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굽이치는 낙동강 따라, 서원

학문 연구와 선현 제향을 위해 지역의 사림이 설립한 조선 시대 교육 기관 서원. 조선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부터 퇴계 이황의 얼이 담긴 도산서원, 그리고 서원 건축의 모범을 제시한 병산서원까지, 한국 서원에 담긴 정신과 건축적 특성을 살펴보았다.

2019.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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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람한 나무에 둘러싸인 소수서원은 가을이 되면 단풍과 은행으로 아름답게 물든다. 

 

지난 7월 6일,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올랐다. 우리나라에서 14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총 9개소의 사원이 등재됐다. 조선 시대, 지방 곳곳에 세워진 성리학 교육 기관인 서원. 그 기원은 16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산군의 폭정과 중종반정 등 정치적 혼란기였던 당시, 지방 관학 향교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지방이라는 위치의 특성상 훌륭한 선생을 모시기 쉽지 않았고, 신분제가 고착되며 양민과 양반 자제가 함께 공부하는 향교에 대한 반발이 심해졌기 때문.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풍속을 바로잡고 성리학의 이상을 토대로 인재를 양성하고 학문을 연마하고자 세워진 것이 바로 서원이다. 국내의 서원은 중국의 서원을 본떠 생겨났지만 중국의 서원과는 다른 고유의 특성과 건축적 아름다움이 있다. 예를 들면 중국의 서원은 담으로 막힌 평지에 자리한 폐쇄적 형식이지만 한국의 서원은 학문과 휴식 과정을 합일시키기 위해 경사지에 자리를 잡은 개방적 형태로 주위의 자연을 끌어들인다. 다양한 문화 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에이트 인스티튜트에서 한국의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을 기념해 박혜경 에이트 인스티튜트 대표, 김개천 교수와 함께 우리의 서원을 돌아보는 기행 프로그램을 선보인다는 소식을 알렸다. 경북 영주와 안동에 위치한 소수서원, 도산서원, 병산서원을 비롯해 대구에 위치한 도동서원에 이르는 1박 2일 코스. 조금 방향을 틀어보았다. 가을날과 어울리는 여행지를 추가해 소수서원에서부터 부석사, 도산서원, 병산서원, 안동하회마을에 이르는 경북 지역 서원 기행 코스를 새롭게 짜보았다.

 

 

학문을 강론하던 장소인 강학당. 명종의 친필 편액이 걸려 있다. 

 

유생들이 공부하며 기거한 학구재의 모습.

 

한국 서원의 시초를 찾아서
나무가 우거진 숲, 그 안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영주의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다. 원래 이름은 백운동서원, 우리나라 최초의 성리학자 회헌 안향을 기리기 위해 신재 주세붕이 세웠다. 당시 지위가 낮은 풍기 군수 주세붕이 백운동서원을 세운 것을 두고 도를 넘었다고 고깝게 보는 시선이 있었다. 사설 기관 수준으로는 전례가 없는 건축 구성을 갖춰 지역 사회 유림으로부터 외면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1550년 퇴계 이황의 건의와 노력으로 백운동서원은 다시 재조명된다. 그리고 명종은 ‘이미 무너진 유학을 다시 이어 닦게 했다(旣廢之學 紹而修之)’는 뜻을 담은 ‘소수’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소수서원은 왕이 이름을 지어주고 현판을 써 보낸 최초의 사액서원으로 그 의미가 깊다. 다만 소수서원이 지어질 당시는 한국의 서원 배치 구조의 전형이 정립되기 전이었다. 앞이 낮고 뒤가 높은 ‘전저후고(前低後高)’와 앞에 강당을 세우고 뒤에 사당을 세우는 ‘전당후묘(前堂後廟)’라는 사원의 전형적 배치와는 다르게 소수서원의 사당과 강당은 각각 남향과 동향으로 질서 없이 놓여 있다. 설계도면 없이 시류에 맞춰 그때그때 건물을 추가하다 보니 생긴 일이다. 그러나 산과 강, 구름과 바위가 둘러싸며 자아내는 아늑한 분위기는 소수서원만의 매력을 드러낸다. 


서원 기행의 시작을 알린 소수서원이 위치한 영주. 그곳에는 이번 여행의 고즈넉한 정취를 더욱 끌어올려줄 또 다른 장소가 자리한다. 바로 부석사다. 문화재 분야의 대표적인 교양서로 꼽히는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서서>의 제목에 등장하는 무량수전이 있는 그곳이다. 부석사는 아늑한 산속에 자리 잡은 일반적인 절과는 달리 봉황산 중턱에 모습을 훤히 드러내고 있어 독특한 풍광을 선사한다. 

 

 

부석사를 대표하는 건축물인 무량수전. 고즈넉한 정취가 일품이다.

 

부석사는 현존하는 고려 시대 건물 중 목조 건축사의 걸작인 무량수전을 비롯해 대석단과 아름다운 석물, 소조아미타여래좌상 등 시간의 무게를 지닌 빼어난 유물과 유적이 많은 우리나라 대표 사찰이다.

