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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의 작가, 바이런 킴

그는 매주 일요일에 그림을 한 점씩 그린다. 벌써 17년째다. 제목은 ‘선데이 페인팅’. 아마추어 화가를 뜻하는 ‘선데이 페인터’에서 연유한 작업으로, 그는 취미 삼아 그림을 그리는 선데이 페인터가 좋았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바이런 킴, 그의 작업은 우리가 알던 회화가 아니다.

2018.03.02

 

바이런 킴, 몇 년 전 우연히 들른 전시장에서 그의 작품을 보고 적잖이 놀란 기억이 있다. 그의 그림은 기존에 알던 회화와는 다른 영역의 존재 같았다. 흔히 한국에서 미술 작가 하면, 어릴 때부터 미술에 천부적인 소질을 보여 평생 작업에만 몰두하는 작가를 칭한다. 한데, 그의 작품 앞에는 ‘선데이 페인팅(Sunday Paintings)’이라는 낯선 제목이 붙어 있었다. 선데이 페인팅은 취미로 주말에만 그림을 그리는 아마추어 화가를 뜻하는 ‘선데이 페인터’에서 연유했다는 작품 설명은 더욱 궁금증을 유발시켰다. 전문적인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왜 자신의 작업을 ‘선데이 페인팅’이라고 하는 걸까. 바이런 킴의 개인전이 7년 만에 국제갤러리에서 열렸고,  내한한 그에게 이유를 들었다. “선데이 페인터란 주말에 그림을 그리는, 달리 말하면 아마추어라는 부정적인 어감 때문에 전문 작가는 사용하지 않죠. 하지만 나는 좋아서, 취미로 하는, 작업에 대한 부담 없이 재미로 시작할 수 있는 선데이 페인터가 좋았어요.” 평생 작업에만 매달리는 것이 미술가의 마땅한 덕목이라 여기는 한국 미술계에서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선데이 페인터는 분명 낯설었다. 그 낯섦 뒤에 감춰진 그만의 이야기가 더욱 궁금했다.   


 

 

매주 일요일, 하늘을 그리는 이유    
“2002년부터 일기를 쓰듯이 매주 일요일에 그림을 한 점씩 그렸어요. 물론 매번 정확히 일요일에 그리지 못할 때도 있지만 일주일에 한 점은 꼭 그렸지요.” 그러기를 어느덧 17년째다. “하늘은 마치 광활한 우주와 같죠. 저는 그것을 작은 캔버스에 담아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내 작업은 지속성이 중요해요. 이 작은 그림을 지속적으로 연결해 큰 작업이 되는….” 동일한 소형 캔버스(35.5×35.5cm)에 매주 그림을 한 점씩 그리는 일. 그의 작업에서 성실함, 지속성은 중요한 덕목이다. 그의 작업은 단순히 하늘을 그린 회화 같지만 광활한 우주의 기록을 담아내는 그만의 거대한 설치 프로젝트에 가깝다. 또한 그의 ‘선데이 페인팅’에는 영어로 된 몇 줄의 텍스트가 기록돼 있다. “토요일 저녁 즐거운 식사 내용이 들어가기도 하고, 특별한 내용보다 그때의 일상을1 적는 편입니다.” 일주일간 그의 삶에 일어난 평범한 일상의 소회. 거기엔 작업이 완성된 시간, 장소까지 표기되어 있다. 물론 그의 텍스트를 굳이 해석하려 머리를 굴릴 필요는 없다. 그의 텍스트는 메시지 전달이 목적이 아닌, 그의 ‘일상’ 회화를 도드라지게 보여줄 회화적 장치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발동하는 궁금증 하나가 더 있다. 왜 소형 캔버스였을까. “35.5cm의 캔버스는 슈트케이스 안에 넣을 수 있는 적당한 사이즈거든요(웃음).” 작업실에서도 물론이지만 여행, 출장을 떠날 때도 그의 가방 속엔 늘 소형 캔버스가 자리를 차지한다. 앞서 이야기했듯 그의 작업은 지속성이 수반되어야 하니까. 작년 그는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일환으로 한국을 찾았고, 마침 일요일 새벽이었다. 그는 공항에서 내려 목적지로 가는 버스 안에서 당연한 의식처럼 작은 캔버스 안에 하늘을 그리고 그날의 소회를 기록했다. 2007년부터 2016년 사이에 작업한 선데이 페인팅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일상의 기록이자 그만의 작은 우주를 조용히 꺼내 보이는 자리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한국의 하늘도 발견된다.   
“밤하늘 하면 시골의 반짝이는 별이 생각나는데, 나는 도시의 밤하늘에서 왠지 모를 친밀감을 느꼈어요. ‘무제’ 연작은 밤의 도시를 걸으며 느낀 감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소형 캔버스에 그린 ‘선데이 페인팅’과 달리 ‘도시의 밤’ 연작은 대형 캔버스에 그린 색면 회화다. ‘선데이 페인팅’이 낮의 도시를 담았다면 대형 화폭에 담긴 ‘무제(…를 위하여)’와 ‘도시의 밤’ 연작은 밤의 도시를 담은 작품이다. 제목은 ‘무제’지만 도시의 밤 연작에는 지인들의 이니셜이 제목에 붙어 있다. 그중에는 딸의 이름도 있다. 하지만 이는 친밀감의 의미일 뿐 그 사람을 생각하며 그린 작품은 아니라고 그는 덧붙인다. 그의 색면 추상은 하나의 컬러로 완성된 듯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면 네 귀퉁이에 색상이 다른 또 다른 프레임을 발견할 수 있다. “도시의 창문을 통해 바라본, 혹은 도시의 빌딩 선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페인팅 선 사이로 묘한 빛이 스며드는 걸 발견할 수도 있고요.” 모더니즘에 베이스를 둔 그의 도시의 밤 연작은 낮의 하늘이 전하지 못한 도시 뒷면의 어둠과 빛의 이야기를 묵직하게 풀어놓는다.   

