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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떠나고 싶을 때

누구나 한 번쯤 이방인을 꿈꾸는 시대. 스물아홉, 불쑥 프랑스로 떠난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박윤선. 그의 눈에 비친 세계와 사람들, <아무튼 나는 프랑스에 산다>다.

2017.06.15

내 몽상의 프랑스는 사라졌지만 
나이 마흔을 넘기면 외국에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시절이 있었다. 햇볕 잘 들고 마당 넓은 집에서 꽃과 나무를 마음껏 키울 거다. 그리고 아침마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며 빵과 과일을 사야지. 어느덧 마흔을 훌쩍 넘겼고 계획은 수정되었다. 딱 두 해라도 좋다. 꼭 나가서 살아보자. 가장 기대하는 후보지는 만화 페스티벌이 열리는 남프랑스 앙굴렘 근처면 특별히 좋겠다고 여겨왔다. 저자는 나의 이런 사적인 로망을 먼저 누린 사람이다. 2년간의 레지던시 기회를 얻어 앙굴렘을 찾았고, 그곳에서 남자친구를 만나 팍스(PACS 시민 연대 계약)를 맺고 정착했다. 나는 오랜 꿈을 대리 만족하기 위해, 혹은 점점 희미해진 용기를 되찾기 위해 책을 펼쳤다. 저자는 로망이 아니라 삶을 담담하게 보여주었다. 따뜻한 태양 아래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카페에서는 단골끼리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동네 음악 학교에서는 가끔 무료 음악회가 열린다. 여행자의 눈으로 보자면, 어린 시절 소설을 읽으며 마음속에 그린 프랑스의 시골 마을에 가깝다. 그러나 이 책은 생활자의 눈을 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이방인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그들은 크게 세 부류다. 첫째, 위험한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이 나라에 빌붙을 방법을 찾고 있는 젊은이들. 둘째, 말년을 보내기 위해 따뜻한 곳을 찾아온 외국 노인들. 셋째, 개와 함께 길거리를 떠돌거나 골목 어귀에서 거짓말로 돈을 구걸하는 이들. 그 각각의 부류에 나를 대입했다. 나도 첫째의 젊은이처럼 ‘망명’하고 싶었던 적이 있다. 가족주의가 너무 싫어 아무 혈연도 없는 나라에서 디폴트의 삶을 시작하고 싶었다. 하나 지금은 이국의 삶이 얼마나 아슬아슬한지 알게 되었다. 어떤 행운이 따른다면 은퇴 후 둘째 그룹에 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팔뚝의 점 하나를 빼기 위해 4개월이나 의사를 기다려야 하는 나라에 적응할 수 있을까? 최악의 경우,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세 번째 그룹과 구걸 구역을 다툴지도 모른다. 텃세와 언어 능력 때문에 나는 그들의 상대가 되지 않으리라. 이렇게 내 꿈의 조각은 바스러져갔다. 그런데 그렇게 헐거워진 공간에 이 책에 나오는 결점투성이의 인간 군상이 하나둘 기어 들어왔다. 불완전한 조각들이 서로를 지탱하는 공동체의 퍼즐, 나도 그중의 하나가 되면 어떨까? 젊은 날 그린 몽상의 액자는 깨어버렸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남프랑스의 파란 하늘과 작은 집을 떠올린다. 

이 글을 쓴 이명석은 문화 칼럼니스트이다.  

 

 

내게 다른 삶을 허하고 싶다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공공연하게 선언해온 서울중독자다. 서울에서 태어나 다른 곳에서는 살아본 적 없는데도, 이 낯익다 못해 진부할 것 같은 도시는 늘 새롭다. 변하지 않는 곳도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고, 변하는 곳은 말할 나위도 없다. 서울은 숨 쉬고 자세를 바꾸고 다른 느낌을 준다. 이 역동적인 매력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다른 도시에서의 삶을 꿈꾸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상에서조차 그 삶은 시한부였다. 멋진 도시에 감탄하면서도 ‘딱 반년만 살아보면 좋겠네’, ‘딱 한 달만 살아보면 좋겠네’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 마침표 뒤는 탯줄로 서울과 연결되어 있다. 나는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다. 돌아와서, 더더욱 다르게 다가오는 이 도시를 마음껏 걸어다닐 것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서울이 아닌 곳에서의 삶을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서울은 다채로운 도시지만 다양성 면에서는 한계가 분명하다. 물론 이 책의 저자가 그리는 프랑스 소도시의 삶은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저자는 낭만의 그늘에 가려진 삶을 들여다본다. 살기 위해 프랑스로 건너왔지만 간신히 매달려 지내는 사람들. 역사의 회오리 속에 바스라진 채 한 줌도 안 되는 자긍심을 안고 사는 사람들. 차별당하고 차별하며 사는 그들의 모습을 빈말로도 부럽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은 열려 있다. 단일 민족임을 강조하고 숨 쉬듯 외국인을 혐오하며 비슷한 사람끼리 똘똘 뭉쳐 사는 이곳에서는 만날 수 없는 풍경이다. 조금만 눈을 돌리거나 마음을 열면 만날 수 있는 수많은 사연. 딱히 아름답지 않더라도 그러한 만남이 내 삶과 시선을 입체적으로 만들어줄 것 같다. 나 또한 이방인 입장에서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이다. 그런 삶은 어떤 삶일까. 우리 모두가 한민족의 카테고리 안에 속해 있음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온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짧은 여행, 반년간의 체류 정도로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곳에 내 삶을 부려놓지 않는 이상. 그곳을 생각하니 서울이 오래된 인큐베이터 같다. 언젠가는 나가야 할 거대한 유리돔 안에서 평생을 살아왔구나 싶다. 이곳의 오밀조밀한 재미는 충분히 맛보았다. 내게 다른 삶을 허하고 싶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늘 여전할 서울로 돌아오고 싶다. 

이 글을 쓴 박사는 북 칼럼니스트이다.  

더네이버, 책, 아무튼나는프랑스에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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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아무튼 나는 프랑스에 산다,박윤선,책

CREDIT Editor 설미현 Photo 김도윤 출처 THE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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