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봄날의 특별한 만찬, 그리고 신동민

국내 컨템퍼러리 재패니즈 다이닝의 선두주자인 신동민 셰프가 아주 오랜만에 컬래버레이션 디너를 준비했다. 신중하기로 유명한 그이기에 더욱 기대되는 터. 신동민 셰프를 만나 그가 준비한 선물 같은 봄날의 다이닝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의 요리 인생을 들여다보았다.

2019.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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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밍화미코 문 앞에 서서 밝은 표정으로 오는 이를 맞이하는 신동민 셰프의 모습. 

 

12년만의 컬래버레이션 디너
무엇 하나 허투루 하지 않는다. 바야흐로 13년 전, 개념조차 생소하던 분자요리를 국내에 선보이며 다이닝 신에 혜성처럼 등장한 신동민 셰프. 그의 첫 레스토랑 슈밍화가 그랬고, 지금 그가 이끄는 슈밍화미코, 멘야미코, 당옥이 그렇다. 남들은 1년에 서너 번씩도 선보이는 컬래버레이션 디너를 12년 만에 진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역시 신동민 셰프답다’였다. 그리고 동시에 궁금증이 일었다. 그토록 철저한 그가 파트너로 선택한 이는 과연 누구일까. 

 

 아담하고 아늑한 슈밍화미코의 내부.

 

“처음 먹는 순간 ‘와!’라는 감탄사가 나왔어요. 굉장히 젊은 친구임에도 장인의 요리 같은 깊은 내공이 느껴지더라고요.” 2년 전, 도쿄 여행을 갔다 우연히 들른 작은 레스토랑 야마자키(Yamazaki)의 오너 셰프 야마자키 시로(Yamazaki Shiro)의 요리를 먹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야마자키 시로는 자신의 이름을 건 레스토랑을 오픈한 지 3개월 만에 미쉐린 1스타를 받으며 일본 다이닝 신에서 화제가 된 인물이다. 첫눈이 아닌, 첫입에 마음을 빼앗긴 신동민 셰프는 야마자키 시로 셰프에게 자신을 정식으로 소개하고 연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2번의 계절이 바뀌는 동안 둘은 이메일을 주고받고, 야마자키 셰프가 한국에 놀러 오기도 하며 좋은 동료 관계를 이어갔다. 요리에 대한 태도와 가치관이 비슷한 그들이 단 한 번의 디너 코스를 위해 힘을 모으기로 의기투합하게 된 건 야마자키 시로 셰프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처음 제안을 받고 많이 고민했어요. 사실 지금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고 있어서 굉장히 바쁘거든요. 어설프게 할 바엔 아예 안 하겠다는 주의라서 완벽한 컬래버레이션 디너를 선보일 수 있을지 걱정이 됐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마자키 시로 셰프가 내민 손을 잡게 된 것은 그동안 신동민 셰프를 믿고 그의 요리를 사랑해준 손님들에게 보답하고 오랜만에 만난 마음 맞는 동료와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손재주가 뛰어난 신동민 셰프가 직접 만든 알 공예품. 레스토랑 입구에 전시돼 있다. 

 

5월 2일 오후 7시, 단 한 타임만 진행되는 컬래버레이션 디너를 위해 두 셰프는 4개월간 밤낮없이 메시지를 주고받고, 바다를 수차례 오가며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준비했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일본 가이세키 요리 첫 코스에 등장하는 국물 요리인 오완을 만들 때 사용할 물을 선정하는 것이었다. 국물 맛만 보아도 셰프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일식에서 오완은 요리의 얼굴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흔히 오완의 국물 맛을 좌우하는 것은 오완을 끓일 때 들어가는 식재료뿐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재료의 맛을 오롯이 품어내는 역할을 하는 물 역시 맛의 키가 된다. 남들이 보기엔 ‘고작’ 물이겠지만, 두 셰프는 미묘한 맛의 변화를 가져다줄 물을 고르기 위해 수없이 테이스팅한 후 백두산의 물과 한라산의 물을 일정 비율로 섞어서 사용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임을 발견했다. 물 선정에 이토록 녹록지 않은 과정을 거친 것만 봐도 이번 컬래버레이션 디너의 메뉴가 허투루 준비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이 정성을 기울인 것은 요리뿐만이 아니다. 요리가 담기는 그릇까지 신중히 골라 단 한 번의 디너 코스에 완벽을 기한다. 이를 위해 신동민 셰프는 도자 부문 국가무형문화재 백산 김정옥 선생의 그릇을 대여받기 위해 삼고초려하기도 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지금 그가 걷고 있는 길은 이윤 추구와는 거리가 먼 길임이 자명해졌다. “처음부터 수익은 고려하지 않았어요. 그랬다면 이토록 공들여 준비한 메뉴를 단 한 타임만 선보이지 않겠죠. 그저 진짜 ‘요리’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의 대답에서 진짜 요리를 사랑하는 이만이 내비칠 수 있는 진정성이 읽혔다.

