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비디 그라프트가 보는 세상

쏟아지는 이미지, 발전한 첨단 기술, 쉽고 빠른 문화의 소비. 획기적인 것이 많아서 아트의 가치가 쉽게 묻힐 수 있는 때, 비디 그라프트는 현시대에 필요한 질문을 제시한다.

2019.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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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술 인명 사전과 히틀러의 자서전에 노랑 종이를 오려 붙인 <Add Yellow> 프로젝트, ‘Biographies’, 2019

 

에술 인명 사전과 히틀러의 자서전에 노랑 종이를 오려 붙인 <Add Yellow> 프로젝트, MK Series’, 2019 

 

비디 그라프트(B.D Graft)는 신진 작가다. 독일에서 태어나 암스테르담에서 미술 작업을 하고 있는 그는 <Add Yellow> 프로젝트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커팅된 노란 종이 또는 붓 자국을 기존의 책이나 사진 위에 덧붙인 작업들이다. 마티스의 ‘컷아웃’ 시리즈나 이미지를 재구성한 존 발데사리의 아상블라주 작업이 떠오르기도 한다. 얼핏 별것 아닌 듯 보이는 매우 심플한 작업인데, 주목도가 크고 단순명료한 만큼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도 분명하다. “노란색을 약간 추가하면 내 것이 될까요(Is it mine if I add some yellow)?”라는 질문을 단순명료한 표현 방식으로 전하고 있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때 복잡한 방식보다는 심플한 방식을 선호해요. 마티스 작품의 미니멀리즘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또 옐로는 다른 원색들보다 상징성이 작아요. 그것이 오히려 저만의 메시지를 담는 데 도움이 되었어요.” 


생각해보면,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이미지의 편집물을 본다. 많은 것을 차용하고 리믹스하고, 심지어 소셜미디어의 리포스팅이 자연스러운 시대이기에 작가가 던지는 질문이 이상하지 않다. 작가도 원작자에 대한 존중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과거에 비해 창작물에 대한 경계가 모호해진 것은 사실이다. 패션 디자이너가 예술가의 작품 사진을 티셔츠에 프린트한다면, 그것은 그의 디자인일까? 버질 아블로가 모나리자 작품을 프린트해 오프화이트 라벨을 달아놓은 결과물은 그러한 질문을 던지게 하는 무수한 사례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노란색을 추가하면서 던진 작가의 첫 질문은 새로운 작품들을 통해 조금씩 다른 메시지를 파생시키고 있다. 그가 존경하는 피카소의 작품에 더한 옐로는 소유권이라는 쟁점과 함께 오마주로서의 의미도 크다. 좋아하는 피카소의 예술 세계에 자신만의 현대적 해석을 담고 싶었던 것. 한편 아돌프 히틀러의 자서전 <Mein Kampf(나의 투쟁)>에 덧붙인 노란 종이는 소유권에 대한 질문보다 히틀러에 대한 저항으로 보인다. 클래식한 화풍 외 다양한 예술 세계를 인정하지 못해 1937년 뮌헨에서 <퇴폐미술전>을 열었던 히틀러는 당시 활동하던 칸딘스키, 클레와 같은 작가의 작업을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키거나 불태워 없앴다. 한때는 신성하게 여겼을 그의 자서전에 옐로를 칠해 저항함으로써 그의 추악함을 알리는 작품이 바로 ‘MK 시리즈’인 것이다. 또 헌책방에서 발견한 오래된 예술 인명 사전의 낱장을 뜯어내 저마다 다른 형태의 노란 종이를 붙인 ‘바이오그래피’ 시리즈는 어떤가. 내용을 알 수 없게 옐로 조각으로 가렸지만, 그 자체로 당대의 기라성 같은 작가들을 현재의 시간으로 소환한다. 아마도 작가는 예술 인명 사전의 낱장을 가지고 작업하는 동안 그들에 대한 사전적 글을 옐로로 가리면서 적지 않은 희열을 느꼈을 터이다. 또 많은 사람들이 빽빽하게 모인 사진에서 옐로 조각으로 얼굴을 가린 ‘Crowd’는 그 자체로 완벽한 ‘군중’의 의미를 품게 되었다. 작가는 사진을 클로즈업해 작업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 얼굴 표정이 제각각인 것을 목격했지만 말이다. “작업하는 동안 얼굴 하나하나 들여다보는데 표정이 모두 달라요. 행복한 표정을 짓거나 놀라거나…. 모두의 표정을 전부 하나로 바꿨어요. 진짜 익명의 군중이 되는 것이죠.” 

 

 

‘Mountains’, 2017 

 

‘Peeing in Public’, 2019

 

‘Sunrise’, 2018

 

‘Yellow Plant’, 2018

 

‘Pink Monstera’, 2018

 

비디 그라프트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작가가 아니다. 그의 전공은 영화였고, 대학원에서는 영문학을 공부했다. 당시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어 고군분투했던 비디 그라프트는 어느 날 우연히 한국계 미국인인 작가 제프 제이킴의 권유로 콜라주를 시도해본다. 그것이 그의 미술 작가 활동의 시작이었다. “한번 해보라는 그의 말에 잡지를 찢거나 오려 붙여보았죠. 생각보다 쉬우면서도 표현력이 높은 결과물을 얻었고 재미가 있었어요.” 인생에서 무엇인가 창작하겠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지만, 그 표현 수단이 무엇이 될지는 확실하지 않았던 것. 지인의 작업을 보다가 시작한 콜라주는 그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치는 수단이 되었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발견하게 된다. 시나리오 작업을 하느라 자주 찾아본 이미지들이 콜라주 대상이 되곤 했는데, 자연스럽게 저작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서 쉽게 차용되는 이미지 작업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 하는 질문에 이른 것이다. 
 

