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디지털 디톡스

무서우리만큼 삶 속에 촘촘히 침투한 디지털 세상. 이제 ‘디지털 디톡스’는 단순히 피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자신만의 디톡스법을 찾아야 할 때다.

2017.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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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어느 항공사 출장차 비행기에 올랐을 때다. 기내 전 좌석에서 비행 내내 와이파이를 즐길 수 있다는 파격적인 희소식을 들었다. 그것도 단돈 17유로로! 분명 그때만 해도 희소식이었다. 벨트를 단단히 매고 답답한 운동화 대신 슬리퍼로 갈아 신고 본격적인 비행 채비를 끝냈다. 그 후 내가 잠시도 쉬지 않고 한 일은? (여행 중엔 자주 만지지 못할 것 같아서) 평소보다 애틋해진 스마트폰과의 한층 더 내밀한 소통. 
처음엔 비행기에서 정말 인터넷 연결이 되는지 호기심에 열었다. 그러다 #유럽출장 #출장스타그램 #이얼마만의유럽 같은 시답지 않은 해시태그를 붙여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다. 사진을 올리고 나니 이번엔 누가 ‘좋아요’를 눌렀나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자고로 ‘가는 좋아요 없이 오는 좋아요 없는’ 소통의 세상이기에 눌러준 이들의 계정에 들어가 ‘좋아요’를 갚는다. 아, 이제는 영화 감상을 즐겨볼까? 기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에 무수히 잠자고 있는 영화 리스트 사이에서 숱하게 ‘미리보기’를 버튼을 누르다 결국은 결정 장애가 온다. 다행히 내 손안에 구세주가 있다! 초록 포털 창에서 검색 한 번이면 영화의 평점, 감독의 전작, 배우의 정보가 줄줄 나온다. 기내 모니터와 스마트폰을 번갈아가며 자못 심각한 고민에 빠지다 영화 하나를 재생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흐른다. 기내식을 고를 때도, 와인 리스트를 볼 때도, 기내 면세점 잡지를 보면서도 대체로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그러다 보면 유럽은 어느새 코앞에 와 있다. 
한번은 몰디브 출장에서 재미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눈부신 에메랄드빛 바다, 몸을 기분 좋게 간질이는 딱 적당한 온도의 바람, 지저귀는 새소리나 나뭇잎이 부딪치는 서걱거리는 소리가 전부인 낭만의 순간, 눈앞에 놓인 먹음직스러운 요리 앞에서 허니문으로 떠나온 신혼부부들이 자신의 배우자보다 더 사랑에 빠진 것이 있었으니, 바로 스마트폰이었다.
실제로 스마트한 세상은 가족 여행의 패러다임도 완전히 바꿔놓았다고 한다. 평소에 좀체 대화가 없는 가족에게 연중행사 같은 여행은 그나마 대화의 물꼬를 트는 기회였지만, 지나치게 똑똑한 세상은 이마저도 단절시켰다. <외로워지는 사람들>의 저자 셰리 터클은 책에서 “친구, 가족과 시간을 보내면서도 눈앞의 상대방에게 어떤 관심도 주지 않는 방법을 발견했다”며 그 원인을 스마트폰으로 지적했다. 오늘은 어딜 갈지, 무엇을 먹을지를 정할 때에야 겨우 몇 마디 나누는 정도고, 여정을 마친 밤이 되면 저마다 밀린 SNS에 몰두하느라 여념이 없는 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엘리자베스 번스타인 기자는 “우리가 디지털에 접속되어 있는 동안, 전자제품이 서로를 떼어놓는다”고 말했다. 
새로운 디지털 디톡스법이 필요한 이유다. ‘디지털 디톡스’라는 말이 처음 유행했을 때 ‘여행’은 늘 모범 답안 가운데 하나였으니까. 오로지 나에 집중하고 휴식을 취하는 ‘비우는 시간’이었던 여행은 점점 디지털의 산만한 요소로 꽉 채워지고 있다. 삶 속 깊숙이, 촘촘히 침투한 디지털 세상에서 누구에게나 정답인 디지털 디톡스법은 없다. 이것은 모두에게 똑같은 다이어트 방법을 강요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잘 알려진 디지털 디톡스법과 부작용을 대입해볼까? 

 

자는 동안 스마트폰을 꺼두세요. 새로운 카톡 메시지가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오히려 잠들지 못할 수 있다.
매일 산책을 즐겨라. 지금 내가 몇 보를 걸었는지 앱을 통해 수시로 체크하는 당신의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SNS 메신저 대신 직접 대화하라. 카카오톡을 포기하는 순간 인간관계도 함께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
컬러링북에 색을 칠하라. 스마트폰을 보고 싶어 열불이 나는 당신은 자신도 모르게 강렬한 빨간색으로 지면을 가득 채울 수 있다. 

 

다이어트의 가장 큰 실패 요인 중 하나는 ‘무조건 굶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다. 디지털 디톡스도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그러나 현실 가능성은 없는 ‘스마트폰을 멀리하라’ 같은 조언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디지털 디톡스로 인해 오히려 강박과 중독 증세를 부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자신만의 효과적인 디톡스법을 찾는 것. 여기서 더욱 중요한 건 하나를 얻는 대신 따르는 다른 한편의 불편함을 즐길 줄 아는 자세다.

 

최현정  카피라이터, <빨간머리N> 저자 
평소 컴퓨터와 ‘붙어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디지털 세상과 가깝다. 그러나 하나의 원칙이 있다면 책만큼은 절대 디지털로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디지털 세상에 싫증이 날  땐 종이 책 한 권과 펜을 손에 쥐고 동네 카페로 향한다. 그렇게 몇 시간씩 눌러앉아 독서를 하며 떠오르는 이런저런 생각을 책 속에 끼적인다. 종이책으로 얻은 정보는 디지털로 얻은 그것보다 오랫동안,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는다. 

