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무당 백남준

무당은 산 자와 죽은 자,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소통시킨다. 굿을 통해 인류의 대동을 이끌고 맺힌 마음을 위로한다. 현대 예술사에서 아티스트 백남준도 그런 존재였다. 미디어를 영매로 펼친 백남준의 굿판을 탐구했다.

2016.02.17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


요제프 보이스를 추모하는 진혼굿 퍼포먼스 ‘늑대 걸음으로’를 행하는 중인 백남준. ©Gallery hyundai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일찍 한국을 떠난 덕분에 한국인의 원형적 심성과 내면을 가장 잘 보존한 사람이 되었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하여 그가 만든 작품 앞에서 우리는 잃어버린 기억과 한국의 문화적 유전자를 대면하게 되는 것이다.” _이어령

 

“한국의 무속은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한마디로 소통이야.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이지. 점과 점을 이으면 선이 되고, 선과 선을 이으면 면이 되고, 면은 오브제가 되고, 결국 오브제가 세상이 되는 거지.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한국의 무속은 따지고 보면 세상의 시작이 아니겠어!” _백남준

 

 

 

만신 김금화를 만나야 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82-나호 김금화는 백두산 천지에서 대동굿을 펼친,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큰무당이다. 건강 문제로 만나기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저편에서 수화기를 내려놓기 직전, 찰나를 아슬아슬하게 잡아챘다. “지금 잠깐만 찾아뵙겠습니다. 선생님, 5분만요.” 1시간 후, 나는 양과자점에서 산 고급 파운드케이크를 들고 이문동 뒷골목 김금화의 집 낡은 대문 앞에 섰다. 

선생의 답이 꼭 필요한 질문이 있었다. 두 달간 도망간 계주 찾듯 집요하게 전화했다. 그때마다 불통이었다. 그 연락 두절의 나날에 오늘 들은 단칼 거절까지, 없던 우환마저 생길 지경이었다. 

아티스트 백남준이 타계한 지 올해로 10년째다. 10주기를 기념해 전 세계 곳곳의 미술관과 미디어에서 그를 다시 조명한다. 갤러리 현대는 1월 28일부터 4월 3일까지 백남준이 생전에 고국에서 보여준 활동과 한국에 남긴 작품, 유산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전시 <백남준, 서울에서>를 연다. 백남준아트센터에선 20세기 백남준과 21세기 예술가들의 교감에 주목하는 특별전 <손에 손 잡고>를 기획했다. 그 명징한 숫자를 핑계 삼기 위해 우리도 때를 기다렸다. 다다이즘이니 플럭서스니 아방가르드니, 사조를 논하며 예술가의 생애를 뒤돌아보는 대신 이 아찔한 천재 예술가의 뿌리를 파헤치고 싶었다. 존재 자체가 거대한 작품인 이 예술가를 구성하는 소립자, 백남준의 DNA는 뭘까? 아티스트 김보민과 함께 답을 찾아 나가기로 했다. 그것이 지금 내가 김금화의 집 앞에 선 이유다.

가정은 이렇다. ‘백남준은 한국 사람의 원형이다.’ 그는 17세에 한국을 떠나 2006년 타계할 때까지 탈국가적인 삶을 살았다. 고로 ‘한국적’이라는 말은 백남준의 세계를 품을 수 없는 수식이다. 그런 그에게 이제 와서 동지적 결합을 기대하는 것이 가당한 일일까? 

몇 편의 퍼포먼스와 백남준이 남긴 말에 약간의 근거는 있다. 구보타 시게코가 쓴 <나의 사랑 백남준>에서는 한국 샤머니즘에 대한 그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한국의 무속은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한마디로 소통이야.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이지. 점과 점을 이으면 선이 되고, 선과 선을 이으면 면이 되고, 면은 오브제가 되고, 결국 오브제가 세상이 되는 거지.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한국의 무속은 따지고 보면 세상의 시작이 아니겠어!”

