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DEFINE THE SILHOUETTE

노력이 늘 최상의 결과를 안겨주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운도 따라야 한다. 그렇다고 운이 엉뚱한 사람을 찾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준비된 자에게 주어지고, 또 결과물을 낸다. 연기자라는 직업은 더 그렇다. 김선아의 실루엣에는 스무 해를 넘긴 배우의 시간을 관통한 노력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2019.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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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아에게 인터뷰를 제안한 것은 창간 23주년 기념호를 준비하면서다. 23년간 한길을 걸어온 사람을 찾던 중 김선아의 데뷔 연도가 1996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 배우가 벌써 23년이나 되었구나, 새삼 인지하고 나니 빠르게 흐른 시간에 온갖 감정이 고였다. 1996년은 에디터가 대학교를 입학한 해였다. 여자 신입생에겐 핑크 메이크업이 당연했는데 웬일인지 그즈음 화장품 브랜드는 핑크에서 벗어난 과감한 색조 메이크업을 쏟아냈다. 화장품 광고도 대대적으로 유행했다. 1992년부터 시작된 이영애의 산소 같은 여자를 비롯해 김지호의 영화처럼 사는 여자, 심은하의 아름다운 개인주의 등 기존에는 없던 여성 캐릭터가 잊히지 않는 한 줄의 카피와 함께 등장했다. 지금보다 걸크러시라는 단어가 어울릴 법한 다양한 여성상이 제시되던 시기에 신인 모델 김선아는 한불 화장품의 오버 클래스 아이디 광고에서 “낯선 여자에게서 그의 향기를 느꼈다”는 내레이션과 함께 도회적이고 중성적인 마스크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김선아의 출발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첫 화장품 CF에서 블랙 드레스를 입고 짧은 머리를 한 김선아는 당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캐릭터였다. 영화 <S다이어리>(2004), <잠복근무>(2005), <걸스카우트>(2008),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2005), <시티홀>(2009), <여인의 향기>(2011), <아이두 아이두>(2012), <복면검사>(2015), <품위 있는 그녀>(2017), <키스 먼저 할까요?>(2018), <붉은 달 푸른 해>(2019)까지 김선아에게 운이 닿은 작품에는 동시대를 사는 여자의 모습을 반영한 캐릭터가 많았고, 첫 CF처럼 대중의 공감을 이끌면서도 선망의 대상이 돼주었다. 배우로서는 행여 이해되지 않는 인물을 만날 때면, 그를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 수많은 질문을 던지며 역할에 가까운 인물로  체화되고자 쉼 없이 노력했다. 그렇게 쌓은 노력으로 탄생한 삼순이는 김선아를 놓아주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김선아를 멀리 달아나게 하며 성장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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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쉼 없이 활동해왔지만 그녀에게도 주춤하던 시기는 있었다.  드라마 <복면검사> 전후로 활동이 뜸하다 느낀 것도 잠시, 2017년 드라마 <품위 있는 그녀>를 만난다.  한국에서 여자 배우의 성장에 있을 수 있는 난관을 멋지게 정면 돌파하며 이 작품을 터닝포인트로 삼는다. 그리고 불우했지만 운명적으로 위험한 욕망을 꿈꾼 박복자를 연기하는 배우가 김선아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증명해낸다. 40대의 사랑을 그린 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와 아동 학대라는 진지한 화두를 던진 <붉은 달 푸른 해>에 연이어 출연하며 23년에 걸쳐 쌓아온 내공을 펼쳤다. 


지금 김선아의 손에는 <시크릿 부티크> 대본이 들려 있다. 오후 2시부터 10시간가량 이어진 화보 촬영 현장에서 그녀는 메이크업을 수정하며 드라마 대본을 꺼내 들곤 했다. 멀리서 봐도 두세 가지 다른 종류의 펜을 사용한 메모가 눈에 띄였다. 중간중간 보온병에서 따뜻한 물을 따라 마셨고 알록달록한 마카롱을 꺼내기도 했다. 컷마다 다른 화보용 의상을 입는 순간에도 그녀는 옷매무새를 꼼꼼히 확인했다. 자신의 발 사이즈보다 조금 큰 구두를 고쳐 신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어느 것도 허투루 하는 법 없이 옷을 입고 거울을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과 눈빛은 무척 신중했다. 예상보다 촬영은 늦어졌다. 다음 날 일찍 시작되는 드라마 스케줄로 미처 하지 못한 질문 두 가지를 서면으로 보냈다. 며칠 후  A4 두 장을 빼곡히 채운 답변이 돌아왔다. 김선아는 그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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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시크릿 부티크> 촬영 중 얼마 전 힘든 신을 끝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간 가장 힘든 촬영을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마지막 제주도 촬영이라고 말했어요. 밤을 새운 상태에서 한라산을 4시간 넘게 올라 촬영했는데, 비바람 부는 날씨에 우박까지 떨어졌어요. 극 중 캐릭터를 위해 몸무게를 갑자기 늘린 상태여서 등반하기도 어려웠고요. 촬영을 마치고 하산하는 길도 무척 험했어요. 사방은 깜깜한데 바람 소리와 동물 울음소리밖에 들리지 않았거든요. 스태프들과 5명씩 줄지어 내려왔어요. 작은 손전등 하나로 발밑을 비추며 땅만 보고 내려왔어요. 하산까지 총 10시간이 넘었죠. 내 인생에 다시 산은 없다, 말할 정도로 힘들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진행된 촬영은 이를 넘어섰죠. 


