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한 해를 맞아 자세를 가다듬었는가. 시각의 전환을 일으킬 현대미술 전시와 삶을 돌아보게 하는 세 편의 영화가 심기일전의 씨앗이 되어줄 것이다.
2025.12.31
1 장파, ‘Gore Deco Stupidity’, 2025, Oil, oil pastel, silkscreen, transfer print on linen, 145.5×112.1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 2 장파, ‘Gore Deco The Origin of the World’, 2025, Oil, oil pastel, silkscreen, transfer print on linen. 227.3×162.1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 3 장파, ‘Drawing for Gore Deco #1’, 2025, Charcoal on paper, 112×76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
여성의 몸, 그것도 내장, 성기, 뇌, 분리된 눈, 코, 입과 해골을 묘사한 회화가 대형 전시실에 펼쳐진다. 국제갤러리 K1과 K2 전관에 걸쳐. 이는 도발적이고 강렬한 여성 신체 묘사를 통해 남성 중심적 시선에 균열을 일으켜온 작가 장파의 개인전 풍경이다. <고어 데코(Gore Deco)>라는 제목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의미하는 ‘고어’와 표피적이라 여겨온 장식적 요소를 뜻하는 ‘데코’를 묶어 직관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제목 그대로 전시장은 고어하고 장식적인 이미지로 가득하다. 특히 K1 안쪽 전시실에는 핏빛 내장으로 채워진 십자가 캔버스와 기독교의 상징을 뒤집은 역삼각형 작품이 신성시되는 전통을 냉소적으로 비튼다. 온라인에서 발견한 여성혐오적 이미지와 댓글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유머러스한 작품들은 짜릿한 쾌감을 선사한다.

1, 2 다니엘 보이드, ‘Untitled (STGLWOAGLM), Untitled (FWIGSKWIK)’, 2025, Oil, archival glue and screen print on canvas, 29×21cm(each).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Photo by Joshua Morris. 3 다니엘 보이드, ‘Untitled (BCJCVET)’, 2025, Oil, acrylic and archival glue on paper mounted to canvas, 80×8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Photo by Joshua Morris.
국제갤러리가 호주 케언즈 원주민 혈통의 작가 다니엘 보이드의 개인전 <피네간의 경야>를 개최한다. 전시 제목은 제임스 조이스의 동명 소설에서 따온 것으로,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는 소설의 서사 구조와 다각화된 시선을 내세우는 작업 방식의 연결고리를 상징한다. 그동안 서구 중심의 역사관과 고착화된 권력 구조를 비판해온 작가는 이번에 1958년 호주 정부가 제작한 아동용 만화 <The Inland Sea>에 주목했다. 식민주의에 기반한 세계관을 어린이에게 주입하는 만화의 도상을 가져와 작가의 상징과 같은 점으로 채웠는데, 위계가 없는 형태인 원형 렌즈는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일깨운다. 국제갤러리 K3와 한옥 공간에서 2월 15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무나씨, ‘석원’, 2025, Ink on Korean paper, 175×290cm.
한지에 먹과 아크릴 물감으로 관계의 정경을 묘사하는 작가 무나씨의 개인전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가 스페이스K에서 2월 13일까지 열린다. 인물과 물, 돌, 나무 등 자연물이 어우러진 흑백 풍경이 수묵화의 담담하고 정제된 풍경을 연상시키는 한편, 세필 붓으로 남긴 세밀한 선이 감정의 미세한 떨림을 파동처럼 반영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높이 5m에 이르는 ‘고사관수도’, 전체 폭 7m 병풍 형태의 ‘마음을 담아’ 등 대작을 만나볼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자연과 자연의 관계를 고요히 관조하는 작품을 통해 겨울, 차분한 명상의 공간으로 진입하길 바란다.

