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는 노란 형광색 오일에 박아 넣은 암양 치즈를 아주 맛있게 먹었다. 아버지가 그에게 말했다. “아하 넌 진정 시리아인이야.” 금발의 소년은 그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자신이 어떤 ‘미래의 아랍인’이 될지는 알 수 없었다. 소년은 자라나 프랑스를 대표하는 만화가가 되었다. 세계 최고의 만화 축제인 앙굴렘 페스티벌에서 대상도 받았다. 이것은 좋은 미래다. 그런데 올해 1월 그가 연재하던 만화 잡지 <샤를리 에브도 Charlie Hebdo>의 사무실에 복면을 쓴 무슬림 원리주의자들이 들이닥쳤다. 무차별 총격을 가해 만화가와 편집진 등 12명을 살해했다. 이것은 아주 슬픈 미래다. 그다음 달 그는 <미래의 아랍인 L’Arabe du futur>이라는 만화로 생애 두 번째 앙굴렘 페스티벌 대상을 받았다. 이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미래다.

리아드 사투프(Riad Sattouf)는 지금 프랑스에서 가장 주목받는 만화가이자 영화감독이다. 그는 1978년 프랑스 브르타뉴에서 시리아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금발의 혼혈 소년은 어린 시절을 리비아, 시리아, 알제리 등지에서 보냈고, 청소년기에 프랑스로 돌아와 학업을 마쳤다. 만화가로는 2005년 <중학교 돌아가기 Retour au college>, 2008년 <나의 할례 Ma circoncision> 등으로 주목받았고, 2010년 <파스칼 브루탈 Pascal brutal>로 첫 번째 앙굴렘 대상을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영화감독으로도 왕성하게 활약하고 있는데, <나의 사춘기 Les beaux gosses>와 <여인 공화국의 재키 Jacky au royaume des filles>가 대표작이다.

<샤를리 에브도>의 정규 필진으로 활약해온 것은 2004년부터다. 사투프는 <젊은이들의 비밀스런 삶 La vie secrete des jeunes>이라는 주간 만화를 통해 거리에 있는 젊은이들의 신랄한 대화를 지면으로 옮겨놓았다. 특히 소외받는 아랍계 청년들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어쩌면 <샤를리 에브도>의 아랍 풍자를 증오하며 그들에게 보복해야 한다고 여기는 젊은이들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중요한 매개였을 거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은 매우 복잡한 퍼즐이다. 첫 번째 중요한 물음은 이것이다. 프랑스인들은 왜 연이은 테러의 위협에도 그처럼 과격한 풍자 만화를 그리는가? <샤를 리 에브도>의 전신은 전위 만화 잡지 <하라-키리>다. 1968년 혁명 세대가 광범위한 영역 에서 과격한 문화 운동을 펼치던 70년에 창간된 잡지인데, 당시 프랑스에서는 이런 말이 통용되었다. “만화가 사고를 치면 철학이 수습한다.” 풍자예술로서 만화는 무엇이든 저 질러도 좋다. 정치, 종교, 섹스, 폭력 등 어떤 영역에서든 성상을 파괴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는다. 그들이 발가벗고 뛰어노는 해방구를 완충 지대로 삼고, 거기서 쏟아져 나온 온갖 생각을 함께 토론하고 철학으로 수습하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 풍자의 영역은 그와 같은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국가와 종교에 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샤를리 에브도> 사건 이후 터져 나온 표현의 자유 논쟁은 우리 나라로까지 번져와 요란한 파찰음을 내고 있다. 최근에는 장정일과 이택광 두 사람이 지 면을 통해 설전을 펼치고 있다. 여기에 대해 그 잡지의 한복판에 있던 아랍계 프랑스인, 리아드 사투프의 의견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2014년 10월에 <샤를리 에브도> 독자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하지만 테러 사건 직후에 나온 특별판에 다시 만화를 싣는 다. 어느 아랍계 프랑스인 젊은이가 파리 십구의 골목 모퉁이에서 휴대전화를 들고 격렬 하게 말한다. “나도 <샤를리 에브도>에 엿을 먹일 수 있었어. 하지만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죽이지는 않잖아.”

