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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든 연출가, 이명호

그의 모태는 사진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이름이 사진가로 기억되길 원하지 않는다. 한국 사진작가 중 가장 핫한 작가로 분류되는 이명호. 그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하얀 캔버스 앞에 섰다. 그는 요즘 할 말이 많다. 비단 오랜만에 열릴 개인전 얘기만이 아니다.

2017.09.08

 

Tree… #6, 124×104cm, 종이 위에 잉크, 2014

 

그와의 만남은 4년 전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개인전 때 이후 두 번째다. 빈 시간을 이용해 등산을 다녀왔다는 그는 땀에 젖은 등산복 차림으로 인터뷰 현장에 나타나 당혹스러움을 안겼다. 복장 따위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 듯 특유의 해맑은 웃음으로 그는 카메라 앞에 섰다.  아티스트 이명호. 그를 다시 만난 장소는 증권사 사옥이다. 아티스트와 증권사? 이도 어울리지 않는 당혹스러운 현장이다. 본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는 얼마 전 신사옥을 오픈한 대신증권과 인연이 깊다. 금융과 문화를 아우르는 복합 문화 공간을 표방하는 대신증권의 신사옥 6층에 ‘갤러리 343’이라는 작은 갤러리 하나가 들어섰고, 그가 오프닝을 장식했다.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몇 년 전 진행한 ‘숭례문아트프로젝트’를 통해 인연을 맺었죠.” ‘숭례문아트프로젝트’는 이명호 작업의 연장선에서 국보 1호인 숭례문의 재건을 기념해 거대한 캔버스(45×18m)를 설치한 후 사진으로 담아내는 의미 있는 프로젝트였다. 설치 과정에서의 문제로 비록 실패했지만 대신증권은 이 프로젝트의 후원사이기도 했다.

 

Tree… #8, 78×294cm, 종이 위에 잉크, 2016 

 

Growing Sculpture(Tree Songdo), 2015

 