1 정희민, ‘접히고 당겨져 1’, 2025, 청동, 323×94×145cm. ©정희민, 사진 전병철. 2 정희민, ‘구체들’, 2025, 캔버스에 아크릴릭, 겔 미디엄 그리고 UV 프린트, 89×130cm. ©정희민, 사진 전병철.
타데우스 로팍 서울에서 조각을 중심에 둔 두 가지 전시가 나란히 막을 올렸다. 갤러리 1층은 한국 작가 정희민, 2층은 호안 미로의 작품으로 채웠는데, 그중 정희민 개인전 <번민의 정원>에서는 작가의 신작 회화와 청동 조각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간 특유의 겔 미디엄 기법으로 가상 물질을 연상시키는 입체적 부조 작품을 선보여온 작가는 전시장에 디지털 시대의 가상공간을 인공 정원처럼 펼쳐낸다. “나는 인공과 자연을 분리된 세계로 보지 않는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비틀린 나뭇가지 같은 조각이 디지털 왜곡 과정을 통해 구현된 결과물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전시는 2월 7일 막을 내린다.

1, 2, 3 <근접한 세계> 전시 전경,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025.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아직은 낯선 아랍 문화권의 미술과 가까워질 기회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아부다비 음악예술재단과의 공동 기획으로 국제교류전 <근접한 세계>를 서소문 본관에서 개최한다. 국내 최대 규모의 아랍에미리트 현대미술 전시로, 아랍에미리트 기반의 작가 40여 팀의 작품 110점을 모았다. 전시는 3개 섹션으로 구성된다. 먼저 ‘회전의 장소’는 집이라는 일상적 공간을 낯선 무대로 전환해 내면 세계와 외부 세계의 충돌을 시각화한 작품이 중심에 있다. 두 번째 섹션인 ‘지형이 아닌, 거리를 기록하기’에서는 관계와 권력으로 형성된 공간의 의미를 묻는다. 마지막 섹션 ‘그것, 양서류’는 아랍에미리트 예술 커뮤니티의 혼종성을 조명한다. 아랍 예술이라고 해서 어렵게 느낄 필요는 없다. 가족, 기억, 도시화, 가상 세계 등 동시대 세계인이라면 공감할 주제 의식을 발견할 것이니. 전시는 3월 29일까지 이어진다.

영화사의 판도를 바꾼 혁명적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의 폭풍전야. 바로 장-뤽 고다르의 문제적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가 촬영된 1959년이 영화 <누벨 바그>의 배경이다.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신작은 고다르와 주연 배우 진 시버그, 장-폴 벨몽도를 중심으로 <네 멋대로 해라>의 탄생 과정을 쫓는다. 고다르를 향한 애정을 공공연하게 표현한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치기 어린 젊은 예술가들이 분투하며 오직 영화에만 매진한 시네마의 황금기를 흑백 화면에 소환한다. 아녜스 바르다, 로베르토 로셀리니, 장 콕토, 로베르 브레송 등 이제는 세상을 떠난 당대 영화인들까지 짧게나마 등장하니 지난 시절에 향수를 품은 시네필이라면 분명 애틋할 것이다.
개봉 12월 31일

명작은 시대를 타지 않는다. 아니 시간을 거슬러 기어코 관객의 마음에 생채기를 남긴다. 현대 영화 걸작 리스트에 매번 이름을 올리는 에드워드 양 감독의 2000년 작 <하나 그리고 둘>이 4K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개봉한다. 타이베이의 한 가족을 따르는 영화는 결혼식으로 막을 열어 장례식으로 끝을 맺는다. 카메라로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는 초등학생 양양을 중심으로 10대 청소년과 중년의 부모, 노년의 조부모 세대를 아우르며 도시인의 일상 풍경을 연민 없이, 그러나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담아낸다. 양양이 포착한 뒷모습은 곧 우리 자신이 볼 수 없는 나의 이면이기도 하다. 한 해를
닫고 여는 작품으로 이만한 영화가 있을까.
개봉 12월 31일

짐 자무시의 신작이자 2025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영화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가 개봉한다.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 3부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로, 각각 미국 북동부 시골과 아일랜드 더블린,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한다. <커피와 담배>, <지상의 밤> 등 형식적으로 미니멀한 감독의 전작을 연상시키지만, 배우진은 아주 화려하다. 톰 웨이츠와 애덤 드라이버가 부자지간, 샬롯 램플링과 케이트 블란쳇·비키 크립스 자매가 모녀지간으로 등장해 장성한 자식과 나이 든 부모의 관계 역할을 선보인다.
짐 자무시의 노련한 스케치는 놓친 줄도 몰랐던 삶의 소중한 조각을 붙들게 한다.
개봉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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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박지형PHO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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