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 말고도, 도봉구의 자랑은 또 있다. 올해 새로 문연 함석헌기념관, 전형필 가옥, 기적의도서관 같은 공간은 누군가의 여행지가 되기도 한다. 도봉구의 컬처 로드를 완성하는 새 공간 5곳에서 ‘머물고 싶은 자리’를 찾았다.
2015.11.20
도봉산 말고도, 도봉구의 자랑은 또 있다. 올해 새로 문연 함석헌기념관, 전형필 가옥, 기적의도서관 같은 공간은 누군가의 여행지가 되기도 한다. 도봉구의 컬처 로드를 완성하는 새 공간 5곳에서 ‘머물고 싶은 자리’를 찾았다.
2015.11.20
1 100여 년 전에 지은 귀족의 한옥, 간송 전형필 가옥 2, 3 누마루의 창을 열면 소박한 마당과 대문이 눈에 든다. 4 낮은 담 바깥으로 보이는 오래된 나무들
전형필 가옥
방학동 북한산 둘레길 입구, 야트막한 둔덕 위의 둥근 묘와 그 앞 구옥 한 채가 지나는 사람의 눈길을 끈다. 우리에겐 ‘간송澗松’이라는 호로 잘 알려진 전형필과 부친 전명기의 묘와 집이다. 2013년 등록문화재 제521호로 지정된 ‘전형필 가옥’은 당대의 부호가 살던 집이라고 하기엔 풍채가 소박하다. 인근의 대농장, 경기와 황해도에서 오는 소출을 관리하기 위해 지은 별채이기 때문이다. 종로의 본가와 집안의 다른 가옥은 화재와 전쟁 등으로 모두 소실됐다. 오직 이 집만이 남아 전형필의 흔적을 품고 있다. 대문 안으로 발을 들이면 그악스럽게 뻗은 노송과 그 아래 단출한 한옥 한 채가 시야에 든다. 집 안은 안채와 사랑채, 대청, 누마루로 꾸며져 있다. 고급스러운 향나무와 소나무로 짠 틀이 귀족의 집이었다는 사실을 은근하게 암시한다. 집 곳곳에선 오래 손 탄 한옥 특유의 따뜻함이 느껴진다. 마루에 엉덩이를 붙이면 전형필이 눈에 담았던 풍경을 볼 수 있다. 원형을 간직한 백년 가옥의 품에서 여운 긴 휴식을 취하고 싶다면.
About 전형필
전형필은 조선 후기의 거상 전계훈의 증손자로 태어나 막대한 유산과 자신의 생애를 문화재 수집과 보존에 쏟았다. <훈민정음 해례본>, 고려청자, 추사 김정희의 서화, 겸재 정선·단원 김홍도·혜원 신윤복의 작품 등은 그가 기와집 수백 채를 처분하며 사들이지 않았다면 일제에 빼앗겼을지도 모르는 국보 목록들이다.
Take Note
머물 곳 북한산 자락에 안긴 전형필 가옥의 안마당, 사방이 시원하게 트인 마당 한쪽에 자리를 잡아보자. 몇백 년은 족히 넘은 고목이 뿜는 잎 내와 촉촉한 흙 내가 기분 좋게 코를 찌른다. 문화해설사가 있을 땐 집 안에도 발을 들일 수 있다. 격자무늬 창을 열고 누마루에 앉으면 낮잠에 빠지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A 149-18, Sirubong-ro, Dobong-gu, Seoul T 02-2091-2653
1 쌍문동 주택가에 숨은 함석헌기념관 2 선생이 손수 가꾼 유리 온실 속 선인장들 3, 4 그가 생의 마지막을 보낸 방 5 함석헌의 일대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관
함석헌기념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인권운동가이자 시인, 교육자,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빛나는 지성으로 꼽히는 함석헌의 생가다. 그가 소장했던 저서, 물건들을 모아서 ‘기념관’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쌍문동 한적한 뒷골목에 숨어 있는 이곳은 고인의 자취와 흔적을 나열한 공간에만 머물지 않는다. 쌍문동 주민들의 사랑방이자 나들이 온 이들이 쉬다 갈 그루터기가 되어준다.
