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돌아온 피아노맨, 윤한

호기심이 많다는 건, 아티스트에게 득일까, 실일까? 지난 1년간 윤한은 조금 깊고 느린 번뇌의 시간을 보냈다. 피아니스트와 작곡가라는 타이틀을 두고 뜬금없게도 연기의 세계가 궁금해진 것이다. 그리고 1년, 그가 다시 피아노 앞에 섰다.

2016.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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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의 햇살이 내려앉은 그곳에 그와 피아노가 함께 있다. 팝 피아니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윤한에게 이 풍경은 특별한 건 아니었다. 하나 지금의 윤한에게 이 풍경은 조금 다른 의미다. 180cm가 넘는 훤칠한 키와 대한민국 평균 남자를 죄다 인간이 아닌 연체동물(오징어)로 급락시키는 뽀얗고 곱상한 얼굴, 그것도 모자라 버클리 음대 출신이라는 완벽한 스펙까지 더해졌으니(그의 키와 얼굴은 아버지를 닮았단다). 음악 하나에만 전념하기엔 그는 너무 우월한 유전자를 가졌다. 배우를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저 역시 무척 궁금한 분야였어요. 새로운 걸 해보고 싶었고, 다양한 분야를 경험할 수 있는 대형 기획사와 일하고 싶은 마음도 컸고요.” 그가 배용준, 김수현 등 대형 스타들이 포진한 키이스트와 전속 계약을 맺었다는 보도가 흘러나온 건 지난해 4월이었다.

 

 

 

데뷔 6년 차 윤한은 피아니스트, 작곡가가 아닌 윤한의 또 다른 얼굴이 아직도 궁금하다.
욕심이란 단어와는 분명 결이 다른 그의 호기심은 무엇을 향하고 있나.   

 

 

 

