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의심하라, 기억을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은퇴한 연쇄 살인범 앞에 나타난 의문의 남자. 진짜 살인범은 과연 나인가, 그놈인가. 김영하 작가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이 영화로 제작됐다.

2017.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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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은 생각보다 번다하고 구질구질한 작업이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의 동명 원작 소설 속 문장은 이 흥미로운 이야기에 대한 은유와 같다. 이 번다하고 구질구질한 작업, 살인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던 연쇄 살인범 병수(설경구 분)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 25년 전 이후 살인을 한 적이 없음에도, 다시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이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에 저지른 일이 아닐까 불안해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만난 경찰 태주(김남길 분)에게서 과거의 자신을 발견한 병수는, 딸 은희(설현 분)를 그에게서 보호하고자 한다. 하지만 기억을 잃은 병수에게 실제와 망상,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기란 무척 어렵다.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은 기억하기 위하여 자신에게 벌어진 모든 일을 꼼꼼히 적는 살인자의 일지 1인칭으로 쓰여 있어 그의 시점으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지켜보게 만든다. 그리고 이는 이야기의 반전이 되는 아주 훌륭한 트릭이다.

 

아마도 원신연 감독은 이 트릭에 반해서 이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마지막 몇 장의 반전, 진실을 위해 숨 쉴 틈 없이 달려가는 이야기, 스릴러라는 장르 안에서 언제나 반전을 기대하는 관객을 만족시키기에 맞춤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이야기를 직조한 사람은 바로 김영하 작가다. 김영하 작가는 tvN의 <알.쓸.신.잡>을 통해 한 번 더 대중의 시야에 들어왔고, 덕분에 <살인자의 기억법> 역시 한층 관심을 받는 작품이 됐다. 하지만 이는 양날의 검이다. 영화의 마지막 반전이 소설의 그것과 일치한다면 이미 결론을 알고 있는, 스포일러에 유난히 예민한 한국의 관객들이 과연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보기 위해서 영화관을 찾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원신연 감독은 개성 만점의 배우 네 명을 소환했다. 병수 역을 맡은 설경구는 올해, 데뷔 후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전작인 <불한당>이 예기치 않은 논란에 휩싸이며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배우 인생 네 번째로 칸 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을 수 있었고, ‘불한당원’이라 불리는 두터운 팬층을 형성하며 배우의 다음 발걸음에 힘을 실어줄 든든한 지원군이 생겼다. 비록 <살인자의 기억법> 속 병수는 노인이기에 <불한당>에서의 모습과 전혀 다르겠지만, 배우의 연기를 지속적으로 지켜보고 응원할 준비가 되어 있는 단단한 지지층의 존재는 소중하다. 게다가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해 기억 속을 헤매며 진실을 찾아야 하는 병수는 배우로서 충분히 욕심낼 만한 캐릭터다. 
그리고 김남길. 지난해 <판도라>와 <어느날>로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힌 김남길에게, <살인자의 기억법>은 또 한 번의 특별한 도전이다. 병수에게 연쇄 살인범으로 의심받는 경찰인 태주는 이 이야기 속 진실의 키를 쥔 인물이다. <강남 1970>으로 아이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게 하는 인상적 연기를 보여준 설현이 병수의 딸 은희로 출연하고, 오달수는 병수의 오랜 친구인 파출소장 병만 역할을 맡아 든든히 받쳐준다. 이 배우들의 시너지를 생각할 때, <살인자의 기억법>이 긴 여름을 통과한 관객들의 등줄기에 한 줄기 시원한 바람과 같은 서늘함을 선사할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 보인다. 아무렇지 않게, 중독된 쾌감에 따라 기계적으로 사람을 죽이던 연쇄 살인범이 발견할 삶의 진실, 생의 반전은 과연 무엇일까. 벌써 궁금해졌다면 소설을 집어 들고,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을 조금 더 기다릴 수 있다면 9월의 영화관이다. 

 

이 글을 쓴 윤이나는 영화 칼럼니스트이자 <미쓰윤의 알바일지>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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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윤이나PHOTO : 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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