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손으로 흙과 시간을 쌓아가는 사람

순수한 조형 작업과 기능적인 그릇 사이의 경계를 기분 좋게 허물어가는 백경원 작가의 낯설고도 즐거운 도예 생활.

2020.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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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ft)Combined 19, 21.5×9×8.6, (Right)Borreby Castle, 14×10×6.2, mixed clay, stain, 1280 oxidation firing

 

컵이 미니 기차처럼 이어진다. 사각의 낮고 좁은 그릇이 달동네의 작은 집처럼 나란히 어깨를 마주한다. 듬직한 사각형 옆으로 원뿔이 작은 성의 탑처럼 살짝 얹어져 있기도 하다. 백경원의 도자를 보고 있으면 조각이라고 불러야 할지 그릇이라고 불러야 할지 잠시 즐거운 난감함에 빠진다. 즐거운 난감함은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니어서 백경원 작가의 작업은 어떤 곳에서는 작은 화분으로, 바느질하는 사람에게는 실을 감아두는 실패로, 찻자리에서는 다과가 정갈하게 놓이는 작고 입체적인 상으로, 어떤 공간에서는 조각 같은 정물로 고요하게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백경원 작가는 보통 도예 작가들이 선호하는 물레나 캐스팅 기법을 전혀 쓰지 않고 손으로 흙을 주무르고 빚고 쌓아 기물을 만든다. 이를 ‘손성형(hand building)’ 기법이라고 하는데 원시적인 재료인 흙과 가장 어울리는 작업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형태도 형태이지만 손자국이 마치 오래된 화석의 흔적처럼 희미하게 남아 있는 기물의 표면을 보면 작가가 작업하며 쌓은 기나긴 시간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듯해 한참을 들여다보게 된다. 이렇게 오직 손으로만 작업을 하다 보니 일반적인 형태의 그릇보다는 기본적인 도형이 반복되고 마주하고 겹쳐지면서 도예 작품에서 쉽게 보지 못한 조형적인 미를 띠게 된다. 이것을 백경원은 ‘조형적인 기(器)’로 명명하고 자기만의 작업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다. ‘조형적인 기’는 물론 기나긴 도예사에서 있어온 기법이고 분야지만, 백경원의 작업은 쓰임이 있는 ‘기(器)’라는 면에서 작가도 사용자도 쓰임과 즐김에 있어 예상치 못한 낯선 즐거움을 누리는 것 같다.

 

(Left)Divided 19, 30.5×6×7.5, (Middle)Divided 20, 27×7×7.6, (Right)Divided21, 24×6×9.3, mixed clay, stain, 1280 oxidation firing


백경원 작가는 서울대 도예과를 졸업했다. 정제되고 고고한 느낌을 주는 잘 다듬어진 백자로 유명한 학교를 다니며 그곳의 작업 방식이 자신과 맞지 않음을 깨달았다. 백경원 작가는 조금은 외롭게 물레 없이 손으로만 작업하고 흙도 조금은 거칠고 투박한 것들로 실험하면서 손성형  기법으로 자신만의 도예 세계를 형성해갔다. 대학원을 졸업할 즈음 축산업을 하시던 아버지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해볼 것을 권하셨고, 아버지가 출장을 자주 가셔서 그에게는 익숙한 덴마크에 도자 레지던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덴마크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 있는 굴라야고 인터내셔널 세라믹 센터에서 6개월 동안 다양한 흙을 써보며 어떤 것에도 갇히지 않은 채 자유롭게 무엇인가를 만들었다. 무엇보다 다양한 작가들과의 만남으로 백경원의 ‘조형적인 기’ 작업은 더 자유로워지고 넓어졌다. 


원기둥, 원뿔, 직육면체, 구 같은 기본 형태를 만들어 놓고 서로 붙여보기도 하고, 잘라보기도 하고, 겹치기도 하면서. 완성된 형태를 미리 마음속에 정하지 않고 작업하는 것을 좋아하는 백경원은 흙이 가진 물성, 그리고 그 흙이 뭉쳐지고 쌓이면서 자신도 예상치 못한 낯선 형태로 완성되는 것을 좋아한다. 물레를 사용해서 정해진 기물을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자신도 예상 못한 흙과 손이 대화하듯 만들어내는 그 시간과 순간의 쌓임이 백경원 작가의 작품이 가진 매력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아직 젊은 도예가임에도 전시를 꽤 많이 한 작가가 되었다. ‘조형적인 기’ 작업과 그릇 작업이라는 두 영역을 능숙한 텀블러처럼 조화롭게 넘나들다 보니 조형성과 콘셉트가 강조된 다른 작가들과의 협업 전시도 꽤 많았고, 그의 지문처럼 각인된 손 흔적이 표면에 기분 좋게 남은 테이블웨어도 아껴 사용하는 사람이 많다.


최근에는 아르네 야콥센의 릴리 체어 탄생 50주년을 기념해 개최된 프리츠 한센의 전시에서도 도자로 릴리 체어를 재해석했다. 의자를 흙이라는 재료로 재현하는 것을 넘어 릴리 체어가 담고 있는 식물의 생명력을 그의 인장이 된 손성형으로 만든 도자 원뿔을 의자 다리에 반복적으로 끼워넣어 식물 줄기처럼 표현한 의자는 흙이라는 것이 얼마나 자유롭고도 표현력이 깊은 소재인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 글을 쓴 김은주는 ‘유리편집’이라는 이름으로 유리 작업을 하는 편집자다.

 

 

 

TABLE OF MASHIKO
도자기 마을로 유명한 일본의 마시코 지역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터 
그룹 카타치 프로젝트 소속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세라믹, 우드, 유리, 금속 등 다양한 재료로 작품 활동을 전개하는 열 팀의 다채로운 작품 세계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일시 9월 3일~10월 4일
장소 갤러리 인
문의 010-9017-2016


옻이 피었습니다
전통 공예에 머물러 있던 옻칠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옻칠 공예가 편소정 작가의 개인전. 표면을 오돌토돌하게 만드는 독창적인 기법인 스탬핑 옻칠 기법으로 구현한 독특한 질감과 회화적인 오묘한 색감으로 표현된 식기를 만날 수 있다. 
일시 8월 27일~9월 27일 
장소 신라호텔 내 아케이드 B1 휴크래프트
문의 02-2235-2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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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더네이버>편집부PHOTO : 백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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