 

 

도산서원은 크게 퇴계 이황이 직접 설계하고 지은 도산서당 영역과 그의 제자들이 지은 도산서원 영역으로 나뉜다. 퇴계 이황이 4년에 걸쳐 지은 도산서당의 전경.

 

퇴계 이황의 제자들이 스승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지은 도산서원의 입구에 걸린 현판. 

 

퇴계 이황의 정신과 한국 건축의 백미
선조의 고매한 정신을 한껏 품은 도시 안동. 그곳에도 우리 서원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서원들이 있다. 바로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이다. 도산서원은 조선 성리학의 성현이라 일컫는 퇴계 이황의 정신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크게 두 영역으로 구분되는데, 평생 자연을 아끼고 사랑한 퇴계 이황이 설계해 짓고, 제자들에게 배움을 전한 도산서당 영역과 그의 제자들이 퇴계가 세상을 떠난 후 스승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도산서원 영역이다. 퇴계 이황이 인재를 육성하여 천지의 기강을 세우고 세상의 어지러움을 바로잡기 위해 세운 도산서당은 그의 정신과 닮았다. 3칸 건물인 도산서당은 겉보기엔 소박하지만 내부는 퇴계 이황이 자신의 생활 방식에 맞춰 치밀하게 계산해 공간을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다. 자연을 사랑한 퇴계 이황의 뜻에 따라 주변 자연과의 조화도 아름답다. 도산서당 위로 훌쩍 떨어져 담장에 둘러싸인 도산서원은 비록 제자들이 지었지만 소박한 출입문과 동·서재, 도산서원과 비슷한 평면에서 퇴계 이황의 정신을 곳곳에 투영하려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한국 서원 중 독보적인 건축 양식을 갖춘 병산서원.

 

목판 및 유물을 보관하던 장소인 병산서원의 장판각. 정면 3칸 모두 판문을 달아 습기를 줄이고 화재를 막기 위해 다른 건물과 거리를 두고 세워졌다. 

 

별다른 장식은 없지만 길게 뻗은 형태와 자연을 담아내는 뻥 뚫린 구조가 아름다운 병산서원의 만대루.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9곳의 한국 서원 중 건축적으로 가장 아름답다고 칭송받는 병산서원의 전경.

 

안동에 위치한 또 다른 서원인 병산서원에서는 한국 건축의 백미를 느낄 수 있다. 퇴계 이황의 제자이자 학자인 서애 류성룡이 세운 병산서원은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좌우 대칭을 통해 한국 서원의 건축 형식을 확립했다. 덕분에 유네스코에 등재된 9개소 서원 중 건축적 완성도가 가장 높다고 평가받는다. 사실 강 건너 병산을 마주 보고 있는 병산서원의 입지는 풍수지리적으로 좋지 않다. 그러나 자연 축대 위로 웅장한 기개를 펼치는 만대루가 공간적, 구조적, 예술적으로 완벽하게 위치해 병산서원에 독창성과 아름다움을 부여한다. 벽과 창호 없이 개방된 7칸 누각인 만대루는 특별한 장식도 없이 투박한 모습 그대로 덤벙주초 위에 올라타 있다. 그러나 옛 선조의 꼿꼿한 기개를 닮은 형태와 병산의 살기에 맞서기보다는 자신을 비워 병산을 맞이하는 모습, 그리고 뚫린 공간 사이로 보이는 그림 같은 자연 풍경이 만대루를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 

 

 

낙동강이 마을을 휘감아 돌며 흘려 절경을 빚어내는 안동하회마을에서는 살아 숨 쉬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만날 수 있다.

 

서원은 아니지만 한국의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인 안동하회마을은 선조의 정신과 얼, 그들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을 따라 떠난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로 더할 나위 없다. 낙동강이 굽이치며 휘감는 형태 때문에 ‘하회(河回)’라는 이름이 붙은 이 마을은 풍산 류씨 가문이 600년간 대대로 살아온 동성마을이다. 수령이 600여 년 된 삼신당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강을 향해 배치된 집들은 조선 시대 주거 문화와 건축물 배치 양식을 잘 보여준다. 더불어 하회마을에 공존하는 양반 문화와 서민 문화, 조선 시대 유학자들의 학술 및 예술적 성과물은 선조의 정신과 관념, 그리고 그들이 추구해온 삶을 보여준다. 부용대에서 바라본 석양이 지는 안동하회마을의 모습을 두 눈에 담아 마무리하는 서원 기행은 낯설지만 깊은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가을이 깊어가며 하늘은 더 높아지고 대지는 황금빛으로 물든다. 붉고 노랗게 물든 단풍들 사이로 가을의 끝을 알리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면 한국만의 미감, 그리고 한국의 서원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정신과 관념을 마주하기에 적기라는 신호다. 

Reference <정신 위에 지은 공간, 한국의 서원>-김희곤 Cooperate 에이트 인스티튜트 
도움말 김개천(건축가,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교수), 박혜경(에이트 인스티튜트 대표)

 

 

 

 

더네이버, 여행, 서원

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영주시, 회화마을 보존회, 문성진, 최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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