실제로 작가는 여러 차례 주술 의식과 흡사한 행위 예술을 펼쳤다. 1990년 7월 20일, 갤러리 현대 뒷마당에서 죽은 친구 요제프 보이스의 영혼을 부른 추모굿이 그 예다. 1959년 도끼로 피아노를 때려 부순 ‘피아노포르테를 위한 연습곡’, 1960년 그의 스승과도 같은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잘라버린 ‘존 케이지에게 보내는 경의’, 1963년 전시장 입구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소머리를 달아놓은 ‘음악의 전람회’ 등에서도 백남준은 이 원시적인 제의를 완벽하게 주관하는 무당이었다. 

굿은 한국적 심성의 총체다. 이 의식에선 신명 나는 대로 춤추며 노래하는 흥, 신과 인간, 무당과 관중의 대동과 화합, 조상에 대한 공경심 등이 발현된다. 반백 년 이상 조국을 떠나 살아온 백남준은 왜 ‘굿’에 천착했을까? 미디어를 영매로 삼아 그가 펼쳐온 퍼포먼스는 정말로 ‘굿’이었을까? 백남준은 굿을, 한국적 원형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을까? 

백남준과 같은 이북에서, 그보다 한 해 먼저 태어난 무녀 김금화와의 만남이 간절한 이유는 이 의문 때문이다. 선생은 제집에 찾아온 이를 차마 뿌리치지 못했다. 갓을 쓰고 굿판을 연 백남준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앞에 놓고 김금화에게 물었다. “이 사람은 무당입니까?”

 

 

 

 


필름을 위한 선 (Fluxfilm n°1), 1964, Film MUSEUM OSTWALL 제공


“1964년 5월 29일, 일본 쇼케쓰 홀. 그날은 내가 기사로만 접해온 남준의 공연을 처음 본 날이다. 새하얀 와이셔츠에 짙은 잿빛 양복을 입은 사내가 유령처럼 소리 없이 스르르 무대 위로 미끄러져 나왔다.” _구보타 시게코

 

 

 


“그는 들고 나온 여러 개의 달걀을 있는 힘껏 벽에 던졌다. 어둠 속에서 하얀 일직선을 그리며 날아간 달걀들이 ‘퍽’ 소리를 내며 부서져 내린다.” _구보타 시게코 

 

 

 


“그는 무대 위에 두 대의 피아노를 갖다 놓은 뒤 왼손으로 아무렇게나 건반을 두들기면서 오른쪽 피아노를 갈고리 등 오만 가지 기구로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대패를 꺼내 들었다. 그러곤 윤기가 흐르는 새까만 피아노 몸체에 그 우악스러운 대패를 갖다 대고 두 손으로 ‘서걱서걱’ 나무를 깎아 내렸다. 반질반질 빛나던 피아노는 처참히 허연 속살을 드러냈다. 무심결에 손이 얼굴로 갔다. 마치 내 얼굴 껍질이 벗겨나가는 듯한 괴이한 느낌이었다. 잠시 후 무대 뒤편으로 사라지는가 싶더니 그가 커다란 도끼를 들고 나타났다. 그러고는 무대 위에 세워둔 검은 피아노를 향해 달려가 순식간에 때려 엎기 시작했다. 시퍼런 도끼날이 ‘쉬익’ 소리를 내며 허공을 갈랐다. 검은색, 흰색 건반들이 허공으로 튀어 오른다. 꽤 무거울 듯한 도끼를 한참 휘두르다 지쳤는지 그는 피아노를 앞으로 확 밀쳐냈다.” _구보타 시게코 

 

 

 


“먹물이 담긴 대야를 두 손으로 부여잡더니 그 속에 머리를 처박고 온 머리카락에 먹물을 묻혔다. 그러고는 무릎을 꿇은 채 기다란 흰 종이 위에 머리를 붓 삼아 선을 그었다.” _구보타 시게코 

