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로봇이 내리는 ‘행복’의 정의

SF 소설 <천 개의 파랑>은 휴머노이드라는 제삼자의 입장에서 인간의 행복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2020.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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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은 익숙하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꿀까. 사실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늘 물어왔다. 이것이 우리의 삶을, 나의 삶을 어떻게 바꿀지를. 내 고통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먹고사는 데 덜 힘겹게 해줄 수 있을까. 인간관계 때문에 고민하지 않게 해줄까. 서로 상처 주면서도 영영 외면할 수 없는 이 기묘하고 끈끈한 가족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까. 


묻는 이도 알고 있다.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과학기술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연구되지만, 근본적인 고통에는 접근조차 하지 못하며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고통을 더한다. 은혜는 어렸을 때 척수성소아마비로 두 다리를 쓸 수 없게 된다. 의사는 은혜가 만 16세가 되었을 때 인간의 뼈대와 관절을 그대로 재현하는 생체 적합성 소재로 새 다리를 만들어주면 된다고 간단하게 설명했지만, 그 비용이 어마어마할 것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은혜는 여전히 휠체어 신세다. 휠체어 기술 또한 발달했지만 그것이 은혜를 자유롭게 해주지는 못했다. “휠체어 덕분에 걷지 못하던 이들이 움직일 수 있게 된 게 아니라 버스와 지하철, 인도, 계단, 에스컬레이터 때문에 이동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은혜는 통렬하게 겪는다. 


은혜의 아버지는 소방관이었다. 이들이 사는 근미래에는 구조용 휴머노이드 다르파를 화재 현장에 투입한다. 그만큼 인간인 소방관이 위험에 처할 확률은 줄어든 듯 보였으나, 은혜의 아버지는 오래된 소방복 때문에 죽고 만다. 정부의 예산 지원이 휴머노이드 제작에 쏠린 탓에 인간 소방관의 안전 장비에는 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은혜의 어머니 보경은 어린 은혜와 연재를 키우기 위해 한적한 경마장 근처에 식당을 차릴 수밖에 없다. 보경과 은혜와 연재. 이 세 여자는 서로 마음의 빚을 진 채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한집에서, 그러나 마음은 멀리 떨어진 채로. 


<천 개의 파랑>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현재 우리 삶과 너무나 닮아서, 종종 소설의 배경이 미래임을 잊게 된다. 어쩌다 이들의 삶에 개입하게 되는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와 휴머노이드 기수를 태우고 달리던 흑마 투데이가 없었다면 이 책이 2019년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을 받은 작품임을 믿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미래의 경마는 휴머노이드 기수를 채택하면서 기수의 무게를 극적으로 줄였고, 그 덕분에 경주마의 속도를 최대한으로 올릴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는 말의 혹사다. 아직 창창한 나이의 투데이는 심각한 관절염을 앓게 되고, 실수로 다른 소프트웨어 칩이 심어져 ‘생각’을 하게 된 콜리는 투데이가 행복하지 않음을 알게 되면서 말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다. 


인간의 밖에 있기 때문에 콜리는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천진난만한 콜리의 질문 덕분에 사람들은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이에게 말을 걸고 관심을 기울인다. 경주마의 ‘속도’는 우리 삶의 ‘속도’의 은유다. 우리는 이쯤에서 멈추고 서로 돌아보아야 하는 것 아닐까? 내가, 그리고 다른 사람이 행복한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 아닐까? 미친 듯이 달리고 있지만 사실은 영영 가지 않는 시간에 붙들려 있는 것은 아닐까? 그곳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들의 ‘투데이 구출 작전’은 어쩌면 스스로가 만들어놓은 트랙에서 벗어나려는 작전일 수도 있겠다. 서로에게 다가가는 자유를 얻기 위한 작전. 더 천천히 삶을 누리기 위한 작전. 

※ 이 글을 쓴 박사는 북 칼럼니스트이다.  

 

 

복자에게
김금희 작가의 두 번째 장편 소설. 부모의 사업 실패로 제주의 한 부속 섬에서 자란 이영초롱이 훗날 판사가 된 뒤 다시 제주로 좌천되는 이야기를 통해 실패로 좌절에 빠진 마음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지은이 김금희
펴낸 곳 문학동네

 

풍경의 깊이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강요배 작가의 예술 산문. 작가가 평생에 걸쳐 그려온 그림과 그림에 대해 표현한 수많은 글과 말 가운데 핵심을 전할 수 있는 부분을 골라 실어 그의 삶과 예술을 응축해 전한다. 
지은이 강요배
펴낸 곳 돌베개

 

 

 

 

더네이버, 북, 천 개의 파랑

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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