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부 갈등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며느리 혹은 시어머니인 사람들은 끝도 없는 에피소드를 쏟아낼 것이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법적으로 어머니(Mother in law)’인 시어머니를 ‘법적으로 괴물(Monster in law)’이라고까지 부른다는 웃지 못할 얘기도 있다. 요즘 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나 <왕가네 식구들> <세 번 결혼하는 여자> 등을 보면 독하다 못해 악랄한 시어머니들이 등장하는데 남자들은 “저런 사람이 정말 있어?”라고 반문하는 반면 대다수의 며느리들은 “현실에서는 더하면 더했지”라고 입을 모은다. 고부 갈등이 극심해지는 구정 명절이 끝난 직후 며느리들이 모여 앉아 명절 때 들은 시어머니의 독설 배틀을 열어보았다. 이러니 며느리들이 명절을 싫어할 수밖에.

“넌 천 년 이상 노력해도 내 딸만큼 예뻐지긴 어렵다.”

우리 시댁엔 나보다 두 살 많은 시누이가 있다. 서른두 살인데 아직 시집을 안 가서 시댁에 가기만 하면 옆에 붙어 앉아 시시콜콜한 일까지 우리 부부에 대한 관심을 보인다. 내 심기가 불편한 걸 눈치챈 남편이 “넌 시집이나 가지, 맨날 뭐가 그렇게 궁금하냐? 하긴 얼굴이 못생겼으니 시집가긴 글렀지”라며 독설을 날렸다. 참을성 없는 시누이는 당연히 발끈했고 시어머니 앞에서 자신의 오빠가 한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 시어머니 역시 남편 말에 대해 화를 내셨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 화살은 남편이 아닌 나에게 돌아왔다. “얼굴 예쁘다고 시집 가는 거 아니다. 여우 같이 굴면서 살살거리면 남자들이 다 홀딱 넘어가니 시집가지. 내가 우리 딸을 너무 순수하게 키웠다”라며 나를 쳐다보셨다. 그러더니 자신만만한 얼굴로 “우리 딸은 문근영 닮아서 고귀한 매력이 있는 얼굴이지”라고 덧붙이셨다(실제로 문근영을 닮았다면 내가 이렇게 열 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의 강펀치는 부엌에 단둘이 있을 때 날아왔다. “너는 얼굴도 별로 안 예쁜데 우리 아들 같은 애랑 결혼했으니 얼마나 행복하니? 넌 천 년 이상 노력해도 내 딸만큼 예뻐지긴 어려울 거다.”

내가 실제로 예쁘든 예쁘지 않든, 그래도 자기 며느린데 이런 말까지 하는 시어머니 정말 너무하는 거 아닌가? 아무리 우리 신랑이 시누이에게 먼저 싫은 소리를 했다고 해도 저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건 좀 아닌 거 같다. 이번 독설 배틀은 누가 뭐래도 나의 승리다. (강수지 닮은 결혼 3년 차 며느리)

“원래 밥은 아우가 형에게 사주는 거다.”

우리 시댁은 꽤 잘사는 편이다. 좀 편하게 살아도 될 것 같은데 그건 어디까지나 며느리의 로망일 뿐이다. 시부모님과 아주버님 가족, 우리 가족이 모두 모여 외식이라도 한번 하면 식대가 꽤 많이 나온다. 돈이 많은 시부모님이 알아서 계산을 해주셨으면 좋겠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그건 며느리의 로망일 뿐이다. 돈이 아까우신 건지 아니면 아들네에게 식사를 대접받고 싶으신 건지 계산할 타이밍이 되면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두 분 모두 어디론가 사라지신다. 형님네 부부를 쳐다보면 지갑을 꺼낼 생각은 하지도 않고 자기네 애들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그럼 성격 급한 우리 신랑이 덥석 계산대 앞에 가서 카드를 내밀고 있다. 어른 여섯에 애들이 셋이니 아무리 저렴한 곳에 가서 먹어도 가격이 꽤 나온다. 가족 밥값을 내는 게 아까운 일은 아니지만 매번 이런 패턴이 반복되니 가족끼리 모이는 날이 되면 그 전부터 신경질이 나서 잠도 제대로 오지 않는다.

