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밤의 시간들

빛으로 가득한 낮의 시간이 지나간 자리에, 깊고 그윽한 밤이 내려앉았다. 낮이 현실이라면 밤은 이상에 가깝다. 낮이 명확함이라면 밤은 불확실함이며 무한함이다. 밤이 건네는 무한한 심상. 예술가에게 밤은 더욱 그러하다. 그들이 펼치는 또 다른 밤의 시간 속으로.

2018.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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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온에 담긴 갈망 이정
그래픽처럼 보이지만 이 작업은 사진이다. 이정 작가의 사진 속에는 네온사인이 빛나고 있다. 여행 중에 유명 프랜차이즈의 흔한 네온사인이 눈에 들어왔고, 이 네온사인이 말도 안 되는 풍경에 있으면 어떤 느낌일까 싶었다. 작가는 실제로 말도 안 되는(?) 풍경에 직접 네온사인을 설치하고 사진을 찍었다. 거기엔 짧은 텍스트가 쓰여 있다. ‘데이앤나잇(Day and Night)’에는 ‘God’와 ‘Love’가 등장한다. 신앙과 사랑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단테의 <신곡>에 딴지를 걸듯, ‘God’와 ‘Love’를 마치 복제품처럼 그려냄으로써 혼돈에 빠진 내면을 담아낸다. 태초에 신은 낮을 빛으로, 어둠을 밤으로 지었다. 검은 바다 위에 마치 표류하듯 떠 있는 빛나는 네온 덩어리. 그것은 구원을 꿈꾸는 인간 내면의 욕망, 자화상처럼 다가온다. 

Jung Lee, Day and Night #10, C-type Print, 176×220cm, 2012, 이미지 제공 원앤제이갤러리

 

 

 

별을 보여드립니다 김선두

“별은 먹구름 위에 핀 들꽃이다. 먹구름이 낀 하늘 위에도 별들은 빛난다. 이때 먹구름은 대지다. 별을 작고 앙증맞은 풀꽃으로 상상하면 밤하늘은 더 아름다워진다.” 작가 김선두의 ‘별을 보여드립니다’의 작가 노트에는 별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삶의 온기와 소소한 인간사를 서정적으로 그려내는 김선두. ‘별을 보여드립니다’는 고 이청준의 동명 단편에 대한 오마주로, 별이 지닌 메타포를 통해 꿈, 욕망 그리고 현실 속 우리의 진정한 삶을 보여준다. 담장을 넘어 저 멀리 별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맨드라미. ‘역원근법’이라는 작가의 독특한 시선 덕에 평범한 풍경은 낯선 화면으로 탈바꿈된다. 젯소를 칠하는 유화와 달리 바탕이 생략된 장지 기법으로, 수십 번의 채색과 중첩을 통해 빚어낸 그의 화면은 동양화 특유의 느린 사색을 이끈다.  

김선두, 별을 보여드립니다-맨드라미, 2015, 장지에 분채, 143×173cm, 이미지 제공 학고재 갤러리

 

 

 

밤, 그리고 삶의 양극성 빌 비올라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 그의 영상 작업은 한 편의 시를 보는 듯하다. ‘밤의 기도(Night Vigil)’에는 한 남자와 여자가 등장한다. 간밤의 어둠으로 떨어지게 된 그들은 그리움을 밝히는 빛을 따라 서로에게 이끌린다. 어두운 밤을 지나 타오르는 불길에 도달하는 외적 여행을 하는 남자와 달리, 여자는 어둠 가득한 방 안에 하나하나 초를 켜 빛으로 가득 찰 때까지 사색에 잠기는 내적 여행을 한다. 그리고 마침내 여행의 끝에서 죽음을 넘어 합치를 이룬다.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삶을 초월하여 빛과 어둠, 삶과 죽음의 양극성에 도달해야 한다. ‘밤의 기도’에 설치된 두 개의 스크린처럼.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모티프로 한 이 작품은 피터 셀라스 감독과의 협업을 통해 완성됐다.  

Bill Viola, Night Vigil, 2005/2009, 비디오/사운드 설치, Color Rear-projection Video Diptych, Two Large Screens Mounted on Wall in Dark Room, Overall Projected Image Size: 2.01×5.28m; Room Dimensions Variable, 18분 6초, 배우: Jeff Mills, Lisa Rhoden, 사진: Kira Perov, Courtesy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밤과 굿 파킹찬스

영화감독 박찬욱과 미디어 아티스트 박찬경으로 이뤄진 파킹찬스. 두 형제 아티스트의 협업으로 완성된 첫 작품 ‘파란만장’은 한국의 굿을 주제로 만든 단편 영화다. 이정현, 오광록 두 배우가 주연을 맡았고, 장영규, 백현진이 이끄는 ‘이어부밴드’가 참여했다. 이 영화는 극장 상영용으로는 처음으로 모두 스마트폰으로만 촬영됐다. 한데 왜 밤인가. 극 중 거의 모든 일이 일어나는 ‘밤’이라는 시간대는 작품에 등장하는 귀신의 존재, 굿과 같은 무속신앙(샤머니즘)의 원시성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무속 자체를 공공연히 금기시하는 현대 사회의 이면을 제시하는 일종의 풍자다. 이생과 현생을 넘나드는 판타지. 밤을 대체할 무엇이 있을까.