어떤 촬영이었는데요?
일교차가 좀 큰 시기잖아요. 야외 대형 수조에서 진행된 CG 작업용 촬영이었어요. 차가운 물에서 1시간을 있다 보니 체온이 떨어져 나중에는 정신적으로 버티기가 힘들더라고요. 물에서 나와 땅에 발을 딛는데, 온몸이 얼어서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다시 걸을 때까지 40분쯤 걸린 듯해요. 지금도 피부 곳곳이 발열과 함께 빨갛게 부어올랐다가 사라지곤 해요. 


지난해 말부터 방영해 올해 초 종영한 <붉은 달 푸른 해> 이후로 좀 쉬는 기간을 가질 줄 알았어요. <품위 있는 그녀>부터 맡아온 역할들은 감정 소진이 컸죠. 
컨디션 조절은 배우 개인의 몫이죠. 물론 쉽진 않아요. 그런데 장르나 캐릭터에 상관없이 이제껏 힘들지 않은 촬영은 단 한번도 없었어요. 일상에서 타인의 얘기를 듣거나 고민을 상담해줄 때조차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내가 직접 타인이 되어 연기해야 하는 일은, 들어주는 일보다 더 힘들죠. 

 

새 드라마 <시크릿 부티크>는 2011년 화제의 드라마 <여인의 향기> 때 만난 박형기 감독의 작품이에요. <여인의 향기> 때는 시청률뿐만 아니라 여주인공 이연재가 입고 나온 모든 것이 완판됐을 정도로 화제였죠. 바로 출연을 결정했나요? 
사실 <여인의 향기>를 촬영하면서 박형기 감독님을 무척 존경했어요. 현장을 끌어가는 힘이 대단하세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디렉터 모습이죠. 감독님이 한창 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를 촬영하고 있을 때 연락을 주셨어요. 직접 연출하는 건 아니지만, 작품이 괜찮으니 보라고 하셨죠. “감독님이 하시면 할게요”라고 농담 반 진담 반 던졌는데 나중에 소속사를 통해 감독님이 직접 연출한다고 하더라고요. 대본도 너무 재미있고 신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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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은 올해 상반기부터 시작됐고, 준비할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어요. 
맞아요. <붉은 달 푸른 해> 종영 후 관련 인터뷰를 끝내고 나니, 새 드라마 촬영까지 한 달 정도 남아 있었어요. 제니장이라는 새 캐릭터를 구상하며 헤어, 메이크업, 의상 등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한 달을 보냈어요. 


무엇보다 헤어스타일이 새로운데요?   
개인적으로는 오랫동안 짧은 헤어스타일을 해와서 이번에는 좀 기르고 싶었어요. 짧은 준비 기간 동안 긴 헤어피스를 붙여도 보고 이것저것 스타일 변신을 여러 차례 시도했죠. 극 중 변신이 필요할 때를 위해 준비한 지금의 헤어스타일을 본 감독님이 “바로 이거다!”라고 하셨어요. 결국 다시 커트했어요. 처음으로 탈색을 한 후 밝은 컬러로 염색했어요. 빛이 머리 위로 떨어졌을 때, 빛이 없을 때, 또 실내로 들어갔을 때 느낌이 제각각 다르게 표현돼요. 


극 중 제니장은 어떤 캐릭터인가요? 
패션 부티크를 운영하지만, 실제로는 비선 실세로 활약해요. 외모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냉정하고 범접하기 쉽지 않은 인물이죠. 머리가 매우 비상하고 계산이 빠른 여자예요. 대사 톤도 일반적이지 않아요. 상대하는 사람에 따라 어투와 어조를 달리 하죠. 매우 치밀하고 전략적인 사람이에요. 