우리 형님네는 유명한 자린고비 부부로, 돈이 없지 않은데도 늘 심하게 돈을 아끼신다. 명절 때도 부모님에게 과일 한번 사다 드리는 걸 본 적이 없고 우리 아이한테도 용돈이라며 만원 이상을 줘본 적이 없다. 시부모님은 첫째 아들은 원래 그런 아이라며 감싸주신다.

구정 명절이 지나고 난 주말, 우린 시아버지 생신이라 또 모이게 되었고 어머니는 음식 하기 귀찮다며 외식을 제안하셨다. 우리 부부는 이번엔 절대 계산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한 후 식당으로 갔다. 식사를 다 마친 후 시부모님은 역시나 먼저 식당 밖으로 나가셨고 나도 신랑과 아이를 데리고 서둘러 식당 밖으로 빠져나왔다. 시부모님께서는 “계산했니?”라고 물으셔서 안 했다고 하자 “원래 밥은 아우가 형에게 사주는 거다. 너네 형네가 너희들을 얼마나 생각하니. 밥 값이 얼마나 한다고” 하시며 남편의 등을 밀었다. 이번에도 밥값은 우리 차지였다.

부모님 생신이면 밥값은 나눠서 내거나 미리 모아 내야 하는 거 아닌가? 밥은 아우가 형에게 사는 거라니, 우리 시어머니 정말 대단하시다. (형만한 아우 없다는 말은 믿지 않는 결혼 7년 차 며느리)

“이제 애도 낳았으니 우리 집 부엌일은 네가 알아서 해라.”

나는 결혼하고 삼 년간 아기가 없다가 지난해 가을에 애를 낳았다. 남편이 외아들인지라 손주를 기다리는 시부모님의 마음은 감출 길 없이 크기만 했다. 아기가 생기지 않는 것도 스트레스인데 시부모님이 만날 때마다 “우린 손주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시니 스트레스는 더해가기만 했다. 시댁에 점점 가기 싫어진 것도 두말하면 잔소리고. 그러던 중 임신에 성공했고 무사히 아들을 낳았다. 시부모님이 너무 기뻐하셔서 뿌듯한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댁은 시댁일 뿐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산후 조리에 신경 쓰라며 시댁은 물론이고 우리 집 부엌에도 못가게 하셨지만 세 달쯤 지나고 나자 시어머니의 본색이 드러나기 시작하셨다. 남편이 외아들인지라 부모님께서 우리에게 많이 기대셔서 우린 거의 주말마다 시댁에 가서 지내야 했다. 시댁 부엌이 익숙하지도 않은데 시어머니는 부엌엔 오실 생각도 않으시고 우리 아기만 쳐다보며 방에 계셨다. 아기가 좀 울면 좋으련만 너무 착한 우리 아기는 울지도 않고 어머니를 보며 생긋 웃기만 했다. 그러니 당연히 가족들 식사 준비는 내가 알아서 해야 했고. 점심에 이어 저녁까지 먹고 난 후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처음으로 부엌에 나타나셨다. 내 표정이 좋지 않다는 걸 눈치채셨는지 이런저런 얘기를 두서없이 이어나가기 시작하셨다. 두서없이 말하는 건 우리 어머니의 특기! 한참 이야기를 하시더니 본심을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는 네가 애가 안 생겨서 무리하면 몸에 안 좋을까 부엌 일을 많이 안 시켰다. 이제 애도 낳았으니 자주자주 와서 우리 집 살림도 좀 챙기고 아버님 드실 것도 만들고 그래라.” 제가 애 낳으려고 시집 왔나요? 애만 낳으면 제 몸은 무리해도 상관 없는 몸인가요? 정말 서글퍼집니다. (아기가 많이 울길 바라는 결혼 4년 차 며느리)

“그러다 네 남편 바람나면 네 책임이다.”

딸만 둘인 우리 집. 재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언니는 형부를 따라 캐나다에 가서 살고 있기 때문에 엄마가 많이 적적해하셨다. 우리 가족끼리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엄마와 나는 캐나다에 있는 언니네 집으로 두 달간 여행을 떠날 결심을 했다. 아들 둘을 낳고 키우느라 많이 지쳐있는 상황이었고 신랑도 내가 힘들어하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단번에 허락해주었다. 당연히 여행 경비도 챙겨주었고.

