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그 도시의 숙녀들

이 책을 여행기라는 말로 단정할 수 있을까? 저자인 제사 크리스핀은 아파트를 처분해 유럽의 아홉 도시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죽은 숙녀들의 사회>로 돌아왔다.

2018.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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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만난 예술가들’이라는 부제를 보고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혹은 잘 모르는 예술가들의 삶에 대한 흥미로운 정보를 얻겠구나, 생각하며 첫 장을 넘긴 이들은 이내 자기의 부엌에서 경찰 두 명과 대치한 엉망진창의 여자를 만나게 된다. 경찰에게 자신은 자살할 예정이 아니라고 서툴게 설명하는, 그러나 바로 자살의 초입까지 가서 목덜미가 잡힌 여자. 
그 여자가 경찰을 돌려보낸 뒤 자살이 아니라 여행을 선택한 것은 절망 속에서도 몇 가지 통찰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찰 하나는 ‘내게는 살 이유와 계획이 필요하고 그게 내 안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 또 하나는 ‘파괴되어야 할 건 살아 있는 내 육체가 아니라 내가 그 육체로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죽음이 아닌 떠남을 선택한다. 어떻게 버티고 살아가야 할지 말해줄 수 있는 이들을 찾아서. 죽은 숙녀들을 찾아서 간다. 이 책에서 예술가들은 이전에 보던 것과는 많이 다른데, 그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정보를 더 많이 들려주기 때문이 아니다. 절망한 저자는 죽은 예술가들의 절망에 공명한다. 그들의 성과를 인정하지만 그것에 매혹되어 길을 잃지 않는다. 덕분에, 예술가들의 가려진 면모가 온전히 드러난다. 그것을 보다 보면 우리에게 예술가의 절망이란 그저 반 고흐 스타일의 고뇌라는 식으로 납작하게 라벨링된 것이었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 난다. 저자는 자신의 상처를 삽자루처럼 쥐고 예술가들의 나머지 반쪽을 발굴한다. 공감하고, 욕하고, 애잔해하고, 사랑하고, 감탄하며. 
이 책은 일종의 여행기다. 그렇지만 ‘여행기’라는 단어는 너무 가볍게 느껴진다. 저자는 시카고의 아파트를 처분하고, 짐을 처분하고, ‘인생을 두 개의 여행 가방에 증류해 담은 뒤’ 첫 번째 도시 베를린으로 떠난다. 돌아올 곳을 없애고 스스로 뿌리를 뽑는 일은 여행자보다 수도자의 자세에 더 가깝다. “돌아갈 집이 있다면 이 모든 게 더 쉬웠을까, 아니면 더 어려웠을까? 다른 갈 곳이, 나를 받아줄 사람이 없다는 걸 알면 사람은 대담해지는 동시에 소심해진다.” 대담함은 멀리 보게 하고, 소심함은 더 섬세하고 깊이 있게 보게 한다. 우리가 듣는 이야기는 이런 방식으로 더 넓어지고 두터워진다. 여행은 크게 두 차원으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는 공간이다. ‘집’을 찾고 싶었던 저자는 그곳이 어디건 자신의 발목을 잡는 도시를 만나기를 원한다. ‘항상 내가 지금 있지 않는 장소를 갈망’해온 저자에게 ‘집’이란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이상향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저자는 부지런한 여행자는 아니다. 숙소 침대에서 일어나기 싫어 인터넷에서 피자 시켜 먹을까 궁리하고, 오직 수박과 보드카를 사기 위해서만 외출하기도 한다. 안팎으로 냄새 맡고 돌아다니는 시궁쥐 스타일은 아니지만, 저자는 아주 느린 속도로 그 도시를 알아간다. 도시와 사귄다. 그러고 나서 내린 결론은 명쾌하다. “고향처럼 느껴지는 도시가 여태 없었다는 건 앞으로도 없으리라는 뜻일 테다. 뒤집어보면, 모든 도시가 내게는 똑같이 고향이라는 뜻이다.”
또 하나의 차원은 작가다. 저자가 도시를 선택하는 기준은 그곳에 살았던 작가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윌리엄 제임스의 흔적을 만나기 위해 베를린에 가고, 트리에스테에서 노라 바너클을 상상한다. 사라예보를 지나며 리베카 웨스트를 생각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서머싯 몸을 그린다. 그 과정에서 시간과 역사가 짜여져 들어가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들려준 이야기가 생기를 더한다. 평면의 도시에 굴곡과 깊이가 생긴다. 그리고 이야기, 이야기들이 생긴다. 
이 모든 이야기는 결국 작가 자신의 이야기다. 예술가들에게서 끌어낸 이야기를 그는 자신의 안에 펼쳐놓고 선택하고 섞고 씹고 핥는다. 예술가 본인의 삶이 아니라 그의 삶, 그의 선택이 기준이 된다. 읽는 이들은 어쩔 수 없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의 여행이 끝나가는 것을 보면서 섭섭한 만큼이나 홀가분해지는 감정의 변화는 그의 절망이 옅어지는 속도를 따라간다. “이 여정에서 나는 하나의 도시를 선물로 받진 못했지만, 그만큼이나 넉넉한 것을 얻었다. 세상 속을 누비는 능력을 얻었다”라는 문장에서 비로소 우리는 기나긴 여행이 둥그렇게 돌아 제자리로, 그러나 더 높은 자리로 왔음을 안다. 그 여자는 여전히 자신의 부엌에 서겠지만 그 여자의 옆에 있는 건 싸구려 인스턴트식품과 경찰 두 명은 아닐 것이다.  
※ 이 글을 쓴 박사는 북 칼럼니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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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설미현PHOTO :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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