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구찌’ 컬렉션이 아시아 전역에서 불티나게 팔려 나가고, BTS가 주인공이 된 루이 비통의 2021 F/W 남성복 컬렉션 영상이 전 세계에 동시에 생중계된다. 이제 글로벌 럭셔리 하우스의 광고 비주얼에서 익숙한 한국 스타의 얼굴을 만나는 일이 전혀 낯설지 않다.

물론 이전부터 아시아에 확산된 한국 드라마 열풍으로 국내 톱배우들이 명품 브랜드의 아시아 지역 앰배서더로 활동하는 경우는 여럿 있었다. 브랜드 가치와 부합하는 고급스럽고 세련된 이미지, 아시아 전역에서 높은 인지도를 가진 배우들이 주로 러브콜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넷플릭스와 같은 OTT 서비스가 활성화되면서 한국 드라마나 영화의 팬덤이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로 확장되고 있는 추세. 이에 힘입어 국내 스타들이 글로벌 홍보대사로 선정되었다는 반가운 뉴스가 연일 들려온다. 일례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전 세계 190개국에서 인기리에 상영되면서, 주연을 맡은 배우 손예진과 현빈은 각각 발렌티노와 오메가의 얼굴이 됐다. 손예진은 발렌티노의 수장, 피에르파올로 피촐리의 새로운 비전을 담은 광고 캠페인 ‘발렌티노 디바스(DI.VAs)’의 글로벌 광고 모델로 발탁되어 중국의 관효동, 일본의 코우키와 함께 아시아 현지의 가치를 강조하고 메종 발렌티노가 추구하는 가치를 전파하는 문화적 앰배서더 역할을 수행한다. 오메가는 배우 현빈을 글로벌 앰배서더이자 오메가의 스타 패밀리로 맞이한다고 발표했다. 조지 클루니, 니콜 키드먼, 신디 크로퍼드, 대니얼 크레이그, 에디 레드메인 등 세계적인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 그는 톰 포드 뷰티 최초의 아시아 퍼시픽 향수 홍보대사로 발탁되기도 하며 높아진 한류 스타의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별에서 온 그대> 이후 탄탄한 아시아 팬덤을 확보한 배우 김수현도 미도의 한국 앰배서더에서 아시아 앰배서더로 활동의 폭을 넓혔다. 배우 송혜교 역시 글로벌 명품 브랜드의 홍보대사로 활약하고 있는 대표적인 셀레브리티 중 한 명이다. <가을 동화>부터 <태양의 후예>, <남자친구>까지 출연한 작품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큰 사랑을 받아온 그녀는 2018년부터 지금까지 쇼메의 아시아 지역 앰배서더로 브랜드를 대표하고 있다. 송혜교가 등장한 캠페인 비주얼은 물론, 인터뷰나 방송에서 착용하고 등장한 주얼리까지 국내외 수많은 팬들이 큰 관심을 보인다고 하니, 브랜드 입장에서는 그간 ‘송혜교 효과’를 톡톡히 본 셈. 지난 2월에는 이탤리언 패션 하우스 펜디의 공식 앰배서더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국 배우가 펜디의 공식 앰배서더가 된 것은 송혜교가 처음. 펜디 측은 “송혜교는 부드러움과 강인함, 자신감 넘치는 애티튜드가 어우러진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펜디가 추구하는 가치와 잘 어우러진다”며 그녀를 선정한 이유를 밝혔다. 배우 공효진도 2019년부터 꾸준히 피아제의 아시아 앰배서더로 활동하고 있다. 세련되고 자신감 넘치는 스타일과 매력으로 ‘서니 사이드 오브 라이프’라는 피아제의 브랜드 철학을 표현하는 인물. 그녀는 독보적인 패션 아이콘답게 컬러풀한 주얼리 레이어드 스타일링부터 우아한 주얼 워치 컬렉션, 그리고 진귀한 하이 주얼리 피스까지 자신만의 스타일로 다채롭게 소화해내 매번 화제가 된다. 배우 배두나와 루이 비통의 인연도 특별하다. 2014년부터 루이 비통 하우스의 앰배서더로 활동해온 그녀는 패션쇼와 굵직한 이벤트 등에 얼굴을 비추며 브랜드와 남다른 우정을 과시했다. 얼마 전 tvN <유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니콜라 제스키에르와의 친분, 앰배서더로서 받는 혜택에 대해 언급하며 ‘배두나=루이 비통’이라는 인식을 대중에게 확실히 심어줬다. 또한 루이 비통은 워치 앤 주얼리 앰배서더로 배우 이민호를 발탁하는 등 한류 스타들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K-드라마의 인기에 이어 전 세계를 사로잡은 K-팝의 열기는 글로벌 패션 기업들의 앰배서더 라인업을 뒤흔들었다. 소셜 미디어의 발전, 플렉스 문화의 유행, 아시아 명품 시장의 성장, Z세대의 명품 소비 증가 등의 복합적인 이유로 배우들이 독점하던 명품 브랜드의 앰배서더 자리는 하나둘씩 K-팝 아이돌에게 돌아갔다. 특히 ‘톱 여배우’ 일색이던 패션 브랜드의 홍보대사로 남성 아이돌이 낙점되는 사례가 크게 늘었는데, 이는 2030 남성들의 명품 소비가 급속도로 늘어난 데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아이돌 앰배서더 기용의 물꼬를 튼 인물은 단연 지드래곤. 샤넬이 선택한 아시아 최초의 남성 앰배서더인 그는 2015년부터 지금까지 샤넬과 함께하며 공식적인 행사와 SNS를 통해 샤넬의 아이템을 자유자재로 스타일링한 모습을 공개해 성별을 뛰어넘은 영감을 전하고 있다. 지드래곤이 트위드 재킷, 브로치, 핸드백, 액세서리, 주얼리 등을 착용한 이후 ‘샤넬’을 착용한 남성을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된 것만 봐도 그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엑소 카이는 가수 겸 배우 아이유와 함께 구찌를 대표하는 한국인 앰배서더로 오랜 인연을 이어왔다. 그는 올해 테디 베어를 모티프로 남성 및 여성 레디투웨어와 다양한 액세서리로 구성된 ‘카이×구찌’ 캡슐 컬렉션을 선보였는데, 한국과 중국, 일본, 싱가포르, 태국 등의 국가에서 출시된 제품이 예약 판매 단계부터 솔드아웃을 기록하며 엄청난 파급력을 보여줬다. 루이 비통은 빌보드와 기네스의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슈퍼스타 BTS(방탄소년단)와 손잡았다. 루이 비통 남성 컬렉션 아티스틱 디렉터인 버질 아블로는 BTS의 앰배서더 발탁 소식을 전하며 “루이 비통의 앰배서더로 함께하게 된 방탄소년단을 환영한다. 럭셔리와 컨템퍼러리 문화를 융합시켜 루이 비통의 새로운 장을 써 내려가는 방탄소년단과의 협업이 매우 기대되고, 우리의 흥미진진한 프로젝트를 하루빨리 공개하고 싶다”고 밝혔다. 버질 아블로의 말처럼 루이 비통은 BTS와 함께한 프로젝트를 속속 공개했다. 지난 7월에는 BTS와 서울 근교에서 촬영한 2021 F/W 남성복 컬렉션 영상을 공개했는데, 루이 비통 공식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관련 영상의 총 조회수가 600만 회에 달할 정도로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최근에는 멤버들이 디자인에 참여한 루이 비통 탄생 200주년 기념 트렁크가 공개되기도 했다. 그 밖에 까르띠에는 그룹 GOT7 출신 잭슨 왕을 파샤 드 까르띠에 앰배서더인 ‘파샤 커뮤니티’의 멤버로, 버버리는 차은우를, 아미는 엔하이픈을 글로벌 앰배서더로 각각 지정하며 명품 시장에 큰손으로 떠오른 Z세대와 남성 소비자를 공략하고 있다. 

