냈다. 한때의 유행에 그칠 것이라고 했던 하루키의 작품은 이제 하나의 세계가 되었다. ‘하루키 월드’를 좋아하거나 싫어할 수는 있지만 존재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게 된 것이다. 그러니 이제 하루키라는 우물에 직접 뛰어들어보면 어떨까. 하루키는 소설뿐 아니라 에세이로, 인터뷰어로 수많은 책을 써냈기 때문에 우리는 그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했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니 하루키에 대해서 우리가 몰랐던 것이 많았음을 새삼 알겠다. 믿기 어렵지만, 하루키가 질문을 받는 인터뷰이로서 장시간 나눈 이야기를 단행본으로 묶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루키 본인 또한 이 책을 통해 자신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된 모양이다. 하루키의 세계를 더 잘 알게 된 것도 흥미롭지만, 하루키의 자아 탐구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질문의 힘 덕분이리라. 질문자인 가와카미 미에코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작가다. 스물여섯에 가수로 데뷔한 그는 5년 뒤 소설 <와타쿠시리쓰 인 치아, 혹은 세계>로 등단한다. 다음 해에 발표한 <젖과 알>로 138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면서 발표하는 작품이 연달아 예술선장문부과학대신 신인상, 무라사키 시키부 문학상, 다니자키 준이치로상, 와타나베 준이치상 등을 수상했다. 배우와 방송인인 그는 또 하루키의 오랜 팬이기도 하다. 하루키보다 하루키의 작품을 더 잘 기억하는 인터뷰어 덕에, 하루키는 자신의 작품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진다. 독자들과 함께. 
아는 것은 최대한 잘 설명하려 하고, 모르는 건 솔직하게 모른다고 하는 하루키의 태도는 생생한 실감을 준다. 이데아와 메타포라는 용어는 사용하지만 플라톤의 이론에는 관심이 없고, 에고와 셀프라는 용어는 사용하지만 융 철학에 대한 지식은 없는 그의 ‘자유로움’은 이 세계를 한 뼘쯤 부욱, 늘려놓는다. 어찌 보면 그가 작품을 쓰는 활동 자체가 세계를 넓히는 일이다. 하루키는 말한다. “진짜 리얼리티는 리얼리티를 초월한 겁니다. 있는 사실을 리얼하게 쓰기만 해서는 진짜 리얼리티가 되지 않죠. 찔러 넣을 데가 한 단계는 더 있는 리얼리티를 만들어야 해요. 그게 픽션입니다.” 
그가 내려가는 지하 2층의 세계. 그가 찔러 넣는 저 너머의 단계. 그가 시도하는 벽 뚫고 나가기. 그것이 하루키 월드를 이루는 핵심일 것이다. 이 책은 하루키의 독자뿐 아니라 창작자에게도 많은 정보를 준다. 하루키는 자신이 어떻게 소설의 영감을 얻고 작업을 하며 고쳐서 작품을 만들어내는지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들려준다. 수많은 아류 작가를 양산했다지만 단 한 명도 그와 닮게 쓸 수는 없었다는 사실이 그의 저 평이한 이야기들을 실천하기 얼마나 쉽지 않은지 생각하게 한다. 그는 무심하게 말한다. “간혹 ‘무라카미 씨랑 똑같아요’ 하는 원고를 받아볼 때가 있는데, 제 눈에는 전혀 닮지 않았거든요. 어디가 비슷하다는 거지 싶어요.” 그렇지만 ‘하루키 되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그의 조언은 ‘작가 되기’에 무척이나 유용하다. 장편에 들어가면 매일 10장씩은 쓴다면서, 어떤 성과도 올리지 못한 날에도 쓰는 행위의 중요함에 대해 그는 이렇게 표현한다. “일단 씁니다. 만약 친구가 와주지 않더라도 와줄 법한 환경을 만들어둬야죠. 저쪽에 방석도 좀 깔아놓고, 청소도 하고, 책상도 닦고, 차도 내려두고. 아무도 오지 않을 때는 그런 ‘밑준비’라도 해두는 겁니다.” 그의 이러한 근면함과, 모든 것을 무의식 속에 ‘담갔다 건지는’ 과정에 대한 설명은 그가 어떻게 ‘하루키’가 되었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사회에 대한 시선, 죽음에 대한 생각, 젠더에 대한 관점, 이야기에 대한 숙고. 작품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사방팔방으로 나아간다. 사실 그 모든 이야기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무라카미 인더스트리즈’에서 생산을 담당하는 거위일 뿐이라고 자조하지만, 어느 누구도 가보지 못했던 곳에 이미 가 있는 그의 이야기는 우리가 재량껏 흡수할 수 있는 깊고 수량이 풍부한 우물을 열어 보인다. “무라카미 씨의 우물을 위에서 엿보며 이리저리 상상하는 대신 직접 우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무라카미 씨와 함께”라고 결심한 가와카미 미에코와 함께, 독자도 그의 우물에 미끄러져 들어간다. 이 책을 통해. 

※ 이 글을 쓴 박사는 북 칼럼니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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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설미현PHOTO :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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