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말 터진 폭스바겐발(發) ‘디젤게이트’로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이 들끓었다. 막대한 배상금과 벌금이 부과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폭스바겐 그룹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그런데 2년이 조금 넘은 지금, 상황은 예상했던 것과 너무 다르게 흘러간다. 겉으로 나타나는 숫자가 그렇다. 폭스바겐 그룹은 2016년에 이어 2017년에도 1000만대 넘는 판매대수를 기록했다. 더욱이 폭스바겐 브랜드는 2017년 한 해 동안 전 세계 시장에서 2016년 대비 4.2퍼센트 성장한 623만대를 판매하며 브랜드 역사상 최대 판매량을 기록했다. 우리나라에선 지난해 폭스바겐의 판매대수가 ‘제로’였는데 세계 시장에선 최대 판매량을 기록한 거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지난해 폭스바겐 그룹의 전체 판매실적을 살피면 상용차는 줄었지만 아우디를 비롯한 나머지 브랜드의 판매량은 모두 올랐다. 특히 아우디와 스코다, 세아트, 만, 스카니아는 2016년에 비해 10퍼센트 넘는 성장을 보였다. 대륙별로 살펴보면 러시아에서 25.8퍼센트 올라 가장 큰 성장 폭을 기록했다. 이 밖에 동유럽과 중국에서도 10퍼센트가 넘는 성장을 보였다. 미국에서 기록한 마이너스 5퍼센트 남짓의 부진을 덮고도 남을 수치다. 한국 시장의 제로 성장은 중국의 폭발적인 성장에 이미 덮였다. 폭스바겐은 이 같은 성장 배경에 2016년 발표한 ‘트랜스폼 2025+’ 전략이 작용했다고 해석했다. 2020년까지 핵심 사업을 전면 재구성하고(SUV 라인업을 강화하는 것을 포함한다), 2025년까지 전기 모빌리티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고, 2025년 이후부터 새로운 모빌리티 시장을 이끄는 선두주자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을 담은 이 전략이 생각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거다.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려면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아우디는 2016년 시즌을 끝으로 르망 24시간 내구레이스 LMP1 클래스에서 철수한다고 밝혔다. 포뮬러 E에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미 충분한 성과를 거둔 내구레이스 대신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높은 포뮬러 E에 투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포르쉐가 르망에 복귀하면서 포르쉐에 자리를 내주려는 의도도 있었다. 그런데 2017년 7월 포르쉐도 르망 24시간 내구레이스의 LMP1 클래스 참가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르망에 진출한 지 3년 만에 내린 결정이다. 대신 2019년부터 포뮬러 E에 참가한다고 밝혔다. F1이나 르망 LMP1 클래스에 출전하려면 머신이 필요하다. 머신을 개발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드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포뮬러 E는 섀시와 배터리를 FIA에서 공급받는다. 모든 브랜드가 같은 섀시와 배터리를 얹은 머신으로 달려야 하는 게 규정이기 때문이다(단, 전기모터나 변속기 등은 바꿀 수 있다). 따라서 머신을 개발하는 데 큰돈이 들지 않는다. 만약 포뮬러 E의 인기가 높아진다면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폭스바겐 그룹은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략을 수정하고, 체질을 개선하며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려 애썼다. 2017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전날 열린 폭스바겐 그룹 나이트에서는 전기차 추진 전략 ‘로드맵 E’를 발표했다. 2025년까지 50개의 전기차를 출시하고 2030년까지 그룹에서 생산하는 전체 모델에 전기차 버전을 추가한다는 계획이다. 당장 2019년이면 신형 e-골프와 I.D. 모델을 만날 수 있다. 디젤게이트 여파가 여전히 그룹을 흔들고 있지만 폭스바겐은 얄미울 정도로 차분히, 그리고 침착하게 상황을 극복하고 있다.   글_서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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