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과 동시에 논쟁을 일으킨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 자신의 정체성과 행복을 찾기 위해 노라가 집을 떠나는 마지막 장면을 두고 당시 사람들은 입센이 이혼을 조장하고, 가정 파괴를 부추긴다 비난했다. 남녀평등을 주장하던 이들조차 결론이 급진적이라며 입센의 편에 서길 주저했다.

그래서 작품은 오랫동안 원작 그대로 공연되지 못했다. 1880년 독일 공연에서 노라 역을 맡은 배우는 자신은 절대 아이들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며 마지막 장면 연기를 거부했다. 할 수 없이 입센은 노라가 아이들을 위해 집에 남는 각색본을 따로 써야 했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아예 작품을 중산층 가정의 애정극으로 바꾸었다. 1882년 미국 공연은 남편이 아내에게 감사하며 화해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되었다. 1886년 영국 공연에서는 남편의 사과를 받은 노라가 ‘자신은 고상한 남편에게 어울리지 않는 한심한 아내’라고 울먹이는 장면으로 끝이 났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설가 채만식이 1933년 소설 <인형의 집을 나온 연유>를 통해 가난한 삶을 전전하는 노파의 후일담을 그린 바 있다. 지난해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 <인형의 집 Part 2>는 작가로 입지를 다진 노라가 이혼을 위해 오랜만에 집을 찾는다는 설정으로 진행되었다.

<와이프>는 바로 이 <인형의 집> 노라의 연대기다. 영국 극작가 사무엘 아담슨은 이 작품을 1959년과 1988년, 2019년, 2042년, 83년의 세월을 배경으로 다시 썼다. 흥미로운 건, 종래의 작품이 대체로 노라의 행적을 뒤쫓는 후일담 형식을 취했다면, <와이프>는 <인형의 집>에서 모티프만 가져올 뿐 서사나 캐릭터를 그대로 따라가진 않았다는 사실이다. 더 중요한 건, <인형의 집>을 퀴어적 관점에서 새로 썼다는 사실이다. 작가는 동성애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밝힌 바 있다.

1959년의 1막은 수잔나와 데이지, 레즈비언 커플을 주인공으로 극을 끌어간다. 1988년의 2막에서는 게이 커플 에릭과 아이바의 갈등이 표출된다. 2019년의 3막에서는 클레어와 아이바의 논쟁이 보이고, 마지막 2042년 4막에서는 다시 수잔나와 데이지가 등장해 이야기를 끝맺는다. 여기까지 보면 <인형의 집>과 이 작품이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 캐릭터 간 어떤 관계성을 맺는지 궁금할 수 있다. 

첫째 연극에서 <인형의 집>의 노라는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1막에서 수잔나는 <인형의 집>에 출연하는 배우로, 데이지는 노라와 비슷한 결혼 생활을 하는 여성으로 그려진다. 2막은 에릭과 아이바가 막 <인형의 집>을 관람한 후의 모습을 보인다. 3막에서 아이바는 <인형의 집> 제작자로 등장하고, 4막에서는 1막에서와 비슷한 모습이 연출된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 어떤 관계성을 맺는가는 공연을 통해 직접 확인하는 게 낫겠다. 힌트는 이 이야기가 3세대에 걸친 조금은 복잡한 가정사라는 사실이다. 

연극 <와이프>는 지난해 국내 초연된 작품으로,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연출상(신유청), 유인촌 신인연기상(황은후)을 수상했다. 올해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백석광)을 수상한 <와이프>는 7월 30일부터 8월 2일까지 나흘간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된다. 

※ 이 글을 쓴 김일송은 공연 칼럼니스트이다.
Cooperation 서울시극단​

머더 발라드
2012년 초연 당시 브로드웨이 관객을 단숨에 사로잡은 뮤지컬 <머더 발라드>가 2013년 국내 초연 이후 4년 만에 돌아온다. 한층 강렬해진 록 음악과 업그레이드된 미장센으로 욕망을 향해 가는 인물들의 비틀린 사랑 이야기를 대담하게 보여준다. 
일시 8월 11일~10월 25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문의 02-399-1000

문밖에서
죽은 지 며칠 만에 발견되는 어느 여성 노인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연극 <문밖에서>는 미군 위안부로 일했던 여성 노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극은 이들의 상처를 다루는 것을 넘어 이들에게 남겨진 현재와 미래의 과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일시 7월 25일~8월 1일
장소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 111
문의 0507-1358-8480

더네이버, 공연, 연극 와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