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다프네 난 르 세르장의 전시

아틀리에 에르메스는 은의 고갈 문제를 모티프로 한 작가 다프네 난 르 세르장의 전시 <실버 메모리: 기원에 도달하는 방법>을 개최했다. 작가 개인적인 삶의 궤적에 닿아 있는 전시를 이해하기 위한 기록.

2019.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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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내면의 인도를 향한 여행(Travels to our Inner Indias) 2019, video HD, sound, 14min(still from the video) 작품에 선 작가 다프네 난 르 세르장 

 

가까운 미래에 은이 고갈된다. 심지어 10년 후인 2029년 이후에는 은을 채굴할 은광을 더는 발견할 수 없을 거라는 예측도 있다. 프랑스에서 온 현대미술 작가 다프네 난 르 세르장((Daphné Nan LE SERGENT)은 은의 고갈 소식을 접하고 적지 않은 충격에 빠진다. 파리 8대학에서 사진 예술을 가르치는 그녀는 1980년대 롤랑 바르트가 정의한 아날로그 사진의 개념, 즉 ‘빛으로 그린 그림’ 또한 이해 가능하지 않는 시대가 온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 “기술적으로 보면, 할로겐화된 은이 마이크로 크리스털 상태로 있다가 빛이 들어왔을 때 셔터의 크기와 속도에 따라 포착된 빛 그림이 바로 사진이잖아요. 디지털 시대라고 해도 현재는 구현이 가능하지만, 은이 고갈된 이후 더는 아날로그 사진이 존재하지 않을 때 사진에 대한 정의를 이해할 수나 있을까요?” 은은 아날로그 사진 인화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다. 전기 전도성이 높아서 스마트폰, 컴퓨터, 전자 부품, 의료기기 등에 사용되고, 뛰어난 항균성이 각광받는 등 은은 산업 분야에서 중요한 광물 자원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지구에서 점점 사라지는 광물은 적지 않다. 크롬, 구리, 팔라듐, 안티몬 등 그 리스트는 끝도 없다. 이런 사실은 최근 것이 아니다. 오래되었지만, 우리는 큰 사건으로 체감하지 못했을 뿐이다. 아틀리에 에르메스에 펼친 개인전 <실버 메모리: 기원에 도달하는 방법 Silver Memories: How to Reach the Origin>은 1차적으로는 광물 고갈에 관한 메시지를 던진다.

 

 

작가의 평면 작품에는 유난히 크고 작은 힘과 방향성이 느껴진다.  

 

Fuck the cloud (detail), 2015 Photo-drawing, charcoal, ceramic, wooden deer poetry 460×80cm  

 

 Reset, 2015 Gum bichromate/digital print, 95×150cm  

 

Curator’s lexical features, the Defeat (detail), 2016 Photo-drawing, 33×144 cm 

 

북한과 남한 어느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 외모도 달라진다는 메시지를 담은 영상. Politic, Face 2012, video18′.(vimeo.com/85267523)

 

“세상에 존재하던 무언가가 사라진다는 것에 마음이 움직였던” 작가는 대중적으로도 이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오랫동안 염두에 둔 이 주제를 꺼내어 은의 근원을 추적한다. 대항해 시대에 서구 탐험가들은 서쪽으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면서 그들이 인도라고 믿었던, 지금의 남미 일대에서 대규모 은광을 발견한다. 그곳에서 채굴한 어마어마한 규모의 은을 200년간 반출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한다. 좀 더 얘기하자면 그들의 자본력은 결국 군사력이 되어 ‘정복’의 땔감이 되고 훗날 근대화의 근간을 마련하는 밑거름이 된다. 작가는 광맥이 흐르는 광산의 모습이 담긴 평면 작품 연작을 선보였고, 강물에서 은을 찾는 모습을 시각화한 통나무들을 설치했으며,  할로겐화 은의 물성이 표현된 이미지와 마야인의 언어로 만든 음악 등으로 구성된 영상 작품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은의 기원을 찾는 여정을 전시장에 펼쳐놓았다. 다소 낯설게 들리는 음악, 영상과 평면 시각물이 독특한 분위기를 이끈다.   


다프네는 미술 작가로 활동하며 주로 영토의 문제, 특히 지정학적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 지정학(geopolitics)은 지리적인 위치 관계가 정치,  국제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제1차 2차 세계대전 중 널리 쓰인 국가 과학 용어로 분쟁, 전쟁 등을 동반한 개념으로 쓰인다. 작가는 작업 초기에는 북아일랜드 문제를 연구했다. 프랑스에서 첫 번째 개인전 이후 김수연 큐레이터를 통해 맨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발표한 사진 작업도 남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의 경계에 관한 것이었다. 한국을 찾은 작가는 분단 문제에 집중한다. DMZ 주변 풍경에서 포착한 ‘경계’를 테마로 한 영상 작품은 2010년 이후 연속해 발표된다. “남북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한국 이곳저곳을 여행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물리적 경계선보다 심리적이고 지역적인 경계선이 강고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런 점은 북과 가까운 해안선 일대에서 쉽게 포착되었죠.” 

