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스트>의 편집자 백가흠, 정용준, 배수아. 그리고 창간호에서 뜻을 함께한 소설가 천명관

“문예 잡지가 꼭 진지할 필요는 없어요. 나는 <악스트>가 들고 다닐 수 있는 오브제로서도 매력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문학도 시각적으로도 즐길 수 있는 장르니까. 문예지가 <보그>가 되지 말란 법은 없잖아요? 패션 잡지가 패션을 다루는 방식처럼 <악스트>도 문학을 감각적으로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글은 문단 권력이나, 그것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신경숙과는 하등 상관없는 글이다. 그러니까 젊은 소설가나 시인이 권력이나 진영의 논리에 저항하거나 대안을 찾기 위한 방편으로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근현대 문학 사상 최대의 스캔들이 터진 후 여기저기서 회의니 자성이니 위기니 운운하지만 진짜 위기는 다른 데 있다. 누구도 시다운 시와 소설다운 소설을 읽지 않는다. 책을 구매하는 행위가 독서가 아니라 쇼핑이 된 시대, 문학이 독자에게 닿지 못하자 작가들이 모임을 지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웹진 <소설리스트(Sosulist)>와 소설 잡지 <악스트(Axt)>, 독립 문예 잡지 <더 멀리>는 이러한 모의가 낳은 결과다.

<소설리스트>는 소설가 김중혁과 김연수, 서평가 금정연이 만나 시작한 매체다. ‘읽을 만한 소설의 리스트를 제공하는 소설 네트워크 서비스’라고 스스로 소개하고 있다. 번역가와 팟 캐스트 제작자 등 11명의 필진들이 홈페이지에 매주 금요일 한 주 동안 발간된 신간을 소개한다. 그중 한 권의 소설을 정해 300자 평과 별점을 매겨 구독자에게 건넨다. 좀 더 깊이 있게 음미하고 싶은 책은 긴 리뷰를 남긴다. 이 질 높은 정보를 대가도 없이 자발적으로 제공하는 이유는 뭘까? 김연수에게 인터뷰 요청 메일을 보냈다. “우리는 상업 사이트가 아닌 각 개인들의 느슨한 연대 방식이라 내가 모두의 의견을 대변할 수 없습니다”라고, 예민한 언어로 거절의 답장을 보내왔다. 답변이 될 FAQ의 링크와 함께. 거기엔 ‘신간 소설이 독서의 관점이 아니라 구매의 관점에서 소개되는 세상, 사고 싶은 소설은 많은데 읽고 싶은 소설은 없는 황당한 상황에서 책을 추천하는 목적을 구매에서 독서로 되돌리고자 만든 미디어’라고 쓰여 있다.

<악스트>(은행나무)는 소설을 위한, 소설 독자를 위한, 소설가들에 의한 격월간 소설 잡지다. 소설가 배수아, 백가흠, 정용준이 책의 편집을 맡았다.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고 믿는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의 말 중 도끼를 뜻하는 ‘Axt’에서 이름을 빌렸다. 이 책은 독서가 매혹적이고 숭고한 행위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믿을 도끼다.

3명의 편집위원과 편집장 백다흠이 <악스트> 2호 기획을 위해 모인 자리에 끼었다. “좋은 소설을 소개하자, 가 이 잡지의 출발이에요. 소설을 눈치 보지 않고 리뷰할 수 있는 매체가 없거든요. 기껏해야 대형 서점에서 만드는 팸플릿 정도? 텍스트의 질보다는 시장의 논리에 의해 배열된 책 목록들로 채운 게 대부분이죠.” <악스트>의 출발을 묻자 백가흠이 답했다.

<악스트>는 문단의 편 가르기, 줄 서기 같은 문화에서 자유로운 작가들이 노는 판이다. 짧은 소설을 발표하거나 소설가, 번역자, 칼럼니스트 등 다양한 필자들이 각자의 시각에서 소설을 리뷰한다. 예전 책, 묻힌 책을 다시 발굴하자는 뜻에서 구간 70%, 신간 30%의 비중으로 구성한다. 비평적 시각이나 담론을 전제하지 않는 것이 기존의 문예지와 다른 지점이다. <악스트>의 지향점에 대해 배수아와 백다흠이 입을 모았다.

<더 멀리>의 편집자 김현, 박시하, 강성은

두꺼움과 무거움을 벗어나고 싶었어요. 문학을 최대한 가볍게 접할 수 있도록, 버스나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SNS를 보듯 이 깃털 같은 문예지를 들고 다니다가 시와 소설과 산문을 자연스럽게 읽는 거죠. _김현(시인)

“어려움이요? 그런 건 없어요. 문학이 꼭 절박해야 하나? 우리는 그냥 좋아서 해요.”

주류의 바깥에도 좋아서 만드는 문예 잡지가 있다.

시인 김현, 박시하, 강성은이 만드는 <더 멀리>다. 시와 소설, 에세이를 비롯해 형식에 제한이 없는 텍스트를 책 안에 넣는다. 누군가는 1년 동안 시를 연재하고, 누군가는 산문을 싣는다. 시장 논리, 등단과 비등단의 경계를 지우고자 출발한 기획이다. <더 멀리>의 의미는 책 만들 돈을 ‘소셜 펀딩’으로 직접 마련했다는 데 있다. 문인과 지인, 독서가들의 십시일반으로 목표액 300만 원이 금세 찼다. 첫 호를 만들고 남은 돈은 씨앗 자금으로 저장했다. 2호부터는 정기구독료를 모은 돈으로 제작한다. <더 멀리>를 만드는 셋에게 문학의 불씨를 살린다거나 문단에 물음표를 던질 마음도.

셋은 돈 벌 생각으로 만드는 게 아니기 때문에 돈이 없어도 괜찮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