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의 서울은 좁게는 도성 지역으로 지칭(한성부)되었지만, 크게는 성저십리(城底十里)라 하여 남쪽으로는 한강, 북쪽으로는 북한산까지 아울렀다. 따라서 한강은 한성부를 남으로부터 지켜주는 자연 해자(垓字)였다. 서울로 들어가는 한강의 길목엔 군인들이 주둔했는데, 노량진과 동작진이 대표적이다. 한강을 건너면 경기도 땅(서울 밖 500리 땅)이었다. 한강은 그래서 한양 사람들이 경기도를 거쳐 삼남(三南) 지방으로 가기 위해 건너야 할 한성부 남쪽 경계선이면서, 동시에 삼남 지방의 사람과 물자가 한양으로 들어오는 건널목이었다.

근대화와 더불어 한강이 서울 안으로 들어오면서 한강의 옛 길목(나루터, 포구 등)엔 하나같이 근대식 다리가 놓여졌다. 서울은 한강의 이 길목을 연해 남으로 뻗어갔고, 한국 근대화의 공간적 표상인 강남은 그 결과로 생겨났다. 시차를 두고 설치된 한강의 다리들은 서울이 강남으로 뻗어가는, 또한 강남과 강북으로 나뉜 서울을 잇고 연결하는 방식을 각각 담고 표현한다.

한강에 최초로 놓인 근대식 교량은 1900년 설치된 한강대교(철교)다. 노량진역에서 끊긴 경인선을 용산역과 남대문역(현 서울역)까지 연장함으로써 인천~영등포~용산~서울, 그리고 부산~서울로 이어지는 식민지 지배 세력의 침투 경로가 완성되었다. 1917년 건설된 한강 인도교(제1한강교)는 우마차가 다니는 다리로, 서울 사람들의 활동이 한강 너머로 확산되는 첫 번째 통로가 되었다. 해방 후 처음(1965년) 건설된 제2한강교(현재 양화대교)도 도심과 서남부 지역(영등포, 김포공항 등)의 연결을 담당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강남은 한강대교와 양화대교 건너 지역을 가리켰지만 자주 쓰는 말은 아니었다. ‘강남’이란 말을 본격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제3한강교(현재 한남대교)가 건설되고부터다. 한강진이 있던 자리에 1969년 세운 제3한강교는 도심에서 남산터널을 통해 경부고속도로로 진입하는 다리이자 영동 개발이라 불리던 강남 개발을 촉발한 다리다.

반포에서 잠실로 이어지는 강남 일대에 대규모 신시가지가 조성되면서 서울 발전의 중심 추는 강북에서 강남으로 옮겨갔다. 그러나 공공 기관의 강남 이전이 본격화된 것은 2호선 철교인 잠실철교(1979년)와 당산철교(1983년)가 설치되고, 또 1982년 광화문과 예술의전당을 잇는 반포대교가 완공되면서부터다. 이렇게 하여 강남에 거주하는 인구가 급격히 늘고 한강을 건너는 인구 활동이 많아지면서 강남북의 주요 지점을 연결하는 한강 다리(천호대교, 올림픽대교, 잠실대교, 청담대교, 영동대교, 성수대교, 동호대교, 동작대교, 원효대교, 서강대교, 성산대교 등)가 대거 생겨났다.

한강 다리들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한국 근대사의 굴절된 사연을 모두 간직하고 있다. 1900년 한강철교는 식민지 지배 세력에게 서울로 침투하는 경로를 내주었고, 1950년 한국전쟁 때 한강대교의 섣부른 폭파는 이승만 정권의 무능함을 보여주었다. 제3한강교 설치는 1967년 무장 공비의 청와대 습격으로 인한 국가안보의 위기 의식이 반영되어 있었다. 제3한강교가 북한 평양의 가장 큰 다리보다 더 넓은 것도 남북 대치의 그림자가 투영된 결과다. 그 외 1970년 건설된 마포대교는 국회 이전과 함께 여의도를 한국 정치 1번지로 만들었지만, 투신 자살을 가장 많이 하는 다리라는 오명을 안고 있고, 1994년에 일어난 성수대교 붕괴 사고는 압축적 성장에 담긴 모순의 파열로 상징된다.

한강 다리는 대부분 1km가 넘어 사람들이 쉽게 건널 수 없다. 자동차 통로로만 기능하는 동안 한강 다리들은 연결해야 할 강남과 강북을 오히려 분리시키는 역설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강 다리가 사람을 품는 다리로 거듭날 때, 한강은 소통의 강이 되고 대도시 서울은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about 조명래는 공간과 환경의 정치 경제학을 연구하는 사회학자로, 단국대에서 학생을 가르친다. 냉철하고 깊이 있는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그는 한강 다리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