 

 

사진 위에 드로잉을 더한 3점의 연작, 시선의 정교함 그리고 희귀한 것에 대한 열망(Preciosity of the Eye and the Desire for Rare Things) 2019, pigment inkjet print and graphite, 70×110cm

 

7점의 사진 이미지로 제작된 연작, 기억의 확실성(the certainty of memory-Diptych) 2019, pigment inkjet print and varnish, 35×100cm 

 

‘My Split Eye’(2011)는 보초를 서는 군인들의 눈을 촬영한 8초짜리 비디오다. “북한 쪽을 바라보고 있기는 하지만 가장 가깝다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먼 거리잖아요. 본래 저 경계 너머에 풍경만 있고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계속 보고 있어요. 어쩌면 ‘본다’는 것은 TV나 영화에서 그들을 봤거나 어른들에게 구두로 들었거나, 어떤 기억을 통한 것이 아닐까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데 보는 사람이 투영하는 이미지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아 제작한 작품이죠.”


‘Politic, Face’(2012)는 북한 사람과 남한 사람의 얼굴에서 다른 모습을 포착한다. 남한 사람의 얼굴은 식생활 변화에 성형 기술까지 더해져 서양인의 얼굴과 닮아 있고 북한 사람들은 체제의 영향을 받은 모습이다. 제 3자의 시선으로 남과 북을 바라본 다프네는 이질감을 느낀다. “한국의 지정학적인 국경선, 그것이 단순히 지리적이고 정치적이라기보다 마음속으로 갈라놓은 선과도 연결된다고 생각했어요. 지정학적인 분단선이 영향을 미치는 듯 보여요.” 보이지 않는 경계란, 바로 이런 부분이다.  


속초에 가면 철조망으로 경계를 그어놓은 곳이 많다. 분명 분단의 흔적이고,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는 표식이다. 접근 금지라서 못 가지만, 또 한편으론 어느 정도 선까지는 다가가 북쪽을 내다보는 사람들도 볼 수 있다. 가면 안 된다, 정치적으로 위험하다는 사실을 이전부터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철조망을 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사전 교육이 없던 사람의 눈에는 그저 철꾸러미에 지나지 않는다. “남북의 분단선은 실질적인 존재이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 사실로부터 영향을 받아요. 이런 흔적들이 사람들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심이 높았어요. 여전히 저는 심리적 분단 문제가 크다고 생각해요.”  

 

 

 14분짜리 스틸 이미지와 영상, 사운드로 구성된 작품, 우리 내면의 인도를 향한 여행 2019 중. 

 

은 할로겐 입자(Silver Halide Grains), 2019. 나무 원목과 사운드와 함께 설치 작품으로 구성된 5장의 사진 이미지 중 하나. 

 

기억의 확실성(The certainty of memory-Diptych) 2019 연작 중 광맥을 표시한 평면 작품.   

 

코덱스 2031 은광석의 종말(Codex of 2031 The End of Silver Ore), 2019, 19×111.5cm 작품 두 점. 

 

다프네의 기원
다프네 난 르 세르장은 2009년 파리에서 개인전 <Schize and Borders>를 치르며 미술 작가로 데뷔한다. 대학에서 예술사와 조형미술을 공부하고 졸업 논문으로 ‘경첩의 이미지, 시선의 이야기(L’IMAGE-CHARNIÈRE OU LE RÉCIT D’UN REGARD)’를 발표한다. 현재는 프랑스 8대학에서 사진과 예술학을 강의하며 작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아틀리에 에르메스에서 진행 중인 전시 <실버 메모리: 기원에 도달하는 방법 Silver Memories: How to Reach the Origin>은 서울에서 진행된 첫 개인전이다. 이 전시가 그녀에게 남다른 이유에는 본인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사실도 존재한다. 태어나자마자 1년도 되지 않아 프랑스로 입양을 간 다프네 난 르 세르장은 프랑스 사회에서 그들과 다른 외모로 살아가며 균열을 경험해야 했다. 이는 그녀의 이름에서 비롯된 에피소드에서도 잘 드러난다. 프랑스 가족이 그녀의 이름을 지을 때 한글 이름 중 하나인 ‘난’을 넣었는데, 한동안 이 단어를 빼고 사용한 적이 있다. 그런데 어느 모임에 참석할 때 이름만 보고 당연하게 백인의 모습을 기대한 사람들이 한국인 얼굴을 한 본인을 보고 놀라곤 했다는 거다. 그 후로 ‘난’을 이름에 다시 사용했다. 자신과 모습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자기 존재가 어디서부터 기인하는지 불혹을 넘긴 지금까지 끊임없이 질문해왔다. 왜 아니겠는가.


