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 브랜드의 1기 라인업이 완성됐다. 일단락의 주인공은 지난해 9월 출시한 G70이었다. 제네시스 G70 계약 건수는 출시 두 달 만에 출시 첫해 판매 목표인 5000대를 훌쩍 넘겼다. 12월까지 출고된 숫자는 4554대였다. 수출도 시작했으며 언론 및 고객 평가도 꽤 좋다. 순조로운 출발이다. 제네시스는 21세기 가장 성공한 자동차 브랜드 중 하나인 현대차가 내놓은 21세기 유일의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다. G70의 성공적인 출발은 제네시스 브랜드 안착의 신호탄으로 봐도 좋을까? 아니, 뭔가 잊은 게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럭셔리인가요? 제네시스 브랜드는 현대 제네시스 세단이 쌓은 명성을 발판 삼아 2015년 말 전격 출범했다. 럭셔리 브랜드 전문가 맨프레드 피츠제럴드를 영입해 기반을 다지고 있지만 브랜드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아직 선명해 보이지 않는다. 

 

제네시스에서 제네시스로
제네시스가 브랜드 이전에 제품 이름이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2008년 출시한 뒷바퀴굴림 프리미엄 세단 제네시스(코드명 BH)가 그 주인공이다. 렉서스를 겨냥하며 개발된 현대 제네시스는 그랜저와 에쿠스 사이 공백을 메웠다. 디자인은 이전 현대차들과 분명히 구분됐다. 뒷바퀴굴림 세단 개발의 부족한 노하우가 무색하게 승차감과 정숙성도 훌륭했다. 그리고 출시 첫해 2만7000여 대가 팔리는 등 단숨에 성공을 거뒀다. BH 제네시스의 성공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같은 플랫폼을 응용한 2세대 에쿠스 역시 크게 성공했다. 

2세대 DH 제네시스는 한 단계 발전한 기본기로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줬다. 판매 면에서도 순조로웠다. 국내는 물론 북미 시장에서도 연간 2만대 이상 성과를 올렸다. 힘입어 에쿠스도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제네시스 제품군은 어느새 내수와 수출 시장 규모가 막상막하를 이루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이는 현대차에 매우 중요한 의미였다. 수출 초기인 1980년대 현대차는 다른 차 한 대 값으로 두 대를 살 수 있다고 광고하는, 저렴한 가격이 무기인 브랜드였다. 이후에도 뛰어난 ‘가성비’로 승부하는 이미지는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고가의 뒷바퀴굴림 세단을 잘 만들고 잘 팔 수 있다는 경험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21세기 자동차 시장의 주요 테마 중 하나인 프리미엄 시장 진출이었다. 그러자면 제품 이상의 그림이 필요했다. 독립적인 프리미엄 브랜드였다. 성공한 제품 이름을 브랜드명으로 확대 적용하는 건 실패 위험을 줄이는 방법으로 나쁘지 않다.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가 심어졌고 어느 정도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좋은 것만도 아니다. 친숙하다는 건 신선하지 못한 걸로 여겨질 수 있어서다. 이전 제품의 이름을 사용한 까닭에 제네시스 브랜드는 새로 시작하는 브랜드임에도 임팩트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판매 실적이 이를 증명한다. 현대차의 영향력이 가장 큰 국내 시장에서는 2015년 11월 브랜드 론칭 이후 브랜드 첫 모델인 EQ900와 G80 모두 2016년 판매가 급신장하는 모습이었다. EQ900는 에쿠스 후속작으로 준비돼오던 모델이었고, G80는 기존 DH 제네시스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임에도 신규 브랜드의 주목도가 제품의 한계를 이겨냈다. 

하지만 현대차 브랜드 인지도와 이미지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미국 시장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완전 신형인 G90(EQ900)는 판매가 증가했지만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G80는 신선도가 떨어지며 판매가 급락했다. 모델 이름을 브랜드명으로 확장한 것이 영향력과 인지도가 높은 내수 시장에선 성공적이었지만, 해외에선 브랜드 출범 효과를 떨어뜨리고 모델 경쟁력에만 의존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G90나 G80 모두 한계는 분명했다. 제네시스 브랜드가 전달하고자 하는 가치와 이미지를 토대로 개발을 시작한 모델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G90처럼 기존 명품 브랜드와 협업으로 이미지 상승 효과를 추구하거나 G80처럼 기존 모델의 성공 포인트를 더 강화하는 전술적 접근이 제네시스 브랜드에 있어 효율적이면서도 거의 유일한 접근법이었다. 