새 캐릭터를 위해 박형기 감독님이 특별히 주문한 부분이 있나요? 
감독님이 생각하는 김선아는 소탈하고 서민적인 모습에 가깝죠. 이는 삼순이의 영향이 커요. 그런 모습에서 완전히 탈피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죠. <품위 있는 그녀>의 박복자보다, 남편이 죽고 난 후 박지영 회장으로 변신했을 때의 모습이 굉장히 좋았다고 하셨어요. 그런 부분에서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여요. 

 

예고편만 봤을 때는 살짝 <품위 있는 그녀>의 박복자와 겹쳐 보였어요. 
비슷할 수 있어요. 저도 처음 시놉시스만 읽었을 때 그런 느낌을 받았으니까요. 그런데 인물을 파고들수록 달랐어요. 체질이 다르면 뻗어나가는 가지가 다르잖아요. 성장 과정이 불우하다는 점에서는 비슷할 수 있으나 제니장은 태어날 때부터 승부사 기질을 가지고 있었죠. 그 부분에서 박복자와 크게 달라요. 드라마가 전개되고 인물이 드러날수록 확실히 달라요. 이제는 아예 박복자가 생각나지 않아요. 

 

 

PRADA 어깨를 감싸는 네크라인이 독특한 회색 원피스 가격 미정. GIANVITO ROSSI 앞코와 굽에 스터드를 장식한 하이힐 129만원. 

 

장미희 배우와 붙는 신이 기대돼요. 함께 연기할 때 긴장감이 크지 않나요? 
1970년대 트로이카였으니까요.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선생님과 연기하는 것만으로도 신기해요. 대배우와 함께 있을 때의 떨림이 있어요. 극 중 엄마와 딸의 관계였다면 또 모르겠는데, 선생님이 연기하는 회장님과의 관계 또한 어렵거든요. 제니장이 회장님 집에서 하녀처럼 자라온 터라 반 이상 고개를 숙인 어렵고 불편한 관계죠. 선생님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흐트러짐이 단 1도 없으세요. NG도 거의 없고. 제가 과연 선생님 나이대가 되었을 때 저런 모습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요.  


이제까지 촬영 분량으로 봤을 때, 연기자가 아닌 시청자로서 느낄 수 있는 재미 요소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여자들 사이의 치열한 싸움이 핵심이 되지 않을까요? 제니장을 비롯한 극 중 캐릭터들의 의상도 볼거리예요. 여자뿐만 아니라 김태우, 김재영, 류승수, 김법래 등 남자 배우들이 입고 나오는 의상도 무척 멋지죠. 또 대저택으로 세운 세트장도 화려하고 규모가 어마어마하죠. 경관도 압도적이고요. 이런 규모와 디테일의 세트 디자인을 본 적이 없어요. <여인의 향기> 때도 느꼈는데, 같은 장소라고 해도 촬영된 장면마다 전혀 다른 느낌을 줘요. 카메라 감독님이 앵글을 다채롭게 다루세요. 영화 같죠. 듣고 보니 한국에 하나뿐인 카메라 장비를 사용한다고 하더라고요. 보는 사람 중 이런 영상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흥미로울 수 있는 부분이죠. 


여러 인터뷰를 읽으며 캐릭터에 많이 빠지는 스타일이라고 알고 있어요. 제니장으로 살면서 촬영 중후반을 달리는 요즘 잠들기 전 어떤 생각을 하나요? 
글쎄,  특별한 것은 없어요.  그보다 대본을 머리맡에 두고 자는 버릇이 생겼어요.

 

아까도 종종 대본 읽는 모습을 봤어요. 내일 촬영 분량이 많은가 싶었죠. 
대본 자체도 어려운 편이고 제니장의 대사도 많아요. 그녀의 말투가 쉽지 않은데,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편하게 대사를 치면 제니장 캐릭터 같지 않죠. 대본을 놓고 있으면 불안해져서 손에 쥐고 있을 때가 많아요. 딱히 읽지 않아도.  

 

 

GOLDEN GOOSE 빈티지한 워싱이 돋보이는 가죽 트렌치코트 가격 미정. DAMIANI 다이아몬드와 세라믹, 핑크 골드가 어우러진 디 아이콘 브레이슬릿 219만원.

