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권대섭과 백자항아리

물, 불, 흙이 작가의 무수한 손길 아래 아름다운 백자 한 점으로 탄생한다. 조선백자의 전통을 이어 권대섭 작가가 구현한, 독보적인 조형미를 갖춘 백자항아리의 세계.

2019.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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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섭 작가가 새롭게 발표한 달항아리 중 하나.

 

 

개인전 첫날, 권대섭 작가가 전시장에서 비교적 마음에 드는 백자항아리를 골랐다. 작품은 ‘MOO6 2019 백자 달항아리’(2019)다. 작가는 가로 53.3cm 높이 57cm의 결코 작지 않은 크기의 항아리를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마음에 드는 면이 앞으로 보이도록 돌려놓았다.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따로 빚어 연결한 부위에 굴곡이 있고 소나무 장작 불길이 불어넣은 미세한 파임과 부풂, 잿가루 등이 표면에 남아 있다. 가마에서 항아리가 익는 시간 동안 사방의 환경이 다르니 둥근 면면마다 새겨진 흔적도 다르다. 모양도, 표면의 질감도 각기 다른 백자항아리 18점은 청담동에서 이태원으로 이전한 박여숙화랑의 새 공간에 놓였다. 하얗고 종종 푸른빛을 뿜기도 하는 담백한 구체들이 백색 공간을 밝혔다. 작품은 총 18점. 작가로서 이렇게 많은 숫자의 작품을 한곳에 전시한 적이 없었다. 권대섭 작가의 가마는 항아리 4점을 구울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흙을 빚어 만들어 가마에 굽고, 최종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항아리를 깨버리고 나면 1년에 6점 정도가 남는다. 박여숙화랑의 개관 기념전을 열기로 결정한 것이 2년 전이었으니 작가로서는 평소보다 작업량을 늘린 셈이다. 올해로 예순일곱 해를 보내고 있는 그가 백자항아리를 만들어온 40년이란 시간을 결산하는 자리인 만큼 작업을 강행했을 것이다.  

 

 

아름다운 형태와 은은한 표면 빛이 어우러진 백자호. 

 

권대섭 작가는 경기도 광주에서 가마를 짓고 도자기를 굽는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흙을 반죽해 구워 만드는 백자항아리 작업은 셀 수도 없는 반복 작업과 고된 육체노동을 동반한다. 가마 또한 한 번 짓고 영원히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가마도 도공의 노고와 함께 늙기 때문이다. 수차례 가마를 짓고 부수기를 반복해왔다. 지금 경기도에 있는 작업실에서만도 세 번이나 짓고 허물어 이번 가마가 벌써 네 번째다. “가마가 너무 커서도 안 돼요. 한 부분만 잘못되어도 허물고 다시 지어야 하거든요. 감당할 수 있는 크기로 만들다 보니, 항아리 4점이 들어가는 크기가 된 거죠.” 

 

 

