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보이지 않는 유령의 장소들

책 <지도에 없는 마을>은 지구상의 모든 곳을 인간이 내려다본다는 오만을 산산이 부순다. 지도에는 없지만 실존하는, 혹은 존재하지 않지만 지도에 그려진 보이지 않는 마을 39곳.

2019.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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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이 세상에서 확고부동하게 단단한 것이 하나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땅’이다. 내가 어디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마지막까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다. 하늘은 솟아날 구멍이 있을지 몰라도, 땅은 허술한 구멍이 없다. 어딘가에는 바닥이 있다. 아득하게 멀 수는 있지만 어쨌든 있다. 그런 믿음이 우리를 이곳에 있게 한다. 


그렇지만 정말 그럴까? 지구는 이미 인간이 낱낱이 파악했다는 믿음. 구글어스를 통해 매의 눈으로 이 세상의 전체를 굽어볼 수 있다는 확신은 이 책을 읽으면서 산산이 깨진다. 측정하고 기록하고 헤아리고 공식화했던, 만져보고 밟아보고 누워보고 걸어볼 수 있다고 믿었던 세상이 사실은 우리의 생각만큼 견고하지 않다는 말은 우리를 바닥부터 흔든다. 그러나 불안하다기보다는 흥미롭다. 우리가 올라타고 있는 이 땅이 사실은 거대한 무덤이 아니라 거대한 공룡이라는 감각이 새롭다. 그리고 그 흔들림과 움직임에는 인간들의 역할도 적지 않다.   


좋은 소식이다. 탐험의 시대는 지나가고, 우리에게 발견할 만한 것이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이 책을 보라. 이 책은 새롭게 생겨난 땅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만, 한편으로는 ‘낯설게 보기’를 통해 우리에게 너무나 친근한 세계를 어떻게 탐험할 수 있는지도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장소의 성격은 다양하지만, 장소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확실하다. 저 먼바다에서 긴 시간에 걸쳐 자연적으로 생겨나고 사라지는 섬들 이야기를 하다가 바로 우리 곁, 고속도로 교차로 사이에 만들어진 교통섬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건 아마도 그가 지리학자로서 오랫동안  ‘장소에 대한 본질적인 사랑’, 즉 토포필리아(Topophilia)에 대해 생각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그것이 인간의 근원적인 갈망이라고 말한다. 


 “사랑에는 여러 종류가 있고, 이들 사랑은 갖가지 유대로 연결되어 있다. 자연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바이오필리아(Biophilia)와 장소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토포필리아(Topophilia)는 특히 밀접한 관계에 있다. 우리 인간이 평생에 걸쳐 동식물에게 느끼는 친밀감은 열렬한 헌신을 낳으며, 그런 헌신은 우리가 장소에 대해 느끼는 소속감으로 넘어가고 스며든다. 이 두 열애 감정은 유서 깊은 장소이자, 인간의 안녕을 상징하는 정원에서 만나 하나가 된다.” 여기에서 ‘정원’은 단순히 우리 집 앞뒤를 둘러싸고 있는 손바닥만 한 땅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이미 있는 장소를 답사해보는 것을 넘어서, “아름답기만 해서는 부족하며 살아 있어야” 하는 ‘정원’을 위해 모종삽을 들고 나서기도 한다. 뉴캐슬의 자동차 전용도로 A167M과 A108 사이의 삼각형 모양 땅, 교통섬에 산딸기와 박하 모종을 들고 건너갈 때, 그는 두렵고 힘들다. 그렇지만 이 사소하고 이상해 보이는 행동은 ‘게릴라 정원 가꾸기 운동’을 만나면서 온기를 띤다. “이들 활동은 대담하게도 돌봄을 전면에 내세운다. 돌봄의 윤리를 공표함으로써 배려와 애정이 사적으로만 실천하는 무언가라는 편견, 요컨대 배려와 애정은 높은 벽에 둘러싸인 각자의 가정 내에서 아주 소수의 사람들끼리 실천하는 무언가라는, 건강하지는 않지만 널리 왜곡된 관념을 깨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실제로 있지만 지도에 그려지지 않은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실제로 없는데도 지도에 그려진 길 이야기도 재미있다. 지도의 저작권을 보호하려고 일부러 잘못 표시한 장소인 ‘트랩스트리트’는 실리적인 이유로 만들어졌지만, 이 작은 샛길을 보며 우리의 상상력은 새롭게 지펴진다. “이 샛길은 지도에 대한 환상을 건드리고 깨운다. 우리가 진짜라고 믿는 장소들, 예컨대 거리와 마을들이 실은 누군가가 만들어낸 것이고 진짜 세계와 섞여 있다는 환상. 이런 환상은 두려우면서도 매혹적이다.”


기이한 폐허, 부자연스러운 장소, 피난처, 틈새 공간. 분쟁지, 고립지, 유토피아. 사라진 장소들, 방향을 상실한 장소들, 감춰진 장소들, 유령의 장소들. 저자는 서른아홉 곳에 관한 서른아홉 개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모든 장소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문득 생각날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마흔 번째 장소가.

※ 이 글을 쓴 박사는 북 칼럼니스트이다.  

 

 

 

더네이버, 북, 지도에 없는 마을

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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