 

23년쯤 경력이 쌓이면 이제는 연기가 익숙해지지 않나요? 
아니요. 계속해도 어려워요. 우리가 어떤 일을 처음 할 때 어렵잖아요. 새 대본을 받은 배우는 늘 처음을 마주해요. 새로운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어색한 것처럼 어렵죠. 경력이 몇 년이 되었든, 익숙해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올해 초 종영된 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는 좋은 작품으로 남았어요. 상도 받았고요. <품위 있는 그녀>가 스타성을 다시 한번 증명해 보이는 계기였다면, 이 작품은 배우 자신도 연기의 결을 달리할 수 있는 기회였을 것 같은데요? 연기자로서 어떤 깨달음을 갖게 한 작품일까요? 
이 작품을 만난 건 여러모로 행운이었어요. 아동 학대와 가정 폭력의 실상 및 잔혹성, 피해자의 심리 묘사, 부모가 이기적인 욕심으로 부성과 모성을 잃어버릴 때 어떤 파멸의 결과가 나오는지 주제를 잘 전달한 드라마였어요. 직접적인 학대 장면을 넣지 않고 우리가 충분히 아픔과 슬픔을 느낄 수 있도록 연출한 부분도 배우로서 굉장히 좋았어요. 차우경 대사 중에 ‘아이들 눈앞에 어른은 크기조차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세상이에요. 특히 부모는 온 세상이고 우주예요. 우주가 달려들어 아이를 공격한다고 생각해봐요. 세상에 그보다 잔인한 게 있나요?’라는 대사가 있어요. 이 대사가 굉장히 크게 와닿았는데요. 아마 작가님은 사회 문제인 아동 학대, 가정 폭력, 그리고 살인을 현실적으로 경고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에 새엄마를 살려준 것은 용서한 게 아니라 ‘살아서 반성하고 앞으로 좋은 사람으로 잘 살라는 의미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가님의 이런 촘촘한 구성, 마지막회까지 정말 빈틈없이 대본을 쓰죠. 


울림이 있는 작품이었고, 차우경이라는 캐릭터 또한 인상적이었어요. 새 작품 준비로 마음속에서 우경을 떠나보내는 시간이 조금은 짧지 않았나요? 
차우경이라는 사람은 ‘어른 아이’예요. 우경이는 평생 용서와 원망이라는 두 가지 마음이 끊임없이 오가는 캐릭터죠. 용서, 원망, 어릴 때의 기억을 끊임없이 안고 살아가야 하는 피해자고요. 다시는 이런 피해자가 없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연기했어요. 우경이가 잘 헤쳐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촬영했고 그런 마음으로 떠나보낸 것 같아요. 시청률이 부진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작품성이 높았기 때문에 만족도는 굉장히 컸던 드라마였죠. 연말에 과한 상을 받았는데 드라마 전체를 대표해서 받았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말을 하면서 마음이 울컥한데 마음속 한쪽 깊은 곳에 우경이가 자리 잡고 있는 듯해요. 쉽게 떠나보낼 수 없는 작품이에요. 

 

최근 연기해온 캐릭터에는 슬픔이 많았어요. 종종 TV에서 재방송되는 <잠복근무>같은 영화를 보면 분명히 코믹한 연기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돼요. <내 이름은 김삼순>이나 <시티홀>에서도 몇몇 재미있는 장면이 여전히 떠오르거든요. 
밝고 코믹한 연기도 하고 싶죠. 삼순이 같은 캐릭터도 다시 하고 싶고. 그런데 안 하려고 안 하는 것이 아니에요. 처음 화장품 광고를 통해 도회적인 이미지에서 코믹한 캐릭터로 가기까지 4~5년이 걸렸어요. 그러다 삼순이를 만났고요. 삼순이에서 박복자로 오기까지 또 오래 걸렸어요. 무엇을 해도 오랫동안 삼순이가 놓아주지 않았어요. 이 또한 제가 어떻게 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더라고요. 그냥 자연스럽게 흘려보내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어요. 

 

 

EUDON CHOI 밑단 절개선이 특징인 흰색 원피스 가격 미정. GIANVITO ROSSI 골드와 블랙이 어우러진 뮬 85만원.

 

현재까지 살아오면서 김선아라는 사람은 어떤 것을 욕망하고 꿈꾸었나요? 
글쎄요. 뭔가 치열하게 욕망한 것이 있었나… 욕망까지는 아니고 갈망 정도? 음… 10대 때 놀고 싶어 한 것 정도는 아마도 욕망이었을 거예요. 밖에서 놀고 싶은데 자꾸 부모님이 집으로 들어오라고 하셨으니까(웃음). 20대에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세계를 다니며 연주하는 피아니스트가 되는 게 목표였고, 10년 후의 목표를 위해 동그라미로 생활계획표를 짜고는 늘 지켰어요. 그때만큼 열심히 살았던 적이 없어요. 피아노를 잘 치기 위해 복근을 기른다고 윗몸일으키기를 하루에 600개씩 했거든요. 남들보다 2시간 먼저 일어나 피트니스센터에서 윗몸일으키기를 200개 했고, 점심에 200개, 잠들기 전에 200개 했어요. 복근에 힘을 기르려고요. 잠을 2~3시간밖에 못 잘 정도로 치열하게 살았죠. 연기는 특정 목표가 있다기보다 좋아서 하는 일이에요. 연기가 재미있고 현장이 좋아서.  