 

 

 


“클라이맥스는 마지막에 왔다. 그는 신고 있던 가죽 구두를 벗어 들었다. 그러더니 그 안에 물을 콸콸 따르고는 단숨에 마셔버렸다. 신발의 고린내가 객석까지 날아오는 듯했다. 보기만 해도 참을 수 없는 욕지기가 목구멍을 타고 스멀스멀 치밀어 올라왔다. 빨아먹듯 구정물을 마셔버린 그는 갑자기 무대 뒤로 사라졌다. 10여 분이나 지났을까. 어디선가 적막을 찢는 듯한 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공연은 끝났다’고 알리는 공연장 외부에서 걸려온 그의 느닷없는 전화였다.” _구보타 시게코 

 

 

 


백남준 아트센터, <인터미디어 극장> 전시 ©NJPARTCENTER


“예술은 매스게임이 아니에요. 페스티벌이죠. 쉽게 말하면 잔치입니다. 왜 우리의 굿 있잖아요. 나는 굿장이예요. 여러 사람이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추도록 부추기는 광대나 다름없지요.” _백남준 

 

 

 

 


선생님, 백남준이 누구인지 아세요? 응. 알지. 내가 그 양반 돌아가시고 추모굿 했어. 그때 그 일본인 부인한테 어떤 말을 전했는데 오래돼서 생각이 안 나네. 나를 부둥켜안고 울더라고.


백남준은 열일곱에 한국을 떠나 70여 년을 해외에서 살았어요. 그런데 어떤 학자가 그 사람이 ‘가장 한국적 심성을 가진 사람’이래요. 백남준이 어릴 때 집에서 굿을 많이 보고 자랐대요. 그 작가가 한국적 내면을 가질 수 있었던 게 굿 때문일까요? 굿 안에 한국적 심성의 원형이 있는 걸까요? 옛날에, 그러니까 내가 어릴 때 이 나라엔 큰 종교가 없었잖아요. 특히 이북에선 더 그랬어. 읍에나 나가야 겨우 교회 한 채, 깊은 산에 들어가야 겨우 절 한 채 볼 수 있었지.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만신에게 기도했어. 아픈 손자 낫게 해달라고 맑은 물 떠놓고 빌고, 손주를 점지해달라고 소복 입고 빌고. 그 무언가를 간절히 비는 마음이 모이면 이제 굿이 열리는 거지요. 사람들이 ‘굿’하면 무서워하고 편견을 갖는데 굿은 사실 잔치야. 그리고 신명 나는 잔치엔 모든 마음이 다 모여 있어. 기원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 풀고자 하는 마음, 화합하는 마음, 나누는 마음. 그게 한국 사람의 심성이지, 뭐. 


무당은 어떤 사람일까요? 무당은 신에게 인간의 말을, 인간에게 신의 말을 전하는 매개자야. 모든 사람의 한과 눈물을 보듬어 안고 가슴에 맺힌 것을 풀어줘야지. 나 자신이 인간사에 상처받고 울어본 탓에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고통을 더 잘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어. 


이 사람, 백남준의 굿은 굿일까요? 대단하지. 마음을 다해 했으니까. 내림이나 세습으로 배우지 않아도 굿을 하는 마음이 무당의 마음이면 그게 굿이지. 그 정신, 끝까지 갖고 있었던 얼이 참 대단하구나, 생각해. 이 사람은 박수야.  

 

 

 

By Kim Bomin, Artist 
Assistant Editor Jo Areum 
Cooperation Gallery Hyundai, Paik Nam Jun Art Center, Museum Ostwall
References <My Love, Paik Nam June>, Kubota Shigeko 

CREDIT

EDITOR : 류진PHOTO : 김천호

아이매거진코리아닷컴, 더네이버, 동방유행 ©imagazinekorea.com, ©theneighbor.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