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소년, 꿈꾸다

1984년의 영국 탄광촌. 광부를 천직으로 받아들인 아버지와 달리 발레리노를 꿈꾸는 소년.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왜 여전히 통하나.

2018.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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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 큰 이성애자 광부가 게이들에게 뭘 원하기나 하겠어?” 퀴어 잡지 <스퀘어 페그>의 창간인이자 대표적 퀴어 영화제 BFI 플레어의 수석 프로그래머 브라이언 로빈슨은 저렇게 말했다. 그가 언급한 사건의 배경은 이렇다. 1984년 3월, 영국의 대처 정부는 석탄산업 합리화 계획을 발표했다. 골자는 채산성이 낮은 탄광 20여 개소를 통폐합하고, 광부 2만 명을 해고한다는 것. 이에 탄광 노조는 탄광 폐쇄와 부당 해고에 맞서 총파업에 돌입했다. 하지만 그들의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한 정부는 공권력을 투입해 진압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정부는 노조 재산을 압류하는 한편, 노조 지도부에 벌금을 부과했다. 그뿐이 아니다. 파업 조합원에게는 월급을 지급하지 않았다. 심지어 사택 지구 내 전기와 수도마저 끊어 생계는 물론 생존마저 위협했다. 이때 탄광 노조를 지지하고 나선 이들이 게이와 레즈비언 등 동성애자들이었다. 그동안 자신들이 받은 부당한 폭력이 탄광 노조에게 가해지고 있음을 알게 된 동성애자들은 광부들과 연대하기로 했다. 이어 ‘광부를 지지하는 동성애자모임(LGSM)’을 결성, 후원금을 모집한 그들은 버스를 빌려 탄광 노조가 있는 웨일스로 향했다. 둘은 이전까지 아무 이해관계도, 심지어 일면식조차 없던 사이였다. 처음에 인용한 브라이언 로빈슨의 말은 당시 동성애자들을 처음 대면한 광부들의 반응이다. 이전까지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던 광부들은 소수자로서 깊은 공감을 바탕으로 연대를 형성했다. 이후 LGSM은 전국 11개 지부로 확대되었고, 이외에도 다양한 시민 단체가 광부들을 지지하고 나섰다. 이 싸움의 결말은 어떻게 되었을까? 
서두가 길었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1984년 영국 탄광 노조파업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은 탄광촌 소년인 빌리. 광부를 천직으로 아는 아버지와 형과 달리 발레리노를 꿈꾸는 소년이다. 당시는 발레를 ‘계집애들’이나 하는 일로 생각하던 시절. 빌리에게 주어진 첫 번째 시련은 이러한 사회적 편견과 싸우는 일이다. 그리고 소년에게는 이보다 현실적인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빌리의 아버지와 형은 파업에 적극 동참했다. 이로 인해 월급이 끊겨 당장의 생계가 막막한 상황. 게다가 치매기를 보이는 할머니까지. 발레를 하려면 큰돈이 필요할 텐데, 그들에게는 빌리의 꿈을 지원할 여력이 없다. 나중의 일이지만, 아버지는 아내의 유품인 피아노를 부숴 장작으로 사용할 형편으로 추락한다. 결국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아들의 꿈을 위해 배신자라는 치욕을 감내하고 갱도로 들어간다. 아마 <빌리 엘리어트>의 결말을 모르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영화로, 뮤지컬로 많은 이들이 작품을 접했을 테니. 설령 작품을 보지 않았어도 가장 유명한 장면, 발레리노가 힘차게 비상하는 장면은 잘 알 것이다. 저 장면은 모든 것을 설명한다. <빌리 엘리어트>가 지난 11월부터 서울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이다. 2010년 LG아트센터 국내 초연 이후 7년 만으로, 초연 당시 뮤지컬은 한국뮤지컬대상 최우수 라이선스 뮤지컬상을 포함해 3개 부문을 수상했다. 이번 공연에는 10개월간 진행한 오디션에서 40 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소년 5명이 무대에 선다. 이 소년들이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받았을 차별적 시선을 상기하면, 무대에 서기 전 이미 그들이 빌리였던 셈이다. 1984년 영국에서 벌어진 파업은 1년을 넘기지 못했다. 노조위원장은 363일 만에 파업 중단을 선언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성소수자들이 패배한 것은 아니었다. 이듬해 영국 노동당은 당대회에서 성 소수자 지지 강령을 채택했다. 탄광의 여성 노동자 한 명은 국회의원이 되었다. 뮤지컬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광부들은 노래한다. “우리는 함께 행진할 것이다. 우리는 지하로 내려가지만 머리를 꼿꼿이 세우며 자랑스럽게 소리 지른다”라고. 꺾였지만 부러지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 <빌리 엘리어트>는 5월 7일까지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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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설미현PHOTO : 신시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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