 

프란시스 부스  <디지털 디톡스> 저자 
보다 근원적인, 디지털 디톡스를 이루기 위해 나만의 디지털 기기 사용 방식을 평가한다. 산만하게 하는 디지털 요인을 모아 큰 더미로부터 작은 것까지 점차 알아본다. 산만함의 정도는 눈금으로 평가해보고, 더 구체적으로 ‘디지털 산만증 일기’를 기록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갖고 있는 모든 디지털 기기를 모아 전원을 끄고 한곳에 쌓아둔다. 손을 뻗치고 싶다는 유혹을 삼키고 초연하게 책을 읽는다. 단 5분이라도 좋다. 

 

박혜원  빈트갤러리 대표
집에 TV가 없는 대신 태블릿 PC와 스마트폰을 분신처럼 늘 곁에 둔다. 한시라도 궁금한 건 못 참는 탓에 책을 읽다가도, 길을 지나다가도, 모임이 있을 때도 인터넷 검색은 쉬지 않는다. 독서도 디지털로 대신할 정도다. 그런데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SNS를 통해 충분히 소통했다고 생각한 사람과 실제로 만났을 때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다. 결국 자신이 이해하고 싶은 대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 10분이라도 실제로 만나서 얘기하는 것이 소통에는 효과적이란 것을 분명하게 느꼈다. 그래서 구상한 것이 같은 취향을 가진 이들 간의 소통의 장을 만드는 것이다. 작년부터 2주에 한 번씩 아트와 디자인을 탐미하는 친구, 지인들과 관련 다큐멘터리 필름을 감상하고 필름에 대해 토론을 한다. SNS 소통보다 훨씬 대화의 질이 높고, 생각을 교류하는 깊이 있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게 됐다. 

 

오충근  <AB ROAD> 포토그래퍼 
나는 출장이 잦은 여행 사진가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스마트폰이란 게 없었기에 촬영이 끝나면 숙소에서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손에 넣은 이후, 밤에는 웹서핑을 하거나 낮에 촬영한 사진을 SNS에 올리기 바빠졌다. 그러다 인터넷은 물론 전화조차 속 시원히 연결되지 않는 쿠바에 가게 되었다.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 수 없으니 처음엔 답답했는데 특별히 할 일이 없으니 동행인들과의 수다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평소라면 전혀 관심없었을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대단한 화제인 양 다들 웃기 바빴다. 그날은 모처럼 숙면을 취했다. 그 후로는 인터넷이 원활하지 않는 곳으로 일부러 여행을 떠나 불편함을 즐기곤 한다. 

 

박무현  밀리우 헤드 셰프  
페이스북에 ‘요리’에 관한 글을 수시로 업데이트하는 나는 디지털 소통을 즐기는 셰프지만 나에게도 디톡스는 필요하다. 이때 나는 현재 머물고 있는 제주도의 자연을 한껏 이용한다. 아무리 바빠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혼자 차를 운전하며 드라이브를 즐긴다. 일터인 해비치 호텔에서 아침에 출발해 시계 반대 방향으로 제주도를 한 바퀴 돌면 예외 없이 해 질 무렵이 된다. 바닷가를 따라 천천히 운전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힐링이 되지만, 중간에 근방에 있는 오름이나 제주도 곶자왈 같은 곳에 들러 청아한 공기를 마시거나 제주도 바다와 바람, 숲의 푸르름에 잠시 몸을 맡긴다. 제주가 아니어도 잠시 몸을 맡길 자연의 아름다움은 어디에나 있다. 

 

이인선  에스하우츠 대표 
과시와 허세로 치장된 디지털 세상에서 한 발 떨어져 ‘집’이라는 공간에 조금씩 관심을 기울이고 꾸며보면 어떨까? 가족이나 집으로 초대한 손님들과 ‘놀이’를 즐겨보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일 것이다. 침실 놀이, 서재 놀이, 거실 놀이, 식당 놀이. 각각의 공간에서 함께 나눌 수 있는 일을 ‘놀이’로 지칭하는 것이다. 가령 ‘식당 놀이’에는 선물 받은 우리 차 맛보기, 조명에 대한 상식 공유하기, 디자인 의자 체험하기 등이 포함될 수 있고, ‘서재 놀이’에는 사전 여행 계획하기, 독서 토론하기, 꼼짝 않고 피규어 조립하기 등이 포함될 수 있겠다. 게임을 즐기거나 영화 감상, 그리고 새로 산 소파를 자랑하는 일은 ‘거실 놀이’의 하나가 될 수 있다. 

 

허미하  홍보대행사 나비컴 대표
홍보대행을 업으로 하다 보니 하루 업무의 대부분은 정보 검색이나 포스팅 등으로 채워지는데, 이 작은 뇌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방대한 정보는 이성과 감정을 지치게 한다. 더구나 SNS를 통해 노출되는 타인의 사생활은 평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간다’는 나의 의연한 의지를 흔들어놓곤 한다. ‘나, 과연 잘살고 있는 걸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이런 나를 위로하는 건 아날로그 방식. 매주 토요일 약 3시간 동안 마치 아이가 흙놀이하듯 꼼지락꼼지락 흙을 주무르고 그릇과 화병을 만든다. 라디오를 들으며 느긋하게 자연의 흙을 빚는 일은 어느 것보다 효과적인 나만의 디톡스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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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전희란PHOTO : 최익견(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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