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유난히 자동차 회사들의 창립 기념행사가 많다. 법인 설립을 창립일로 삼는 경우가 가장 많은데, 그 브랜드의 첫 양산차를 내놓은 시기를 내세우는 곳도 있다. 어떤 상황이더라도 처음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은 중요하다. 역사는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누적되므로 현재의 회사를 만든 기초이기 때문이다. 어찌 됐건 회사 차원에서는 그간의 역사를 자랑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기념일은 적극적인 자랑거리다. 이는 과거에 비해 자동차 회사들 사이에 기술력의 격차가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서 더 중요하다. 역사와 전통을 내세워 경쟁 회사와는 다른 무언가를 갖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젊은 상대방과 비교해 긴 역사를 가졌다는 건 현재의 브랜드 철학에 대한 단단한 근거가 된다. 물론 여기에는 실제로 쌓인 자동차 개발과 제작에 대한 기술적 노하우도 포함된다. 요즘에는 대형 부품사들의 기술력이 좋아졌지만 종합적인 완성품으로 자동차를 만드는 것은 역시나 자동차 제작사의 몫이다.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수없이 많은 전기차 회사들이 생기고 사라지는 것이나,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에서 매년 여러 회사가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을 봐도 그렇다. 물론 환경에 따라 회사의 주인이 바뀐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요즘 같은 시절에는 주식을 누가 가졌느냐보다는 브랜드의 생존 자체에 의미가 있다. 그래서 더욱이 기념일 챙기기가 필요한지 모른다.  올해 볼보가 90주년을 맞았다. 1927년 4월 14일, 첫 번째 차인 O¨V 4를 내놓으면서 시작됐다. 창업자인 아사 가브리엘슨과 구스타브 라르손은 처음 회사를 만들면서부터 안전을 최우선으로 내세웠고 이는 그대로 회사의 전통이 되었다. 자동차는 사람이 운전하는 것이기에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것이 모토였다. 1944년부터 탑승 공간을 보호하는 세이프티 케이지 구조, 접합 안전유리 등을 선보인 이래 3점식 안전벨트 등 세계 최초로 선보인 다양한 안전 장비들이 많다. 현재 많은 차에서 선택할 수 있는 사각지대 감지 기능도 2004년 처음으로 양산차에 달아 회사의 전통을 만들고 증명했다. 물론 그동안 회사의 주인이 두 번 바뀌는 일도 있었다. 볼보 그룹이 트럭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승용 부분을 내놓았고, 고급차 시장에 진출하려는 포드의 계획에 따라 1999년 프리미어 오토모티브 그룹(PAG)의 일환이 된다. 그리고 딱 10년 만인 2009년 중국 지리자동차로 소속이 바뀐다. 두 경우 모두 볼보의 자동차 개발 능력과 안전에 대한 노하우를 탐냈던 회사들이었고 모회사에 새로운 플랫폼과 여러 안전 관련된 기술을 전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럼에도 브랜드의 철학이 지켜졌기에 현재의 볼보가 있는 것이다. 주력 모델인 90 시리즈와 같은 숫자임을 활용해 국내에서 90주년 관련 이벤트를 열기도 했는데 브랜드 역사를 잘 활용한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페라리도 70주년을 맞았다. 경주에 출전하던 팀에서 일반 판매용 차인 125S를 처음 내놓은 1947년 3월 12일을 창립 기념일로 삼았다. 페라리의 도약하는 말 엠블럼을 처음 단 이 차는 데뷔 첫해 여러 경주에 출전해 6번의 우승을 차지하며 레이스에 대한 전통을 시작했다. 이는 70주년 기념 모델인 라페라리 아페르타와 함께 전 세계를 도는 이벤트로 이어졌다. 행사가 열리는 나라에서는 페라리 오너들이 각자의 차를 몰고 같이 모여 회사의 생일을 즐기기도 했다. 논어에 나이 70은 종심(從心)이라고 하는데,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를 어기지 않는다’는 의미다. 페라리가 무엇을 하든 세계적인 스포츠카 브랜드로서 인정받는 것처럼. 
반면 이런 역사를 자랑스럽게 내세우지 못하는 회사도 있다. 올해 80주년을 맞은 폭스바겐이다. 한참 나치 치하였던 1937년  5월 28일에 회사가 만들어진 폭스바겐은 흔한 보도자료나 행사 없이 조용하게 80주년을 지났다. 회사를 먼저 세우고 그 이듬해 비틀의 기본이 된 폭스바겐 타입 1을 만들었지만 실제 생산에 들어간 것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였다. 이후 영국 정부는 전쟁 배상금을 받기 위해 폭스바겐을 민간 회사로 만들어 주식을 팔아 돈을 챙기고 영국으로 돌아간 것이 1949년 이후였다. 전쟁을 통해 벌인 범죄에 대해 철저하게 반성하는 독일이기에 부끄러운 역사를 감추지 않고 드러내지만, 그렇다고 자랑할 일은 아님을 잘 알고 있는 회사여서 담백하게 역사를 적어놓았을 뿐이다. 그리고 올해는 현대자동차가 50주년이 되는 해다. 1967년 12월 29일에 회사를 처음 만들었고 포드와의 합작으로 코티나를 내놓은 것이 역사의 시작이다. 그 이후 20M 등을 라이선스 생산하다가 1975년 현대차 첫 고유 모델인 포니를 선보이며 자립의 기반을 다졌다. 1994년에 섀시부터 엔진까지 모든 것을 국내 기술로 개발한 엑센트가 나오면서 완전히 독립된 자동차 회사가 됐다. 2008년 첫 독자 개발 뒷바퀴굴림 프리미엄 모델인 제네시스(현재 G80)의 1세대 모델을 내놓으며 고급차 시장에까지 진출했다. 그간 많은 일을 겪으면서 맞은 50주년, 그러니까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는 지천명(知天命)에 이르렀다. 과연 현대차는 올해 50주년을 맞아 무엇을 이야기할까. 아직 창립 기념일까지는 시간이 있다고는 하지만 1년이 거의 다 지나가는 동안 사실상 아무런 이야기가 없다. 성장에만 집중하다 지나온 과거는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가 아닌지 걱정스럽다. 또 외국의 다른 회사들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50’이라는 숫자가 작아 보이는 것도 있다. 한편으로는 한창 크고 있는 제네시스 브랜드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50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하나의 모델명으로 30년을 넘게 파는 쏘나타나 그랜저 같은 차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될 시간이다. 하지만 막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 현대자동차가, 같은 역사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매우 아쉽다. 든든하게 자리 잡은 뿌리는 무시하고 열매만을 자랑하는 것처럼 보여서다. 인고의 세월을 지나 장년이 된 현대차가 충분히 자부심을 가졌으면 한다.  글_이동희(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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