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feStyle

  • 기사
  • 이미지

이것은 공포가 아니다

유혈 낭자한 B급 판타지 호러가 아니다. 세계적인 작가들이 남긴 12편의 좀비 호러 컬렉션. <좀비 연대기>는 섬뜩한 공포를 넘어서는 ‘인간’에 관한 이야기다.

2017.09.13

죽지 못하는 자들의 슬픔
15년 전 욱하는 마음에 죽여버린 친구가 찾아왔다. 뜨거운 아프리카의 땅속에 파묻은 그가 차가운 런던의 안개 속에 나타났다. 자신을 죽인 친구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인가? 아니다. 그가 바라는 것은 오직 안식이다. “피곤해, 너무 피곤해.” 누군가 자신을 제멋대로 되살려버린 이 운명이 너무나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친구에게 부탁한다. 다시 잠들게 해줘. 미국의 항구 도시 뉴올리언스는 좀비 전설을 백인들 세계에 퍼뜨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다. 이 도시의 아름다운 주택가에는 소설가 앤 라이스가 살던 저택이 있다. 그녀는 여섯 살도 안 된 딸이 병으로 죽자, 영원히 죽지 않는 흡혈귀의 전설에 집착했다. 그런데 그렇게 태어난 소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아름다운 흡혈귀는 한탄한다. 죽지도 늙지도 못하는 자신의 운명은 저주에 다름 아니라고. 그런데, 이 뱀파이어의 푸념을 좀비가 듣는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아이티에서 시체를 좀비로 되살려내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죽은 이를 잊지 못해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기 위해서? 아니다. 사탕수수밭의 노예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열대의 뙤약볕에서 지옥의 형벌 같은 노동을 반복시키려면 감각 없고 군말 없는 좀비가 제격이므로. ‘화이트 좀비’는 그들 사이에서 외톨이 백인 좀비도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채찍을 얻어맞으면 그는 비척비척 말없이 일어나 행렬을 따라갔다고. ‘천 번의 죽음’의 불쌍한 아들은 미친 과학자인 아버지 때문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실험체가 된다. 그는 10만 볼트의 전류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테슬라의 이론을 증명하다가 전압이 떨어지자 감전사당했는데, 불행하게도 3일 뒤에 다시 살아난다. 아버지는 가혹한 실험을 견디기 위해 체력을 단련하라고 잔소리까지 한다. “내가 네게 생명을 주었으니 그걸 가져갈 권리 또한 나한테 있지 않겠느냐?” 21세기의 우리는 액션 영화나 게임 속의 재빠르고 탐욕스럽고 무섭게 번식하는 좀비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니 <좀비 연대기>에 나오는 옛 좀비들은 굼뜨고 심심한 존재로 보인다. 그러나 나는 이쪽이 훨씬 현실적이라고 여긴다. 현대의 우리는 지독한 노동에 시달리다 집에 돌아오지만 너무 피곤해서 오히려 잠들지 못한다. 다음 날이면 다시 꽉 막힌 도로를 비집고 일터로 가는데, 그곳에서도 매사 의욕도 기운도 없다. 밀린 대출금과 온갖 의무 때문에 ‘죽음조차 허락받지 못한’ 자동 인형에 다를 바 없다. 이 저주는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이 글을 쓴 이명석은 문화 칼럼니스트이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아이티 공화국 법전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고 한다. “실제적 사망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무력한 혼수 상태를 야기하여 상당 기간 지속시키는 물질을 사람에게 적용하여 그의 의지에 반해 고용하는 행위는 살인 미수에 준한다. 그런 물질을 주입한 사람을 매장할 경우, 그 결과와 상관없이 그 행위는 살인으로 간주한다”. 이 법은 좀비를 위해 특별히 마련된 법이다. 죽은 시체를 불러일으켜 노예로 삼는 주술사들, 그리고 그 주술사들을 개인적으로 응징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 우리가 여름 납량 특집 공포물에서나 소비하는 좀비를 길을 가다가, 옆집에서 만나는 나라. 그런 나라가 있다면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에 대하여, 잘 죽는다는 것과 온전히 산다는 것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 책에 실린 단편을 읽으며, 나는 죽은 이보다 살아 있는 이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가 쓴 <나트에서의 마법>에는 나트섬에 살면서 익사한 시체들을 불러일으켜 노예로 쓰는 마법사 부자가 나온다. 유목민의 왕자 야다르는 납치된 약혼녀 달릴리를 찾아 온 세상을 헤매다가, 나트에 표류하고 나서야 비로소 만난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시체다. 마법사 바카른과 그의 아들 보칼과 울둘라가 익사한 달릴리를 좀비로 만들어 부려먹고 있다. 달릴리는 걷고 먹고 대꾸도 하지만, 살아 있는 상태가 아니다. 달릴리는 사랑하는 그녀이기도 하고 그녀가 아니기도 하다. 보칼과 울둘라는 아버지를 죽일 궁리를 하고 야다르의 도움을 청한다. 셋은 기운차게 바카른을 죽이려 달려들어 성공하지만 야다르와 보칼은 그 과정에서 죽음을 맞는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울둘라가 물려받은 것은 그저 시체들로 가득한 섬이다. 울둘라는 야다르도 좀비로 부활시키지만 자신은 기이한 우울증과 광증에 사로잡혀 자결한다. 무감각하게 좀비들이 움직이는 한가운데서, 혼자 살아 있는 존재인 자신을 견디지 못한다. 그 섬은 이제 시체들만 움직인다. 좀비들은 여전히 염소와 소를 키우고, 아무의 영광에도 기여하지 못할 진주를 캔다. 야다르는 유령 같은 열망을 가지고 달릴리의 곁에서 유령 같은 위로를 느낀다. 헛헛한 사랑, 희미한 만족. 오히려 이 세계에서는 살아 있다는 것이 저주다. 좀비가 평화다. 어디서 많이 본 세계 아닌가? 
이 글을 쓴 박사는 북 칼럼니스트이다.  

 

 

더네이버, 책, 좀비연대기

What do you think?
좋아요

TAGS 좀비 연대기,book,좀비 호러

CREDIT Editor 설미현 Photo 김도윤 출처 THE NEIGHBOR

Film

film 더보기
SUBSCRIBE
  • 메인페이지
  • PlayBoy Korea
  • MOTOR TREND
  • neighbor
  • 東方流行 China

RSS KAYA SCHOOL OF MAGAZINE

Copyright Kayamedia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