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일본인이면서 독일어로 글을 쓴다. 일본어로 쓴 작품도, 독일어로 쓴 작품도 여러 차례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사이에 존재하는 자신의 기묘한 위치 때문에 다양한 질문을 받곤 한다. 예를 들어, 독일인은 독일어 이외의 언어로는 거의 글을 쓰지 않는다. 그들은 저자에게 “당신은 독일 사람으로서 글을 쓰나요, 아니면 일본인으로서 글을 쓰나요?”라고 질문한다. ‘어느 나라 사람으로서’라는 자각이 없는 저자를 당황하게 하는 질문이다. 누구에게나 여러 문화와 언어가 뒤섞여 있으니까 순수 독일인, 순수 일본인이라는 건 없는 셈이라고, 저자는 생각한다. 

독일인과 미국인은 또 다르다.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은 장소와 언어에 대한 감각과 태도가 독일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들은 “지금 미국에 있으니까 영어로도 소설을 쓰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이 또한 저자를 당황하게 하는 말이다. 소설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언어를 부린다는 것은 그저 기술이 아니고, 새 단어가 저장되어 있던 단어와 핏줄처럼 이어지는 생명의 작업이니까. 프랑스인의 태도는 남다르다. 그들은 “왜 프랑스어가 아닌 독일어로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묻는다. 저자는 말한다. “왜 모어가 아닌 외국어로 쓰느냐는 질문이라면 드물지 않다. 그렇지만 그 외국어가 왜 프랑스어가 아니냐고 물으면 답하기 어렵다.” 그들의 확고한 자국 중심주의가 확연히 드러난 인상적인 질문이다. 저자가 자리 잡은 곳은 정확하게 말하면 일본도 아니고 독일도 아니고 그 사이 어디다. 저자는 말한다. “나는 경계를 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경계의 주민이 되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계를 실감할 수 있는 그 망설임의 순간에 언어 이상의 중요한 무언가를 느낀다.” 이해하기 어렵다면 이런 표현은 어떨까. “나는 많은 언어를 학습하는 것 자체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다. 언어 자체보다 두 언어 사이의 좁은 공간이 중요하다. 나는 A어로도 B어로도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A어와 B어 사이에서 시적 계곡을 발견해 떨어지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의 부제는 ‘엑소포니, 모어 바깥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엑소포니’란 ‘모어 바깥으로 나간 상태 일반, 또는 모어가 아닌 언어로 쓴 문학’을 의미한다. 모어란 무엇인가. 모어는 모국어와 다르다. 모국어가 국민으로 태어난 나라의 국어라면, 모어는 태어나서 처음 익힌 말을 뜻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모어와 모국어가 일치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언어에 대한 무수한 경우가 나온다.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두 가지 이상의 언어를 사용한다. 저자는 말한다. “엑소포니는 어떤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한 번 이동하고 끝나는 운동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동할 수 있는 날개를 가진 정신을 뜻한다”고. 그렇다. 언어를 배울 때, 우리는 또 다른 광활한 정신에 접속한다. 이 책은 그에 대한 생생한 실례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우리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기는 하다. 사용 언어가 늘면 접할 수 있는 정보량도 는다는 건 단순한 산수만 할 수 있어도 알 수 있는 일. 그러나 이 책은 광대한 심해를 유영하는 물고기처럼, 우리가 생각지 못한 세계를 보여준다. 독일어 시인 파울 첼란은 파리에서 살면서 독일어로만 시를 썼는데, 그것은 그가 닫힌 세계 안에 주저앉았다는 이야기와 같지 않다. “시인은 오직 한 언어로만 시를 쓸 수 있다”는 말을 남겼는데, 그 ‘한 언어’의 깊이와 폭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저자는 첼란의 ‘독일어’에 프랑스어도 러시아어도 들어 있었다며, 여러 언어가 그물코처럼 서로 꼬인 풍경을 구체적인 예로 보여준다. 저자는 말한다. “나는 복수 언어로 글을 쓰는 작가에게만 특별히 흥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모어 바깥으로 나가지 않아도 모어 안에서 복수의 언어를 창조하면 ‘밖’이나 ‘안’이 나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납작하고 평평하게 펼쳐지던 지리적 감각은 그 위에 언어의 층이 얽히고설키면서 더욱 다채롭고 아름다워진다. 세계 다양한 곳을 다니며 다양한 작가의 말에 귀 기울여 온 저자는 그 아름다운 풍경을 온전히 열어 보여준다. 언어들이 섞이면서 인간의 정신은 더 높고 정교한 차원으로 솟아오른다.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데 귀로는 음악이 들리는 것 같다. “이 세계에는 여러 가지 음악이 울리고 있다. 자기가 있는, 모어가 들리는 곳에서 벗어나 밖으로 나가면 어떤 음악이 들릴까. 그것은 모험이다.” 그렇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음악 속을 헤엄치는 모험담이다. 

※ 이 글을 쓴 박사는 북 칼럼니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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