집 옆에 가마를 두고 있는 작가는 비 오는 날과 주말을 제외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출근하듯 가마로 간다. 항아리의 초벌구이는 850℃의 가마에서 10~12시간이 걸린다. 유약을 바른 후 재벌구이 때는 1250℃가 넘는 가마에서 24시간이 걸릴 때도 있다. 아래와 윗부분을 따로 작업한 다음 반건조 상태에서 결합해 유약을 발라 재벌구이하는 동안에는 작가가 가마 곁을 떠나지 않고 항아리의 상태를 살펴야 한다. 오랜 시간 수없이 반복된 육체노동의 축적은 작가에게 항아리의 조형미를 어느 정도 해결해주었다. 같은 것을 40년간 만들며 얼마나 많은 실험과 시도를 해봤겠는가. 본래 비대칭일 수밖에 없는 구조의 항아리에서 상하 이음새의 굴곡진 부분이나 좌우로 조금씩 다른 형태가 은은하게 빛나는 하얀 표면과 함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전한다. 오랜 시간 작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 일궈낸 또 다른 아름다움일 것이다. 과거의 조선 백자를 똑같이 만드는 것이 지금을 사는 작가와 관객에게 어떤 의미를 줄 것인가. 작가는 처음 작품을 세상 밖에 내놓은 1995년 이전에 광주의 황폐해진 가마 유적을 따라 옛 도공들이 폐기했던 사금파리를 모아 연구했고, 한국 도자기의 역사와 백자항아리의 형태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해 일본으로 가 도자 공부를 했다. 과거의 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보다 자신의 스타일을 구축하며 현대적 조형 세계를 갖추는 데 성공하는 과정은 결코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뜻대로 되지 않는 부분은 바로 기술적인 부분이다. “소나무 장작으로 불을 때며 전통적인 방식으로 흙을 굽잖아요. 바람이나 기온 등의 날씨는 물론, 여러 가지 상황 변화에 아주 예민한 작업이에요. 그걸 개선하려고 노력해왔는데 여전히 너무 변수가 많아요.” 자연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부분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항아리들을 수백 개씩 깨고 1년에 겨우 10점도 안 되는 항아리를 완성하는데, 이조차 작가를 흡족하게 하지는 않는다. 그가 작가 노트에 고백하듯 자신에게 최고의 항아리는 아직 없다고 하니 말이다. 최고가 되기 위해 상당한 작업량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작업량이 반드시 좋은 작품을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최고의 작품은 “다음 가마에서 나올 것”이라고 농담처럼 던진 그의 말에는 가마 앞에 선 작가가 기대하는 시간이 계속됨을 의미한다. 그 시간이 작가에겐 희망이라고 말한다. 

 

 

백자항아리는 시간을 두고 봐야 한다. 표면에는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긴 기다림의 시간과 자연의 협력이 새겨져 있다.   

 

순수의 시대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권대섭 작가는 골동품 가게에서 우연히 만난 조선 시대 백자에 매료되면서 회화를 접고 항아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이끌렸다고 해야 하나… 백자항아리를 만들게 된 이유를 딱히 답하기가 어려워요. 좋아서 이끌렸는데 무슨 설명이 필요해요. 조선 시대 백자를 많이 접하지 못했을 텐데… 한번 기회가 되면 찬찬히 보세요. 자연에서 나온 것처럼 느껴져요. 진실이란 것이 뭔지 모르겠지만, 이게 진짜다, 그런 게 느껴지는 때가 있어요. 그걸 느끼곤 여기에 인생을 걸어볼 만하다고 생각한 거죠.” 


청년 시절 순수한 열정으로 시작한 도예 작업이 그저 순탄했을 리 없다. 지금처럼 공예가 각광받지도 못했던 시기, 어디에서든 볼 수 있고 접할 수 있는 도자기의 일상성은 작가를 지치게 만들기도 했다. 항아리는 기원전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온 물건이 아닌가. 귀하면서도, 그 흔한 일상성 때문에 예술품으로 인정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또 미술사학자 고 최순우 선생이 ‘달항아리’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찬탄한 백자항아리가 인기를 모은 지 50년도 채 되지 않았다.

 

 

높은 층고의 박여숙화랑 지하 2층 공간에서 높고 낮게 놓인 항아리들이 서로 다른 빛과 그림자를 만들고 있다.  

 

“40년간 가마 옆에서만 지낸 것은 아니에요. 예술고등학교 강사 일도 했어요. 열심히 만들어도 아무것도 팔리지 않으니까요. 그러면서도 줄곧 관심을 두고 있었죠. 사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거니까. 다른 것을 하지 않았고.” 전업 작가에게 아무리 노력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니, 바로 작품 판매다. 수없이 반복되는 작업의 고단한 시간 중 고민과 갈등이 왜 없었을까. “만약 내가 중국인으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회화 작업을 계속했더라면 어땠을까, 가족도 있는데 난 돈 벌기는 틀린 것 같다는 촌스러운 생각을 했던 시간도 있어요.” 