 

서울이 아시아 방문 첫 도시라는 비디 그라프트. 음악을 좋아하고 인스타그램으로 소통하며 다양한 작업 방식을 찾는 젊은 작가이다. 

 

비디 그라프트가 옐로 프로젝트로 던진 저작권 문제, 즉 차용된 창작물이 누구의 소유인가 하는 질문은 디지털 콘텐츠가 양산되는 시대가 드러내는 특징이기도 하다. 그런 한편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이 존재하기에 비디 그라프트라는 작가의 생각이 전 세계 유저들에게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것도 현재라서 가능하다. 미술의 아카데믹 코스를 밟아 성장한 작가가 아닌, 비디 그라프트처럼 비전공자의 약진 또한 디지털 시대를 사는 작가로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어디서 공부했냐, 교수가 누구였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한 시절이 있었죠.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민주적인 방식으로 얻은 기회나 혜택을 마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혼자 힘으로 알릴 수 있잖아요. 또 어려운 경로가 아닌 쉬운 플랫폼을 통해 접근하고 받아들이죠. 제가 그런 걸 증명하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요.” 
 

 

작가 미상의 군중 사진에서 얼굴 부분을 칼로 도려낸 후 노란색 채색 종이를 댄 콜라주 프로젝트, ‘Dogs’, 2019(왼쪽)과 ‘Crowd’, 2019(오른쪽). 

 

그가 구축한 단순명료한 레이아웃에 호기심을 갖는 사람은 소수가 아닐 터. 인스타그램을 통해 비디 그라프트를 알게 된 전 세계 크리에이터들이 컬래버레이션이라는 명목으로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뮤지션의 앨범 재킷 작업은 물론, 올리브 오일 패키지, 원피스 패브릭이나 블랭킷 등을 만드는 많은 패션과 리빙 브랜드와 디자인 협업을 진행했다. 최근에는 버질 아블로가 직접 인스타그램 DM을 보내 협업을 제안하기도 했다. 서울을 방문하기 전 이미 그와의 작업을 끝냈는데, 오프화이트의 여성용 티셔츠 두 점은 오는 늦여름과 가을 사이에 공개될 예정이다. “패션, 음악, 아트도 그 경계가 모호한 시대라고 생각해요. 패션도 일종의 아트로 볼 수 있으니까요. 브랜드나 다른 아티스트와의 협업은 작품을 또 다른 방식으로 감상하는 거라 생각하거든요. 사람들이 제품에서 제 작업을 보고 즐거울 수 있다면, 저 또한 행복하죠.”

 

 

뮤트뮤즈와 비디 그라프트의 협업으로 탄생한 콜라주 옐로 컬러의 아뮤즈 백. 아트워크 와이드 스트랩에 작품이 프린트되어 있다.

 

성수동에서 열린 <The Art of Yellow> 전시는 국내 디자인 프로젝트 그룹 뮤트뮤즈의 제안으로 성사된 협업이다. 다수의 신작을 포함한 그의 작품 70여 점과 디자인 협업의 결과물인 가방과 문구류, 액세서리를 전시하고 있다. 전시장 곳곳에는 페인팅된 옐로 가벽과 옐로 조각 모양으로 커팅해놓은 곳도 눈에 띈다. 전시장에 흐르는 음악 또한 이번 전시를 위해 피아니스트 임보라가 직접 작품을 보면서 작곡한 곡이다. “클래식한 재즈 사운드이지만 컨템퍼러리해요. 옛 서적에 현대적인 메시지를 더한 방식과, 어느 순간 느리고 빠르고 힘찬 선율이 제 작품의 표현법과 닮아 있어요.” 전시가 오픈한 지 며칠되지 않아 작품의 1/3가량이 판매되었다. 작품 구입가는 적게는 20만원에서 많게는 80만원 전후로 저렴한 편이다. 가급적 판화보다 원작을 소유할 수 있었으면 하는 작가의 바람이 녹아 있는데, 그만큼 작업량도 상당하다. 지금처럼 전시 투어 같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거의 대부분 시간을 작업실에서 보낸다. ‘Plants’처럼 3~4일의 시간이 소요되는 큰 작업이 아니라면 하루 1점 정도는 완성하고야 만다. 비전공자로서 작업에 익숙해지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단다. 단숨에 스타가 된 듯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최근 작가는 드로잉에 집중하고 있는데, 온전히 자신만의 창작물을 만들고 싶은 뜻이 강해졌다. 식물을 그리는 그의 구상화는 점점 반추상화로 보이는 작품들로 변화하고 있다. 완벽한 추상을 추구하진 않지만, ‘Somewhere’나 ‘Rose Garden’ 같은 구상화와 추상화의 경계에 선 작품을 계속 그릴 예정이다. “지금이야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두려움은 있어요. 전업 작가로 계속 살 수 있을까, 어느 날 인스타그램이 없어지면 어떻게 하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죠. 더 나은 작업을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변화해나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드로잉 작품, ‘Plants’, 2019 ‘Rose Garden’, 2019(아래)

 

비디 그라프트 <The Art of Yellow>
<Add Yellow> 프로젝트와 드로잉 등 70여 점의 작품이 전시 중이다. 디자인 그룹 뮤트뮤즈와 협업해 이뤄진 전시장에는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재즈 아티스트 임보라의 연주곡 ‘Yellow Notes’가 흐른다. 뮤트뮤즈와의 협업 백과 액세서리, 문구류도 전시 판매되고 있다.
7월 31일까지 성동구 서울숲 6길 뮤트뮤즈 팝업 전시장

작품사진 @ Parenthese

 

 

 

더네이버, 인터뷰, 비디 그라프트, The Art of Yellow

CREDIT

EDITOR : 한지희PHOTO : 양성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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