하얀 캔버스의 정체
‘나무 앞에 하얀 천을 설치하고 찍은 게 전부 아냐?’ 이명호의 작업 과정을 모르는 이라면, 아마 이런 망언을 서슴없이 던질지 모른다. 그의 이름은 익숙지 않더라도 하얀 캔버스 위에 나무가 그려진(?) 듯한 작품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의 대표작인 ‘나무’ 연작이다. 그는 나무 한 그루를 찍기 위해 광활한 초원을 누빈다. 마음을 움직이는 나무를 발견하면 그 뒤에 거대한 캔버스를 설치하고 그것을 사진으로 담는다. “나무 연작이 현실을 ‘재현’하는 일종의 기록적 성격이라면, 신기루 연작은 비현실을 만들어내는 ‘재연’에 가깝습니다.” 자연 속 평범한 나무. 그는 캔버스에 나무를 그리는 대신 자연 속으로 캔버스를 들고 가 평범함이란 이름으로 소외된 나무를 우리에게 환기시킨다. 그가 나무 뒤에 캔버스를 설치한 순간, 평범한 나무는 묘한 경외감으로 탈바꿈한다. 그것은 얼핏 사진을 넘어 절제된 한 폭의 동양화를 떠올리게 한다. “신기루 연작은 성격이 좀 다른데, 사막 한가운데에 수백 명이 하얀 천을 덮고 누워 있고, 그 거대한 장면을 카메라에 담는 거죠.” 사막을 배경으로 한 신기루 연작은 나무 연작과는 결을 달리한다. 사막의 지평선 위에 하얀 캔버스를 뒤집어쓴 채 누워 있는 사람들. 한데 정작 그의 사진 속에는 사람들의 자취는 온데간데없고, 마치 바다인 듯 오아시스인 듯 하얀 자취만 드넓은 사막 한가운데에 자리한다. 현실의 ‘재현’이 아닌 비현실의 ‘재연’. 그는 사진을 찍지만, 사진작가가 될 수 없는 결정적 단서가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 “사진이라는 말 대신, ‘예술-행위 프로젝트(Art-Act Project)’라 명명하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결국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사진이 아니다. 그것을 재연하기 위한 프로젝트의 과정,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인 셈이다. 그가 전시장에 작품의 제작 과정을 함께 전시하는 이유 역시 같은 맥락일 것이다. 2004년 시작된 이명호의 사진- 행위 프로젝트는 2010년 예술-행위 프로젝트로 확장됐고, 여전히 진일보 중이다. 사실 그는 이날 꽤 묵직해 보이는 카메라 한 대를 쇼핑백에 들고 왔다. 
“라이카에서 저에게 최근 기증한 카메라인데, 첫 프로젝트로 동계올림픽을 테마로 작업 중이에요.” ‘카메라가 없는 사진가’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닌 이명호. 독일의 명품 카메라 브랜드 라이카는 이례적으로 작가에게 최고 사양의 ‘LEICA S’를 기증했고, 세계적인 작가 이명호의 뒤를 따라다닌 ‘카메라 없는 사진가’라는 수식어는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이번 기증은 이명호의 ‘국가대표 프로젝트(Player Project)’를 후원하는 의미도 동시에 담겨 있다. 
“지난 4월부터 평창 동계올림픽의 12종목, 선수 15명을 촬영하고 있어요.” 보통 동계올림픽 하면 설산에서의 액티브한 스포츠 사진이 떠오르기 마련. 하지만 그의 프로젝트는 좀 다르다. 선수들이 경기에 나서기 전, 훈련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알파인 스키, 피겨 스케이팅, 봅슬레이, 바이애슬론, 컬링 등 이명호는 그들의 훈련 모습을 예술-행위 프로젝트의 연장선에서 작업 중이다. 선수에게 요구되는 신은 3가지. 
첫 번째는 자신의 종목을 상징하는 전형적 포즈. 두 번째는 훈련할 때 특수 동작(예를 들어 스키 점프라면 땅에서 누군가가 들어 올리는 동작과 같은 것이다). 세 번째는 ‘ㅊ’자 형태. “평창 동계올림픽을 상징화하듯 ‘ㅍ’자 형태 프레임 안에서 선수들이 몸을 뻗어 ‘ㅊ’자 형태를 만드는 거죠.” 이명호의 작업에서 하얀 캔버스를 둘러싼 장소도 중요한 포인트다. 이번 작업에서는 선수들이 운동하는 현장을 찾아갔다. “평창 알펜시아, 충북 진천, 경북 의성 등 여러 장소를 돌아다녔어요. 연습장 주변 공터가 촬영 무대가 됐지요. 어떤 곳은 풀밭이기도 하고, 나무도 있고요.” 컬링 선수들의 연습 주무대인 의성에서, 서울 태릉선수촌의 다음 둥지인 진천에서, 그는 몇 개월간 이번 프로젝트에 매달렸다. “11월 1일이 평창 동계올림픽 D-100일이에요. 이를 기념해 명동 에비뉴엘 갤러리에서 첫선을 보일 예정입니다.” 그뿐 아니라 12월부터 내년 1월까지는 서울로 7017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과 염원을 담아 다양한 전시 프로젝트가 펼쳐질 예정이다. 올림픽에 오르기까지 무대 뒤편에서 끊임없이 땀 흘리는 선수들의 노력과 열정, 그 너머의 이야기. 이번 국가대표 프로젝트는 그들에 대한 조용한 찬사이자 응원인 셈이다.  

 

