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현대 스타렉스, 현대 그랜저 IG

1 그랜저가 또다시 다운그레이드됐다. 겉으로 보기에 그렇다는 얘기다. 1986년 ‘각 그랜저’가 처음 나왔을 때 리무진 같은 모습이 황송했다. C필러에 오페라 윈도를 가진 차를 보면서 이런 차를 중소기업 사장님이 타도 되는가 싶었다. 그랜저의 시작은 분명히 현대의 최고급 차였는데 점점 더 고급스러운 차들이 나오면서 자신의 자리를 조금씩 양보해왔다. 디자인도 점차 중후한 맛을 지웠다. 새로운 고급차가 앞선 고급차를 짓누르는 현대의 전통은 특이한 영업 전술이었다. 그 덕분인지 그랜저에 젊은 고객은 많아졌다. 그랜저는 이제 니어 럭셔리 정도로 볼 만하다. 많이 둥글둥글해진 차는 근육질의 약동적인 느낌이라 더욱 다운그레이드를 재촉하는 것 같다. 테일램프 불빛은 많은 중형차에서 본 것 같아 자연스럽게 평범한 차가 되고 말았다. 캐스케이딩 그릴도 그저 그렇다. 제네시스 라인과 차별을 위해 현대자동차는 별개의 프런트 그릴을 만들었는데, 그 디자인이 그저 그렇다. 캐스케이딩은 상감청자 라인에서 영감을 얻었다는데, 자동차 앞머리에 도자기를 얹고 다닐 필요는 없어 보인다. 다행히 이제는 현대차의 수준급 품질이 어줍지 않은 디자인을 감춘다. 

2 다운그레이드의 예는 링컨 컨티넨탈도 마찬가지다. 1960년대의 링컨 컨티넨탈은 정말 거대한 차였다. 너무나 고급스러워 대통령만 탈 것 같았다. 그런 차가 세월이 흐르면서 지위가 격하되는가 싶더니 링컨 MKS는 6기통 엔진에 앞바퀴굴림 차가 됐다. 적당히 고급스러운 차가 된 과정이 그랜저와 똑같다. 이번에 나온 신형도 과거의 링컨 컨티넨탈 영광을 이을 차는 아니라서 링컨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이름을 이 차에 써버리면 왠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신형 컨티넨탈이 벤틀리 컨티넨탈 플라잉스퍼를 너무 닮았다고 루크 동커볼케가 불평을 했고 내 생각도 그랬다. 포드같이 큰 회사가 왜 이러나 싶었다. 다행이랄까, 양산차를 보면 그다지 닮은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보닛이 짧은 차에서 최상의 럭셔리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왼쪽부터)링컨 컨티넨탈, 기아 K9, BMW 5시리즈

3 기아의 호랑이 주둥이(?) 그릴은 과장을 하지 않을 때 멋지다. 오리지널 형상에서 멀어질수록 멋져진다. K9 구형과 신형에서 극적인 경험을 했다. 멀어질수록 멋진 그릴 디자인은 호랑이 그릴의 장래를 어둡게 한다. 프라이드와 스포티지의 프런트 그릴이 그저 그런데, 쏘렌토와 카니발 앞모습은 완벽하다. 르노삼성 SM6, QM6의 프런트 그릴에도 만족한 적은 없다. 잘 팔리는 차에 푸념을 하기 어렵지만 내 취향은 그렇다. 지나치게 화려한 디자인이 유럽차에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아서다. 하긴 프랑스 차의 진가는 오래 봐야 되는 것 같기는 하다.

4 2줄로 된 요즘 그랜드 스타렉스의 프런트 그릴은 보는 방향에 따라 왜곡돼 보인다. 처음에 완벽했던 한 줄짜리 프런트 그릴은 지금 모양으로 페이스리프트되면서 비뚤어져 보인다. 그 부위의 곡면이 커다란 그릴을 받아들일 수 없게 생겨서다. 벌써 10년이 된 차에 어떤 변화를 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조치가 멋진 그릴을 망가뜨리고 말았다. 그릴 문제만 아니라면 스타렉스 디자인은 아직도 상큼하다. 그나저나 스타렉스는 왜 시속 100킬로미터에서 속도제한을 하는지 정말 알 수 없다. 한때 구입을 생각했지만 주위에 속도제한 때문에 포기한 사람이 많았다. 불법으로 속도제한을 풀고 달릴 수는 없는 일이다. 미니밴에 11인승, 12인승 하는 억지스러운 시트 배열도 언제까지 계속될지 답답하기만 하다. 미니밴은 화물차가 아니라 승용차다. 

5 BMW 세단은 세대가 바뀌는데 왜 같은 디자인을 고집할까? 신형과 구형을 구분하려면 꼭 사진을 대조해봐야 한다. 오랜 세월 투자도 많았을 텐데 결과물이 신통치 않다. 신형 7시리즈는 벤츠와 비교할 때 새 차 맛이 덜하다. 신형 5시리즈 보디 측면의 뒤틀린 캐릭터라인은 전혀 내 관심을 끌지 못한다. 이 차로 또 기다려야 할 7년의 세월이 지루하다. 나는 BMW 디자인 책임자 아드리안 반 후이동크의 실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모터트렌드. 자동차, 신형자동차, 2017년자동차