물론 여행 간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시댁에 가는 발걸음이 가볍지는 않았다. 자기 아들 혼자 두고 며느리가 두 달간 집을 비우는 걸 그다지 달가워할 시부모는 없을 거란 생각이었다. 그것도 친정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하지만 난 상상했던 것보다 더 심한 소리를 우리 시어머니에게 듣고 말았다. “2주일도 아니고 두 달? 두 달이나 집을 비우면 네 남편은 어쩌려고 그러니? 그리고 부부가 두 달이나 못 보면 마음도 멀어지게 되어 있어. 돌아왔을 때 네 남편 바람나 있어도 나는 할 말 없다.” 정말 속에서 천불이 났다. 어머니는 “그래도 비행기 표까지 다 예약했다고 하고 사돈이랑 가겠다는데 어쩌겠니”라고 말씀하시며 여행을 허락해주시긴 했지만 내내 표정이 안 좋으셨다. 그러면서 손자들에게 “보고 싶어서 어쩌니”라는 말을 백 번은 하셨다. 두 달이 그렇게 긴 시간이었다니, 난 이번에 처음 알았다. 엄마에겐 절대 전하지 못할 우리 시어머니의 명언 “그러다 네 남편 바람 나면 네 책임이다”. 어머니 얼굴을 뵐 때마다 생각날 것 같다. (남편 바람나도 할 말 없다는 6년 차 며느리)

“나는 피부가 예민해서 백화점 화장품 밖에 못 바른다.”

시아버지는 퇴직하신 지 오래. 별다른 노후 대책 없이 아주 적은 연금과 자식들이 드리는 용돈으로 생활하고 계신 우리 시부모님. 우리도 없는 형편에 드리는 용돈이라 매번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봉투에 돈을 넣을 때마다 손이 떨리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런데 시댁에 갈 때마다 느끼는 건 시어머니가 낭비벽이 있으시다는 거다. 다른 엄마들이 아기한테 유기농 화장품 발라줄 때 나는 용량과 가격을 따져가며 가장 저렴한 베이비 로션을 사서 쓰고, 아기 옷도 어떻게든 주변에서 얻어 입히려고 노력하며 살았다. 당연히 나를 위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사지 못했고. 맞벌이도 아니고 외벌이라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남편 연봉이 많은 것도 아니고 시부모님 용돈도 드려야 하니…. 그런데 우리 시어머니를 뵐 때마다 절망적인 마음이 든다. 갈 때마다 새 옷을 입고 계신 것은 물론이고 화장대엔 값비싼 화장품 케이스가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요새는 홈쇼핑이나 뷰티 멀티숍 등에서 값싸게 살 수 있는 기능성 화장품도 많이 있지 않나? 게다가 나이가 드신 분들은 딱히 피부 트러블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이런 정보를 모르고 계신가 싶어서 “어머니, 저 얼마 전에 홈쇼핑에서 스킨, 로션이랑 에센스까지 세트로 구성된 화장품 샀는데 일년은 넘게 쓸 수 있을 거 같아요. 제품도 엄청 좋아요”라고 말씀 드렸더니 나에게 하신 말씀이 정말 쇼킹했다. “난 어릴 때부터 고급 화장품만 쓰고 자라서 피부가 예민하거든. 백화점 화장품 아니면 피부에 맞질 않더라. 홈쇼핑 제품은 향도 싸구려 향이 날 테고….” 정말 할 말을 잃었다. 애들이 커가면서 교육비도 많이 들 텐데 평생 시부모님께 용돈 드릴 생각을 하니 마음이 갑갑하다. 나는 한 푼이라도 아껴서 살려고 하는데 대책 없으신 시어머니는 자기자신을 위해 아낌 없이 투자하며 사시는 것 같다. 나도 아기들한테 좋은 거 입히고 먹이면서 키우고 싶다. 게다가 나 자신은 또 어떻고. 아무 화장품이나 잘 맞는 내 피부가 안쓰럽다. (강철 피부를 소유한 결혼 5년 차 며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