아주 기발한 한 편의 다큐멘터리 
“메일 보셨죠?” 이명호는 최근 큰 전쟁 하나를 치렀다. 2015년, 영국의 패션 디자이너 마리 카트란주가 그의 ‘나무’ 연작 중 일부를 무단 도용한 사실을 알게 됐고, 그는 저작권 침해에 관한 소장을 미국 법원에 제출한 터였다. 얼마 전 첫 번째 재판일 직전에 양측의 합의로 사건이 마무리됐다는 보도 메일이 그의 스튜디오를 통해 당도했다. “거대 로펌을 상대로 소송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변호사 역시 승소할 가능성이 많다고 했지만, 패할 경우 뒷감당도 만만치 않았죠.” 왜 끝까지 가지 않고 합의했느냐는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뉴욕의 거대 로펌을 상대로 한국의 일개 작가가 기나긴 싸움에서 버텨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작지만 그 의미를 찾자면, 글로벌 회사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에 관한 그만의 힘 있는 메시지를 던졌고, 작가들에게도 의미 있는 선례를 남겼다는 것. 한편으로는 한국 작가의 위상을 인정받은, 자부심 있는 전쟁이었다.    
“4년 만의 개인전이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려요. 뉴욕 요시밀로 갤러리에서도 8월 말까지 개인전이 열리고요. 제 생일이 7월인데, 이상하게 여름에 바빠요(웃음).” 그런 와중에도 반가운 건 요시밀로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이 이미 솔드아웃됐다는 것. 8월 31일~9월 29일에 열리는 사비나미술관에서의 개인전 <까만 방, 하얀 방 그리고 그 사이 혹은 그 너머>에는 사진, 설치, 영상 등 작품 15점이 등장한다. “3층 구조 갤러리에 방을 3개 만들려고요. 까만 방, 하얀 방, 회색 방.” 사실 이번 전시는 4년 전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까만 방, 하얀 방…>의 연장선으로 이번 전시는 ‘…’의 의미를 푸는 전시가 될 거라고 그는 말한다. “카메라 뷰파인더로 사실은 보지만 진실은 보지 못하죠. 진실은 그 너머의 필름만이 알고 있어요.” 눈으로 보는 사실이 아닌 필름 너머의 진실. 그 필름의 시선을 경험하는 전시가 될 거라고 그는 덧붙인다. 9월에 열릴 오스트리아 빈 전시, 이스탄불 사진 축제, 12월 멜버른 트리엔날레 등 그의 일정은 이미 포화 상태다. 그 와중에 작업실 공사까지 벌이고 있으니. “홍은동 일대를 돌다 매물로 나온 고물상 터를 발견했어요. 그날 바로 계약했죠.” 골목길의 맨 뒷집. 더구나 주변에는 나무와 숲이 작은 터전을 건네니 작업실로선 금상첨화다. 물론 거창한 작업실은 아니다. “이제 터 다지기가 끝났고 9월이면 완공될 거예요. 컨테이너 4동이 전부예요. ㅁ자 구조로 한가운데 중정을 만들고 중정 위에 천을 얹어 휴식 공간을 꾸밀 참이에요.” 영화감독 이준익이, 언덕을 넘으면 문재인 대통령이, 그 옆으로는 자신이 자리한다며 홍은동 작업실의 뿌듯함을 농으로 풀어놓는다. 
“뉴욕 맨해튼의 상징 하면 뭐가 떠오르죠? ‘애플’이죠. 센트럴 파크에 어린 사과나무를 심고 뉴욕과 함께 자라나는 나무 프로젝트로 구상 중이에요. 해마다 사과가 열리면 경매를 해서 젊은 작가를 후원하는 퍼포먼스도 하면 좋고요. 아, 캔버스 천을 경매해 에코백을 만들 수도 있죠.” 자신의 넘치는 아이디어를 풀어놓는 그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신나 보였다. 사실 그의 뉴욕 프로젝트는 이미 송도에서 먼저 현실화됐다. ‘자라나는 조각(Growing Sculpture)’ 프로젝트가 그것인데, 나무 뒤에 캔버스를 설치하고 세월에 따라 자라나는 나무를 환기시키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다(나무가 자랄 때마다 캔버스는 교체된다). 실제 송도에는 나무 세 그루를 심었고, 센트럴 파크의 포토존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섬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에요. 지구 온난화로 섬이 가라앉는다고 하죠, 정확히 말해 해수가 올라오는 거죠. 그렇게 잠기는 섬을 촬영하는 작업이에요. 물론 아직 언제가 될지 알 수는 없지만요.” 섬에 구조물을 설치하고, 서서히 잠기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는 일. “원주민도 떠나고, 모두 떠난 섬의 마지막 컷을 찍고 떠나는 거죠. 종국에는 바다 한가운데에 시멘트 구조물만 남겠죠.” 마치 다큐멘터리 영화 같은 이 프로젝트를 그는 힘들지만 차근차근 준비 중이다. “제가 사진가로 전달되는 걸 원하지 않아요. 제게는 타이틀보다 메시지가 중요한데, 바로 휴머니즘이죠. 제게 예술은 휴머니즘을 제시하는 도구예요.” 절대적 고요와 평온을 품은 이명호의 화면. 그 화면 너머로 치열하고 뜨거운 그만의 내러티브가 웅장하게 넘실댄다. 이명호만의 찬란한 다큐멘터리, 세계 미술계가 그를 주목하는 이유다.   

 

 

더네이버, 사진작가, 이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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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설미현 Photo 박우진 출처 THE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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