평생 연기를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  
“실제로 연기를 배워보니, 별로 재미가 없었어요. 음악을 처음 시작할 때는 설렘 같은 게 있었는데, 그때와는 느낌이 달랐죠. 물론 제가 그때보다 나이를 먹기도 했지만. 감독님들 앞에서 오디션도 많이 봤죠. 아! 영어 오디션도 봤어요. 미드 <센스8> 아세요? 배두나 씨 나오는 거요. 결과요? 캐스팅됐으면 지금쯤 촬영하고 있겠죠(웃음).” 음악을 시작했을 당시의 파릇한 젊음이 주는 설렘까지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연기를 배우고 오디션을 보러 다니면서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이걸 평생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 한데 40대의 윤한을 떠올려보니 오히려 답은 명확해졌다. “배우의 삶을 사는 40대의 나는 힘들어 보이는데, 음악을 하는 40대의 나는 무척 재미있을 것 같은 거죠.” 연기 레슨을 받고, 감독 미팅을 하고, 대본, 시나리오를 보면서 보낸 지난 1년. 그는 1년의 마음고생만큼 가장 중요한 하나를 얻고 돌아왔다. “TV, 브라운관 연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역시 에너지가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다른 걸음의 1년을 보내고 돌아왔지만, 직접 해보니, 오히려 궁금증이 해결된 느낌이에요. 포커페이스요? 잘 못해요(웃음).” 배우로 가는 담금질의 시간 동안 포커페이스를 좀 읽혔느냐 물었더니 그는 고개를 흔든다. 천의 얼굴을 가져야 하는 게 배우의 영역이라면, 그는 분명 잘생겼지만 배우의 얼굴은 갖지 못했다. ‘실장님 전문 배우’ 리스트에 이름을 추가할 순 있겠지만, 능글맞고 탐욕적인 <아가씨> 속 백작이나 악랄하고 비열한 정치 깡패 안상구의 모습은 그려지지가 않는다는 얘기다. 그 역시 브라운관이 아닌 피아노 옆의 윤한이 가장 빛난다는 걸 조심스레 알아버린 것이다. “다행히 키이스트에서도 제 고민을 이해해주셨고 친정인 스톰프뮤직과 다시 손잡게 됐어요.” 원래 키이스트와의 계약은 3년. 그 기간의 반도 채우지 못한 채 1년 전의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이제 그가 보여줘야 할 게 뭔지 조금은 뚜렷해진 셈이다.  8월 21일, 윤한은 오랜만에 예술의전당 무대에 선다. <해피버스데이 드뷔시>가 그 무대로, 이번 공연은 이전 무대와는 색깔이 사뭇 다르다. <해피버스데이>는 위대한 음악가의 생일을 기념하는 클래식 콘서트 시리즈로, 쇼팽, 바흐, 라벨에 이어 8월 22일 생일을 맞는 감성 작곡가 드뷔시와 함께한다. 그는 이번 공연의 오프닝인 드뷔시의 ‘달빛’ 연주와 함께 해설자로 나선다. “낮 타임 한 번, 저녁 타임 한 번. 작년 말부터 드뷔시의 이 곡만 계속해서 연습했어요. 클래식은 너무 다른 장르예요. 전공하진 않았지만 늘 동경한 장르죠. 클래식 고전을 제 스타일로 소화해서 보여줄 생각이에요.” 팝 피아니스트 윤한에게 클래식 곡인 드뷔시의 ‘달빛’은 긴장되는 대상이다. 그의 길고 섬세한 손가락은 반년 동안 음표와 그 사이를 흐르는 감정 사이에서 끝없이 걷고 뛰기를 반복했다. “연습실의 피아노요? 삼익 파아노요(웃음). 이게 건반이 진짜 무거운 편인데, 연습용으로는 좋아요. 아, 물론 야마하 사고 싶죠(웃음).” 마치 운동선수들이 연습 때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리다가 그것을 내려놓는 순간 날아갈 듯 스피드가 올라가듯이, 공연장의 날렵한 건반 앞에 당도하면, 그의 손가락 역시 깃털처럼 움직인다. 특별히 의도한 건 아니며, 그저 어릴 때부터 사용하던 피아노를 쓰는 것뿐이라며 그는 웃었다.
“드뷔시의 음악 이야기뿐 아니라 사랑 이야기가 재미있게 펼쳐질 거예요. 희대의 바람둥이였던 드뷔시의 에피소드를 풀어가며 사진도 보여주고 그와 관련된 곡을 직접 들려주는 형식이죠. 저는 고지식해서 드뷔시처럼은 될 수 없어요. 오직 한 여자만(웃음).” 이번 무대는 윤한 외에 줄리어드 음대 출신 피아니스트 조준영, 바이올리니스트 윤동환, 첼리스트 이호찬이 무대를 함께 채울 예정이다. “제 생일요? 10월이에요.” 언젠가 <해피버스데이 윤한>을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물음에 그는 진지하게 고민했고, 옆에 있던 스톰프뮤직의 관계자는 너무 먼 이야기라는 듯 호탕하게 웃었다

 

 

 

