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왜 기억해야 하는가

<1995년 서울, 삼풍>. 21년이 지난 지금, 왜 또다시 그 사건을 들추어야 하는가. 생존자들의 울음 대신 물음을 가득 전해주는 책이다.

2016.07.18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이 글을 쓴 이명석은 문화 칼럼니스트이다. 

 

좋은 봄날 양재 시민의숲에 친구들과 소풍을 갔다. 돗자리를 깔고 각자 싸온 샌드위치와 김밥과 과일을 나눠 먹었다. 눈처럼 날리는 벚꽃 아래에서 웃고 떠들었다. 그런데 그 숲 너머에 탑이 있는 줄은 몰랐다. 500여 명의 혼을 위로하는 삼풍백화점 참사 위령탑이 건너편에서 우리의 웃음소리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왜 거기 서 있는 걸까? 이 책을 통해 겨우 알게 되었다.  
책장 하나하나를 들추기가 무서웠다. 20년 전의 과거가 아니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사건 같았다. 지금도 광화문에 텐트를 치고, 팽목항에 주저앉아 흐느끼고 있는 또 다른 유가족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중반 우리는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 같은 거대한 참사를 연이어 경험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오늘에까지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만 같았다. 그래서 입을 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 좀 그만 내버려두면 안 돼요?” 아직도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이 기억 수집가들의 간절한 부탁에 겨우겨우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이제 말할 테니 똑똑히 들으라고. 알베르 카뮈가 <페스트>에서 절절히 그렸듯이, 재난은 온갖 사람들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살아남은 사람, 살려낸 사람, 가족을 잃은 사람의 이야기는 하나하나 가슴을 친다. 석면과 피로 범벅된 사람들이 가게 앞으로 뛰쳐나오자, 모든 일을 제쳐두고 사고대책본부를 자처한 주유소도 있다. 무작정 연장을 들고 달려온 자원봉사자들, 드링크제를 닥치는 대로 담아온 약사도 있었다. 응급실 간호사가 버스에 올라타자, 각자의 행선을 미루고 곧바로 병원으로 내달린 운전사와 승객도 있다. 자원봉사자라며 속옷 바람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가더니, 백화점 매장의 고급 의상을 겹겹이 입고 나오는 좀도둑도 있었다. 작은 선의들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거대한 악 아래에서는 더없이 무력했다. 당시 대한민국 최고의 매출을 자랑하던 호화 백화점은 왜 무너졌을까? 왜 수습은 더뎠고, 연거푸 헛발질이었고, 또 다른 지옥도를 만들어냈나? 안전불감증, 컨트롤타워의 부재, 실종자 가족에 대한 매도…. 지난 몇 년간 사무치게 들어온 단어들은 그때도 숱하게 언급됐다. 우리는 왜 20년 전의 그 참화로부터 조금도 배우지 못한 걸까? 왜 당사자들만 속으로 눈물과 분노를 삼키도록 했나? 울음만이 아니라 물음을 가득 전해주는 책이다.

 

 

듣고, 울고, 믿는 일, 기억의 일

이 글을 쓴 박사는 북 칼럼니스트이다. 

 

재난 영화가 거듭 만들어지는 이유는 재난 상황이야말로 인간의 민낯을 보기에 가장 좋기 때문이 아닐까. 재난이 닥쳤을 때 사람들은 그 재난으로부터의 거리와 자신의 본성에서 나오는 행동을 한다.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압사당한 현장에 숨어 들어가 겨우 반지 하나 훔쳐내기 위해 잘라온 손가락의 모습을 갖고 있기도,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기 위해 생업 수단인 가게의 셔터를 내리고 재난 현장으로 가져갈 음식을 밤새 만들고 있는 풍경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때 나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급박한 목소리로 시시각각 알려오는 재난 상황을 들으면서 며칠 만에 생존자가 나왔는지, 숫자만 헤아렸다. 드라마 같았다. TV와 신문과 풍문에만 들리는 이름이었다. 그렇게, 내게 삼풍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이제 와서 먼 시간을 건너온 생존자와 유가족의 목소리를 듣는다. 21년이나 지난 후에야 바로 어제 있었듯이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다. 어렵게 어렵게 묻어둔 기억을 꺼내놓은 이들 덕분에. 미래를 위해서라도 기억해야 한다고 믿는 기억수집가들 덕분에.
경험은 참담했지만 대형 참사는 멸종되지 않았다. 삼풍 참사는 세월호 참사와 겹쳐져, 더욱 명암이 도드라진다. 겪어서
안 되는 일을 겪는다는 것의 참담함에, 이미 겪은 일을 또 겪는 참담함이 겹친다. 시체의 조각들이 남아 있는 잔해물을 난지도에 쑤셔박듯이 기억해야 할 낱낱의 모든 것을 망각 속에 쑤셔박았기 때문일까. 그러므로 이제 잊고 그만 넘어가자는 목소리는 머지않은 때 또 대형 참사를 불러오려는 주문 같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기억해야 한다는 의지가 있다. 21년이나 지난 삼풍을 다시 불러오는 일이 쉽지 않은 작업이었으리라는 것은 짐작 가능하다. 연락처를 구하기도 어려웠고, 연락해도 거절당하기 일쑤였다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고 기억수집가들은 말한다. 구술은 눈물로 얼룩져 있다. 그 당시 그저 방관자였던 내가, 구술의 갈피갈피에서 함께 눈물을 흘린다. 눈물이 겹치니 단단해지는구나. 모두 함께 손잡고 건널 수 있겠구나, 싶어진다. 기억을 보존하고, 공감을 넓히는 일.
이 일이 끝내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 될 것이다. 울며 믿는다.

CREDIT

EDITOR : 설미현PHOTO : 홍지은

아이매거진코리아닷컴, 더네이버, 동방유행 ©imagazinekorea.com, ©theneighbor.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