방문객들은 2층짜리 붉은 벽돌집과 마당 한쪽에 자리한 온실을 제집처럼 들고 날 수 있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책을 읽거나 독서회 등의 작은 모임을 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을 만난다. 게스트 룸에선 숙박도 가능한데 열흘 전에는 예약을 해야 한다. 함석헌 선생이 손수 키운 선인장이 그대로 남아 있는 유리 온실, 그가 말년에 거주했던 공간을 그대로 재현한 함석헌의 방, 그의 일대기를 반추할 수 있는 전시관 등 볼거리가 많다.
About 함석헌
1901년에 태어나 1989년에 타계했다. 한국 근현대사의 궤적과 삶을 함께 했다. 삼일운동을 비롯한 독립운동, 민주화를 위한 투쟁 역사에서 반드시 거론되는 이름이다.
Take Note
머물 곳 마당에 심은 보리수 앞 의자는 함석헌기념관의 쉼터 명당이다. 수령 40년의 보리수는 함석헌 선생이 이전에 살던 집에서 키우던 것을 가져와 심은 것. 날씨가 나쁠 땐 유리 온실 안으로 숨자. 선인장으로 꾸민 관상 정원과 누구나 쉬다 갈 수 있는 카페 같은 공간이 있다.
A 33-6, Dobong-ro 123-gil, Dobong-gu, Seoul T 02-905-7007 W www.hamsokhon.dobong.go.kr
1 사계가 담기는 창, 외로운 의자. 2층 한쪽엔 넋놓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2 김수영문학관에서 ‘시’는 장난감이 된다. 3 시인의 책상 4 김수영의 시 같은 초상
김수영문학관
김수영문학관에 머무는 이들이 할 수 있는 일. 스튜디오 ‘김수영을 노래하다’에선 김수영의 시를 낭독해볼 수 있다. 직접 읽은 시는 녹음 파일로 개인 소장이 가능하다. 그 앞 시작(詩作) 판은 시인의 시어들이 적힌 낱말 카드로 자기의 시를 써볼 수 있는 공간이다. 김수영의 육필 원고, 번역서, 소장서들과 작가의 물건이 열거된 1·2층 전시관을 지나면 3층의 작은 도서관에 닿는다. 지역 주민들의 서가 같은 공간이다. 4층엔 작가와의 만남, 시 낭송회 등이 열리는 강당, 5층엔 옥상 쉼터가 자리하고 있다. 다 둘러본 후엔 1층으로 돌아와 방명록 보드 앞에 설 것. 시를 사랑하는 이, 시를 전혀 모르는 이들이 남긴 메시지는 때로 김수영의 시보다 더 아름답다.
Take Note
머물 곳 2층으로 오르자. 공간 한쪽, 계절이 담기는 정방형 창과 그 아래 놓인 의자가 곧바로 눈에 띈다. 누구나 원 없이 차지할 수 있는 독서 공간이다. 방문자들이 자발적으로 채운 책장, 역대 김수영문학상 수상작들, 시인 김수영의 작품으로 꾸민 서가가 있다.