 

이번 컬래버레이션 디너에서 선보일 메뉴 중 하나인 섬진강 벚굴 앙카케와 디저트. 섬진강 벚굴 앙카케는 쫀득한 튀김옷과 굴의 풍부한 육즙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3막에 접어든 그의 요리 인생
2007년, 그해는 신동민 셰프의 요리 세계와 인생이 전환점을 맞은 해다. 그리고 젊은 나이에 슈밍화를 오픈하고 승승장구하던 그가 자취를 감춘 해이기도 하다. “슈밍화를 오픈한 이래로 매일 3시간씩 자면서 일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졸음 운전으로 큰 교통사고가 났죠. 병원에 누워 있으면서 그동안의 시간을 돌아봤어요. 그리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더는 할 수 없겠구나.” 현란한 퍼포먼스로 점철된 메뉴를 선보이던 슈밍화는 열두 가지 메뉴를 매달 바꿔가며 내놓았다. 최상급 요리를 선보이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도 계절에 따라 신메뉴를 선보인다. 매달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는 것은 그만큼 고된 일. 그에게 어느 날 찾아온 교통사고는 폭주 기관차처럼 앞만 보고 달리던 그를 급제동시키고 자신을 재점검하는 시간을 갖게 했다. 예기치 않게 찾아온 기나긴 성찰 속에서 얻은 것은 회의감이었다. “그땐 기교에만 치중한 요리를 선보였더라고요.” 전성기를 맞이한 슈밍화를 하루아침에 접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식재료를 공부하기 위해 떠났다. 일본을 다시 찾은 그는 여러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재료를 공부하기 위해 도축장에서만 1년의 시간을 보내는 등 자신을 채우는 일에 온전히 집중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신동민 셰프는 달라져 있었다. 좋은 식재료가 내는 깊은 맛의 힘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으며 격식 없이 편안한 식사가 가져다주는 마법 같은 시간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섬진강 벚굴을 손질하고 있는 신동민 셰프. 섬진강 벚굴은 딱 이맘때만 맛볼 수 있는 식재료다.

 

2011년, 신동민 셰프는 다시 시작했다. 기존의 레스토랑 슈밍화에 미코(味行)를 덧붙여 이름을 지었다. 맛 미(味), 갈 행(行) 두 한자를 접목해 직접 만든 이 단어는 맛으로 향하는 길목이 되어주겠다는 셰프의 의지를 담은 이름이다. 어깨의 힘을 뺀 슈밍화미코의 요리는 한결 편안해졌다. 한 차례 성장한 셰프는 슈밍화미코를 통해 식재료 본연의 맛을 하나의 접시에 잘 녹여낸 요리를 선보인다. 물론 이전의 경험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분자요리를 위해 쌓은 요리에 대한 과학적 지식은 셰프가 원하는 맛을 보다 치밀하게 구현할 수 있는 든든한 원천이다. 예를 들면 감칠맛이 풍부한 국물을 위해 그는 과학적 지식을 활용한다. 정확히 60℃에서 2~3시간 우린 다시마 물을 사이폰 기계 아래쪽에 넣고 가열하면 글루탐산나트륨이 풍부한 다시마물 증기가 올라가 위층의 이노신산이 풍부한 가쓰오부시와 만나게 되는데, 이 순간 감칠맛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그의 시그너처 메뉴이기도 한 사이폰 오완은 과거의 그가 있었기에 탄생할 수 있었던 메뉴다. 

 

신동민 셰프가 디저트를 플레이팅하고 있다. 

 

신동민 셰프의 요리를 아끼는 마니아층이 탄탄했던 만큼 슈밍화미코는 금방 입소문을 타 자리 잡게 되었다. 슈밍화미코를 안정 궤도에 올린 후 그는 슈밍화미코보다도 더 캐주얼한 덮밥, 우동 등을 주력으로 판매하는 멘야미코를 오픈했다. 그리고 최근엔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의 디저트를 선보이는 당옥까지 선보였다. 하이엔드 다이닝의 최전방을 달리던 그였기에 기존의 파인 다이닝에 대한 욕심은 없는지 물었다. 신동민 셰프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전혀 후회되지도, 아쉽지도 않아요. 전 늘 순간에 제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있는 힘껏 해보거든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라는 것이 스스로 납득될 때까지 극한을 향해 달려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대답이었다. 


그의 요리 인생을 연극으로 친다면 화려한 기교로 모두의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드는 요리를 선보인 슈밍화 시절이 1막, 인고의 시간을 거쳐 내실을 다진 뒤 식재료 본연의 맛에 충실한 다이닝을 선보이는 슈밍화미코 시절을 2막이라 볼 수 있다. 그의 요리 인생 3막이 궁금해졌다. 신동민 셰프는 자신의 요리 인생 3막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지금 국내엔 훌륭한 파인 다이닝 요리를 선보이는 멋진 후배들이 많아요. 그러나 파인 다이닝 요리를 계속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저는 후배들에게 자신만의 정점을 찍은 후의 삶에 대해 본보기가 되고 싶어요.” 그가 선택한 길은 요리의 퀄리티는 잃지 않되 보다 합리적인 가격과 높은 접근성으로 많은 이들에게 완성도 높은 요리를 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4월 멘야미코의 분점도 오픈했다. 자신의 요리 인생이 몇 막까지 계속될 것 같으냐는 질문에 보통 연극의 구성을 보면 12막은 넘지 않냐고 반문하는 신동민 셰프. 지나간 시간 중 후회되는 순간이 단 한 순간도 없을 만큼 매 순간 온 몸을 내던지는 그이기에 신동민 셰프가 보여줄 앞으로의 새로운 막이 어떤 모습일지 기대하게 된다. 

 

 

 

더네이버, 인터뷰, 신동민

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박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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