 

 

G70의 정면승부 G70는 본격적인 스포츠 세단을 지향했다. 3시리즈, C 클래스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진 셈인데, 그러자면 강력한 무기 하나쯤은 있어야 했다. 도전정신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제네시스 브랜드의 저변을 넓힐 목적이었다면 먼저 SUV 시장부터 공략하는 게 나았을 수 있다.

 

G70를 향한 불안한 시선
제네시스 브랜드의 진정한 첫 모델인 G70는 다를 거라 기대했다. SUV 라인업을 포함한 향후 제네시스 라인업 확장 계획이 발표된 뒤 나온 첫 제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G70가 ‘진정한 의미(Authentic and Relevant)’라는 제네시스 브랜드 슬로건의 진정한 의미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는 초미의 관심거리였다. 솔직히 말해 그 슬로건(Authentic and Relevant)은 선뜻 와닿지 않았다. G70가 선명하게 보여줘야 했다. 

이전 제네시스 세단, 그리고 제네시스 브랜드 모델들이 그랬듯이 G70는 제품 자체로는 매우 훌륭하다. 엠블럼과 선입견이라는 계급장을 떼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벌인다면 제네시스 G70는 더 많은 표를 얻을 수 있으리란 생각이다. 옵션이나 가격도 상대적으로 좋지만 그보다 본질적인 면에서 크게 발전했기 때문이다. 육감적인 실루엣의 디자인부터 메르세데스 벤츠를 연상시키는 묵직하고 든든한 느낌의 고급스러운 주행감각까지 모든 게 인상적이다. 4000만~5000만원으로 살 수 있는 승용차 가운데 가장 고급스럽고 또한 고성능인 제품이기도 하다. 

바꿔 말해 G70는 현재 제네시스 브랜드가 자리하고 있는 ‘니어 럭셔리’ 시장용으로는 괜찮은 제품이다. 제네시스가 추구하는, 자동차가 고객의 인생에 주는 ‘진정한 의미’를 고민한 흔적도 느껴진다. 고급스럽지만 고루하지 않고 생동감 있지만 공격적이지 않은 디자인, 우수한 조종성능과 중후하지만 거칠지 않은 승차감의 조화, 운전자 중심의 스포티함과 고급스러움이 어우러진 인테리어 등 상품성의 수준도 상당히 높다. 

하지만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다. 앞서 말했듯 G70는 제네시스 브랜드의 실질적인 첫 모델이다. 브랜드 출범 이후 2년 가까이 흐릿한 채로 이어져온 브랜드 가치와 슬로건을 구체화하는 첫 사례가 돼야 한다. 나아가 G70는 프리미엄 D 세그먼트 세단이다. BMW 3시리즈로 대표되는 이 시장은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자동차의 기본기로 승부하는, 자신들이 가진 실력을 오롯이 토해내는 격전장이다. 제네시스가 프리미엄 D 세그먼트 세단을 브랜드의 실질적인 첫 모델로 선택했다는 건 프리미엄 시장의 기존 강자인 독일 3사에 정면 도전하겠다는 의미와 같다. 그런 점에서 G70는 매우 좋은 차임에도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제네시스 브랜드만의 무기 또는 시장의 기준인 독일 브랜드들을 위협할 만한 강력한 한 방이 보이지 않아서다. 