최근에 와서야 경제적으로 안정되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도자기를 만드는 데 상상 이상의 에너지가 소비된다. 40년간 정신과 육체의 애씀이 요즘 들어 빛을 보고 있다. 2015년과 2018년, 벨기에 앤트워프 악셀 베르보르트에서 백자항아리 개인전을 가졌고, 지난해 10월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달항아리가 5만2500파운드, 약 9700만원에 낙찰됐다. 현재 활동하는 도예 작가의 항아리로는 가장 높은 금액을 기록한 셈이다. 국내에서는 박여숙화랑을 통해 2017년 한국민속박물관 <봄놀이–산, 꽃, 밥>, 공예 트렌드 페어, 키아프에서 작품을 선보이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백자 시리즈는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멕시코 국립 박물관, 러시아 국립 박물관, 방글라데시 국립 박물관과 삼성 리움 미술관, 호림박물관, 민속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 그의 작품은 4500만~6000만원 선에서 거래된다. “작품 값이 오르는 일은 물론 좋은 일이죠. 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격이 오른 건데…. 갑자기 가격이 뛰는 것을 바란 것도 아니니까요. 약간 동기 부여가 되긴 했어도, 한편으로 긴장되는 일이거든요.” 

 

 


1650년대에서 1750년대 사이 백자항아리가 한 세기를 풍미하다 사라지고 다시금 그 가치를 인정받으며 유럽과 미국의 컬렉션에 등장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권대섭 작가는 조선백자의 가치를 아는 예술 애호가들 사이에서 중심에 서 있다. 지금부터의 작업은 어떤 사명감을 갖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중국과 일본에 비해 한국의 전통 백자는 서구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높이 45cm가 넘는 강건한 무지 항아리는 그들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형태다. 서구의 오픈된 시선에서 이 빛나는 구체가 각광받는 것은 이제는 작가 개인을 넘어서는 일이 되었다. 결국에는 18세기의 한국 도예 유산을 이어가는 일이기도 하니 말이다. “백자항아리는 실은 공동 작업이에요. 혼자 힘만으로는 이룰 수가 없어요. 조선의 도자기는 이조 500년 동안 500명의 스태프가 모여 이룩한 거예요. 지금까지 백자가 생명력을 유지해온 이유예요. 그런 협동 작업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작업을 할 수 있는 거라 생각해요. 이전에 작업하던 선생님들은 작고하셨고, 지금은 저라는 사람이 최전방에 있어요. 저를 바라보는 후배들도 있겠죠. 사실 지금 제가 누군가를 가르칠 만큼 여유롭진 않아요. 하지만 가능한 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죠.”

현재 작가는 조수 1명을 두고 있다. 백자항아리 작업이 결코 혼자서 할 수 없는 공동 작업임을 알고 있지만, 조수의 숫자 또한 작가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규모일 것이다. 마치 어느 정도 양의 흙으로 빚느냐에 따라 항아리의 크기가 달라지고, 항아리의 두께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뜨거운 고온의 가마에서 견디는 시간이 달라지듯 작가의 삶을 유지하는 데에도 임계점은 존재했을 것이다. 오래 작업을 하면 할수록 고집과 편견이 생기고 그것을 위험이라고 표현하는 원로 작가에게서 아슬아슬했던 시간이 조금이나마 읽혔다. “사실 새로운 건 없어요. 실험도 이미 다 해봤고. 몸이 힘드니까, 이제는 그만하고 싶다고 생각할 때도 있죠, 솔직히. 지금은 그저 이대로 좀 더 작업하는 시간이 지속되었으면 하는 것이 제 희망이에요.” 

 

 

 

박여숙화랑의 새 공간
박여숙화랑이 이태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하 1층과 2층 기획 전시 공간을 비롯해 1층엔 공예 작품이 전시된 카페 수수덤덤을 마련했다. 개관기념전인 권대섭 작가의 개인전은 11월 11일까지 열린다. 

 

 

 

 

더네이버, 인터뷰, 권대섭 작가

 

CREDIT

EDITOR : 한지희PHOTO : 안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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