두 번째는 더 근본적인 물음이다. 무슬림 원리주의자들은 왜 그토록 극단적인 폭력으로 자신의 생각을 관철하려 하는가? 프랑스인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도 리아드 사투프의 답 변을 원한다. 그는 자전적인 만화 <미래의 아랍인>을 통해 우회적으로 말한다. 겉보기엔 사랑스러운 자서전이다. 그러나 금발의 꼬마는 프랑스-리비아-시리아를 넘나들며 아랍 세계의 불가해한 매력과 납득하기 어려운 모순을 알려준다. 거기에는 미래를 바라보는 적지 않은 통찰이 있다.

“카다피는 온종일 텔레비전에 나왔다. 나는 카다피가 왠지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 다. 나처럼 카다피 주변에도 자신을 주시하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들도 카다피를 보면 늘 웃었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꼬마 리아드는 교수 자리를 얻은 아빠와 함께 리비아로 간다. 카다피 대통령이 사회주의적 독재를 통해 새로운 아랍 인민의 나라를 만들겠다는 거대한 실험이 벌어지던 때였다. “카다피는 미친놈이 아닙니다. 다 아랍을 바꿔보려고 그러는 거죠. 아랍인들이 장차 교육을 받게 되면, 늙은 독재자들로부터 독립할 겁니다.” 아버지는 이 새로운 대통령에게서 아랍의 미래를 보았다. 그러나 당시의 리비아는 사유 재산이 없다는 이유로 누구든 아무 집에나 불쑥 들어가서 살고, 곤궁한 식량 배급으로 바 나나만 줄기차게 먹어야 하는 곳이었다.

아랍 출신의 지식인으로서 아버지는 이중적인 존재다. 한편으로는 프랑스와 서구의 탐 욕을 비웃지만, 언젠가 시리아로 돌아가 물려받은 땅에 별장을 짓고 떵떵거리고 살아가 려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이런 아버지를 따라 찾아간 시리아는 리비아와 또 달랐다. 여인들은 남자들이 먹고 남긴 음식으로 끼니를 때웠다. 아이들은 놀이 곳곳에서 유대인 혐오를 드러냈다. 연령을 가리지 않고 모든 생활에 폭력이 만연해 있었다. 지금보다는 아 랍이 훨씬 역동적인 생명력으로 가득 찼을 때지만, 이미 그 안에는 오늘날의 불화를 만들 어낼 모순들이 똬리 틀고 있었다.

리아드 사투프는 영화 <여인 공화국의 재키>를 통해 일견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아랍 국 가의 관습을 비판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가상의 국가 ‘뷔뷘인민공화국’은 통상의 남녀 관계가 뒤바뀌어 있다. 정치나 사업 등 바깥일은 여자들이 전담하고, 남자들은 온몸을 꽁 꽁 베일로 싸맨 채 집안일에 매달린다. 여자들은 남자들을 거의 물건이나 가축처럼 취급 하고, 남자들은 고리가 달린 목줄로 여자들의 선택을 받는 것이 유일한 삶의 목표다. 이 런 조롱은 진지한 비판보다 위험한 걸까?

사실 중세 이전의 유럽을 돌아보면 오늘날의 아랍 못지않은 부조리와 모순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랍이 오히려 뛰어난 과학으로 그들에게 이성의 빛을 건네주기도 했다. 다만 그 당시 유럽에는 광대들이 있었다. 왕족과 귀족을 비웃고 놀려댈 특권을 얻은 자들이다. 그 풍자 덕분에 유럽인들은 한바탕 웃은 뒤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리아드 사투 프는 아랍의 부호가 아니라 프랑스의 만화가가 된 덕분에 그 풍자의 특권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세계는 좁아졌고, 그 유머를 용납하지 못하는 아랍의 청년들이 그들 바로 옆에 살 면서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 금발의 소년은 머리숱이 듬성듬성한 중년이 되었고, 자신에 게 해답을 바라는 수많은 눈초리 속에 앉아 있다. 아마도 그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무거 운 물음표를 짊어진 한 사람일 것이다.

글을 쓴 이명석은 <만화, 쾌락의 급소 찾기>의 저자이자 만화평론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