게다가 판정 기준이 한없이 까다로운 데다 시장 영향력이 줄고 있는 프리미엄 D 세단 시장은 판매량 증가에도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 만약 양적으로라도 새로운 프리미엄 브랜드의 입지를 다지려 했다면 빠른 시간에 판매량을 늘릴 수 있는 프리미엄 D나 E SUV 시장을 먼저 공략하는 게 나았을 거다. 시장도 성장세이고 기준도 프리미엄 스포츠 세단보다 덜 까다로우며, 실내공간 확보나 옵션 등 현대차가 이미 갖고 있는 강점을 더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전략으로 성공한 프리미엄 브랜드가 있다. 스웨덴 볼보다. 볼보는 인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안전 기술, 스칸디나비아 기후에서 기인한 아늑한 실내와 토르의 해머로 대변되는 디자인으로 브랜드의 토대를 세웠다. 그리고 이 모든 걸 자신들이 강점을 지닌 라이프스타일 모델(XC SUV) 라인업에 자연스럽게 녹여 시장에 안착했다. 
하지만 제네시스 브랜드는 출사표로 프리미엄 D 세단 시장을 골랐다. 이는 질적인 측면에서 승부를 걸어 브랜드 이미지를 끌어올린 다음 뒤이어 출시할 SUV 모델들로 판매량을 단숨에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그런 것이라면 더욱 G70는 색깔을 또렷하게 해야 했다. 지금의 G70는 럭셔리한 구성 위에 스포티함을 더한 럭셔리 중심의 세단이다. 시장에서 경쟁력을 보편적인 성격에서 찾았다고 이해해도 좋다. 그런데 결정적 단점이 있다. 뒷좌석 공간이다. 

일반적으로 후발 주자들은 기능, 공간 등 실질적인 강점을 내세우며 부족한 브랜드 이미지를 상쇄하려 한다. 반면 G70는 차체 크기가 3시리즈와 C 클래스의 중간 정도로 본격적인 스포츠 세단에 가깝다. 태생적으로 뒷자리가 좁은데 크고 두꺼운 시트까지 올라가 공간은 더 협소해졌다. 앞 시트 아래로 발을 넣을 수 없는 구조 때문에 뒷자리에 성인이 앉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용도가 제한적인 설계라 G70는 좋든 싫든 지금보다 훨씬 본격적인 도전으로 승부를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독일 3사에 도전장을 던진다는 G70가 그들 안방에서 열리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불참했다. 모터쇼 현장에선 출품은커녕 제네시스 브랜드에 관한 이야기조차 나오지 않았다. 정말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물론 제네시스의 최대 수출시장은 북미 대륙이다. 그렇다고 해서 도전장조차 제대로 던지지 않은 건 문제다. 분명 자신감 또는 결의 가득한 도전자의 패기 넘치는 모습은 아니었다. 현대차는 새로운 프리미엄 브랜드를 출범시켰다. 비어만 사장과 같은 독일의 유능한 엔지니어를 영입해 단기간에 일취월장한 제품도 만들어냈다. 그럼에도 독일 3사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질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다. 그들에게 이런 기회가 과연 몇 번이나 더 찾아올까? 

 

 

제네시스는 어디에? 지난해 IAA에 현대 N 브랜드는 있지만 제네시스 브랜드는 없었다. 도전자다운 패기가 아쉬운 대목이다. 반면 브랜드를 조각하는 과정은 정공법에 가깝다. 그런데 자동차업계의 패러다임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신입 프리미엄 브랜드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보다 과감해지거나, 볼보처럼 영리해질 필요가 있다.

 

착하게 승부할 시간은 없다
제네시스 브랜드는 정공법을 펼치면서도 한 발짝씩 단단하게 성장하는 길을 선택한 모습이다. 렉서스가 지금 자리에 오기까지 20여 년 걸렸음을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의 세상이 녹록하지 않을 것이기에 그들을 보는 마음이 더 조급하다. 5년 뒤면 자율주행, 전기차, 커넥티비티 등 새로운 조류가 완전히 자리 잡을 수 있다. 제네시스 브랜드가 얘기하는 자동차의 진정한 의미를 따지는 고전적인 고객들은 아예 사라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결국 제네시스는 빠르게 브랜드 이미지를 다지고, 의미 있는 수준의 판매량으로 시장에 영향력을 끼쳐야 하며, 재빨리 미래 패러다임으로 전환까지 고려해야 한다. 이 모든 걸 해내야 하는 시간은 짧으면 5년, 길어야 10년 이내다. 

자동차 세상은 평지풍파가 시작됐다. 여러 임무가 걸려 있는 G70가 더 또렷한 태도로 더 빠르게 뛰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까닭이다. 모름지기 브랜드의 진정한 출사표라면 그래야 마땅하다. 제네시스 G70는 자동차의 태평성대에 태어났다면 아주 좋은 모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  에디터_김형준 

 

 

 

안팎 사정 다른 제네시스 브랜드
한국에서 제네시스 브랜드는 현대 제네시스 세단의 명성을 비교적 잘 이어갔다. 반면 미국에서는 모델 명칭을 브랜드로 확장시킨 효과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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