파킹찬스 PARKing CHANce, 파란만장 (2011), HD 단편 영화, 컬러·흑백, 사운드, 33분 16초, KT 아이폰 프로젝트, (주)모호필름 제작, Courtesy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  박광수

“집 뒤편 숲속을 걷고 있다. 어두울 때의 숲속 산책은 밝을 때보다 훨씬 이야기가 많을 것 같은 기대감을 갖게 한다. 보이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나무를 더듬고 허공을 더듬으며 조금씩 걷는다.” 새벽 2시. 작가는 흰 종이를 펼쳐놓고 검은 잉크를 휘휘 젓는다. 잉크, 먹, 아크릴을 사용해 점과 선을 여러 겹 중첩하는 드로잉을 펼쳐온 박광수. 그는 그림을 그리는 것은 어두운 숲속을 헤매는 것과 비슷하다고 고백한다. 대상을 포획해보려 하지만 그 실체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매 순간 진동하며 움직인다. 그 명료한 대상을 찾기 위해 작가는 오늘도 숲속을 헤맨다. 반복적인 선이 만들어내는 이미지. 그의 검은 선은 숲의 윤곽이 되고 어둠이 되고 나뭇가지가 된다. 검은 선이 지나간 자리엔 꿈처럼 묘한 세계가 펼쳐진다.

박광수, 검은 숲속, 100×73cm, 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2018, 이미지 제공 학고재 갤러리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양유연

대기를 가득 채운 빛이 사라져가는 밤. 그 적막하고 불투명한 시각, 양유연은 붓을 든다. 어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작가는 새벽에 일기를 쓰듯 그림을 그린다. 낮에는 느낄 수 없는 적막함, 고요함, 그리고 다양한 감정들. 한데 익숙한 일상의 풍경을 담은 양유연의 화폭은 어딘가 생경스럽다. 공포와 기묘함마저 느껴진다. 불확실함, 답은 거기에 있다. 확신에 대한 의심이 드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 믿었던 세계를 혼란에 빠트리고 그 혼란의 중심에 처하게 된다. 개인의 일상과 사회의 불협화음,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예기치 않은 순간에 발생하게 된다. 양유연은 그 미묘한 뒤틀림의 지점을 화면에 담아낸다. 

양유연, 2인조, 장지에 아크릴릭, 97×130.3cm, 2014

 

 

 

수많은 별빛의 노래 우고 론디노네

이 작업은 우고 론디노네의 작품으로, 밤의 별빛을 그린 것이다. 그의 ‘별’ 연작은 작가가 작업한 날짜가 곧 제목이 된다. 독일어로 2011년 8월 18일을 뜻하는 ‘achtzehnteraugustzweitausendundelf’(2011), 2011년 8월 24일을 뜻하는 ‘vierundzwanzigsteraugustzweitausendundelf’(2011) 작업의 제목이 그렇다. 그의 ‘별’ 연작은 별이 빛나는 광활한 밤을 표현했는데, 이는 작가의 시각적이고 정신적인 풍경을 보여주는 별자리의 일부이기도 하다. 우주에서 인간은 한낱 작은 점(별)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의 무한함과 아름다움 앞에 우리는 지극히도 작고 미세할 뿐. 그의 작품 앞에서 겸허해지는 이유다. 

Ugo Rondinone, ‘vierundzwanzigsteraugustzweitausendundelf’, 2011, Spray Paint on Canvas, Silkscreen on Plexiglass Plaque, 92×92cm, Courtesy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뼈와 살이 타는 밤 양아치

미디어 아티스트 양아치. 항상 새로운 작업에 도전하는 작가는 약 6개월간 인왕산을 올랐다. 물론 밤이었다. 우울함을 달래며 스스로 근원적인 에너지를 찾기 위해 야간 산행을 시작한 작가는 그곳에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다. ‘뼈와 살이 타는 밤’은 그 결과물이다. 제목이 낯익다 싶은 이도 있을 터. 1980년대 신군부는 3S 정책을 펼쳤는데, 섹스, 스포츠, 스크린이 그것이다. 당시 극장가에는 에로 영화가 즐비했고 ‘뼈와 살이 타는 밤’은 조명화 감독의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사건들. 작가는 그것을 ‘어둠’에 비유한다. 반복되는 어둠의 역사. 3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변하지 않는 그것들 앞에 작가는 그만의 애로(隘路) 영화를 펼쳐놓는 것이다. 뼈와 살이 타는 고뇌와 고통의 밤에, 작가도, 우리도 서 있다. 

양아치, Yangachi, 뼈와 살이 타는 밤, A Night of Burning Bone and Skin, 2014, C-print, 105×70cm, 이미지 제공 학고재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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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설미현PHOTO : 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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