 

 

 왜 늦은 나이에 붓을 들었나   
“어렸을 때 미술을 보고 경험할 기회가 적었어요. 전형적인 교포로 키워졌죠. 학생 때도 예술 작가보다는 사무직, 소위 ‘사’자 직업 커리어를 쌓을 수 있도록 공부했어요. 미국에서 동양인을 볼 때 소수지만 모범적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나 역시 ‘모범적인 소수’의 틀에 알맞은 그런 유년 시절을 보냈지요.” 그의 부모님은 예술과는 거리가 먼 분들이었고, 혼자 예술만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예일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늦은 나이에 화가의 길을 택한 것 역시 그와 맞닿아 있다. 주말에 취미 삼아 그림을 그리는 ‘선데이 페인터’에서 탄생한 ‘선데이 페인팅’은 분명 그의 늦은 시작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더, 그의 작업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그의 뿌리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는 미국에서 나고 자랐으며 한국어는 그에게 낯선 언어다. “나는 백인도 흑인도 아닌 아시아인. ‘뉴트럴 포지션’이었죠. 나의 또 다른 작품인 ‘제유법’이 탄생한 배경이에요.” 1993년 휘트니 비엔날레에 소개되며 큰 반향을 일으킨 바이런 킴의 ‘제유법’은 중간자적 입장에서 인종을 나타내는 단서인 ‘몸’을 그만의 모노크롬 추상화로 표현한 작품이다. 그는 수백 개의 패널에 수백 명의 실제 피부색을 희석함으로써 인간의 몸,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은유를 자신만의 화법으로 던지며 깊은 반향을 일으켰다. 자신의 정체성, 신체를 그림으로 끌어들인 ‘피부 그림(Skin Painting)’ 연작, 일상을 대변하는 하늘 그림을 통해 자연의 세계와 인간의 삶을 동시에 기록한 ‘일요일 그림(Sunday Painting)’ 등. 그는 늦은 나이에 붓을 들었지만 자신만의 사실적이고 시적인 은유로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영역의 회화를 선보인다.   
“당연히 하늘 연작은 계속될 거예요. 다른 새 작업도 구상 중인데, 손바닥만 한 캔버스에 진짜 손바닥(손금)을 그리는 작업이죠. 이미 작년에 한 점 그렸고, 두 손금을 1년에 한 점씩 그릴 예정입니다.” 손금은 보통 인간의 삶, 운명을 나타내는 척도로 인식된다. 1년에 한 점씩 손금을 그리는 작업은 ‘삶’을 그리는 하늘 연작의 또 다른 프로젝트이자 신체를 끌어들인 ‘스킨 페인팅’의 또 다른 시작이 될 것이다. “빈 캔버스 앞에 서는 일은 낭만적인 일이지만, 나는 빈 캔버스 앞에 서는 게 두렵습니다. 그래서 항상 아이디어가 있는 상태에서 캔버스 앞에 섭니다.” 그의 회화는 천재성에 기인하지 않는다. 우리와 가까운 소박한 삶, 경험에 기인한다. 그는 그저 ‘삶’이라는 가장 위대한 그림을 천천히 그릴 뿐이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모두 (잠재적인) 선데이 페인터일지 모른다.   

 

Byron Kim, &Sunday Painting* Series

 

 

 

 

 

더네이버, 미술 작가, 바이런 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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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미술 작가,바이런 킴,개인전,국제갤러리,선데이 페인터

CREDIT Editor 설미현 Photo 박우진 출처 THE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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