A 80, Haedeung-ro 32-gil, Dobong-gu, Seoul T 02-2091-5673 W www.kimsuyoung.dobong.go.kr
1 엄마의 품 같은 책 읽는 마당. 테라스와 잔디 어디에서나 책을 펼치고 자리 잡을 수 있다. 2 햇빛을 품는 천장 아래서 독서하는 즐거움 3,4 서울에 문을 연 첫 기적의도서관의 안과 밖
기적의도서관
2003년에 첫 삽을 뜬 ‘기적의도서관 프로젝트’는 우리나라 독서 문화의 스펙트럼을 확장시킨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전라남도 순천시에 세워진 1호를 시작으로 13년간 전국 곳곳에 11곳의 기적의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올 7월에 개관한 ‘도봉기적의도서관’은 서울에 둥지를 튼 최초의 기적의도서관이다. 1호를 시작으로 작고 직전까지 ‘기적의도서관 프로젝트’를 주도한 건축가 정기용의 제자 김지철 건축가가 스승의 뜻을 이어받아 설계했다. 누워서 뒹굴며 책을 볼 수 있는 바닥, 자연의 변화를 눈에 담을 수 있는 독서대 등 매력적인 공간이 많다. 동화작가와의 만남, 낭독회, 북 스타트 등의 프로그램도 눈에 띈다. 주말에는 다른 지역구에서 일부러 ‘나들이’ 나온 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도서관도 여행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할 수 있는 곳.
About 정기용
건축가 정기용은 ‘감응의 건축’을 주제로 사람과 건축물, 건축물과 땅, 사람과 땅,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해와 소통, 교감이 가능한 공간을 만들어왔다. 도봉기적의도서관은 1호 순천기적의도서관부터 이 작업을 지속해온 정기용이 밑그림을 그린 마지막 도서관이다.
Take Note
머물 곳 책 읽는 마당. 유럽 옛 건축물의 비밀 정원과 같은 공간이다. 도서관 안에서 침묵을 일관하다가 지칠 때쯤 나가 바람을 쐬거나 해 질 무렵 석양 아래에서 책 읽으며 놀만 한 곳.
A 797, Madeul-ro, Dobong-gu, Seoul T 02-3493-7171W www.miraclelib.dobong.kr
1 둘리뮤지엄은 도서관 동과 전시관 동으로 나뉜다. 2 만화의 스토리를 따라 입체적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 3 뮤지엄의 안쪽 풍경
둘리뮤지엄
‘둘리’는 1983년에 태어났다. 당시 도봉구 쌍문동에 살던 만화작가 김수정은 지구 밖 얼음별에서 쌍문동 고길동 댁에 불시착한 둘리를 만화 잡지 <보물섬>에 처음 선보였다. 이후 둘리는 3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천문학적인 로열티 수입을 올린, 한국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영예를 지키고 있다. 2015년 7월, 그 ‘둘리’가 제2의 고향 쌍문동에서 새로운 공간을 열었다. 둘리뮤지엄은 ‘둘리’로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이 전혀 없는 외국인이나 뽀로로가 더 익숙한 영·유아들의 관심도 충분히 사로잡는다. 1160m2(350여 평)에 달하는 뮤지엄은 3D 영화관, 작가의 방, 비디오아트와 특수 장비로 만화의 스토리를 체험해볼 수 있는 전시 체험관, 만화와 그림책 6000여 권을 보유한 도서관 등으로 꾸며져 있다. 11월 말엔 둘리근린공원에 숲 속 도서관, 숲 놀이 공간 등으로 구성된 ‘둘리 체험 유아 숲’이 들어설 예정이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의 향수까지 품는 새로운 놀이터.
About 김수정
만화가 김수정은 ‘공룡’이 등장하는 만화 한 편으로 한국의 보편적인 정서, 보편적인 인물상을 세련되게 만들어낸 사람. 창작물에 대한 검열, 만화에 대한 색안경이 짙었던 시기에 ‘둘리’를 탄생시키고, 만화가의 성공 사례에서 늘 첫째로 거론될 만큼 과업을 이뤘다.
Take Note
영국의 자연사박물관을 본으로 참고한 야외 음악당. 의자가 따로 없고 계단이 곧 의자 혹은 침대가 된다. 무대를 둘러싼 나무가 무성한 잎을 내면 도시에서 쉬이 상상하기 힘든 ‘숲 속의 음악당’이 완성된다.
A 6, Sirubong-ro 1-gil, Dobong-gu, Seoul T 02-990-2200 W www.doolymuseum.or.kr
EDITOR : 류진PHOTO : 최창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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