한편, 최근 글로벌 패션 하우스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여성 그룹은 블랙핑크다. ‘인간 샤넬’로 불리는 제니를 비롯해 네 명의 멤버가 모두 해외 명품 브랜드의 홍보대사로 활약하고 있다. 로제는 생로랑의 글로벌 앰배서더, 티파니 하드웨어 컬렉션의 글로벌 앰배서더로 각각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지난해부터 글로벌 앰배서더로 셀린느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리사는 최근 K-팝 아티스트 최초로 불가리의 글로벌 앰배서더 자리까지 꿰찼다. 패션 브랜드는 물론 맥의 글로벌 앰배서더로도 활동하며 패션과 뷰티를 넘나드는 활약상을 보여준다. 지수는 디올의 패션 & 뷰티 글로벌 앰배서더로 임명되어 ‘인간 디올’ 대열에 합류했다. 그녀의 영향력은 이미 수치로 증명된 바 있다. 뉴욕의 럭셔리 마케팅 플랫폼이자 데이터 분석 솔루션인 론치메트릭스(LaunchMetrics)의 발표에 의하면 지수가 등장한 디올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이 2021 S/S 시즌 파리 패션위크 기간 중 가장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으며, 이 게시물로 61만4000달러의 미디어 영향 가치(Media Impact Value)를 창출했다고. 수치가 곧 결과인 디지털 홍보 활동에서, 이처럼 확실한 결과를 입증하는 K-팝 스타는 결코 놓칠 수 없는 매력적인 대상임이 분명하다. 에스파는 K-팝 아티스트 최초로 지방시의 브랜드 앰배서더로 발탁돼 주목받았다. 세계적인 패션 하우스가 2020년 데뷔한 신인 K-팝 그룹을 브랜드의 얼굴로 낙점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 일. 지방시 관계자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매튜 M. 윌리엄스가 합류하면서 Z세대를 주요 고객층으로 삼고 브랜드의 새로운 이미지와 맞물리는 가능성 있는 새 얼굴을 찾고자 했다’고 전했다. 이러한 이유에서 데뷔 전부터 이슈가 된 에스파는 브랜드가 찾는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던 셈. 이후 에스파가 새로운 한류 아이돌로 급성장하면서, 지방시의 브랜드 이미지와 에스파의 파워풀하고 다이내믹한 이미지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최근에는 독보적인 카리스마와 무대 장악력으로 높은 화제성을 지닌 가수 현아가 로에베의 새로운 글로벌 앰배서더 활동을 시작했고, 레드벨벳 멤버 슬기가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글로벌 앰배서더로 ‘Let’s Dance’ 슈즈 캡슐 컬렉션 캠페인을 선보이는 등 럭셔리 패션 하우스의 K-팝 아티스트 기용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온다.  

우리는 지금 한국 뮤지션이 빌보드 차트를 점령하고, 올림픽 경기장에서 K-팝이 울려 퍼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한국 영화와 한국 배우가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세계적인 배우, 감독들과 당당하게 경쟁하는 시대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은 글로벌 명품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한 변방의 나라였지만, 2021년 현재 한국의 위상은 분명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세계를 무대로 영향력을 떨치는 K-컬처의 약진에 힘입어 이제 글로벌 명품 시장에서 한국의 존재감도 새롭게 정의되는 듯하다.    

더네이버, 패션, K-컬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