그의 호기심은 끝나지 않았다
“5년 만에 드디어 졸업해요. 작년 논문 심사에서 떨어진 터라, 학교에서도 주변에서도 너무 좋아해주셨어요.” 그는 8월, 뉴미디어음악학 박사 과정 졸업을 앞두고 있다. 유명세 있는 음악가이니 학과 수업 정도를 겨우 채우는 수준이 아니었을까 의심하는 이도 있겠지만, 이 고지식한 남자 윤한은 그런 것과도 거리가 멀었다. “자랑일지 모르지만, 아, 아니다. 그냥 자랑이에요. 저 개근했어요(웃음). 제가 고지식해서 수업에 빠지면 큰일나는 줄 알아요. 석·박사 과정에서 4.5점 만점을 받았고, 장학금도 탔죠.” 20세부터 군대 빼고 나머지 12년을, 그는 늘 학교에 있었다. 활동하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게 쉽지 않을 듯해서란다. “원래 버클리 졸업하고 바로 뉴욕 NYU에 가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위암 말기라는 소식에 서둘러 귀국했죠.” 다행히 아버지는 건강을 되찾았고, 그는 다시 국내에서 미뤄둔 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제가 뜬금없이 음악을 하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가 말씀하셨죠. ‘네가 진짜 음악을 하고 싶으면 대학원 가서 교수를 해라.’” 많은 언론을 통해 소개됐듯, 그는 공부깨나 잘하는 엄친아였다. “하물며 음악과는 거리가 먼 이과였어요. 수학을 잘했고 장래희망란에는 엔지니어라고 쓰여 있더군요. 음악을 하고 싶어 피아노를 배운 거지, 피아노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에요. 어릴 땐 피아노 학원도 가기 싫어했어요.” 그는 버클리 음대를 가기 위해 피아노를 배웠다. 소위 말하는 천재성과도 거리가 먼 편이었다. 고3 때 피아노로 전향, 버클리 음대 영화음악작곡학과에 들어갔으니 그의 말마따나 그것이 운이라면, 그는 꽤 운 좋은 남자다. 그러나 운은 거기까지뿐. 그는 대학 4년 내내 가장 일찍 학교 연습실에 가서 연습하고 수업을 듣고 다시 밤늦게까지 연습하는, 혹독한 4년을 보냈다. 기교 없이 담백한 윤한 특유의 음악은 한결같은 4년의 시간을 닮은 듯, 여전히 맑고 담백하다.       
“롤모델을 꼽자면 사카모토 류이치. 이미지나 그 사람의 지향성이 마음에 들어요. 피아노를 치다가 일렉트로닉도 하다가, 잡지 모델이 됐다가, 지휘도 했다가….” 배우가 되고 싶었던 그의 지난 1년이 이제야 조금 이해되는 듯했다. 하물며 그의 8월 스케줄엔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대관령국제음악제의 MC 스케줄도 추가됐으니. “정규 3집 앨범도 준비 중인데 이제 녹음만 남은 상태예요. 11월쯤으로 예상하는데, 그냥 제 인생 얘기예요. 사랑 이야기.” 30대 중반의 인생 이야기라면 대체 뭐냐고 물으니, 그는 지난 1년 느낀 게 많았노라며 웃었다. “음악감독도 해보고 싶고, 모델 일도 해보고 싶고, 물론 강단에 서는 것도 그중 하나고요.” 그의 호기심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배우라는 타이틀 하나만 겨우 삭제됐을 뿐. 한 우물을 파는 게 아티스트 정신을 규정하는 잣대라면 그는 아직 어리고 호기심 많은 아티스트에 불과하다. 하나 분명한 것은 그것 역시 이 시대가 원하는, 이 시대 음악가에게 기대하는 또 다른 척도가 아닐까 싶다. 40대까진 열심히 놀아야 한다는 어느 노작가의 말마따나 무엇이든 그의 호기심이 농밀한 깊이를 더하는 날, 그의 음악은 맑지만 초연한 삶의 어딘가를 어루만지고 있지 않을까.
“보컬 연습은 해본 적이 없어요. 연습하면 오히려 남들과 비슷해질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클래식 피아노 레슨은 받아보고 싶어요.” 그에겐 미안했지만 피아노가 아닌, 그의 목소리를 온전히 들은 건 <복면가왕> 속 산타클로스의 ‘사랑에 빠지고 싶다’였다. 특유의 비음 섞인 목소리, 고음으로 치달을수록 더욱 짙어지는 그의 비음이 매력적이라는 걸 그때 비로소 알게 됐다. 어느덧 데뷔 6년 차 싱어송라이터의 숨은 진짜 목소리를 말이다. 그의 숨겨진 목소리처럼, 그의 완벽한 이미지가 노력형 아티스트의 끊임없는 열정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그의 음악이 더욱 따뜻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이어폰 너머론 그의 비음 섞인 ‘카푸치노’가 흘렀고, 그러고 보니 그는 오늘 카페에서도 아이스 카푸치노를 시켰다.  

 

 

 

한 우물을 파는 게 아티스트의 본질을 구성하는 기준이라면 그는 아직 호기심 많고, 정형화되지 않은 아티스트에 가깝다. 어쩌면 그는 음악에 뿌리를 둔 채 다양한 삶을 탐험 중인 탐험가일지도 모른다. 삶의 깊이를 더할 그의 음악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8월 21일 열릴 <해피버스데이 드뷔시>에서 그는 오프닝 무대와 해설을 맡았다. 팝 피아니스트 윤한의 색깔을 입은 클래식 명작 드뷔시의 ‘달빛’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반년간 오직 이 곡만 연습했다고 했다. 

 

CREDIT

EDITOR : 설미현PHOTO : 박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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