그녀에겐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떠오르지 않는 기억이 있다. 바로 한국에서 프랑스로 오게 된 시간이다. 떠올리는 것이 불가능한 기억이다. 그녀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바다는 그런 기억의 상징과 같은 모티프다. “제 작품에는 기억에 대한 고찰이 많아요. 기억을 이야기할 때 두 가지 콘셉트로 나눠요. 하나는 솔리드한 콘셉트예요. 상자에 넣었다가 몇십 년이 흐른 후 꺼내도 그 모습 그대로 있는 것이죠. 나머지 하나는 리퀴드한 콘셉트예요. 기억이 계속 흐르고 흐르다가 어디엔가 도달하는데, 어떤 사건에 의해 다시 소환되는 기억들. 그렇다고 늘 그렇게 떠오르리라는 보장을 할 수 없죠.” 자연의 이치에 따라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는 강물이나, 반복적으로 또는 사방으로 요동치며 흩어지는 바다의 파도 이미지는 기억의 흐름을 표현한다.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화살표 또한 이와 같은 의미의 표식이다.  

 

 

은 할로겐 입자(Silver Halide Grains), 2019. 5점의 사진 이미지와 함께 구성된 나무 들보들. 강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하나둘 발을 내딛으며 걸을 수 있게 했다. 이는 사금을 채취하는 행위와도 연결된다. 

 

다시 에르메스의 전시로 돌아가본다. 은의 고갈에 집중해 은의 존재, 그리고 그 존재의 사라짐을 기록한 전시장을 바라본다. 그 뜻을 은유로 함축한 작품이 놓인 전시장에는 현대인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제작된 영상의 음악이 흐르고 있고 구체적인 사물 또는 모호한 이미지들이 뒤섞인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카메라 셔터 소리와 강물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폴짝폴짝 다리를 벌려 건너게 하는 나무 설치는 아이 같은 행위를 유도하곤 한다. 은의 기원을 찾는 여정에서 원초적인 속성이 느껴지는데, 이는 관람자인 에디터가 예전에 봐왔던 것, 경험했던 것에 기댄 기억에서 비롯된 느낌일 것이다. 그러나 신대륙에서 은을 맨 처음 발견한 사람들이 본래 자신들이 살던 나라를 떠나 계속해서 서쪽으로 이동하는 대목에서  자신의 존재를 찾아 한국으로 왔던 작가의 개인사가 겹쳐진다. 불혹 이후에도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민을 해온 흔적 같다. “전 제가 입양된 사실에 대해 종종 한국에서 유학하러 온 학생들과 비교해 표현해요. 저는 그들보다 좀 더 먼저 온 것일 뿐이라고요.” 


그녀의 작업 중에는 비디오 게임을 패러디한 영상 작품 ‘Practice for Young Artist’(2013)가 있다. 리얼리티와 뮤지엄으로 나눈 화면 구성이 특이해 의도를 물었더니 역시나 범상찮은 대답이 돌아왔다. “20세기 마르셀 뒤샹과 같은 예술가가 일상의 오브제를 뮤지엄으로 옮긴 행위 자체가 대담하고 용기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를 일상생활의 제스처와 연결해보고 싶었죠. 똑같이 산업화 시대를 겪었고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들도 마르셀 뒤샹과 같은 퍼포먼스를 할 수 있잖아요. 우리도 이러한 사회의 일원이기 때문에 현대 사회의 심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유럽인이 그들이 만들어온 예술 사조에 품격이 있다고 자부하지만, 저는 그런 태도를 좀 비꼬고 싶었어요. 모든 예술가들이 마르셀 뒤샹처럼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가상 공간에서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오브제를 뮤지엄으로 옮기는 게임으로 작품을 만들었어요.”  


작가는 오는 11월에 미얀마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뉴델리에서 워크숍도 예정되어 있고, 멕시코 레지던시도 계획 중이다. 이후엔 이란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단다. 모두 분쟁, 경계 지역이다. “저의 관점은 프렌치예요. 추상미술만 해도, 프랑스인은 본인들이 앞서갔다고 생각하죠. 한국의 추상미술은 그들 보다 늦게 시작됐으니까요. 그런데 한국적인 시각으로 보면 추상 예술이 정치 사회적으로 의미를 담고 있고 메시지를 건네는 수단이기도 했더라고요. 굉장히 다른 시각이 존재함을 제가 태어난 한국을 알게 되면서 깨달았죠. 제가 희망하는 것은 프랑스, 아니, 유럽에서 벗어난 시각을 갖게 되는 것이에요.”  

남기용© 에르메스 재단 제공 아뜰리에 에르메스(작품)

 

 

 

 

더네이버, 전시, 다프네 난 르 세르장, 실버 메모리: 기원에 도달하는 방법

CREDIT

EDITOR : 한지희PHOTO : 양성모(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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