매끈한 실루엣에 놀랐어요. 등 견갑골 부분마저 군살이 하나도 없어서. 물리적으로 나이 들어서 생기는 신체 변화를 어떻게 관리하세요? 
여기저기 몸을 다친 적이 있어서 운동을 못 해요. 안 한 지 10년이 넘었어요. 근육량이 크게 줄었죠. 그나마 스트레칭을 많이 해요. 체중 조절을 안 한다고 하면 거짓말이고요. 한때 아이스크림을 좋아했고, 지금도 단것을 좋아해서 무척 피곤할 때 조금씩 즐겨요. 이마저도 안 먹으면 슬프지 않을까요? 먹고 싶은 만큼 먹으면 안 되니까. 사람 만나는 약속도 조절하고. 제가 할 수 있는 건 해야죠. 


사실 40대 중반을 넘긴 배우에게 질문하는 것이 맞지 않을 수 있지만,  김선아를 떠올리면 유독 성장통이라는 단어가 떠올라요. 작품에서 이유를 찾자면 김삼순 캐릭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실제 김선아의 성장통을 함께 겪어온 작품이 있나요? 
음…, 영화 <S다이어리>(2004), 드라마 <여인의 향기>(2011) 정도. 사실 <내 이름은 김삼순>보다 개인적인 성장통을 함께한 작품은 그 두 작품이에요. 작품을 준비하면서, 연기하면서, 또 끝난 이후 성장통이 지나갔던 것 같아요. <S 다이어리>에서는 나진희의 10년을 보여줘요. <여인의 향기> 땐 좀 몰입했었고. 곧바로 <아이두 아이두> 촬영을 들어가는게 쉽지 않았죠. 스스로 컨트롤을 잘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성장한 시기였어요.  


한동안 제주를 가지 못했다는 얘길 듣고 마음이 찡했어요. 여전히 한라산에 오르던 삼순이의 모습이 시청자였던 제게도 깊이 남아 있거든요. 무엇이 마음을 단단히 붙들어 매도록 했나요? 
일단 혼자서 여행해보자고 생각하고 떠난 곳이 제주도였어요. <여인의 향기> 후로 버킷리스트를 여전히 쓰고 실행하고 있어요. 혼자 여행하는 것도, 작품을 촬영했던 곳을 가보는 것도 그중 하나였어요. <내 이름은 김삼순>을 찍은 한라산 근처에도 혼자 갔지만 올라가진 못했어요. 날씨가 좋지 않았어요. 드라마에 나왔던 등대 근처에도 갔죠. 이후로 또 제주도를 간 적이 있어요. 어떤 자리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드라마 OST가 나오더라고요. 제가 연기한 장면들이 뇌리를 스쳐가면서 슬프더라고요.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니 한 작품 한 작품 끝날 때 미처 감정을 다 토해내지 못한 것도 있고, 제가 했던 작품을 너무 소중하게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또 제주도에서 유독 가슴 찡한 장면을 많이 촬영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요. 최근 <키스 먼저 할까요?> 촬영 때문에 잠시 내려간 게 마지막인데 아쉽죠. 우리나라에 아름다운 곳이 많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어요. 제주도뿐만 아니라 가고 싶은 곳이 많은데 지금은 여유가 없어요.


인터뷰에서는 나문희 선생님 이야기가 빠지지 않죠. 결국 “계속하라”는 말씀을 실천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길을 찾아가고 있나요?
많은 경험을 통해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닐까요. 무조건 많이 하라고. 그게 좋다고. 이것저것 가리지 말고 할 수 있을 때 하라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것도 저것도 다 처음이고, 시간도 많지 않죠. 올해만 반년 넘게 제니장 한 사람으로 살고 있으니까요. 할 수 있는 게 많지가 않아요. 

Hair 양인경 (Musee Neuf) Makeup 김활란(Musee Neuf) Assistant 박민정 

 

 

 

 

더네이버, 인터뷰, 김선아

CREDIT

EDITOR : 한지희, 홍혜선PHOTO : 맹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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